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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것이 문제다] 야시장을 둘러싼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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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에 악영향을 끼친 형태의 하나로 야시장을 꼽을 수 있다. 일부 소수의 장애우들이 불우장애우돕기라는 명목 하에 파행적인 장사를 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야시장, 무엇인지 내막을 알아본다.

<·야시장 둘러싸고 설전 벌어져>
 최근 장애판의 한켠에서는 그동안 열어왔던 야시장을 둘러싸고 당사자들간에 묘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흥미를 끌고 있다.
 장애자인권보호협회 전 회장 김수권(57)씨와 지체장애자협회 동대문 지부장 장금영(45)씨, 그리고 88장애자복지회회장 김정하(48)씨, 곰두리복지회 감사 이희성(43)씨가 바로 그 실전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들인데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88년 청량리 신망애 싸움 때 소위 장애자복지투쟁위원회를 처음 만들었고, 그 이후 최근까지 불우장애우돕기 기금마련 명목으로 야시장을 주도적으로 개설해 온 장본인들이라는 점이다.
 이들간에 벌어지고 있는 설전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김수권씨와 이희성씨는 지체장애자협회 동대문 지부장인 장금영씨가 그동안 인권보호협회가 연 야시장 총무 일을 보면서 전횡을 일삼은 것은 물론, 공금횡령의 의혹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장금영씨는 전 회장인 김수권씨가 생각이 불건전한, 자기가 내뱉은 말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무책임한 인물이며, 이희성씨에 대해서는 당사자도 아니면서 헛소문을 퍼트리며 다니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김정하씨는 최근 (4월말)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야시장을 또다시 열어 짭짤한 재미를 봄으로써 행태와 관련이·장씨에 의해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듯 서로간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가운데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은 다름 아닌 그간 장애판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장애우 야시장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장애우 야시장은 어떤 경로를 통해 시작됐으며, 실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장애우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켜 왔을까? 그리고 야시장을 열어왔던 당사자들은 왜 이제 와서 서로를 비난하고 있을까?
 여기서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 행태를 추적해 보기로 한다.

<·국풍 81 행사가 야시장의 시초>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름도 생소한 야시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5공 초기인 81년, 전두환씨의 동생인 전경환 당시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이 "국풍 81"이라는 관제행사를 한강 고수부지에서 대대적으로 연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정통성이 전무했던 5공 정권은 초기부터 떠난 민심을 회유하기 위해 갖가지 국민위락 행사를 펼쳤는데 그 행사 중 하나가 "국풍 81"이었고, 이때 처음 연예인들이 출연하고 밴드를 불러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전국 각지의 토속음식이 선을 뵈는 "팔도미락정"이라는 야시장이 등장해서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야시장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자 장사가 되겠다고 판단한 전문업자들이 속속 생겨났고 이후 이들에 의해 야시장은 전국적으로 처음에는 불우상이용사 돕기라는 명목하에 "칠칠" "태극" "청룡"등 상이용사 단체 이름으로 주로 시유지나 공유지, 하천가나 역 주변 공터 등에서 열리면서 꾸준히 봄을 타게 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업자들이 야시장을 직접 하지 않고 상이용사 단체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현행 도로관리법, 하천법상 공유지를 점거해서 야시장을 여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구청에서 허가를 받거나 강제철거를 저지시킬 때 명분을 내세워 야시장을 열기가 용이하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판단은 상이용사 단체가 아닌 장애우 단체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단체가 아닌 장애우 단체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업자들의 생각임은 물론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장애 쪽에서 야시장을 처음 시작한 시기는 85년도로 당시 신체장애자복지회 안양지부장이었고 현재 동복지회 경기도 지부장인 유재근(40)씨가 처음 눈을 떠 업자들과 손을 잡고 야시장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씨가 불아장애우돕기라는 명분하에 업자들을 대신해 단체 이름으로 몇 건의 야시장을 열어주고 업자들에게 사례비를 받아 재미를 보자 잇달아 당시 신체장애자복지회 사업부장으로 있다가 현재 동복지회 남양주군 지부장으로 있는 임용주(45)씨도 가세했으며, 86년에는 앞서 언급한 김정하씨도 장애자자립회 명칭으로 참여하면서 우후죽순 장애우돕기 야시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급한 이들이 손쉽게 야시장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계기는 업자들이 터무니없이 많은 사례비를 요구하는 상이용사 단체들에 비해 이들 장애우 단체들은 반값에 해당되는 저렴한 사례비만 주어도 감지덕지 하며 야시장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는 점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우장애우돕기라는 명분 내세워 장사 해>
 참고로 하나의 야시장이 개설되기까지의 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흔히 팀장이라고 불리우는 야시장 업자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소를 물색해 두었다가 주로 상이용사 단체나 장애우 단체에 접근해 공유지의 경우 물색해둔 장소에 야시장을 열 수 있도록 관청에서 허가를 받아 주거나 개인 땅의 경우는 대리계약을 체결해 야시장을 열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전제 하에, 그리고 만약 허가나 땅을 빌리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장사를 하는 동안 천막이 안 내려가게 보장만 해준다면 거액의 사례비를 주겠다는 제의를 한다. 이렇게 해서 일단 계약이 이루어지면 장애우 단체는 "본 단체는 불우한 장애우들의 자립정신을 도모하며 독립된 회관건립 기금마련을 위한 목적의 사업을 달성하고자 야시장을 개설하니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의 협조 공문을 행정관청에 발송한 후 직접 관청을 방문해 부탁과 위협과 어거지를 쓰고 그래도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몇몇 장애우를 동원해 장사기간 중에 내내 나와있게 하면서 구청에서 강제철거를 나올 경우 실력으로 저지하도록 하는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구청에서 허가를 내줄리 만무하기 때문에 대부분 마지막 상황이 선호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열흘동안 열리는 기간동안 천막이 안 내려가게 해주는 대가로 이들 장애우 단체가 업자들에게 받는 사례비는 한 건당 적게는 오십만원, 많게는 삼백에서 오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사실은 업자들은 일단 야시장을 열 수 있다고 판단되며 상인들을 모집, 상인들에게 한 코너당 백만원의 자릿세를 받는 등 모든 경비를 부담 지움으로써 또 하나의 하청고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이런 과정을 거쳐 열리는 야시장은 행정관청에서 나와 강제철거만 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수입이 보장되는 해볼만한 장사라는 것이 공통된 이야기이다. 우선 명분이 불우장애우돕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쉽고, 파는 음식이 팔도의 토속음식이라는 선전이 그럴 듯 하며, 여기에다 연예인이나 밴드를 초청, 여흥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장사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모두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황을 이룰 때는 업자 집 한 채 샀다.>
 야시장에 관계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야시장이 한창 성황을 이루던 5공 때는 업자들 사이에서 열흘동안 야시장을 해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면 그 장사는 실패한 장사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로 업자들이 야시장을 통해 챙기는 수입이 막대했다고 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령 돼지고기 한 근을 요리해서 파는 경우 시세가 2천원∼3천원 이라면 야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불우장애우를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8천원∼9천원을 쉽게 받는 엄청난 폭리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평균 하루 매상이 5백만원에서 6백만원에 이르다보니 상인들과 업자들이 돈을 안 벌래야 안 벌 수가 없도록 되어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증언이다. 

 여기서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야시장과 관련,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을 언급해 보면 야시장의 명칭이 "팔도미락정"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상인들은 야시장에서 전국 각지의 토속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다고 선전을 하지만 실제로는 토종닭, 메추리 등 음식재료의 대부분을 서울 경동시장에서 일괄 구입해 음식을 만들어 내놓으며 더욱 가관인 행태는 돼지고기를 멧돼지고기로 둔갑시켜 파는 등 파는 음식의 상당수가 가짜인 파렴치한 상술을 서슴치 않는다는 것이다.

 장애우단체 또한 물의를 일으키기는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오십보 백보여서 관청의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어거지를 쓰기 일쑤이고 심지어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공무원을 구타하는 사례까지 발생, 한 관계자에 의하면 88장애자복지회 회장 김정하씨의 경우 야시장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서울 모구청 건설관리과 과장을 목발로 내리쳐 팔을 구부러뜨린 적이 있으며 또 다른 담당 실무자의 배를 주먹으로 때려 경찰서를 수시로 들락날락 거려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결국 구청 담당 실무자들로 하여금 "병신 떡 하나 더 주고 말아버리지"라는 심한 모멸감을 드러내도록 유도해 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듯 결과야 어째됐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야시장을 열어 한 몫 잡고 자리를 뜨면 그만 이라는 생각이 장애우단체, 업자들, 상인들 사이에서 팽배한 채 장사가 이루어지다 보니 결과적으로 명분을 도용 당한 장애우들만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는 상황이 연출되기 쉽상인 것이 야시장을 통해 드러난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돼지고기가 멧돼지고기로 팔리는 등 가짜 음식 팔아>
 그렇다면 살펴보았듯이 부작용이 많은 야시장을 열어 그들 말대로 재미를 보는 장애우단체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최근 야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설전의 내막에 접근해 보면 의외로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88년 청량리 신망애 싸움을 기회로 모인 김수권씨 등 몇몇 장애우들은 청량리 사태가 종결되자 그 해 7월 23일 7∼8명의 회원을 둔 장애자복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게 된다. 이때 회장은 김수권씨 부회장은 당시 장애자자립회 회장이었던 김정하씨였다. 김수권씨에 따르면 동사무소를 점거하는 등 격렬했던 청량리 싸움을 끝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어느 날 김정하씨 한테서 기금마련을 위해 야시장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다. 훨씬 이전부터 야시장 사업을 해왔던 김정하씨는 수완이 좋기로 이름이나 김수권씨는 선뜻 그 제의를 수락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88년 9월 한강 축제가 열리고 있던 고수부지 1천평을 업자들과 사례비 2천5백만원을 받기로 계약한 후 장애자복지투쟁위원회 이름으로 20여명의 장애우를 동원, 무단 점거해서 야시장을 처음 열게 된다.

그러나 고수부지 야시장은 곧 상이용사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쳐 집단 행패가 난무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얼마 못 가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사례비도 당초 받기로 한 사례비에 훨씬 못 미치는 5백5십만원 밖에 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도 어쨌든 첫 시도치고는 성공한 셈이어서 이들은 그 돈을 나눠 갖고 곧이어 장안평에 있는 장평교밑 하천에서 다시 야시장을 열어 업자들에게 2백만원을 받아낸다. 이때 처음 수고비 빼고 기금으로 85만원을 떼 놓았다고 한다.
 장애자복지투쟁위원회 이름으로 두 건의 야시장을 연 후 89년 5월 김수권씨는 장금영씨를 만나 손을 잡게 된다. 당시 장금영씨는 신체장애자복지회 복지부장으로 있으면서 열었던 몇 건의 야시장을 연게 말썽이 생기자 복지회를 그만두고 쉬고 있던 상태였었다. 장금영씨에 따르면 김수권씨는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지 하자고 제의를 해왔다고 한다. 김수권씨의 제의를 받은 장금영씨는 규모는 작지만 두 건의 야시장을 연 후 89년 10월 순전히 야시장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장애자복지투쟁위원회란 명칭을 전국장애자인권보호협회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야시장 하기 위해 명칭 인권보호협회로 바꿔>
 장씨가 이런 제안을 하게 된 것은 복지투쟁위원회란 명칭으로 구청에 들어가 협조를 요청하면 공무원들이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투쟁운운 하느냐며 면박을 놓기 일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수권씨가 장금영씨의 제안에 호응했고 이들은 그 해 11월 명칭을 장애자인권보호협회로 바꾸고 야시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초기에 장터, 하일동, 창신동 등에 잇달아 야시장을 열어 2백8십만원의 기금을 마련, 이 기금으로 마장동에 있는 시설관리공단 소유부지에 콘테이너로 사무실을 마련하기도 한다.

 얼마아낙 인권보호협회는 야시장 업자들 사이에서 "일 처리를 잘한다"라고 소문이 났고, 그에 따라 찾는 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부탁이 들어오다 보니 많을 때는 한 달에 7∼8건을 연 적도 있었다고 한다. 빈땅만 있으면 들어가 천막을 세우다보니 개인 땅의 경우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봐달라며 땅주인에게 무조건 어거지를 쓰는 수법으로 무마시켰다. 또한 구청과의 마찰도 많았는데 이럴 때는 김수권씨가 직접 담당자를 찾아가 "내가 거짓말하면 당신 아들이다 열흘동안 야시장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우리 몇몇이 나눠먹는게 아니라 전체 장애우복지를 위해 쓴다. 지금은 복지의 과도기니까 야시장을 할 수밖에 없다"라는 요지의 그럴듯한 거짓말로 설득을 했다고 한다. 이런 설득조차 먹혀 들어가지 않으면 마지막 수단으로 구청 실무자에게 얼마간의 뇌물을 집어주기도 했다. 철거를 하러 나오는 임시직 공무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담배 값이나 점심값을 하라며 뇌물을 제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수익금, 전체 장애인을 위해 쓴다고 속이기도 해>
 우여곡절 끝에 하나의 야시장을 열고 나면 이들은 보통 한 사람이 많게는 50∼60만원, 적게는 10만원 가량씩 수익금을 나눠가졌다고 한다. 각자에게 돌아가는 이 정도 액수는 일당제에 비해서는 파격적으로 많은 액수에 속한다는 것이 이희성씨의 말이다.
 가령 뚜렷한 회원도 없이 88장애자복지회 이름을 내걸고 야시장을 하는 김정하씨의 경우, 김씨의 야시장을 할 때 구청에서 철거를 하러 나오면 주로 재가 장애우를 불러 일당 1만원∼2만원을 주고 철거를 막게 했다고 한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소일하고 있던 장애우들을 불러 고기와 밥을 사 먹이고 일당만원을 주니 재가장애우들은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수익금은 모두 다 김정하씨 개인이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김씨는 최근에도 4월 18일에서 28일까지 천호2동 공터에서 야시장을 열어 업자들에게 3백만원을 받아 재미를 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권보호협회를 만들어 그동안 60여건의 야시장을 열어 수익금을 챙겼던 이들 장애우들이 지금 와서 서로를 비난하는 설전을 벌이게 된 데에는 작년 여름 경기도 하남시 하천가 야시장 실패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한다.

<·야시장 철거하자 몰려가 행패 부려>
 당시 인권보호협회는 하남시 실무자에게서 구두로 허락을 받고 천막을 쳤는데 그 지역 상이용사들이 시장에게 압력을 넣어 오픈 하는 날 시청 철거반원들이 나와 무지막지하게 천막을 철거했고, 이에 김수관씨 등 회원들이 시청에 몰려가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김수관씨가 민원실 유리창을 다 부수고 회원들이 술병을 던지며 방뇨를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이 사태의 수습은 하남시 실무과장이 좋게 합의를 보자고 해 야시장을 철거한 피해보상비로 2백7십만원을 받았는데 이 돈을 김수권씨가 회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본 업자에게 주지 않고 나눠 가지자고 주장해 결국 나눠 가짐으로써 업자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 결과적으로 김수권씨가 책임을 지고 몰러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수권씨가 그만두자 장금영씨는 독단으로 지하철 신문판매업을 하던 권모씨를 회장을 추대했고 이에 이희성씨 등 회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서로 상대를 비난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희성씨는 지체장애자협회 동대문 지부장인 장씨가 그동안 야시장 총무로 기금을 관리하면서 회원들에게 기금장부를 보여주지 않는 등 전횡을 일삼았고 나아가 관례상 업자들이 술을 사주게 되어 있는데도 자신이 기금으로 술을 샀다고 하는 등 기금착복의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금영씨는 이씨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낭설일 뿐이라고 한마디로 일축하고 있다.
 인권보호협회는 현재 지장협 동대문지회 옆에 사무실을 옮겨놓고 예전보다는 위축됐지만 여전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장애우 야시장은 최근에도 몇몇 단체에 의해 전국적으로 불우장애우를 돕는다는 명분하에 열리고 있다고 한다. 살펴보았듯이 이런 식의 행태가 이어진다면 어떤 이유를 들어 미화를 한다 하더라도 장애판에 적잖은 부작용의 파장을 미칠 것임을 자명한 이치이다. 따라서 장애우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야시장은 이제 사라질 때가 되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글/이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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