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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현장보고1]"죽음보다" 깊은 "침묵"

본문

(본문)
 "어디서 왔는데?"
 정명섭(46)씨 침대에 올라앉아 졸고 있던 할머니가 귀찮다는 듯 짜증섞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 예 저, 잡지사에서 나왔는데요"
 사들고 온 쥬스 봉지를 내려놓으며 정명섭씨 옆 침대에 혼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물끄러미
낯선 방문객을 쳐다보고 있는 서용선(46)씨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자.
 "그 사람한테 인사하면 뭐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기독명원 418호,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돌아가는 창문 밖의 이해와 타산이 정지된 채 끝없는 침묵만이 진하게,
끈끈하게 깔려있는 "다른 세계"였다.
 "낼 모레두 그 테레빈가 어디서 찍어간다구 연락이 왔는디 귀찮아서 죽겄서. 테레비서 만
날 찍어가문 뭐하냐구 필요없다구 하니께 방송국 사람이 그래도 자꾸 이렇게 찍어가서 사람
들 한테 알려야 직업병이 하루라도 빨리 없어진다구 해서 찍기루 했어."
 얘기 도중에도 정명섭씨는 수염이 까칠한 얼굴과 머리를 계속 앞뒤로 조금씩 흔들면서 웃
고 있었으며, 바로 옆 벽쪽의 서용선씨는 한쪽 눈을 찡그리고 여전히 같은 자세로 말없이
얘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병원에서 이들 두 사람외에 김용운, 강희수 그리고 조병수씨등 모두 다섯 사람의 원진
노동자가 벌써 일년이 넘도록 입원하고 있다.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고칠 수 없다는데 치료를 어떻게 해 그저 밥이나 멕이구 소화제나 죽는거지."
 벌써 일년이 넘게 걸려있었을 침대 끝의 환자 인식표의 바래빠진 CS2 poisoning이란 글자
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서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는 산재나 직업병 얘기를 들으면 고 "보상금"이 떠오를 정도로 돈 맛(?)에 길들
여져 왔다며, 따라서 이들이 병들고 망가지고 몸과 정신을 추슬러 다시 건강한 노동자로,
가장으로 씩씩하게 이 사회에 되돌아 올 수 있으냐의 여부보다 과연 보상금을 얼마나 타내
느냐 하는 잿밥에만 관심을 가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 40대부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으며, 더욱이 내가 누구
인지조차 모르고 하염없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껍질만의 인간으로 이렇게 버려져 있는
산업역군들.
 "보상금 문제? 우리쪽(정씨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은 다 끝났어. 보상금도 다 받고 이제
회사하구는 끝났어. 말 들어보니까 옛날에 권진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이 네명 있는데 그 사
람들도 우리하구 같은 병으로 죽었다구 보상해 달라구 싸운다든데…"
 88년 7월 처음 이황화탄소 중독이라는 직업병이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만들어진 원진레이
온 직업병가족협의회(원가협)는 처음에는 60여 명이 넘었으나 기나긴 투쟁과정에서 회사측
은 회유와 "산 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활의 흐름에 떠밀려 이제 매주 토요일
정기 모임에 얼굴이라도 비치는 사람은 15~2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병원에는 언제까지 있어야 된답니까?" 기나긴 병원생활이 지루해 혹시 집에서 요양하며
치료하는 방법이 없을까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역시 "몰라,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 병원에
서도 나가란 소리도 안하고… 우리두 집에 데려다 놓구 싶은데 누가 똥, 오줌 받아낼 사람
이 있어야지 죄다 학교가구 한 푼이라도 벌라구 나서야 하는데…."
 "그저 이 상태대로라면 그래두 어떻게 해 보겠는데 점점 더 나바진다니까. 얘(정명섭씨)두
요샌 목이 굳어서 받을 넘기지 못해 억지루 한 숟갈 멕이믄 입에 물구 있다가 맽어버려. 그
래 우유하구 빵만 멕인다니까."
 그동안 그래도 목발에 의해 몇 걸음 땅을 딛어 보던 정씨는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고 몸을
가누지 못해 얼마전에 의자차를 샀노라고 옆 침대의 50대 병원친구가 전해준다.
 원진에서 13년.
 딴과 근육으로 얼룩진 피끓는 청춘을 쏟아부은 40대의 그는 이제 쥬스 한 자 제대로 마시
지 못하는 껍데기만 남은 허수아비로 그저 웃기만 하고 있었다.
 얘기 도중 내내 비스듬하게 벽에기대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서용선씨는
슬그머니 침대옆에 걸려있던 소변기를 끌어다 오줌을 누고 있었다. 서용선씨와는 똑바로 눈
을 마주치지 못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는 402호 조병수씨의 방으로 가는도중 간호원실
에 들렀다.
 "저희도 씨·에스는 처음인데 가볍거나 중하거나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또 환자중에도 불리
치료, 약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요."
 "언제까지 병원에 있어야 합니까?"
 "글쎄요, 저희들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환자들이 나갈때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병원에서도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답답한 마음으로 찾아간 402호. 어두컴컴한 병실에 조병수씨 역시 누워있었으며 머리맡에
는 식어버린 점심이 쟁반에 담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애기 엄마 어디 가셨어요?" 튼 소리로 묻자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
다.
 "산재보험으로 요양비는 되고 급료는 휴가급여가 매달 나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 민사로
합의한 보상금은 1차, 2차 지급이 끝나고 9월말 3차 지급으로 모두 끝나게 됩니다."
 끝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회사측 사람은 보상금지급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지 않느
냐고 하자 1백50억을 투자하여 환경관리 작업 3대년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보상금도 보상금이지만 치료가 불가능 하다는데요."하고 묻자 어물어물 지나가는 말로   
 "그건 우리가 잘모르겠고. 병원에서 할 일이 아니냐"고 말 꼬리를 흐렸다.
 노동부에 의하면 지난 해 일년 동안 1천5백61명의 노동자가 직업병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
는데 이는 88년의 2천1백50명 보다 상당히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노동부가 직
업병으로 인정해 산업재해 보상을 해준 건수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몇
배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나 까다로운 당국의 직업병 인정기준과 형식적인 건강진단으
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해롭고 위험한 노동으로부터 노동자는 보호해야 할 노동부는 최근 산업안전
보건법시행령 개정안에서 고운, 저온, 지하작업, 고열, 토석, 암석 등의 분진. 그리고 중금속
및 유해화학 물질의 분진·증기 또는 가스를 발산하는 곳에서 행하는 작업 등 기존의 유해·
위험작업범위를 잠수·잠함작업 등 놓은 기압속의 작업이 1종으로 대폭 축소되어 가뜩이나
소홀한 노동자의 복지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서 노동계의 jtps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여러해 전 원진레이온은 원진앞을 지나가는 철로가 부식되어 열차가 탈선하는 큰 사고가
일어나 철도청에 약 3억여원의 보상을 한 적이 있기도 하다. 쉿덩어리 철길이 썩어 부서질
정도의 독가스르 마시며 청춘을 바친 이들 노동자의 삶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1급, 2급 다 필요없어. 평생 일 못하고 살긴 마찬가진데…. 전부 죽일놈들 뿐이야…."
 중얼거리듯 내뱉는 한 보호자의 푸념 속에 영 떠나지 않는 것은 서용선씨의 찌푸린 얼굴과
초점이 없이 흘진 탁한 눈동자와 그리고 그의 그런 눈을 똑바로 마주보지 못하는 우리 모두
의 "눈 멀음"이었다.

작성자전흥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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