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 저런일] 시화에 담은 근이양증 장애우들의 고통과 희망
본문
<空 한마리아>
창 밖의 좁은 틈으로
노란「해」가
드러누운 내게
손 흔들며 지나갑니다.
나는 기뻐
팔을 올려 보지만
움직이지 않아요.
바쁜 걸음의 「해」랑
친구하고 싶어
일어나려 지만
혼자 있어서 움직일 수 없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해」는 버얼써
저만큼 도망가지요
오늘도 긴 하루를
아픔만이 자리한
내 몸 속에
꼬꼬 다져
혼자 눌러 채웁니다.
누운 자리가
하도 지쳐서
겨우 뒤적여 엎드리다
비비적거리는
개미 한 마리가
어찌나 반갑는지요
혹시나
우리는 친구가 될까
눈짓으로
부르다, 부르다
눈물 흘립니다
<시화전 출품작 중에서>
시화 그림의 만남을 우리는 시화(詩畵)라 한다. 시와 그림이 만난 시화는 우리에게 시를 보여주지도, 그림을 보여 주지도 않는다.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시화는 "시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9월 22일과 23일, 양일 간에 걸쳐 서울 보라매공원 연못가에서는 한 차례의 시화전이 있었다. 근이양증 장애우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상록회 라는 모임에서 그동안 그들이 창작한 시들을 정리하여 일반인들에게 선보인 것이 그것이다.
근이양증이라 하면 근육의 소모성 질환을 말하는데, 근육이 점차로 약해져서 혼자 움직이는 힘이 감소함에 따라 결국 전신이 마비 상태에 이르는 병으로 현대 의학으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긴 투병 생활로 몸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질환에 따라서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근이양증 장애우들은 대개 투병 생활의 고통, 혼자라는 외로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체된 생활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무작정 운명에 끌려 다닐 수만은 없는 존재이기에, 이들 장애우들도 병마와 싸우며 좀더 능동적이고, 깊이 있는 삶을 살고자 의미 있는 몸짓을 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이 성민장애자 교회에도 있어 상록회가 조직되었다. 근이양증 교인 3명으로 시작한 상록회는 책과 문학을 통한 깊이 있는 삶의 배양, 더 나아가서는 경제적인 자립을 통한 생활의 자립을 위해 마련되었고 활동 중이다. 현재는 약 20명의 장애·비 장애 회원으로 늘어난 상록회는 항상 회원들 자신의 재발견에 대한 확인기회와 장애·비 장애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한다. 이를 위한 대외적 행사가 바로 총 36점의 시화로 꾸며진 "제1회 상록수 시화전"의 개최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인격체가 아닌 그 어떠한 존재로 비추어짐도 거절한다"는 상록수독서회의 기본 흐름은 이번 시화전을 진행하면서도 잘 나타나, 시화전의 기획·준비·운영 등의 모든 일이 모두 장애우들의 의지에 의해 구체적으로 이끌어졌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장비들의 단순한 운반이나 설치 밖에 없었어요. 대개, 장애우에 관한 행사는 일반인이 마련하고 장애우는 단순히 참석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이번 시화전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라는 한 자원 봉사자의 말에서 상록수 시화전의 남다른 특색을 읽을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대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었으며, 개인이 겪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의 자기 표현 자기 위로의 행적 등을 주 내용으로 피안적(彼岸的)세계에 대한 강한 추구를 감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번 시화전 행사 담당자 김태환씨 (23)는 "불가항력적인 근이양증 장애의 고통이 선진외국에서처럼 현실 세계에서 어느 정도나마 희석 화하지 못하는 우리의 장애 현실에서 기인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시된 시화를 감상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라매공원에 왔다가 우연히 시화전을 발견하고 찾아온 이들이었으나, 시화를 접하는 하나 하나의 진지한 모습들 속에서 시화를 통한 장애우와의 만남이 그들의 기억 속에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우연히 이 시화전을 접하게 된 예림미고 1학년에 재학중인 강미선(16)양은 "집에 가자마자 가장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띄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늘 이 자리에서 느낀 저의 소중한 경험과 시화에 나타난 이분들의 얘기를 그 친구와 꼭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요..."라고 자신의 느낌을 얘기했다.
시화는 시와 그림이 만나 시도 그림도 아닌 시화의 세계를 만들었다.
이번 시화전은 장애와 비장애가 만나 인간이라는 사랑체를 만들었지 않나 싶다.
김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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