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와 직업] 장애우, 이제는 고급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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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생기가 넘치는 활기찬 거리 명동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 바쁜 생활의 북적거림을 한층 더해 주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거리의 쇼 윈도우에는 이 날 따라 수많은 보석들이 저마다의 화려함을 뽐내며 행인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악바리"란 별명의 정용학 씨답게 그의 사무실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맨 꼭대기에 있었다. 양손에 목발을 사용하여야지 만 걸을 수 있는 정용학 씨이지만 8년 간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생의 투지를 불 태웠다고 한다.
금은 세공사, 장애우들의 취업전망으로 가장 나은 직업 중의 하나이며 많은 장애우들이 한번쯤 시도해 보려고 하거나, 해 보았던 이 일을 정용학 씨가 처음 배우게 된 것은 무려 14년 전이라고 한다. 어려서 장애가 너무 심해 10세 때까지 어머니가 밥을 떠 주어야만 했고 그 덕분에 학교라곤 문 앞에도 가 본적이 없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혼자 서고 싶어 각고의 노력 끝에 15세 때 드디어 혼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자 곧바로 서점을 차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이 서점도 경영이나 세상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정용학 씨에겐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곧 그만두고 다시 인천으로 내려가 그 당시에도 장애우에게 알맞다는 전파사를 하면서 약 2년을 지냈다. 기술도 금방 익히고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았지만 전파사일도 곳곳에 장애우로서 한계가 있었다. 출장을 나갔을 때 아무리 잘 고쳐놓고 돌아와도 사람들이 안쓰러워 다시 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천장이나 좀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본인 스스로도 고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 쉬고 있는데 친구가 금은세공을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서 처음부터 친구와 동업 식으로 20만원을 투자하여 배우기 시작했다 한다. 사실 배울 때부터 사장님이었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당시 7명의 직원과 함께 있었는데 이들의 밥은 물론이고 설거지 청소까지 모두 정용학 씨가 도맡아 했으며 낮에는 배우는 입장에서, 또 남들이 다 퇴근하고 난 뒤부터 새벽 2시까지는 혼자 부족한 기술을 익히느라 거의 3년동안을 작업실에서만 살았다.
특히나 어려웠던 것은 처음 배울 때 발로 불통을 밟으면서 그 불길에다 녹여진 금붙이를 이어야 하는데 손에 균형을 잡지 못하여 넘어지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자신이 기술을 배울 때와 비교해 보면 요즈음은 기술을 배우는데 있어서 양손만 쓸 수 있는 장애우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장애우들이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여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용학 씨는 집에서부터 장애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커왔으며 본인 스스로도 사회적응을 아주 잘 한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며 활동적이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으나 후배들이나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끈기가 없고 특유의 고집들이 있어 정말로 힘들게 배운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그러면 하루에 한 개를 만들 것을 한 개 반을 만들 수 있는데 몰라도 물어 보지를 않으니 진도가 안 나가고 그러다가 흥미를 잃어 곧 손을 놓는 경우가 거의 7∼80%나 된다고 한다.
하려고 하는 의지는 좋으나 끝까지 해 보려고 하는 끈기가 없어서 그만두는 것을 보면 일단은 장애우들의 정신상태부터 고쳐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하면서 "아직까지도 많은 장애우들이 남을 의지하려는 것이 강합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지금 돌봐 준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그러는 것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혼자 서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로 직업이 우리 장애우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돈도 써본 사람만이 쓸 줄 안다고 돈을 벌어봐야지 만 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지만 자격지심, 오기 이런 것들을 버릴 수 있겠지요. 그리고 직업을 선택하려 할 때에도 고급인력개발에 눈을 돌렸으면 좋겠어요.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은연중에 깔려있는 직업피해의식도 장애우들이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요인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여러 사회단체에서도 장애우들에게 직업을 알선해 주려고 할 때 이런 점을 특히 고려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라고 힘주어 얘기했다.
누구보다도 장애우들의 문제점을 가슴 깊숙이 느끼고 있는 정용학 씨는 그 자신 여러 장애 단체의 소리 없는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번 9월 말에 드디어 동대문근처에 금은방을 개점한다는 정용학 씨는 요즘 개점준비로 한창 바쁘다고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나이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고, 건강해 보이는 생활인 정용학 씨에게 이번 가을에 멋진 반려자가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1. 정용학 씨가 말하는 취업안내>
세공은 몇몇 사회단체나 재활원 등에서 취업대상 종목으로 지정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런 곳에서는 기초 밖에 가르쳐주지 않는다. 따라서 1년여를 배우고 난 후라도 겨우 액세서리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하고 그런 정도의 기술로 사회에 나와서 일하려고 하면 망치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먼저 아는 사람을 통해서 공장에서 직접 일 하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고 기초를 단단히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2. 자격>
배우려고 하는 사람의 학력에는 제한이 없으며 양손 가능한 장애우는 누구나 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서도 잠시 말했듯이 끈기와 의지가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6개월도 채 못 가서 그만두려는 사고방식으로는 이 일을 시작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조금의 괴로움만 참을 수 있다면 금은세공은 장애우에게 더 없이 좋은 직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정용학씨는 말한다.
<3. 과정>
금은세공에서 맨 처음 배우게되는 것은 망치질로 철사를 뽑아내는 작업이며, 후에 자신의 감각과 센스를 토대로 디자인을 배워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망치질만도 약 6개월 정도 배워야 하며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선 약 3년이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디자인은 학원을 다니면 더욱 빠른 발전을 할 수 있다.
<4. 전망>
앞으로의 수요와 세공사의 취업 등에 관한 전망은 아주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성장 일로 에 있는 우리나라 실정에 아주 적합하다. 전보다 귀금속 수요가 많아졌을 뿐 아니라 생활의 윤택함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할 수 있는 물건의 고급화 등 찾는 사람들의 수준 높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작자의 감각들이 이 직업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일단 기술자가 되면 해외로도 많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한달 월급은 5년 경력이면 보통 6∼80만원 정도이고 개인이 직접 운영까지 하게 되면 수입이 150∼200만원까지도 될 수 있다 한다.
박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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