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는 왜 지금 무더기 퇴원 우려 대상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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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30일 전면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을 앞두고 정신병원과 정신과 의사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강제입원 절차와 관련하여 기존에 보호자 2명의 입원에 동의하고 정신과 전문의 1명이 진단을 내리면 6개월간 강제입원이 가능하던 것을, 보호자 2명이 입원동의하고 전문의 1명이 진단을 내리면 우선 2주간의 진단을 위한 입원이 가능하고, 2주를 초과하여 입원하려면 다른 병원 소속 전문의 1명의 추가진단이 필요하다. 강제입원의 요건도 입원치료가 필요하거나(or) 자해·타해 위험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하다가 개정법에서는 입원치료의 필요성과(and) 자·타해 위험이 있을 것으로 요건을 강화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한 의료계 인사가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정신질환자 무더기 퇴원, 앞으로 문제는 누가 책임질까’(http://slownews.kr/62875)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는 “현재 전국에는 약 20여만 명 남짓한 정신질환자 중에서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2017년 5월 30일까지 한꺼번에 퇴원하게 되는 것이다”이라고 표현하며 정신질환자 무더기 퇴원이 현실화될 것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정신의료계의 우려대로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2017년 5월 30일까지 한꺼번에 퇴원하게 될까?
2013년 정신보건통계현황에 따르면, 2013년에 정신의료기관에 입원 중인 환자의 수는 80,462명이고, 그 중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에 의한 입원이 21,294명으로 26.5%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입원이 59,168명으로 73.5%를 각 차지하고 있다. 이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입원이 전체 입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입원 중에서도 보호입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인의 진단이 있으면 보호입원이 가능하도록 한 구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하여 정신질환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그간 정신보건법 24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항으로 인해 숱하게 많은 강제입원 피해자들이 양산되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날 보러와요>는 정신병원 강제입원 제도의 폐해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정신병원 강제입원 피해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정신보건 시설과 관련한 진정건수(입·퇴원절차, 격리·강박, 사생활침해 등)만 하더라도 연간 3,300여건에 이르고 있고, OECD국가 중 유독 한국만이 입원병상수가 최근까지 늘어나고, 평균입원기간이 압도적으로 길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신보건법 시행 20년 동안 일부 정신과의사는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결정하는 공적⋅사회적 권력을 사익의 도구로 활용해 왔다. 이로 인해 정신질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치료받을 권리는 침해되고, 강제입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 왔다.
연도별 정신병상수 추이(출처: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2014),2013정신보건통계현황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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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의 정신보건시설 평균 재원일수 |
정신보건의 역사에서 정신질환자 내지 정신장애인은 늘 대상화되었고, 무대 밖에만 존재하였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정책결정에 있어서도 그들은 도외시되었고,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이것이 그들에게 ‘최선의 이익’일 것이라는 믿음 아래 심각한 폭력과 차별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에 대한 공적 통제는 사실상 전무했고, 개정법에 담긴 강제입원규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기준과 비교할 때 결코 과하지 않다. 오히려 정신보건법 강제입원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정신질환자의 자유권을 구속하는 강제입원 관련 규정은 더욱 엄격해지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앞서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의료계인사의 “현재 전국에는 약 20여만 명-팩트가 잘못되었다. 현재 8만여명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남짓한 정신질환자 중에서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2017년 5월 30일까지 한꺼번에 퇴원”하게 된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지난 정신보건법 시행 20년 동안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질환자 상당수를 불필요하게 치료라는 명목으로 폐쇄병동에 신체를 구속하여 실질적인 수용․감금을 하고 있었던 사실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그러한 주장은 그간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따른 무수한 피해사례들, 즉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의 침해상황을 계속 방치하겠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필자는 정신과 의사들의 전문성과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간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입원을 시켰을 것이므로 5월 30일이 된다고 해서 정신질환자들이 한꺼번에 퇴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개정법의 취지에 따라 점진적인 탈원화 과정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한다.
환자들의 인권침해, 치료받을 권리 침해 등으로 포장된 일부 정신의료계의 주장은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생존권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결국 강제입원의 요건을 지금처럼 허술하게 유지하고, 입원치료라는 명목으로 정신장애인을 사회로부터 손쉽게 격리․배제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개정법에 따르면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퇴원하게 되고 이로 인해 초등생 살인사건과 같은 심각한 사회적 피해가 실제로 생기면 그 책임은 의사가 아니라 그 제도를 마련한 입안자가 져야한다고 하면서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에서 나와 사회로 나오면 마치 초등생 살인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질듯한 공포감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한 문장들로 차별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자신을 해하거나 타인을 해하는 등의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해당 정신질환자를 긴급히 치료하여야 하는 경우 정신보건법 제26조의 응급입원 절차로도 충분히 ‘응급한 치료’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최근의 초등생 살인사건 운운하면서 마치 모든 정신장애인이 위험한 존재인 양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을 많이 만나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정신장애인은 위와 같은 엽기적 사건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설령 소시오패스같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인해 범죄를 저지를 수는 있어도 이를 정신장애인 전체가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이 얼마나 심대한 비약인지 알 것이다. 누구보다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 적절한 치료와 회복, 자립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의료계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시키는 것은 의사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행동이다.
또한 가족들도 반발하여 정신질환자들을 퇴원시킬 수 없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주장이다. 의사들이 환자의 지역사회복귀를 위한 복지에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계속 병원에 가둬놓겠다는 의지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이태리는 1978년 Law 180으로 명명된 정신보건법이 시행된 후 1980년 1월부터 모든 정신병원의 신규 입원을 금지하고, 정신병상 수를 점차 축소하도록 하였으며, 각 지역에 지역정신보건센터를 설립해 지역사회에서 정신보건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였습니다. 법 시행 당시 7만 8538명이 수용됐던 76개 공공정신병원은 1999년까지 모두 문을 닫았고, 지역정신보건센터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처럼 이태리는 20년 동안 지역사회 인프라를 만든 후 탈원화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제화 이후 법의 강제입원 제한 규정 등이 충실히 현실에 반영되면서, 지역사회 인프라가 확충되고 강제입원 비율이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정신질환자는 사회적 약자로서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아닌 존중과 공존의 대상이다. ‘정신질환’이라는 질환적 상태를 범죄위험요인으로 간주하고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함으로써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여 시행을 목전에 둔 법을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정신질환자들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보편적 인권을 위협하는 것이다. 조만간 정신과 의사들의 주장대로 입원이 필요한 정도의 정신질환인지 평가는 의사가 하되 입원 결정은 법원에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정신의료계와 복지부, 정신질환자와 가족들이 마음을 모아 정신질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책을 조속히 마련하기를 고대한다.
자료출처 = 슬로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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