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걸음의 눈] 고통과 치욕의 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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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이날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가져온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살상 무기인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처음 투하된 날이다.
전쟁의 막바지에서 하루라도 빨리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미국은 3일 후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또 한번의 원폭 공격을 감행해 당시 이 두 도시에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와 있던 한국인 7만여 명 중 4만여 명이 하루아침에 몰살당하게 된다.
그 후 44년, 1989년 8월 5일 모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사진이 실렸다.
수염이 허연 칠순의 할아버지와 손녀인 듯한 국민학교 사오 학년쯤 되어 보이는 귀엽게 생긴 소녀가 나란히 앉아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사진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그 사진을 들여다 본 사람은 이내 소녀의 오른손의 손목 아래 부분이 전혀 발달하지 못한 채 뭉뚝한 모양인 것을 발견하고 섬뜩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무슨 큰 사로라도 당한 것일까?
그러나 그 사진은 바로 지난 44년 간 원폭피해자의 멍에를 온몸에 걸머지고 살아온 할아버지와 3대를 지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오히려 더욱더 깊어지기만 하는 원폭피해자 가족의 고통스런 삶을 고발하는 증거인 것이다.
당시 간신히 목숨을 건진 3만여 명 중 우리나라로 귀환한 사람은 2만 3천여 명으로 이중 고령자와 중증환자들은 이미 고통 속에 신음하다 이 세상을 떴으며, 44년이 지난 지금도 1만 3천여 명의 원폭피해자가 정부당국의 철저한 외면과 일반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이 1만 3천이란 숫자는 한국 원폭피해자 협회(회장 신영수)의 추산일 뿐 정부차원의 조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의 이러한 미온적이고 무책임 한 태도에 협회에서는 지난 87년 독자적으로 일본정부를 상대로 23억 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협회는 보상요구서에서 "본의 아니게 일본으로 끌려가 노예처럼 혹사당하던 한국인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떼죽음을 당해야 했으며 왜 평생을 두고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느냐"며 일본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구체적인 보상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보상청구기간 2년이 다 되도록 "한국인 피해자는 일본 정부에 보상청구권이 없다"는 종전의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가증스런 발뺌이야 그렇다 쳐도 한국정부의 꿀 먹은 벙어리 식의 태도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동안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각각 몇 십 억 달러의 돈과 일본 왕의 유감표명 식 사과인사 한번 받은 것으로 35년 일제의 만행을 모두 탕감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만약 그렇다면 이들 원폭피해자를 전쟁피해자로 간주해 우리 손으로 치료와 생계를 책임지던지, 아니면 일본 정부에 적극적으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던지 하는 것이 일의 순서일텐데 마치 이들을 다른 나라에서 흘러들어 온 난민 취급하듯 지금까지 무려 44년 간의 모른 척하며 방치해 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협회에서는 대한 변호사협회와 일본 변호사협회의 공동지원을 받아 정신재판을 청구할 준비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피해당사자들의 힘겨운 노력에 비해 원폭피해자 전문치료기관은 고작 지난 74년 경남 합천에서 세워진 원폭진료소 한곳뿐이고, 무료진료소가 경희의료원, 연세의료원, 서울복음병원 등 세 곳뿐인 것은 정부가 이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서두의 사진 설명에서도 나타났듯이 원폭의 무서움은 피폭당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2세 3세에까지 각종 기형이나 유전병을 유발하는 등 그 피해를 예측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를 피폭 1세대가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 제국주의 전쟁의 총알받이로 갖은 수모를 당하다 급기야 원자폭탄의 공격까지 받게되고, 간신히 살아 돌아온 조국에서는 철저한 무관심 속에 잊혀진 채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고통을 과연 무슨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정부는 이제라도 원폭피해자협회의 자구책을 정부차원의 일로 받아들여 이들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생계보장 및 일본 정부에 대한 정신 재판을 통해 그들의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내야 될 것이다.
더욱이 이 땅에는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막대한 핵무기들이 배치되어 언제라도 44년 전의 그 날처럼 우리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반도를 핵전쟁의 대결장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 속에 있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그 날 이후 3대를 거쳐 끈질기게 나타나는 이 비틀린 우리 현대사의 아픈 증거를 외면하고 또 다시 제국주의의 핵우산을 뒤집어쓰고 시시덕거리는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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