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와 직업] 희망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
서울에서 인천행 전철을 타고 부평 역에 내려서 부평 역 광장을 지나 삼화고속 주차장을 끼고 왼쪽으로 10여 미터를 가면 한경숙씨가 근무하고 있는 대한 인쇄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한경숙씨는 다른 세 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인쇄소 문을 밀치자 인쇄기계 돌아가는 소리,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그리고 한경숙씨가 작업하고 있는 청타 치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대여섯 평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경숙씨는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올해 25세가 된 아가씨이다.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부산 토박이이기도 하다. 청타 기술을 20세에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 5년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경숙씨는 어렸을 때에 백색의 천사 간호사가 되려는 꿈을 키웠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 나이가 들자 자신의 장애 때문에 간호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무척이나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정상 대학에 진학을 못하게 되어 한경숙씨는 선생님의 꿈도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되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막막하고 집안에 있기도 갑갑하고 거북하여 친구의 소개로 훌쩍 인천으로 올라오게 되었단다.
인천으로 올라오게 되면서 한경숙씨의 무엇인가를 하려는 열의는 보다 현실성을 띠게 된다.
처음 인천에 발을 딛으면서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야무진 각오가 있었기 때문에 올라오자마자 학원을 다니면서 무난히 필기 과정까지 수료한다. 하지만 실기를 함에 있어서 기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경숙씨는 디자이너의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굽히지 않고 다시 서울 종로에 있는 YMCA에서 금은 세공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광고를 보고 도전하려고 했으나 주위 사람들이 이 일은 여자가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충고를 해서 시작단계에서 포기를 한다.
이따 마침 한경숙씨가 인천에 와서 몸담고 있는 ○○재활원 원장님께서 청타를 한 번 배워보면 어떠냐고 권해 오셨다. 전혀 청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을 때였다. 한경숙씨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주저하는 한경숙씨에게 재활원 원장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한 번 해 보라며 서울 을지로에 있는 청타 학원을 소개해 주셨다.
일이 이쯤 되자 청타 기술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고 어차피 직업이 필요했으므로 한경숙씨는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 남달리 예민한 성격은 아침에 을지로까지 가는 동안 대학생 같은 사람만 보아도 열등감에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한다. 결국 5일간의 과정만을 수강하고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한경숙씨는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청타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마침 인천 신포동에 있는 중앙인쇄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곳에서 한경숙씨는 직접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게 된다. 한 달여 만에 활자판을 다 외우고 청타를 원만하게 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청타 기술을 습득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곳에서 처음 한경숙씨는 속상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곳에서 한경숙씨는 한경숙씨보다 더 오랫동안 청타를 친 비장애우 언니와 함께 근무를 했는데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났던 한경숙씨가 그 언니보다 앞서 오타도 없게 치면서 더 빠른 속도로 청타를 쳐냈지만 초보자이고, 또한 장애우라는 차별(?)속에서 늘 그 언니 뒤에 가려져 청타가 깨끗하게 나오면 그 언니 때문이고 못나오면 한경숙씨 잘못으로 여겨졌다. 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처음 기술을 완전히 익혔기 때문에 한경숙씨는 고마움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8개월 간을 아무 불평 없이 묵묵히 일만 열심히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포동에 있는 다른 인쇄소로 직장을 옮겼는데 이곳에선 저번 인쇄소보다 월급이 훨씬 더 많을 뿐 아니라 한경숙씨가 자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었기 때문에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청타 활자는 보통 한글판, 영어판, 한자 판으로 나뉜다, 한글판, 영어판은 웬만큼 청타를 배운 사람이면 쉽게 칠 수가 있단다. 하지만 한자 판 같은 경우는 무척이나 까다로워서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만이 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개는 쉽게 한자 판을 치지 못하는데 한경숙씨는 한자판도 베테랑 이상으로 쳐냈다고 한다. 일을 하면 할수록 치는 속도도 빨라지고 꼼꼼한 일 솜씨는 능력을 인정받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인쇄소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 할 수 없이 한경숙씨는 다시 다른 인쇄소로 직장을 옮겨야 했다. 계산동에 있는 지영 인쇄소를 거쳐 지금 근무하고 있는 대한 인쇄소에 정착해서 일을 한지는 약 1년 6개월 정도 된다. 이곳에서 한경숙씨는 청타 기술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의 결실임은 물론이다.
한경숙씨에게 그동안 일을 해오면서 느낀 점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글쎄요. 일을 해 오면서 나 자신이 장애우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을 이기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어요.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허물없이 일을 하다가도 일이 끝나고 나서 회식이나 야유회 같은 장소에 함께 어울리기가 힘들더군요. 이런 것들을 사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겠지만, 괜히 부담스럽고 그래요, 그래도 지금은 꽤 괜찮아 졌지만 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뭐라는 줄 아세요. 오기와 고집으로 똘똘 뭉쳐있다고 해요. 저는 햇볕이 쨍쨍한 날은 급한 일이 있으면 결근도 하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회사에 꼭 나가요. 제가 장애우라는 인식을 다른 사람에게 심어주기 싫은 나의 오기 때문이죠"
처음 몇 년간은 일이 끝나기 무섭게 집에 돌아와서 텔레비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나 지금은 기타도 배우고 책도 보면서 나름대로 취미 생활을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과정이라고 믿기에...
<한경숙씨가 말하는 청타 기술 안내>
보통 청타 학원에서 3개월 여간의 수강으로 배울 수 있게 되는데 배우는 사람의 개인 능력에 따라서 빠르면 한 달 만에도 가능하다. 한경숙처럼 직접 인쇄소에서 작업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 훨씬 더 빨리 익힐 수도 있다고 한다.
처음 시작은 활자판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글자를 배역하는 배열 판을 배운다. 한글판, 영어판이 가능하며 한문판도 접하게 된다.
주로 청타가 치는 기초양식으로는 각종 공문과 회사양식이 있으며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노동조합 등의 사보나 신문제작 까지 다양하다.
청타가 다른 인쇄 활자 보다 뚜렷하게 글자판이 선명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식자하나 하나를 일일이 따서 배열하고 현상하는데 며칠이 걸리는 사식 인쇄보다 그 자리에서 치 면 금방 글자가 탄생될 수 있어 시간이 빠른 게 장점이라고 한다. 다소 어려움이 있다면 자판이 너무 무거워 힘이 약한 사람들에겐 조금 부담이 된다고도 한다.
보수체계는 현재 초보자 15만원부터 시작해서 능력에 따라 혹은 근무 연수에 따라 17만원, 20만원 24만원...이상을 받을 수 있다.
청타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꽤 오래 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다른 인쇄에 가려 덜 발달된 상태이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청타 학원이 많이 있어 적잖은 인력을 배출해 내었지만 지금은 그 학원마저도 점차 없어져 청타를 치는 인력을 구하기 힘든 실태라고 한다.
특히 이 직업은 여성 장애우들에게 적합한데 보통 우리나라 현실에서 여성이 결혼을 하면 대부분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반하여 이 직업은 결혼을 하고서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오히려 집에다 기계 한 대를 구입해 놓고 자생적으로 독립하면 일감 여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분들 중에서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애우는 가능하다. 특히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이면 더욱 환영을 받을 수 있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