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문제다 3] 장애가 상술의 대상이 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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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들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을 자주 접하곤 한다. 지하도 입구나 육교에서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를 드러내어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 다방이나 음식점 등을 전전하며 껌이나 김밥을 파는 소년들이나 아주머니 할머니들, 또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에서는 인형을 파는 농아들을 우리는 만나게 된다. 이밖에도 시장에 가면 땅바닥을 기면서 작은 수레에 물건을 싣고 사람들이 사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매일 매일 시장을 헤매어야 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적인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워야 하는 국가 정책을 방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장 중시되어야 할인간의 존엄성이 경시된다든가 한 나라의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경제 발전의 혜택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경제성장의 저변에는 음지가 존재하며 그 음지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혜택의 대상에서 제외된 채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장애인의 경우만 보아도 후천적 장애가 현 장애 발생의 90%를 차지하는 실정에서 그 어떤 대책이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장애를 핑계삼아 장애를 상술에 이용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본 함께 걸음은 불행히도 이러한 경우를 접하게 되었다.
<장애인을 도와달라는 것을 사칭하여 월 부업을 하는 그릇된 상술을 고발한다.>
지난 달 K시에 사는 어느 아주머니로부터 제보를 받고 기자는 2월 20일 직접 K시에 가서 아주머니를 만나보았다.
아주머니의 남편 되시는 분은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신 분이란다.
이 사건의 발단을 보면 88년 6월경에 집으로 외판사원인 듯한 한 남자가 찾아왔는데, 그 남자의 이름은 정종관이며 전국 신체장애인 자립회 에서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영업사원이 아니며 월급을 받는 정식 사원이라고 말하면서 매일 하루에 490원 정도의 후원금을 부탁한다며 후원금을 내주시면 감사장과 그릇, 책을 주겠다고 얘기했다. 그 책과 그릇은 각 기업체에서 자립회에 기증한 것이니까 자신을 믿고 순수한 마음으로 내달라고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망설였지만 자신의 남편이 장애인이기도 해서 선뜻 거절을 못하고 망설임 끝에 후원금을 약속했다. 정종관씨는 곧 책과 그릇을 전해주고 갔다. 정종관씨가 간 후에 이상해서 아주머니는 신체장애인자립회 라는 곳의 전화번호를 114에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런 곳의 전화번호는 나와 있지 않다는 대답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궁금한 마음으로 후속 연락을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며칠 후 생전 듣지도 보도 못한 한국 문화사라는 곳에서 책값을 왜 내지 않느냐는 투의 독촉 전화를 받는다. 책값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자립회라는 단체에 대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수금만을 담당하기 때문에 모른다며 정종관씨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 바로 정종관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어떤 여자가 받았다. 자초지정을 얘기하고 후원금이 부담이 되어 반으로 줄여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더니 회장님이 안 계시다며 천화번호를 알려주면 연락을 하겠다고 말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 후 연락이 없었을 뿐더러 여러 -번 다시 전화를 해봤지만 더 이상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요즘은 통화 정지라는 신호만이 들릴 뿐이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한국 문화사 측으로부터 유의 사항, 감사문 그리고 지로 카드가 집으로 우송되었다. 답답하여 아주머니는 소비자 보호원에 전화를 했다. 소비자 보호원 측에서 말하기를 직접 물건을 가지고 가서 반품하라며 나중에는 속은 사람이 잘못이라고까지 말했다. 소비자 보호원으로부터 시원한 얘기를 듣지 못하고 다시 한국 문화사에 전화를 해 물건을 소포로 부치겠다고 하니 반품료 42,000원과 함께 부치라고 했다. 반품을 할 땐 하더라도 신체 장애인 자립회라는 단체에 대해서 알아야겠기에 한국 문화원 측에서는 몇 퍼센트를 자립회에 후원하는지를 알고 싶다고 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체 장애인 자립회의 주소라도 알려달라고 부탁했더니 그것 역시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화가 나 부당한 판매에 대하여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전화 받는 여직원이 "한 두 살 먹은 어린얘냐, 물건이 탐이 나서 사겠다고 한 것이 아니냐"면서 오히려 힐책하는 것이었다. 부화가 치밀어 소포로 부치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해봐라 어떻게 되는지...."하고 자못 협박 비슷한 투로 말을 했다. 자립회에서 이미 접수증이 넘어와 있다고도 덧붙였다. 너무 겁이 났고 남편 몰래 한 일이라서 걱정이 되어 다시 소비자 보호원에 이 사실을 말하니 서류상 산 것이나 마찬가지니 법적 청구서가 날아오는 등 문제가 복잡해지기 전에 위약금 30%(반품료)와 함께 물건을 보내든지 아니면 사야한다고 말했다. 경위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보호원의 태도에 불쾌했다. 그리 어느 정도 물건에 욕심이 있어 후원금을 낸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은 아주머니를 더욱 억울한 심정에 휩싸이게 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내기로 한 후원금이 오히려 기쁨보다 슬픔을 가져다 주는 현실이 야속하다고 아주머니는 말씀하신다. 이런 일이 잘못된 사실임을 알면서도 선뜻 어디에 알리지 못했다는 아주머니는 그 이유를 정종관이라는 사람이 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장애인 전체에 관계된 일인 것 같고, 그래서 가뜩이나 아픈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봐서 이었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장애를 파는 것과 같은 사기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쪼록 그럴수록 장애인들이 더욱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런 제보를 한 것이란다.
기자는 아주머니의 제보를 바탕으로 용산에 있는 한국 문화사를 찾아가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더욱이 언제 어디서 누가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다 준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애가 잘못된 상술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는 것은 이보다 더 서글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용산구 한강로 3가 40번지 155라는 주소의 한국 문화사는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육교를 건너면 볼 수 있는 농협 건물의 뒷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3층 건물의 지하에 있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자가 물어, 물어 그곳에 들어섰을 때 여사원 둘과 책임자로 보이는 듯한 남자 한 사람이 있었다. 전에 한국 문화사가 신길동에 있을 때 정종관씨와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관계를 맺게된 계기는 영업 사원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책임자는 방근식씨(43세)였었다고 한다. 마침 기자가 찾아간 시간에 방근식씨가 왔기 때문에 직접 정종관씨와 한국 문화사 측과의 관련 여부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정종관씨가 그를 찾아왔을 때 어떤 팜플렛을 가지고 왔단다. 그 팜플렛은 신체 장애인 자립회가 창설될 때 만든 것으로 한국 문화사 측에서 정종관씨를 신뢰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첫 장에 민정당 구로구 모 의원의 격려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분말고는 정종관씨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어떤 얘기도 해 줄 수 없다고 방근식씨는 전제하면서 오히려 이런 제보를 해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기자에게 물었다. 자기네들도 정종관씨의 행방을 몰라 수소문 중이라고 하면서 다만 정종관씨는 오른손 손가락이 절단된 장애인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얘기한다. 기자가 정종관씨와의 관련 여부를 재차 묻자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았지만 그 번호가 정종관씨의 이름으로 되어있지 않았다며 자기네들도 더 이상은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처음에 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해 보지도 않았느냐고 묻자 단지 한국 문화사는 거래자들의 재산만을 관리하는 곳이며 물건을 사고 파는데 신원 확인은 필요치 않다며 정종관씨가 알려준 전화 번호를 가지고 통화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사무실이나 집의 주소 등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로에 있기 전의 사무실 약도라는 낡은 종이 쪽지를 건네 준다. 정종관씨의 한국문화사에 대한 거래 관계를 알고자 정종관씨의 소개로 몇 사람이나 한국 문화사측에 접수되었으며 그 동안 그가 거래하면서 가져간 수익금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물었지만 대답해 줄 수가 없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자신들도 정종관씨의 행방을 찾고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어 더 이상 알려줄 사항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기자는 할 수 없이 그곳을 나와 한국 문화사에서 받은 낡은 약도를 들고 서부 역 근처로 되어 있는 정종관씨의 예전 사무실을 찾아갔다.
○○빌딩 6층 있다는 그 사무실은 그러나 이미 예상했던 대로 다른 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치과 재료 판매업체였는데 이사온 지 한달 반이 지났다고 한다.
다시 정종관씨의 전화를 확인하기 위해 아현 전화국을 찾아갔으나 역시 그 전화의 주인은 정종관씨가 아니었다.
기자는 한국 문화사를 찾아갔을 때 어렵게 알아낸 정종관씨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몇몇 분을 만나보기로 했다.
파주에 사는 한 아주머니는 고발을 하려다가 선뜻 하지 못하고 있던 중이라며 상세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이 아주머니에게는 후원금을 하루에 490원이 아니라 한 달에 490원을 내라고 했으며 후에 역시 독촉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정종관씨가 찾아 왔었지만 현재까지 물건을 가지고 가지도 않고 수금 사원이 오지도 않는 상태에서 책과 그릇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역시 파주에 사는 또 한 아주머니는 후원금이 책과 그릇 값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릇이 괜찮은 것 같아 좋은 일한다는 셈치고 물건을 샀는데 그릇을 닦을수록 윤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빛이 퇴색되어 반품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동네에는 정종관씨의 소개로 그릇이나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단다.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정종관씨의 행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취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만약 정종관씨가 떳떳하다면 이제라도 당당히 나타나 정체를 밝히고 정당한 방법으로 일하는 것이 도리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안 그래도 착잡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불행히도 이와 유사한 경우를 목격했다.
동대문운동장 지하철 역구내에서 전국 신체 장애인 노인 회라고 쓰여진 모금함을 들고 다니는 한 청년을 맞딱뜨렸다. 혹시나 해서 모금함 겉에 쓰인 전화 번호를 메모하여 전화를 해 봤지만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기자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
동정은 행하는 입장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할지라도 받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제나 동정 받는 자리에 있도록 묵시적으로나마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사람이 사람에게 동정을 하고 받는다는 사실은 분명 서글픈 일이며 그러한 현실 또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하루속히 이런 불행한 일들이 시정되어지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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