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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제다] 원진 레이온 보상 투쟁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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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인간이 지닌 가장 신성한 권리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밀려난 병든 노동자들 빼앗긴 노동, 빼앗긴 삶을 위한 투쟁

한 맺힌 15세의 짧은 삶.
송면이가 갑니다.
지난해 7월 2일 당시 양평동에 있는 협성계공에서 온도계 수은주입과 압력계 신나 세척 등의 이 일을 하던 故 문송면군이 불과 입사 두  만에 숨지게 된다.
사인은 수은중독.
문군의 죽음은 그 동안 정부당국과 기업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어왔던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중금속 중독 등 직업병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문군의 죽음을 계기로 각종 유해사업장의 열악한 시설과 그 속에서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의 실태가 속속 보고되는 가운데 7월 22일자 한겨레신문은 인견사를 생산하는 원진레이온(경기 남양주군 미금읍 도농리 1번지)에서 86년 이후 12명의 이황화탄소()중독 노동자가 강제퇴직 당했다고 기사화 했다.
이 사건은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밝혀지는 대기업체의 추악한 진실은폐와 비정한 강제퇴직에 맞서 피해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보상대책기구인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및 가족협의회(원가협)"을 구성해 조직적인 공동투쟁을 전개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원진레이온은 1959년 설립된 회사로 경기도 남양주군 도농리와 용인 두 곳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 이중 남양주군 소재 공장에서는 연간 만 여톤의 인견사와 5천여 톤의 무수망초, 3백 8십만 야드의 인견면을 생산 연간 매출액이 4백억 원이 넘는 대규모 회사다.
그러나, 이 회사는 경영부실로 지난 79년부터 산업은행의 법정관리를 받고 있으며 82년 전창록(전 공군소장), 88년 백영기(전 육군소장)사장 등 군 출신이 경영을 도맡아 왔다.
89년 현재 1천 5백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이 회사는 목탄과 유황을 사용해서 이황화탄소를 제조하는 이탄과, 셀로로오즈와 이황화탄소를 사용 인견사를 생산하는 방사과 등이 있으며 이 두 부서에서 황화수소(S)와 이황화탄소가 주로 발생한다.
이황화탄소는 유황과 탄소가 화합하여 생기는 무색 액체로 지방·고무·수지의 용제 및 살충제로 쓰이며 만성 중독될 경우 만성뇌막부종, 생식기능장애, 말초신경장애, 내분비기능파괴 등 거의 온몸의 기능을 파괴하는 무서운 것이다.
황화수소는 유황과 수소의 화합물로 무색이며 썩은 달걀 같은 악취가 풍기는 가연성의 독성 기체다.


<사건의 시작>
1984년 6월 초 방사과에서 20여 년을 일해온 서용선씨(현재 45세)가 작업도중 온몸의 힘이 빠지며 자주 쓰러지는 증세로 회사를 그만둔다.
오른쪽 다리의 무력증과 반 신이 저리는 등 중풍과 비슷한 증세는 날로 악화되어 퇴사 2년이 지난 86년 8월에는 오른쪽 반 신과 얼굴 근육이 완전히 마비되는 중증이 된다.

한편 85년 1월에 김용윤씨(42세)가 86년 10월에는 정근복씨(50세),l 87년 2월에는 강희수씨(44세) 등 서용선씨와 같이 방사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직 계를 낸다.
당시 회사는 휴직 계를 낸 사람들에게 장기 휴직을 하면 퇴직금이 줄어든다고 빨리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종용 사직서를 받아간다.
중풍인줄로만 알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던 이들은 주위에 같은 증세로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이 많음을 알고 87년 2월 노동부장관과 대통령비서실에 원인규명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내게된다.
그해 4월 고대환경의학연구소의 정밀진단 결과 이황화탄소 중독의 판정이 내려진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이번에도 가족들 몰래 화자들과 만나 "민사·형사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6백 만원을 건네주는 등 사건 무마에만 급급했다.

이들의 직업병 판정으로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 원진레이온 사건은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이황화탄소가 허용기준치 10ppm의 2.6배, 유화수소는 허용기준치의 1.3배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또한 방사과 노동자들에게 노동부장관의 인가 없이 하루 4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시키고도 이들의 3년 치 연장근로 수당 2억 2천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특수건강진단 누락, 있지도 않은 전담보건관리자를 배치한 것처럼 허위보고를 하는 등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져 백영기, 전창록 등 전·현직 대표이사를 포함한 간부진 다수가 입건된다.

<드러나는 복마전>
한편, 원진레이온 직업병발생 진상 조사반(반장, 박영숙, 평민당부총재, 노무현 민주당의원)은 75년 이 회사 사회수과에서 일하던 이종구씨(당시 38세)가 가스중독으로 쓰러졌으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을 비롯해 이탄과 2명 방사과 4명 가스통 청소 하청노동자 1명 등 모두 8명이 이황화탄소 및 황화수소 급성 중독으로 사망한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더욱 놀라운 일은 86년 8월 노동부가 이 회사에 "산업재해 예방에 진력한 결과 84년 3월 1일부터 86년 5월 11일까지 2백 5십만 시간 무 재해 기록을 달성했다"고 무 재해 기록 증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탈법·불법행위를 자행한 원진레이온의 내막이 밝혀지자 피해당사자인 환자와 가족들은 회사를 찾아가 피해보상과 작업환경개선 등을 요구하며 격렬한 농성을 하는 한편 이황화탄소중독 보고대회를 여는 등 회사의 잔혹 행위를 규탄했다.

이에 회사에서는 올림픽 등으로 여론이 불리하게되자 이들의 무마를 위해 사과광고를 각 일간지에 발표했다.
회사는 이 광고에서 "34억을 작업 환경개선과 오염방지시설에 투자할 것이므로 머지않아 작업환경과 주변환경이 크게 개선되리라고 확신하며, 특수검진을 실시하여 직업병으로 판정될 경우 신속히 요양 받도록 조치하겠다" 고 밝혔다.

그러나 사과 광고를 발표한지 한 달도 채 안된 9월 9일 사장면담과 보상을 요구하는 환자와 가족 20여명을 회사측 직원들이 집단 폭행하고, 만약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해 오면 판결에 따라 지급하겠다고 배짱을 부리기까지 했다. 더욱이 노동부의 16개항의 시정조치마저 무시한 채 여전히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해 애초부터 시설개선이나 보상 등은 염두에 없었음을 드러냈다.

이에 원가협에서는 9월 9일 평민당 구리당사에서 죽음을 무릅쓴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해 장애등급 판정을 위한 6인 판정위원회 구성 및 1등급 1억에서 14등급 1천 만원의 보상금액 그리고 2개월 이내 등급판정을 완료하고, 판결 1개월 이내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를 받아내게 되었다.
이 한 장의 합의서는 단순한 보상각서가 아니라 그동안 정부와 기업 그리고 어용노조가 삼위일체가 되어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작업장에 선량한 노동자를 몰아넣고 실컷 부려먹다 병들어 쓰러지면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우리의 기업풍토에서 노동자 스스로의 목숨과 피로 쟁취한 권리정전인 것이다.

<보상이라뇨?>
그 후 8개월이 지났다.
5월 중순 보상합의 후 원가협 가족들의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당시 6인 판정위원회로부터 1급 판정을 받은 정근복씨 집을 찾았다.
- 보상이라뇨? 아직 등급 판정도 다 안 끝났습니다.
작년 9월 14일 합의서를 작성하고 12월 14일 까지 보상을 완료하겠다고 했는데 등록된 65명 중 아직도 판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태반입니다.

회사는 병원에서 의사들의 진단이 늦기 때문이라고 하고, 노동부에서는 자신들은 감독관청이라 지시는 하되 빨리 하라고 재촉할 수는 없다고 미루고, 병원은 병원대로 조직검사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하고......이렇게 서로 미루면서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더욱이 지난 3월 30일 회사는 우리 60여명의 보상금이 적어도 30억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한꺼번에 보상하려면 회사의 타격이 너무 크다는 핑계로 먼저 합의서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임의대로 새로운 합의서를 만들었습니다. 14등급 천만 원 해당자만 일시불로 지급하고 그 밖의 등급해당자는 2년∼3년으로 분할 지급하겠다는 겁니다.

<회사측의 태도변화 이유는?>
- 그쪽 생각에는 이제 잠잠하니 믿고 기다리고 있다고 여기는 건지, 아니면 시끄럽게 굴면 공권력을 동원해서 해결해 버리겠다는 건지 우리가 뭐라고 얘기하면 "국회의원 앞에서 맘대로 해봐라" 이런 식이에요.
또 회사에서는 좌경학생들이 우리를 선동해서 회사를 말아먹고 파산시키려고 한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돼서 조사까지 받았어요. 언제 병원에서 출두명령이 내릴지도 몰라요.

<판정이 늦어지는 이유는?>
- 한마디로 말해 선량한 사람을 선동해 회사를 말아먹자는 게 아니냐,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판정을 주느냐, 꾀병 아니냐 병원에서도 이래요.
또 같은 병원에서도 지네들끼리 싸우면서 환자다 아니다. 그러고 있어요.
빨리 좀 해 주십사 하면 "누가 안 해주겠다는 거냐. 검진 결과가 나와야 등급을 매기는 것 아니냐. 시간도 없는데 왜 자꾸 만나자고 만 하느냐 하는 거죠.
검사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병원에 들어가질 못하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대학병원이란 곳이 일반인도 몇 달 전에 예약을 할 정도로 병실이 없으니 한사람 퇴원하면 다름 사람이 그 자리로 들어가는 식이죠. 그래도 다행인 게 수십 군데 병원에서 못 잡은 병을 고대 구로병원에서 잡아낸 거죠. 아마 병원에서는 괜히 직업병 알아내서 골치 아프다고 하겠죠.

<지금 공장 작업환경은?>
- 한마디로 50년대에 없어져야 할 기계를 여태 쓰고 있는 거예요. 해결 방법은 이 기계를 없애고 새 기계를 들여오는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제 작업시간인 6시간만으로도 위험한데 10시간 12시간 씩 시키니 병에 안 걸릴 수가 없죠. 얼마나 사람이 안가면 지금 한사람 소개해주는데 소개비로 만원씩 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스크도 없다가 70년대 들어와서 감기 마스크를 쓰고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우리 일로 항의가 거세지 자 방독면을 준비했어요. 호흡기만 막는 방독면인데 필터가 8시간 밖에 못 가요. 그런데 이 필터를 한 달에 5개 밖에 주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독가스를 막아주어야 할 방독면인데 오히려 독가스를 물고 일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생활은 어떻습니까?>
- 지금 길게 논 사람들은 10년까지 놀았어요. 안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생활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루 하루가 아쉽고, 치료비조차도 빚을 내는 형편인데 거기다 보상금 마저 안나오고.....
일단 진단부터 받아놓고, 안 되면 죽기를 각오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한바탕 벌일 겁니다.
이제 40댑니다. 그런데 온몸이 떨리고 저려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남들은 한참 좋은 나인데......
앞으로의 숙제는 제 욕심만 차리는 몇몇 사람 때문에 병들고, 죽어 가는 노동자가 있다는 이런 사실들이 많이 알려져서 하루라도 빨리 비인간적인 작업환경이 바뀌었으면 하는 겁니다.
앞으로 보상을 받으면 각자 일정액을 내서 사무실을 마련해 직업병 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를 발전시키기로 약속했습니다.

<"보상" 과연 무엇으로>
병원에서 만난 김용윤씨는 "나는 보상도 필요 없다. 원래 상태대로 고쳐놔라" 고 소리쳤다.
김씨는 그 몇 마디 말을 하기 위해 중간에 몇 번씩 머리를 갸웃거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얘기는 하고 싶은데 자꾸 까먹어서......."
가족들은 80년에 홍모씨가 노동부로부터 직업병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의 돈 몇 푼에 넘어가 입을 다무는 바람에 7년 이상을 그 사실을 모른 채 계속 일해 왔다고 분개했다.
"하실 말씀 있으면 해 보세요"
이야기 도중 내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웃음을 흘리던 서용선씨는 간신히 왼손을 끌어다 침대 모서리에 "보상"이라고 힘겹게 써보이 곤 기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보상"
그러나 주머니 속의 백 동전이 새까맣게 변하고, 콘크리트 벽이 썩어서 부스러질 정도의 독가스를 마시며 지난 20년 간 "자랑스런 산업역군"이라는 허울좋은 이름과 맞바꾼 망가진 육신은 과연 무엇으로 보상 할 수 있는 것일까?

작성자전홍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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