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탐방] 작은자 모임
본문
1. 서울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지하철 2호선의 타원궤도를 따라 신촌에 도착하면서 "아! 얼마전부터 유명해진 연희동이 가깝구나"는 생각을 먼저했다.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는 서울 미분법의 도식이 부자동네인가 부자동네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시대의 물질만능적 사고의 한 단편이라면 서울의 서쪽을 차지하는 강서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더 이상 한강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작은 자" 모임을 찾아 지상의 도로로 올랐다. 연세대를 지나고 두 정거장을 더 지난 수색방향의 2층 건물을 발견 할 수 있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작은자 모임"이란 파란 글씨의 썬팅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자 모임! 그 이름부터가 참 궁금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무실의 이 간사님으로부터 먼저 그 내력을 들을 수 있었다. 자연발생적으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우리 단체의 뿌리가 되었던 일천의 미문 감리교회를 주변으로 하는 키 작은 장애인들이 매년 한번씩 인천의 소극장에서 연극을 했는데, 그 연극이 무척 감동적이었던 모양입니다.
키작고 볼품없는 우리들의 외모,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올라서면서 장애인의 인간선언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미국의 흑인들이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선언을 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때, 벌써 10년이 가까이 되는 그때의 연극공연 명칭이 작은 사람들의 공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의 연극에서 선언했던 장애인이 인간선언을 그대로 수렴하고 제도화 해서 하나의 장애인 운동의 의식개발 운동체로 기구화시킨 것이지요"
작은자란 말에 숨겨진 지난의 내력을 듣고나니 이미 봤던 작은자 모임의 선교문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작은자 모임은 예수 그리스도 밑에서, 이 땅에 그늘진 곳드이 없기를 바라는 바램으로 스스로 작은자 임을 선언한 장애인들과 마음을 합해 생명회복 운동에 함께 하려는 정상인들이 모여 만든 더불어 사는 삶과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작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2. 작은자 모임의 사무실은 10평정도 크기가 되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강렬한 인상의 판화그림이 손님을 맞는다. 그 아픔들을 응축시켜 놓은 것 같은 예수의 초상화였다. 그리고 그 초상화 왼쪽으로 두 서평의 장애인 이동도서실 공간이 가지런한 책들과 함께 있었고 사무와 회의를 위한 긴 테이블이 중간에 놓여있었다. 적당히 헝크러진 채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듯한 전체 인상을 받았다.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로 묻고 싶은 말들이 입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들의 손과 손에는 큼직한 짐들이 들려있었다. 그들 때문에 사무실의 정적은 곧이어 모임의 정례모임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인천지역의 작은자 야학에서 기획한 국민학교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또 서울 경인지역 장애인 단체협의회와 관련된 삼육재활원 내의 장애인 농성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의 대화가 정중되면서 단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작은자 모임의 회원들이었다. 오후 시간을 이용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주간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은 것이었다. 야학 선생님도 있었고, 회보 편집기자도 있었고, 수화교실 담당자도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대화로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작은자 모임이 어떤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구체적 활동을 통해 풀어 나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3. 작은자 모임이 가장 큰 문제를 상상해 놓고 씨름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 문제의 사회문제화」였다. 당장에 여의치 않은 재정의 반 이상을 작은 사람들이란 잡지의 발간에 쓰면서 그 잡지의 지면을 통해 장애인 문제가 단순히 일개인의 또는 가정안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체의 문제이고 책임이며 장애인복지회 낙후가 우리 사회의 억압적 구조에 많은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재활원에서 많은 세월의 기술교육을 받았던 장애인 노동자 한 사람의 글에선 자기가 그 세월까지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지긋지긋한 열등감이 토로되고 있었다. 몸이 비틀렸다는 신체적 장애의 사실은 자기에게 숙명으로 받아들여졌을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였는데 어느 누구는 장애자라도 그렇게까지 됐는데 너는 무엇이냐는 주위의 비교와 질책이 극도의 열등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비교할 수 없는 교육의 기회, 비교할 수 없는 취업의 기회, 건강할 수 있는 기회, 노력의 댓가로 주어지는 참여의 기회가 평등화되지 않은 까닭에 얼마나 자기자신만을 학대하고 학대했는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런 왜곡된 의식과 강요된 불평등 속에 스스로를 열등감에 빠뜨리고 있는 장애계층이 앉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작은자 모임은 문제삼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제도적 대응으로 장애인 문제 연구소를 부설로 두고 있었다. 두 번째로, 작은자 모임이 애쓰고 있는 부분은 교육이었다. 인천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중등과정 및 국민학교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까닭은 교육의 무혜택 지역에 있는 장애인 계층의 존재를 홍보하고 교육의 무혜택으로부터 오는 사회참여의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상징적 제스처라도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때문이었다. 그러한 야학교육은 장애인의 교육력 향상뿐 아니라 그에 참여하는 학생계층의 올바른 장애인 관을 형성해 둔다는 부분적 이익도 있다고 한다.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사회라면 그 당연한 명제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오늘의 교육적 세태는 혼자만을 위하게 하는 약육강식의 야만적 행로를 더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로 작은자 모임이 애쓰고 있는 부분은 장애인 의식화 운동이었다. 그것을 위해 여러 소외 현상과의 교류(특히 노동현장)를 통한 생명회복 운동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장애인 이동 도서실, 장애인문학회, 연극 및 기타의 문화 활동이 다 그런 취지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4. 결국, 우리는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면서 낯설기도 했던 사무실의 이것저것에 눈이 가기도 하고 생소했던 작은자들이 끈끈하게 점막되어 가슴으로 이어졌다.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무엇인가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또 누구인가도 같은 목표를 놓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 훈훈한 인간애로 되살아 났다. 장 시간의 취재를 마치고 온 길을 향해 되돌아가는 지하철 2호선을 다시 타면서 서울의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고 강동과 강서로 나누는 인간들의 인위적 구분이 우리 자신들까지도 인위적으로 구분시켜 버릴 수 있다는 걱정스런 불만을 잠시만을 잊을 수 있었다. 한강은 참 좋다. 작은자 모임의 사무실을 나오면서 받아든 잡지 "작은 사람들"의 어느 지면엔가"작은 사람들의 모임, 1미터도 안되는 사람들의 모임인가? "하나"라는 미약한 힘을 극복하기 위해 커다란 마음을 지닌 멋진 모임을 지어다"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작은자 모임 연락처 : 서대문구 연희동 192-17 (현제한의원 2층) 334-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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