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하는 의료계와 장애계 ‘정신보건법’, 인권을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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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건법 시행을 코앞에 둔 지난 2월, 인터넷 뉴스판에 정신보건법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정신보건법 시행에 대한 우려를 넘어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신보건법 대책 TFT가 꾸려졌고, 적극적인 반대 의사 표명이 이어졌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응하며 개정안의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정신의료계는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과 함께 정신보건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반대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정부와 정신의료계의 대립으로 비춰지는 상황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 집단도 정신의료계의 반대 입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대거 퇴원으로 정신장애인들 방치될 것”,
“정신보건법 현실성, 합리성 조차 결여”,
“정신보건법, 환자 제쳐두고 서류작성 신경 쓸 판”
지난 2월, 국내 대형포털사이트 및 구글 등에서 ‘정신보건법’을 검색하면 정신보건법 반대 관련 기사가 페이지의 대부분을 메웠다. 정신의료계가 5월말 시행을 앞둔 정신보건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의료계 언론에서는 이를 앞다퉈 다루며 정신의료계의 주장을 전달했다.
정신보건법 대책 TFT가 꾸려지고 정신보건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토론회가 개최되는 등 가시적인 움직임도 분명해졌다. 2월 16일 국회에서 개최된 ‘개정 정신보건법의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이하 국회 토론회)’에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정신의료계는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강제 입원 시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진단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부터 문제점이 지적됐다. 개정법에 의하면 2주 이상 계속 입원이 필요한 경우, 국공립 또는 지정병원의 외부 정신과 전문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관련해 국공립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가 부족한 상황을 감안해 민간지정병원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복지부가 밝힌 바 있다. 토론회를 통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 정신보건이사는 “정신과 의사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 제도적 변화를 또 다시 민간정신의료기관의 전문의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으며, 김창운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입원적합성 심사를 원칙대로 한다면, 국공립 의사 1인을 고집할 이유도 없고, 반드시 의사 2인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제 입원 대상이 정신질환이 있으면서 동시에 자·타해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좁혀진 것에 대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치료 시기를 놓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타해 위험성을 초래하게 된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앞서 지적된 두 가지 지점은 정신보건법에 반대하는 의견들 가운데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토론회 외에도 신경정신의학회 기자간담회, 다수의 기사 등에서 정신과 전문의들은 해당 변경 사항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부작용을 언급했다.특히, 까다로운 기준으로 인해 현재 입원환자 중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퇴원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퇴원환자를 받아들일 사회복귀기관 등이 부족해 퇴원환자들이 무방비로 사회에 방치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하길”
정신의료계의 반대에 맞서 개정 정신보건법 시행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입장들도 강경하다. 국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서울시립대 신권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제입원 대상 조건을 좁힌 부분은 입법예고에서부터 이미 정해졌던 사항”이라며 “어떤 의사도 환자를 강제입원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왜 정신과 의사만 강제가 가능한지, 정신과 의사들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집단은 정신과 전문의들이 개정 정신보건법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자립센터) 신석철 사무국장은 국회 토론회에서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당사자인데 왜 토론회에 당사자를 부르지 않았냐”며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정신의료계의 태도를 지적했다.
자립센터의 당사자 활동가들은 토론회 개최 전후에 성토대회 등으로 정신의료계의 입장에 반박했다. 자립센터 송승연 활동가는 현재의 대립 상황이 단순히 정신의료계와 당사자 집단 간의 갈등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비인권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도 이 법안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제입원이 쉽고 퇴원은 어려웠던 문제를 반대로 뒤짚었다는 의미에서 진일보한 법안임에도, 정신의료계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강제입원은 최초부터 6개월이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헌법재판소는 이미 이러한 강제입원이 치료의 목적보다 격리의 목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경제입원은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환자 스스로 치료방법 및 시기, 입원병원 등을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의료계는 지역사회 인프라가 없어 당사자가 보호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정신병원에서 격리된 삶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삶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강제입원의 폐해는 이미 수없이 문제시 돼 왔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자립센터 최미나 활동가는 “약물치료, 입원치료에 대해서 전문의들의 입장만얘기하는 것을 보며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며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던 본인의 사례를 밝혔다.
“나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했다. 병명은 조현병이었다. 입원해 약을 복용한 뒤, 한달만에 환청이 없어졌지만 수년간 퇴원하지 못하고 폐쇄병동 생활을 했다. 의사는 나의 자기결정권은 무시한 채 보호자 2인 동의만으로 입원을 연장시켰다. 23살에 입원해 20대를 모두 사회와 단절돼 살 수밖에 없었다. 증상이 호전된 이후에도 입원이 지속되는, 이런 피해 사례들이 수없이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까다로운 입원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립센터 활동가들은 20년 만에 개정된 정신보건법을 막아서기보다는 일단 법안을 시행한 뒤, 차차 문제점을 찾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건복지부 또한 법안의 시행에는 변동사항이 없음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전명숙 서기관은 “개정된 사항들은 필요성이 계속해서 오랫동안 제기돼 왔던 부분들이다. 더 나은 제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의사들과 정신장애인 당사자, 장애계가 협업해 개정 법안이 취지에 맞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추진공동행동은 지난 2월 22일, 박인숙 의원 외 의료계 언론 등을 피진정인으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피진정인들의 발언 및 보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금지된 차별 행위라는 내용이다.
진정서를 통해 자립센터와 공동행동은“의료계에서 정신보건법 시행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차별 발언이 난무했으며, 피진정인 언론들은 이를 여과없이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이 보건복지부 전체회의에서 “법 시행 시 4만명이 강제퇴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런 발언이 정신장애인의 퇴원이 사회에 재앙이라는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설명이다.
논외로 밀려나는 고민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이항규 경기남지부장은 국회 토론회에서 “많은 정신장애인들의 퇴원과 그 부작용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활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 논해야 하는데, 본질은 내버려두고 각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이런 자리가 불편하기만 하다”며 당사자와 가족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에 대해 찬반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퇴원 후에 어떻게 자립해 살아갈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사자 집단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자립센터 정현석 활동가는 사회적 인프라 부족을 근거로 입원환자 대거 퇴원을 반대하는 정신의료계에 대해 “지금까지 인프라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인프라를 들먹이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정현석 활동가 외 동료 활동가들은 더 이상 인프라 구축을 기다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은 대기자가 어마어마하다. 이미 오랫동안 그래왔다. 이제는 당사자들이 사회로 나와 살아가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증명하고, 하나씩 차근차근 마련해 나가야 할 때다. 지금처럼 가만히 있는다고 인프라가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는버려야 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사회와 단절돼 있으면 문제의 중요성은 아무도 인식할 수 없다. 우선 나와서 외치면서 인프라를 만들지 않을 수 없게끔 해야 한다.”
인프라 구축 등의 계획을 묻자, 보건복지부 전명숙 서기관은 정신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정작 필요한 고민을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국공립 의사가 부족해 민간 병원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장관님까지 나서서 정신의료계를 설득시키고 있다. 정신의료계 설득시키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느라, 이 시기에 해야 할 건설적인 고민을 할 수가 없다. 개정안에 따라 입퇴원 방식을 바꾸려면 손대야 할 것들이 많다. 아직 갈길이 먼데 지금은 하루하루 정신의료계를 어떻게 설득시킬지만 생각하고 있다.”
전 국립공주병원장 이영문 전문의 또한 강제입원의 최소화를 위해 정신재활시설의 확보와 정신보건센터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신보건센터와 정신재활시설을 구분해서 센터가 좀 더 종합적 기능을 하고, 재활시설은 구체적으로 질적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등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병원에서 사회복귀시설로, 사회복귀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이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신보건법, 정답 아닌 과제
“애 아빠는 차 타고 낭떠러지로 가서 죽자고 한다. 이렇게 15년을 버텼다.”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정신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다. 퇴원을 했지만 어디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호소가 덧붙었다. 자립센터 최미나 활동가 또한 2014년 퇴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같은 이유로 불안감을 느꼈다. 장기입원했던 병원에서 퇴원하는 환자에게 적절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보건의료계에 종사한다고 밝힌 국회 토론회 참석자는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의 비정규직 문제와 정신보건전문요원 한 사람당 80명~100명 정도를 담당하는 인력 부족 문제를 밝히며, 정신보건전문요원 확대를 요구했다.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제공 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질 높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정신의료계가 개정 정신보건법을 반대하는 이유 외에도 정신장애인과 관련해 해결돼야 할 문제들은 산재해 있다. 정신보건법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당사자도 없다. 이미 지난해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당시, 행정입원 조항과 정의 축소 부분 등 다양한 우려와 논란이 일어났던 바 있다.
이처럼 개정 정신보건법은 정신장애인의 탈원화를 100퍼센트 만족시키는 법이 아니다. 시행령, 시행규칙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세부 조율을 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당사자 집단인 자립센터 활동가들이 개정안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방향을 지지했듯이,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첫 한걸음을 포기하기보다는 정신보건법 제정 취지에 맞는 방향으로 각 분야가 함께 발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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