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견서 꼭 시험 전에 내야만 해요?
[기획]정말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제공인가?-①
본문
1.7배는 내고, 1.5배는 안 내고?
시각장애가 있는 수험생 A씨는 최근 모 시험에 응시하면서 장애인 편의제공을 신청했다. 확대문제지, 확대답안지와 함께 시험시간연장(1.7배)을 신청했는데, 신청 과정에서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해당 편의제공을 신청하기 위해서 반드시 의사소견서를 시험을 주관하는 곳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견서에는 A씨가 가진 장애가 어느 정도인지, 그 장애에 따라 어떤 편의제공이 필요한지 등의 내용이 꼭 들어가 있어야 한다. 편의제공이 반드시 필요했던 A씨는 의사소견서를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 입장에서는 1분 1초가 정말 소중하잖아요. 근데 병원에 가니까 이미 시각장애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소견서를 발급하기 위해 의사가 제 눈을 다시 한번 검사해보자고 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다시 검사하고 소견서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죠. 그냥 소견서도 아니고 그 안에 꼭 들어가야 되는 내용도 있으니까 의사 입장에서도 번거로울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아파서 병원에 간 게 아니라 소견서 한 장 받으러 가야 하는 건데, 괜히 저 때문에 정말 진료가 필요한 환자의 순서만 미뤄지고, 저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드네요.”
모 시험의 장애인 편의제공 내용을 보면, ‘모든’ 장애인이 장애인 편의제공을 신청할 때마다 의사소견서를 제출해야 하는 건 아니다. 모 시험에서 장애인 편의제공을 보면 시각장애인의 경우, 시험시간연장 1.7배를 편의제공으로 신청할 경우 의사소견서를 필요로 하지만, 시험시간연장 1.5배를 편의제공으로 신청할 경우에는 따로 의사소견서 제출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모 시험에 시각장애인이 응시할 경우, 기존 시험시간에서 1.5배, 즉 50분 연장을 신청할 경우에는 의사소견서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1.7배, 즉 70분 연장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의사소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장애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시간을 연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만큼 거기에 대해 증빙자료가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요? 내가 이러이러한 장애가 있으니 이만큼의 시험시간연장이 필요하다는 걸 전문가(의사)로부터 증명을 받아야 된다는 거죠.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는데, 1.5배의 시험시간연장을 신청한 수험생과 비교하면 좀 차별적인 느낌이 들어요. 장애특성상 활동지원사와 동행해서 병원을 오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결국 하루는 투자해야 하니까 그날은 시험공부를 제대로 못하겠죠. 꼭 시험이 임박한 접수 기간에 의사소견서를 제출해야만 하는 걸까요?”
A씨의 주장은 의사소견서를 제출하더라도 필기시험이 끝난 뒤에 제출해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1.7배 시험시간연장의 타당성을 증빙할 서류라면 시험을 치른 후에 제출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부러 1.7배의 시험시간연장을 신청하거나 의사소견서를 제출하지 않아서 증빙하지 못한다면 그때 필기시험 점수를 무효화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신청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병원을 방문하고 다시 검사를 받고 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하는 게 좀 납득이 가지 않아요. 장애인은 복지카드나 장애인증명서만으로도 충분히 장애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데, 장애인으로서 당연히 신청하는 정당한 편의제공을 위해 또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또 시험을 코앞에 남겨둔 시험에서 해야 한다는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네요.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게 정말 정당한 편의제공일까요?”
장애인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는 법적으로 명문화된 내용이지만, 장애인이 편의제공을 신청할 경우 어떤 장애인은 의사소견서를 내고 어떤 장애인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형평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A씨처럼 시험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부득이하게 병원을 방문해서 다시 본인의 장애에 해당되는 부분을 재검사 받고 의사소견서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의사소견서도 ‘원본’만 가능
의사소견서는 ‘사본’은 안 되고 ‘원본’만 제출 가능하다. 이 부분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A씨는 주장했다.
“만약 이번 시험에서 합격을 하지 못한다면 내년이나 앞으로 또 시험에 응시할 경우, 정당한 편의제공을 신청하기 위해 또 의사소견서를 받으러 가야 되잖아요. ‘원본’만 유효하다고 하니까 복사해둔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겠죠.”
기자가 알아본 결과 의사소견서 원본의 제출에 대해 시험을 주관하는 곳마다 차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어떤 곳은 의사소견서 원본을 제출할 경우, 최대 2년 동안 같은 시험에 응시할 경우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제공을 신청해도 의사소견서 제출이 면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은 그러한 면제되는 혜택 없이 매년 시험에 응시하면서 정당한 편의제공을 신청할 때마다 의사소견서 ‘원본’을 제출해야 한다.
“시험을 응시할 때마다 제출해야 한다면 진짜 끔찍할 것 같아요. 물론 시험을 잘 준비해서 한 번에 합격하면 너무나 좋겠지만, 정말 그냥 ‘시험 삼아’ 쳐보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시험 준비하는 것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시험 전에 다른 곳에 또 이렇게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니까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이 크네요.”
장애인이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정당한 편의제공을 신청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러한 편의제공을 신청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물론 인정하지만,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시기’와 ‘방법’은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시험을 주관하는 곳마다 다르게 정하고 있는 기준 역시도 통일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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