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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대피로 찾을 수 없는 재난 속 청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재난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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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서울 낙원동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철거 작업 중이던 청각장애인 인부 포함 2명이 매몰돼 숨졌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근무환경에 대한 우려와 철거를 진행한 업체 측의 과실에 대한 경찰 조사가 이뤄지는 한편, 장애계에서는 청각장애인의 재난대응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불거졌다. 전반적인 재난대응 시스템이 부실한 상황에서 청각장애인은 재난 약자로, 아무 대책 없이 노출되고 있다.

 

청각장애인 덮친 낙원동 철거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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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낙원동, 한 건설현장의 건물 일부가 무너지는 사건은 지난 1월 7일 오전 11시 30분 경 일어났다. 무너진 건물에 매몰된 현장 노동자는 2명. 긴 시간 동안 수색작업이 계속됐지만 매몰된 사람들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를 넘긴 8일에 김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고 뒤이어 조모 씨가 발견됐지만 마찬가지로 숨진 상태였다. 이후 언론을 통해 김모 씨가 청각장애인임이 밝혀졌고, 경찰은 건물 붕괴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한 수사를 진행했다.

한국농아인협회(이하 협회)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재난약자인 장애인이 숨진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를 통해 ‘수어 사용 장애인의 구조요청’, ‘장애인 종사직업군의 한계’, ‘장애인 위기 상황 대처 시스템의 부재’ 등을 꼬집었다. 협회 정진호 부장은 청각장애인들의 직업이 한정적인데서부터 이번 사건은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각 손상 외에 신체적 능력이 충분한 청각장애인들은 단순 노무직에 많이 분포돼 있다. 청각장애인 특화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금속가공 등 기능직을 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막노동, 포장마차 운영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바라시’라는 게 있는데, 막노동 중에서도 거푸집을 해체하는 작업을 말한다.

청각장애인 분들이 그 일을 많이 한다. 당장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 그 일이 위험한 만큼 일당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용 환경이 좋지 않다. 하청 업체의 재하청 업체에서 파견하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안정보장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안전 장치가 안 된 상태에서 일을 하다가 추락한 청각장애인의 사례도 있었을 정도다. 고용주들은 고용할 때 겉모습만 보고 몸이 건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안전 문제를 신경도 쓰지 않아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려해왔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장애 유형에 맞는 재난대응 시스템 부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청각장애인의 위험도가 높은 것은 반응 속도가 느리고 정보 습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청력의 손상으로 인해 시각에 의존하고 있어 돌발상황에서 소리를 통한 초기 인지가 어렵고, 사이렌이나 방송, 재난 소음 등으로 정보를 수용할 수 없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다. 낙원동 건설현장 붕괴 사건과 같은 재난 시, 재난 발생 장소에서 벗어날 타이밍을 놓칠 수 있는 것이다. 구조요청의 문제도 있다. 음성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재난 발생 후 빠른 구조요청이 힘들다. 타인에 의해 신고될 때까지 방치돼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구조 과정에서 구조자가 청각장애인의 신체 상태 파악이나 병력청취 등이 어려워 구조가 늦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갇힌 공간에서 설치된 벨을 누르면 곧장 소방서나 경찰서로 연결되는 시스템이 있지만 노인들을 대상으로만 시행되고 있어, 활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휴대폰 문자를 활용한 재난 알림도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경주 지진 당시 재난 문자가 늦어진 것처럼 전송 문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청각장애 특성상 상대적으로 문맹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진호 부장은 “27만 청각장애인 중 3분의 1 정도는 수화만 쓴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문자 활용만으로는 청각장애인 전체를 아우를 수 없다”며 좀 더 1차원적인 시각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난대응 교육이나 훈련 프로그램도 전무하다. ‘장애포괄적 관점에서의 재난관리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국립한국복지대학교 장애인행정과 김승완 교수가 발표한 욕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재난대응을 위한 교육이나 훈련프로그램을 경험한 청각장애인은 18.9%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재난대응 매뉴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욕구를 드러낸 청각장애인은 75.5%로, 4배에 가까운 수치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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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실시와 설비 구축이 우선돼야

농아인협회 정진호 부장은 청각장애인 재난대응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첫 발로 ‘교육’을 꼽았다.

“우선순위 첫 번째는 청각장애인 당사자 교육이다. 재난이 닥쳤을 때, 구조요청 방법 등을 교육해서 스스로 최대한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음으로 소방공무원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 재난 발생 시 필수적으로 마주치는 소방공무원이 간단한 수화나 청각장애인 대응 방법을 안다면 소통 불가로 인한 구조지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청각장애인 재난정보 제공을 위한 설비도 구축돼야 한다. 가장 기본인 비상경광등은 공공기관, 백화점, 학교, 대형건물, 숙박시설, 청각장애인 거주 시설 등에 설치돼야 한다.

복도나 화장실 등에 설치되면 재난 발생 시 불빛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이 대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문자정보 전광판을 설치해 재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 텔레비전, 화상전화기, 스마트폰 등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정보통신 보조기기를 이용한 재난 정보의 제공도 실시간으로 이뤄져야 한다. 취침 중일 때는 청각, 시각 정보를 모두 인지할 수 없으므로 진동으로 사고를 알려주는 진동베개 등의 장치를 보급해야 대피할 수 있다.

협회는 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청각장애인 재난대응 매뉴얼을 활용한 청각장애인 당사자 교육과 소방공무원 수화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취재 당시 재난대응 매뉴얼이 공식적으로 협회 측에 전달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해외의 장애인 재난대응 대책

해외의 장애인 재난대응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돼 있을까. 미국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긴급 상황 또는 재난에 대한 대비와 각 기관 또는 건물별로 재난 발생 시 피난 매뉴얼을 마련했다. 매뉴얼 발간 전, 매뉴얼에 대한 법률적 검토가 반드시 이뤄진다는 점이 특징적이며, 시나리오 기법을 통해 실효성 테스트까지 마친다. 매뉴얼 발간 이후에는 반드시 매뉴얼에 대한 교육이 뒤따르며,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계속적인 업데이트를 강조하고 있다. 매뉴얼의 종류로는 재난에 대비해 장애인 당사자와 주변인이 숙지해야 할 사항과 주별 관련 단체 및 장애인 네트워크 등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가이드라인, 각 장애 유형에 따른 재난 발생 시 유의사항을 포함한 가이드라인 등이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다양한 피난시설을 갖출 수 있는 기준들이 존재한다. 장애인 특성을 고려해 수직이동보다는 수평이동이나 대피 공간에 일시적으로 대기하는 형태의 피난 기준을 제시한다.

독일은 장애인을 비롯한 재난약자 거주시설의 분류체계를 만들어 시설별 재난 구조계획을 수립, 운영하고 있다. ‘화재 시 휠체어 사용자 대피 규정’ 등을 통해 시설 피난로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장애인 당사자주의에 입각해 장애인 시설에서의 사전조치사항을 규정했다. 또한 신속한 구조가 가능하도록 장애 특성에 맞는 구조방법을 소방관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재난대응과 관련된 사항을 장애인법에 명시했으며, 지자체에서 장애인 재난대응 관련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해 장애인 당사자가 재난 계획을 미리 세우고 연습할 수 있도록 매뉴얼과 훈련이 활성화 돼 있다. 제공되고 있는 정보로는 ‘대피 시 알아둬야 할 것’, ‘대피 이후 일상으로의 복귀’ 등으로, 재난 발생 이전과 이후를 모두 아우른다.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

“한 지방법원에서 경광등을 설치했다고 점검을 부탁받았다. 확인을 위해 현장을 찾아갔는데, 경광등 단 하나가 소화전 바로 위에 설치돼 있었다. 경광등은 보고 따라갈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설치하는 것인데, 소화전 위에 설치한 건 의미가 없다. 복도, 비상구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경광등 설치를 하고 싶다면 피난로에 설치해야 한다고 의견을 전달했지만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상태다.”

협회 정진호 부장은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사회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경사로, 점자블록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청각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보이기에 특별히 장애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재난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 하지만 청각이 손상됐다는 것은 그만큼 반응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들이 축구를 하면, 게임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데에 10초 이상이 걸린다. 깃발을 흔들고 있지만 한 명이 깃발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장애특성을 고려하면 청각장애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눈앞의 일에 집중하다가 재난 상황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라 필요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작성자글. 조은지 기자  connecting9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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