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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사회의 재난, 어느 청각장애인의 죽음

인권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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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으레 그렇듯이 그날도 고요한 밤에 슬며시 추위가 내려앉는 날이었다. 늦은 밤에 집에 도착해 보일러를 켰지만 마땅히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추위도 가시지 않았다. 이상해서 보일러실을 보니 보일러통에 불이 붙고 있었다. 불이다. 낡은 보일러 때문이었다. 놀란 가슴에 보일러를 끄고 전기를 뽑고 추위와 함께 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보일러 소리에 민감하지 않았다면 불은 금세 보일러실 전체로 옮겼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불을 볼 수 있다. 화재를 내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다.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리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나 사고를 눈으로 보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위험을 어떻게 감지할까?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이 위험을 감지하고 그 위험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라 흔들림으로 냄새로 감지한다. 장애유형에 맞게 일할 때나 집에서 생활할 때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돼 있는가?

새해 벽두부터 공사현장의 사고로 노동자2명이 죽었다. 종로3가역 근처 낙원동에 있는 철거 중인 호텔 공사장이 붕괴돼서다. 돌아가신 2명의 노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위험을 감수하며 생활하는 건 자의(自意)가 아니겠구나. 사고의 위험보다 당장의 생계에 떠밀려, 당장의 고용에 떠밀려 안전을 뺏긴 것이구나 싶었다. 아직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라 안전하게 철거작업이 이뤄졌는지, 붕괴의 원인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번 철거작업도 하청의 하청이라는 다단계 하청이라는 점은 위험한 작업의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신성탑건설은 철거업체 다윤C&C에 하청, 다윤C&C는 또 황금인력을 통해 인력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단계 하청구조는 원청업체는 손쉽게 돈을 벌고 밑바닥 일용직에게 위험한 일을 맡기고 임금과 안전도 제대로 챙기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의 다른 이름이다.

사망자 중 한 사람은 선천성 청각장애 2급의 장애인으로 보청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노동을 했다. 자녀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지만 “애들 결혼할 때까지 돈을 더 벌어야 한다”며 공사장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청각장애인임에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뿌듯해 했을 것이다. 비장애인도 산재가 빈번한 공사장에서 40년 간 일했는데도 작은 사고만 당한 건 그야말로 그의 운이었는지 모른다. 매번 건설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건설현장의 안전장치 마련과 안전교육 실시는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운이 평생을 갈 수 없듯이 운만으로 그의 안전을 지켜줄 수 없었다.

그는 무너지는 현장을 소리로 눈치 챌 수 없었을 텐데, 그에 대비한 다른 방책이 그 공사현장에 있었을까. 아니, 사고가 나면 사고를 알릴 수 있는 경보등이나 점멸등 같은 청각장애인용 시설은 있었을까? 그가 매몰됐을 때, 그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손전등이라도 지급은 했는지 모르겠다.

건설노동자만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공간에서 재난에 대비하는 시설이나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언론보도를 보니 한국농아인협회는 “재난 발생 시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더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더 나아지지 않고 있다”면서 안전관리 매뉴얼을 개발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재난으로부터 사회구성원을 구할 국가의 의무에 대해 수없이 말했는데 설마 청각장애인용 재난대응 매뉴얼이 없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기사를 읽자마자 검색해봤다. 없지는 않았다. <청각장애인 재난대응 매뉴얼>이 있었다. 그런데 2016년 발행인데 내용은 비장애인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단락에 청각장애인은 시각적 정보를 통해 위험을 감지하니 화재사고 같은 경우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부였다. 이름뿐인 청각장애인용 매뉴얼이었다.

책자가 이 정도인데 대응훈련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사실 2014년 한국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으로서 유엔인권기구의 심사를 받으며 재난에서 장애인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당사국이 포괄적인 계획을 채택하고, 자연재해를 포함한 위험상황에서 장애 특성을 고려하여 장애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모든 재난 위험감소 정책 또는 그 이행의 모든 단계에서 보편적 접근성 및 장애 포괄성(disability inclusion)을 보장해 줄 것”을 권고했다. 심사가 끝난 지 몇 년이 흘렀으나 정부는 고작 형식적인 매뉴얼을 만들었을 뿐이다.

청각장애인은 모든 판단을 시각으로 하기 때문에 비장애인보다 수용할 수 있는 정보량이 적어 신속히 대처하기 어렵다. 잔존 청력이 남아 있는 경증청각장애인의 경우 소리를 통한 비상상황 인지가 가능하지만 그조차도 위험한 상황에서는 당황해서 놓칠 수 있다. 중증청각장애인은 시각적으로 위험정보를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 섬광빛 등이나 재난을 알리는 문자를 제공하는 전광판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비문해자인 청각장애인을 고려할 때 문자만이 아니라 그림으로 재난위험상황을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시설이 돼 있지 않으면 청각장애인은 재난에 대한 정보를 너무 늦게 획득하거나, 전혀 획득하지 못한다. 실제 2002년 8월 독일 드레스덴(Dresden)에 홍수 발생 당시, 경찰차가 순회하며 스피커 안내방송을 통해 홍수로 인한 위험상황을 통보했다. 청각장애인들은 음성으로 전달되는 대피방송을 들을 수 없었으며, 결국 대피를 하지 못해 전기 공급이 중단된 집에 남겨지는 일이 발생했다.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 많은 청각장애인이 근무하고 있지만 사업장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안전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 안전교육을 하는 수화통역사를 일터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잠을 자고 있을 경우 일어난 재난을 청각장애인이 인지하도록 진동침대와 진동베개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위험을 알릴 점멸등이나 영상전화기 같은 안전시설이 있으면 좋다.

 

불평등 사회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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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대책들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집에 설치할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그러한 것을 설치한 건물이나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싶기 때문이다. 정부는 장애인이 안전하게 살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돈을 쓰지 않는다. 2017년 장애인 예산은 대폭 줄었다. 활동보조인 예산도, 연금 등 자립지원예산도 줄었다.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장애인들이 홀로 있다가 화재로 사망하기에 활동보조인은 중증장애인이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 최소한 필요한 조치지만 정부는 오히려 예산을 줄였다. 활동보조인만 있었다면 살아있을 사람들. 그들은 화재로 죽은 게 아니다.

불이 난 것을 봤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은 대피할 수 없었다. 활동보조인을 쓸 수 없어 화마에 휩싸여 생을 마감했다. 김주영이 그랬고 송국현이 그랬다. 장애유형에 따른 안전시설이나 안전교육이 없어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 장애인이 일하는 게 하늘에 별따기인 세상에서 일하는 것도 감지덕지로 알라는 고용주의 말에 안전요구는 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장애인에게 재난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재난은 돈이 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정확하게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재난의 피해가 클 뿐 아니라 복구조차 어렵다. 미국의 카트리나 참사 때 사망한 사람 대부분이 노인이거나 빈민이라는 사실은 이를 말해준다. 빈국인 아이티의 지진과 일본의 지진이 피해규모 차이가 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동일하지 않다. 지반이 불안정한 곳에 건축법을 지키지않고 부실하게 건물을 지었다면 지지의 여파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우후죽순 아무 곳에나 건물을 짓도록 방치하는 빈국이나 부패한 나라에서 사고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가난한 나라라도 그 나라의 부유한 사람들은 단단한 지반에 튼튼하게 집을 지을 것이니 한 나라에서도 빈부 차에 따른 재난피해는 다르다.

그런데 불평등은 단지 부의 차이에만 있지 않다.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력자들의 통제는 이들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차단하곤 한다. 작년 9월 경주와 울산 등지에서 지진이 났을 때 대학입학시험을 앞둔 청소년들은 학교의 통제로 강제 야간자율학습에 묶여 대피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죽나 거리에서 죽나 똑같으니 여기 있어라”, “동요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들을 교사들은 쏟아내며 학생들의 생명을 쥐고 있었다.

대학을 못 가는 것이 죽는 것과 똑같다고 여겨지는 사회, 학생들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요구할 수도 없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지진 때문이 아니라 입시와 학교의 통제 때문에 죽는다. 노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지진이 발생해도 흔들리는 마트를 떠날 수 없었다.

시민들을 대피시킨 후 노동자들에게 대피하도록 명령하지 않았다. 물건이 많이 쌓여 언제든 떨어진 물건으로 인해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마트는 영업중단을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안전조치가 없어 죽거나 다친다.

 

일상의 재난에서 벗어나기

지진이 아니더라도, 화재가 아니라도 이미 우리 삶은 위험하다. 언제든 가난한 자나 장애인들은 일터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전철이 곧 들이닥칠 것을 알지만 스크린도어를 수리했어야 했던 구의역 비정규 청년노동자도 그랬을 것이다. 시간 내에 작업을 마치지 않으면 다가올 비난과 고용불안. 작업 공정을 마무리하며 기계 밑을 청소하다가 빠르게 회전하는 기계에 옷소매 밑자락이 말리면서 손목 전체가 끌려 들어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손가락이 잘려야 했던 청각장애인. 비정규직, 장애인에게 암묵적으로 위험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에서는 일상이 재난이다.

재난은 현재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안전을 지속적으로 탈각시키는 과정이며 위험을 강요하는 시스템’으로 존재하기에 재난시대라 명명하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재난에서 벗어나는 일은 안전상품 구입만으로 불가능하다.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불평등과 차별의 세계를 바꿔야 한다

 

작성자김은정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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