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경제적, 심리적 삼중고를 떠안은 중도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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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장갑을 껴보는 성민 씨 |
중도장애인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긴 사람을 일컫는다.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국내 장애인 인구 중 89%가 중도장애인으로 그 중 56%는 후천적 질환, 33%는 후천적 사고로 발생했다. 생의 한가운데서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입은 중도장애인들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이어 경제적, 심리적 공황 상태에 놓이지만 이들을 위한 이해와 지원은 미흡한 실정이다.
삼중고에 시달리는 중도장애인
지난 2014년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재활병원형 중도장애인 사회복귀 시스템 구축을 위한 세미나’에서 나사렛대학교 김종인 부총장은 한 달간 1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도장애인 재활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173명의 분석대상 중 응답자의 성별은 남자가 140명(80.9%)으로 여자(33명)의 4배 가량이었다. 장애유형은 지체장애가 147명으로 85%였으며, 그중에서도 척수장애가 107명으로 90% 가까이 차지했다. 154명이 응답한 장애 발생 나이는, 평균 35.24세로 장애등급도 1급이 120명, 69.4%로 가장 높았다.
응답자들은 중도장애에 대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었는데 신체적 후유증 정도가 평균 4.43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경제적 후유증 4.24점, 심리적 후유증 4.06점이었다. 신체적 후유증의 경우 재활치료로 의료적 접근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후유증에 대한 지원은 저조했다. 특히 경제적 후유증은 당사자의 직업, 가족 등과 연계되는데 ‘손상 후 직업이 없다’는 응답자가 133명으로 76.9%를 차지했다. 또한, 손상 전에는 직업이 있지만 손상 후에는 직업이 없다고 한 응답자가 93명이었다.
사회복귀의 정답이 아닌 장기입원
사고나 질병으로 중도장애인이 된 이들은 제일 먼저 의료적 지원을 받는다. 환자는 급성기 재활의료서비스를 통해 의료적 치료를, 재활병동으로 옮겨진 회복기에는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 재활치료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의료시스템 환경이 잘 구축돼 있고 재활병원도 과거에 비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많은 중도장애인들은 한목소리로 의료적인 면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특히 장기간 입원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이찬우 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도 장기 입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중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재활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외국의 경우 중도장애인은 병원생활을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로 끝내고 지역사회로 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30개월로 2년 이상을 재활병원에 있다. 그러나 2년이라는 시간은 재활의 정답이 될 수 없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중도장애인의 총 입원기간이 선진국에 비해 최대 15배 이상 길다. 미국이나 호주 등에서는 척추손상의 경우 5, 60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12~31개월까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재활 기간의 차이를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고나 산재로 인한 중도장애인의 상당수는 보상 문제로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고 병원은 병원대로 수익을 위해 환자의 퇴원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중도장애인에게 평균 2년의 재활 기간이 온전히 한 병원에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재활의료체계는 중도장애 환자들이 2~3개월 간격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척수장애인은 병원에 입원한 당일에 다음 재활병원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들을 일컬어 ‘재활난민’이라는 신종어도 생겨났다.
문제는 긴 입원기간이 곧 충분한 사회복귀훈련의 시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도장애인은 재활을 거치고도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고충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지역사회로 떠넘겨지는 경우가 상당수다. 척수장애인협회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김세윤 대리는 중도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하다.
김 대리는 긴 병원생활이 지역사회 복귀에 대한 정답은 아니라고 했다. “2001년에 사고가 났고 오랜 기간 재활병원에 있었지만 짧게는 퇴원 이후, 길게는 미래에 대한 설계를 제대로 못한 채 무작정 집으로 갔다. 병원 안에서 그나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길은 휠체어를 타고 영업하러 오시는 분들을 통해서였다. 그 분들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현실에 와 닿는 정보를 들었다. 준비 없이 퇴원해 허송세월을 보내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대학교 진학을 마음먹었다.”
이찬우 사무총장은 사회복귀훈련에 중점을 두는 선진국의 재활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요양병원은 종결적인 의미로 볼 수 있지만 재활병원은 결코 종결병원이 아니다. 재활병원은 취지에 맞게 입원기간을 짧고 효과적으로 운영해야 하며, 국가적으로 사회복귀시스템 자체를 수가로 만들어서 병원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끔 제도화해야 한다. 뉴질랜드에는 호스피탈(병원)과 호텔을 합한 개념의 호스텔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병원 건물과 좀 떨어진 곳에 일반 침실, 부엌 등을 갖춘 중도장애인이 묵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병원에서의 재활과 지역사회 복귀 훈련을 동시에 한다. 스웨덴은 병원에서 수술 받고 한 달 후 척수재활센터에 3,4개월을 지낸다. 이때는 중도장애인을 환자라고 하지 않고 훈련생이라고 칭한다. 이후 지역사회로 나가면 평생 동안 추적 관리하며 지역사회로의 안착을 돕는다.”원직장 복귀, 경제적 지원의 지름길 중도장애인을 위한 효과적인 재활과 사회복귀 훈련은 중도장애인의 경제적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왕성한 경제활동 시기인 35.24세(중도장애 발생 평균 나이)에 장애를 갖게 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재활이 의료 중심에만 머무를 경우 퇴원 후 경제적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이찬우 사무총장은 중도장애인을 경력단절장애인이라고 칭하며 사회에서의 배제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스물일곱에 중도장애인이 됐고 상당수가 2,30대에 다쳐서 중도장애인이 된다. 내내 직장생활을 했는데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타격이 된다. 배척해 놓고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수급권을 주는 것도 국가적 차원에서 손실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의 능력을 재단하지 말고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과거의 경력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애당사자들은 대부분 원직장 복귀를 희망한다. 그러나 앞서 통계에서 ‘손상 후 직업이 없다’는 응답자가 76.9%를 차지하는 점을 미뤄 중도장애인에게 원직장은커녕 직업을 갖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재 인천공항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최성찬 소방관 또한 어렵게 직장에 복귀했다. 현장에서 구급대원으로 15년간 근무했던 최 소방관은 2011년 교통사고로 11개월 재활을 마친 후 원직장으로 복귀 의사를 밝혔다. 최 소방관은 사무업무나 상황실 근무를 희망했지만 원직장은 그에게 직권면직 처분을 내렸다. 이후 최성찬 소방관은 인천광역시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했으나 패소했고 이후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1심,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모두 승소를 이어가 최 소방관은 작년 4월에 최종 판결을 받아서 5월 1일부로 복직하게 됐다. 면직을 당한 2013년 8월부터 복직까지 2년 8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그는 거듭 자신을 거부하는 원직장으로 왜 복직을 원하는지 자문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응급구조학을 전공해서 병원에서 1년 임상을 쌓고 우리나라 응급구조사 1회 졸업생이 됐다. 이후 구급대원 특채로 뽑혀 15년 정도 구급차만 탔다. 그 업무는 화재진압에 비해 위험하지는 않았으나 노동 강도는 높았다. 하루에 5,6번씩 출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은 들어도 생사를 오가는 사람을 구조하는 일이니 보람찼다. 심정지 환자를 전기충격으로 살려서 병원으로 보내드렸는데 얼마 후 치킨을 사들고 소방서로 오신 적도 있고 가끔씩 인터넷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받으면 뿌듯했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직권면직을 당하고 행정심판을 거쳐 대법원까지 행정소송을 이어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상대는 나를 계속 거부하는데 내가 왜 자꾸 원직장을 들어가려고 할까. 정답을 알 수는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난 15년 이 일에 전념했는데 제일 잘 하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 사무실에서 업무 중인 최성찬 소방관 |
최 소방관은 대학에서 응급구조를 수학했고 현장에서 15년을 몸소 익혔다. 다른 일에 한눈 판 적 없는 그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소방서 업무였다. 그것이 다른 기술의 습득을 위한 시간을 단축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이처럼 중도장애인들 상당수는 사회경험을 가지고 있어 원직 복귀를 할 경우 직업교육이 더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최 소방관은 원직 복귀를 위한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중도장애인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사고 전에 하는 일이다. 신체적 제약이 있는 업무가 아니라면 원래 있던 직장으로의 복귀가 가장 중요하다. 예전에 놀라운 외국 동영상을 본 적 있다. 포클레인같은 큰 중장비 운전을 하는 중도장애 외국인을 위해 원직장은 포클레인의 운전석이 지면으로 내려와 그를 싣고 올라가서 운전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를 위한 그 어떤 지원보다 실효성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사회적 배려다.”
최 소방관은 사고 전과 다른 소방서이긴 하나 원직장에서 다른 직무를 맡고 있다. 응급구조를 하기 어려운 그는 소방서에 복직해서 두 군데 과를 거쳤다. 현재는 현장 직원들의 호흡 보호 장비나 개인 보호 장비 등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대응구조구급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 최성찬 소방관과 그의 동료 |
심리적 지원, 당사자와 가족 모두에게 접근돼야
중도장애인에게 간과할 수 없는 지원은 심리적인 부분이다. 심리적 지원은 비장애인으로의 삶을 살다 갑자기 장애를 입고 큰 충격을 받은 중도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도 수반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의료재활에 초점을 맞춘 현재의 재활시스템은 심리적 지원에 열악하다.
장애 수용이 빨랐던 탓에 숨 가쁘게 재활을 마치고 지역사회 복귀를 희망했던 최성찬 소방관도 퇴원 후 심리적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심리적 재활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다. 사실 당시는 장애 당사자로서 그런 재활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그러나 퇴원하니 아쉬웠다. 동료상담의 중요성도 퇴원 후 절감했다. 의사선생님도 대소변 장애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이론적인 부분에 무게가 실리고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장애인 선배의 조언보다 더 현실적일 수는 없었다.”
장애인식교육센터 김세윤 대리도 병원에서 심리적 재활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병원은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시간만 맞추지 심리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또 그런 인력이 딱히 없었다. 내가 장애로 우울하다고 역시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한테 위로를 기대할 수 없었고 혼자 속앓이만 해야 했다.”
그러나 뇌졸중 등 뇌병변 중도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심리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국립재활원 재활심리실 박옥태 임상심리사는 심리적 지원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중도장애인은 비장애로 지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얻게 돼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심리적 충격이나 적응과정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장애 당사자가 후천적인 장애를 수용하게 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중도장애인의 가족들 또한 장애 가족을 받아들이고 가족의 기능을 재정비하고 적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특히 중도장애 대부분이 성인연령에 발생하므로 사회·경제적 손실이 크고 가족기능이 크게 와해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유정아 상담실장은 중도장애인 부부를 대상으로 성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중도장애인 중 상당수인 척수장애인의 경우, 사고 후 성기능장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당사자에게 성적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고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유정아 상담실장은 척수장애인도 만족할 만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척수장애인은 척수장애로 인해 성기능장애, 감각장애, 운동장애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성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발기부전치료 등 의학적인 도움으로 성생활이 가능하며, 성에 대한 인식과 관점을 변화시킨다면, 척수장애인도 만족할 만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중도장애 발생 나이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중도장애인이 많은 뇌졸중 등 뇌병변장애도 과거 중장년층에게 많이 발생했지만, 서구화된 식생활과 운동부족 등으로 젊은 층에게도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에서 중도장애를 나하고 먼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유정아 상담실장은 간병 부담을 덜 수 있는 활동보조 제도와 지역사회 내 상담 프로그램의 정착을 제언했다. “간병가족, 배우자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소진하지 않도록 활동보조인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중도장애인과 간병가족이 함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진행된다면, 많은 장애인 부부에게 힘과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당사자, 가족, 사회의 인식개선이 필요
중도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지원을 위해 인식개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식개선은중도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 의료진, 사회 모두에게 요구된다.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장애당사자와 가족들의 지나친 유착관계가 재활에 되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찬우 사무총장은 심리적 지지는 중요하나 당사자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척수장애인들이 재활 기간 내내 가족과 지나치게 유착되면, 퇴원한 자식이 하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도우려고 한다던가 안쓰러운 마음에 제지하려고 든다. 이는 장애 당사자의 자립에 큰 도움이 안 된다. 가족들을 대상으로 먼저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 돼야 한다.”
또한 중도장애에 대한 제대로 된 인지도 필요하다. 척수장애는 신경마비뿐만 아니라 대소변장애와 성기능장애 등의 문제가 생기는데, 일반 병원의 의료진들 가운데도 척수장애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기자와 인터뷰한 상당수는 의료진의 부주의로 욕창이 생겼다고 호소했다. 또한 대소변 장애로 인해 이따금 발생하는 신변처리의 어려움에 대해 가족과 직장 동료 등 주변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성찬 소방관은 장애에 대한 맞춤형 접근의 필요성을 말했다. “현재의 시스템은 그것들을 뭉뚱그려서 큰 틀에서만 얘기를 해주고 지원한다. 그러나 같은 흉추 11번 손상이라도 증상, 느끼는 것이 다르다. 신체 능력이 비슷해도 다른 것들에 대한 차이들이 많다. 맞춤형이 필요하다.”
장애계 활동가들은 맞춤형 지원을 위해 장애범주 확대의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현재 등록장애인의 반 이상이 지체장애인이 척수장애는 절단장애, 근육장애 등 다른 유형과 함께 지체장애 안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척수장애인 수는 2014년 기준 약 7만 5천 명으로 장애유형별 인구 수 7,8위에 해당된다.
이찬우 사무총장은 “척수장애는 중증, 중복, 중도의 3중장애이다. 비장애인 생활을 하다가 다쳐 중도이고, 육안으로 지체장애이지만 비뇨, 배변 장애를 함께 겪는 중복, 중증장애이다. 그런데 지금의 장애 판정 체계는 너무 단순해서 척수장애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큰 틀에 갇혀 있어서 법적으로 보장을 받기도 힘들다. 장애범주 확대가 필요하다. 저마다 맞춤형 복지라는 구호를 외치지만 맞춤이라는 것은 장애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올 수가 없다.”
최성찬 소방관은 중도장애인 당사자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물론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장애를 수용하는 게 말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 이전과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이전 삶은 한 때의 추억으로 생각하고 잊는 것이 현실적이다. 장애는 극복이 아니라 수용이다.”
▲ 머리를 감는 성민 씨와 지켜보는 성민 씨 어머니 |
첫걸음을 시작한 성민 씨
기자는 척수장애인협회가 주관하는 일상홈을 방문했다. 일상홈은 중도 중증장애인이 한 달 동안 일상생활 코치와 생활하며 지역사회 복귀를 위해 공간이동 훈련, 신변처리 훈련, 가사활동, 대중교통 이용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 일상홈에는 전날 입소식을 마치고 일상홈 2일차를 맞이한 조성민 씨가 있었다.
진주 출신 스무 살 성민 씨는 척수장애를 입은 중도장애인으로 부산에서 2년간의 재활훈련을 마치고 일상홈을 신청했다. 그날은 재활훈련 동안 아들을 간병한 어머니도 함께 있었는데 일상홈의 규정상 곧 당사자만 남게 된다.
그날 성민 씨는 처음으로 혼자 머리감기를 시도했다. 일반 아파트에 휠체어 접근성을 높인 일상홈의 환경이 모든 사용자에게 적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성민 씨는 몇 차례 시도 끝에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기에 머리를 수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머리를 감았다. 성민 씨가 경수장애가 있어 손의 사용이 불편했기 때문에 샴푸 덮개도 턱을 지지대 삼아야 했고 제대로 물 온도를 조절할 수 없어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처음치고는 제법 훌륭하게 머리감기를 성공했다. 2년간 아들의 머리를 감겨 온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대견해하는 한편 눈시울을 붉혔다.
성민 씨의 서울살이 이틀째인 그날은 새벽부터 내린 함박눈으로 서울 시내가 하얗게 뒤덮인 날이기도 했다. 성민 씨는 진주에서 진눈개비조차 내리는 날이 거의 없다며 신기한 눈으로 일상홈의 창밖 전경을 일별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중도장애인을 위한 이해와 지원을 통해 대학에 진학해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성민 씨, 아들 못지않게 힘든 시간을 보내왔을 어머니, 의젓한 고등학생 장남부터 말괄량이 초등학생 딸까지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 듬직한 가장 최성찬 소방관 등 모든 중도장애인과 그의 가족들의 시름이 포근한 하얀 눈으로 깨끗이 덮일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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