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가 평가하는 18대 정권 바라는 2017년 대선
본문
▲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거리에 부착된 후보자들의 모습 |
월간 <함께걸음>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둔 시기마다, ‘다음 대선에 꼭 포함돼야 할 장애계 대선공약’을 집중 조명하는 기획특집을 매번 진행해왔다. <함께걸음> 지면에 등장한 공약 요구사항들은 각 대선후보들마다 그대로 공약집에 인용할 만큼의 선명성이 강조됐고, 당선 이후의 행보와 상관없이 공약이행 여부를 따지는 핵심 지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19대 대선을 1년 앞두고 이번 취재를 진행하며 느낀 건 ‘이변 아닌 이변’이었다. 다음 대선을 바라볼 심적인 여지가 거의 모든 활동가들에게서 보이지 않는다는 뜻밖의 현실과 마주친 것이다. 이는 ‘촛불의 분노’로 상징되는 현 대한민국의 국격이 얼마나 처참하게 붕괴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실질적인 반증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2016년 현재의 의견들
2017년 12월에 실시되는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선거’는 1년여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누가 될 것 같은지’의 설왕설래가 화제의 중심이 되고,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주장하는 토론이 집중돼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인 2016년 연말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내리치는 눈비에 아랑곳없이 광장에 나와 촛불을 밝히며, ‘새로운 돌’ 이전에 ‘박힌 돌’ 하나를 빼내기 위해 남녀노소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유사 이래 전무후무한 국정농단사태의 여파는 ‘2016년 가을’이라는 단 하나의 계절을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삶 자체를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눠놓았다. 완전하게 뒤집고 와해시키면서, 재조립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 앞에 마주 서 있는 것이다. 취재를 위해 듣고 싶었던 ‘장애계가 요구하는 2017년 19대 대선공약’은 아직 논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거의 모든 화두가 현 정권의 비판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원래의 취지인 ‘장애계 대선공약’은 이번 촛불의 해답이 최종 결과로 도출되고, 그게 실제 확인된 이후에야 가능하겠다고 결론 내리게 됐다. 그래서 장애인권운동 현장에서 활동하는 주요 활동가들이 답하는 ‘2016년 촛불’ 현재를 기준으로, 그들의 의견을 먼저 정리하고자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옥순 사무총장
2016년 올해 탈시설과 관련된 중앙부처의 예산이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0원이다. 수백조 원의 국가 예산 안에서 0원이라는 것이다. 서울시가 먼저 탈시설 전환에 관한 사업을 시행하고, 예산도 투입하면서 체험홈 등의 정책을 우선 진행하고 있다. 전장연의 계속된 투쟁으로, 몇몇 지자체에서도 서울시와 같은 정책을 시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정부는 끝까지 ‘예산 0원’으로 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탈시설과 관련된 중앙정부의 법제정과 정책수립 및 실질적인 예산 반영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박근혜 정권의 주요공약이었던 장애등급제 폐지를 무산시키고 있는데, 차기 대선주자가 누구든 간에 명확하게 완전 폐지를 선언해야 한다. 단, 일정을 못 박아야 한다. ‘언제까지 분명하게 하겠다’는 로드맵을 미리 제시하라는 거다. 그리고 예산을 분명하게 배분해야 한다. 현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하게 이분화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보건복지부는 그나마 시범사업으로 계속 진행하고 있었는데, 기획재정부에서 그 예산마저 백지화를 시켜버렸다. 시범사업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나니, 복지부도 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박근혜 정권이 이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 앞에 머리 숙이며 약속했던 대선공약은 어디로 갔는가!
18대 대선 당시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주권자들의 모습 |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이희정 사무처장
지난 18대 대선공약을 보면, 장애인을 위한 12대 공약이라고 거창하게 나열돼 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여성장애인을 위한 주된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 이뤄진 것도 없다. 정권 4년차마저 끝나 가는데 도대체 무얼 했는가? 차라리 전면 재검토든 개정이든 뭐든 간에, 처음부터 허심탄회한 토의를 거치면서 시행착오를 같이 겪었다면, 절반 아닌 3분의 1이라도 ‘무언가의 변화’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실질적인 내용은 전무하다.
장애뿐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지원법률이 시급히 필요한데도, 여성 장애계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정부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당시 일각에서 얘기했던 최초의 ‘여성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헛된 꿈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여성장애인단체 활동을 오랫동안 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까지 됐다. 옛 속담에 ‘울면 떡 하나 더 준다’는 표현이 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우리가 계속 울어야 되는 건가?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왜 이렇게 해야 되지? 우리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격체인데, 왜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이런 대상으로 울어야만 하고, 왜 점거농성을 해야 되는 건가? 왜 우리는 죽어서 실려 나가야만 어중간한 법안들이 국회에서 논의될 정도가 되는 걸까?’
터놓고 얘기하겠다. 현 정국, 현 정부, 현재의 촛불을 보면서 그 이전까지는 창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창피하다 못해 지겹고 이젠 그만 지워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국정을 망가뜨린 중심인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치며 면죄부를 받고, 정작 중요한 국정농단의 폐해가 흐지부지되는 결과로 남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크다는 것이다. 더 이상 국가가 붕괴되지 않아야 하는데, 죄의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말만 갈아타는 결과가 될 것 같아 회의감이 극도로 커진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
장애인부모연대의 구성상 가장 많은 활동가들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다. 일단 외면적으로는 이번 정권에서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고, 수화언어법도 통과가 됐으니 일정한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외적인 모양새도 좋았다. 이전 19대 국회의 첫 번째 입법 발의가 발달장애인법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여당인 새누리당에서 19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첫 번째로 발의한 법안이었으니, 뭔가 가시적인 변화를 기대할 만한 여건이 당시엔 마련됐던 셈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법제정연대가 초안으로 준비하고, 의원 발의로 제출된 법안은 98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실제 법안으로 통과된 건 44개 조항이다. 핵심사항들이 다 빠져버린 것이다. 무엇이 왜 빠지게 됐는지는 묻지 않아도 답이 나오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발달장애인은 21만 명으로 파악된다. 전체 250만 등록장애인 중에서 8%밖에 되지 않는 수치이다. 하지만 최중증인 1급을 기준으로 봤을 때는, 1급 전체의 30%가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의 등급은 4,5,6급이 없다. 1,2,3급의 중증 중심이라는 것이다. 다음 대선은 아직 멀다. 단 하나만 절실하게 요구하고 싶다. 무엇보다 장애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 입법이든 공약이든 뭐든 간에, 당사자의 자기결정권만큼은 가장 중요한 최우선 순위가 반드시 돼야 한다는 점을 치열한 심정으로 강조하고 싶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
누가 보이는지, 누가 등장할지, 누가 후보가 될지, 누가 대통령이 될지 그 자체도 모르는 현 상황이다. 어떤 분이 되실지 가늠할 수 없기에, ‘그 어느 분’께 꼭 이것만큼은 공약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권리옹호’다. 더 강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차별 받지 않고, 이용당하지 않고, 학대 받지 않고 더불어 누구로부터도 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장애인 주체가 돼야 한다. 지역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바로 권리옹호다. 그 권리옹호를 명확하게 법제화할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을 강조하고 싶다. 모든 법제정에는 반드시 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한 가운데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더 말할 게 무엇이 있는가. 이번 정권은 완전한 사기꾼 정권이다. 모든 게 사기였다. 장애등급제폐지와 부양의무제폐지, 소득 문제 제기에 대해 책임 있는 예산 반영을 끝까지 이행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당신들이 굳게 다짐했던 공약이었지 않은가? 매번 말로는 다 해주겠다는 식으로 넘어가려 하는데, 이젠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국민 앞에서 했던 약속, 꼭 지키고 달성하겠다던 그 공약이 있는데, 왜 예산은 배정하지 않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사기였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