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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해 문턱을 낮춘 대중교통

핀란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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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나라, 핀란드의 정책

살기 좋은 나라로 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나라, 복지의 나라라고 불리는 핀란드. 인구는 540만으로 한국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되지만, 영토 면적은 한국의 3배가 넘는다. 한국처럼 어딜 가든 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일이 없는 조용한 나라이다. 호수의 나라답게 18만 7,888개의 호수가 고요하게 숨을 쉬고, 키 큰 자작나무와 소나무들은 숲을 빽빽하게 이뤄 육지의 68%를 뒤덮고 있다. 필자는 이렇게 한적하고 조용한 핀란드에 살고 있다며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숲과 호수,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덕분인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무리한 연장 근무로 성과를 내고 경쟁하는 것보다 휴식의 가치를 더욱 높게 산다. 이 추운 나라에서 1년 동안 해가 가장 강렬하게 내리쬐는 여름에는 3,4주씩 휴가를 내고 숲 속 오두막으로 들어가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해외여행을 다니기 바쁘다. 여름 동안 마치 도시 자체가 텅 빈 것만 같다.

핀란드에서는 외국인도 일하며 세금을 내고 있으면 자국민과 동일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무료에 가까운 출산 비용,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육아 수당, 육아 지원 물품, 아기가 17세가 될 때까지 받는 아동 수당, 아기를 위한 무료 예방접종, 실업급여 등 필자가 지금까지 받고 있는 혜택만 해도 이곳에서 자리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하면 굉장히 온화하고 관대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복지의 나라 핀란드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장애인 시설이 우리 마을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 현상, 장애를 이유로 학교에 입학이 거부되는 사례도 종종 드러난다. 또 장애인이 사회 보장 서비스에서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거나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 기사도 쉽게 볼 수 있다. 복지의 천국이라고 해서 모든 제도가 완벽하지도 않고,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도 무조건 따뜻하지만은 않다. 다만 밝혀두고 싶은 것은 핀란드의 장애인 정책은 아주 높은 기준을 두고 계속 전진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장애인 정책, 장애인의 삶과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연재를 시작한다. 첫 회 필자가 핀란드에서 살면서 가장 큰 혜택을 본 대중교통에 대해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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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해 문턱을 낮춘 대중교통

앞서 말했듯이 핀란드는 기후 조건이 좋지 않다. 봄이 시작되는 3월 말에도 눈이 쌓여 있고, 여름은 따뜻한 햇살을 즐기기엔 턱없이 짧다. 가을은 연일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다. 11월 초에도 폭설이 아져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바퀴가 눈길에 푹푹 빠져 앞으로 나아가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건물 출입문도 추위를 막기 위해 무겁고 두꺼운 이중문으로 돼 있다. 센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동문은 난방에 좋지 않기 때문에 웬만큼 큰 쇼핑몰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

이런 자연환경에서 대중교통마저 접근이 어렵다면 장애인들에게 이것보다 큰 고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와 인근 4개 도시를 관할하는 대중교통 시스템 HSL은 이미 1990년대에 대부분의 이동 수단을 저상으로 교체했다. 버스는 이미 저상 버스 도입이 거의 완료된 상태이다. 트램은 전체의 절반 정도가 저상 트램으로 운행 중이다. 저상이 아닌 구형 트램의 경우에는 중간 1량의 출입문을 저상으로 만들어 휠체어가 바로 오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저상 버스는 고속버스에도 이미 도입이 돼있다. 예약 당시에 휠체어 좌석을 선택할 수 있고, 휠체어를 탄 채로 저상 버스에 오르거나, 휠체어를 짐칸에 싣고 기사의 도움을 받아 좌석에 앉아 여행할 수 있다. 이런 설비가 돼 있지 않은 고속버스는 예약 당시 미리 휠체어가 있음을 알리면 휠체어 리프트를 지원받아 버스에 오를 수 있다. 적어도 한국의 명절마다 등장하는 기사 제목처럼 “올 추석에도 고향에 못 가”라는 상황은 없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전국 지자체에서 운행되는 시내버스 3만552대 중 저상 버스 비율은 6,751대로 20.7%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이 35.2%로 가장 높은 수준이고, 강원 32.5%, 경남 25.2%, 대전 25.5%, 충북 22.4%, 대구 21.8% 정도이다. 그마저도 휠체어가 버스에 오르기 위해서는 장애인 때문에 운행 시간이 지연된다는 다른 승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한다. 핀란드에서 아기를 낳고 키우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니, 저상 버스 도입에 대해 한국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저상 버스 도입을 논할 때 늘 장애인의 이동권을 중심으로만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특정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서비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상 버스 도입을 위한 예산은 뒷전이 되고 만다. 핀란드에서는 장애인만이 저상 버스, 저상 트램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행 보조기에 의지한 노인도 계단을 오르지 않고 보조기와 함께 버스에 오를 수 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도 유모차를 끌고 버스와 트램을 타고 다니며 이동한다. 오히려 저상 버스가 주는 편리함은 노인과 아이를 동반한 부모가 더 크게 느끼고 있다. 바로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편리한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를 위해 장애물을 없애고 혜택의 수혜자를 넓힌다고 생각하면 사회적 소수를 위해 큰 예산을 투입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시력의 90%의 손상을 입은 시각장애인은 트래블 카드(한국의 티머니와 같은 교통카드)를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트래블 카드를 소지할 필요도 없이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트래블 카드를 보여 줄 필요가 없으니 장애인도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안전하게 승차할 수 있고 다른 승객들이 이동하는데 지체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도와주는 동반자 역시 요금이 무료이다. 심지어 6세 이하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동하는 부모 역시 무료이다.

저상 교통 시스템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장애인보호법에 따라 지하철과 버스 등의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이다. 하지만 과연 장애인이 휠체어를 끌고 나와 마음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여건과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작성자글과 사진. 신소영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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