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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학대 피해 장애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환경들

미국 일리노이주 장애인권 옹호체계 취재 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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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노예 사건을 비롯해 국내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학대 사건들은 연이어 그 충격적인 전말을 세상에 드러냈다. 특히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대가 주로 세간의 공분을 사며 그 심각성이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를 포함한 수많은 장애인들이 반복적인 학대 상황에 노출되는 등 장애인 학대 문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달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함께걸음에서는 한국에 비해 장애인 권익옹호 체계가 앞서있다는 평을 받는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기관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소수자 속의 소수자, 약자 속의 약자는 추가적인 피해에 쉽게 노출된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 등이 그에 속한다. 장애인 학대와 여성 학대, 아동 학대에 중복 피해를 입는 것이다. 함께걸음에서는 그러한 피해를 입은 장애인들이 2차 피해를 입지 않고 사후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재의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시스템 전체를 바꿔가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 복지부를 찾았다. 일리노이주 복지부 내 성폭력·가정폭력 부서는 10여 년간 성폭력·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장애인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먼저, 전반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꾀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리노이주 전역에 걸쳐 5개의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한 팀마다 다양한 장애인 서비스 기관, 학대 피해자 지원기관이 함께하게 하면서 반드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을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했다. 프로젝트 전체를 이끈 테레사는 이 프로젝트의 목표가 ‘다리 만들기’였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서비스 기관, 권익옹호 기관,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이 연계되지 않고 있었다.

여성장애인 한 사람이 성폭행을 당했을 때, 그와 같은 단절이 피해자에게 큰 불이익이 됐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 서비스 제공기관을 이용하는 발달장애인의 성폭행 피해 사실이 드러나도, 서비스 제공자들이 성폭력 피해자 지원시스템에 대해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연계를 해줄 수 없게 되는 문제 등이다. 때문에 우리는 기관들 사이에 다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테레사가 발견한 단절은 피해자 지원 부분뿐만이 아니었다.

성폭력피해자지원센터에서 학교나 훈련기관 등에서 자주 실시하는 성교육 과정에서도 교육과 발달장애인은 단절돼 있었다. 학교 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지만 장애학생들에게 맞는 교육이 제공되지 않았던 것이다. 테레사는 이외에도 기관들이 서로의 업무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5개 팀 내 여러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지역별로 구성된 각 팀이 각각 일리노이주 전체를 대변한다고 동기부여를 하고, 서로의 업무를 이해할 수 있게끔 했다. 단순히 ‘저곳은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식으로 다른 기관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관이 일하는 체계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내용들을 이해하도록 했다. 나의 기관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어느 기관과 공유해야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그 기관과 공유했을 때 그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등을 서로 나눌 수 있게 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한 명의 장애인 피해자를 놓고, 장애인 서비스 제공기관은 모성애적 접근을 하는 한편, 성폭력피해자센터에서는 피해자 중심적 접근을 했기 때문에 개념의 차이가 있었다. 또한 성폭력피해자센터는 완벽한 기밀을 기본으로 하지만, 장애인 서비스 제공기관은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일리노이주 복지부는 팀 내에서 차이점이 발생했을 때, 이러한 차이점을 완화시키는 역할의 중립적인 조정위원을 파견해 조율을 이끌어냈다. 팀 내에 속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비장애인 참가자들과 동등한 권력을 분배하는 일도 동반됐다. 모든 미팅 스케줄은 당사자 참여가 가능하게 잡고, 당사자가 미팅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이어나갔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공동의장으로서 비장애인 의장과 같은 발언권을 가지게 했다. 이것은 ‘서비스 해주는 곳과 서비스 받는 장애인이 동등한 위치가 돼야 한다’는 프로젝트의 기초 철학이 반영된 방식이었고 이는 성공적으로 당사자를 프로젝트 안으로 들여놓았다.

피해자가 어디서든 시스템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을 포괄하는 성교육도 만들어졌다. 테레사와 팀들은 통합 성교육을 위한 교구를 만들어나갔고,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성교육 실시 기관이 함께 효과적인 성교육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이후 진행된 통합 성교육은 당사자의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성폭력이 무엇인지, 건전한 관계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교육했다. 학교 등을 다니지 않아 교육에 접근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교육 기관이 보호작업장 등을 찾아다니면서 교육을 진행했고, 쉬운 설명이 있는 홍보물들을 발달장애인들이 자주 찾는 곳과 공공장소 화장실, 게시판에 붙여 노출시켰다.

매년 열리는 성폭력 근절의 달 성폭력 관련 행사에 장애인을 주제로 참여했고, 성폭력 생존자 모임을 발달장애인들이 참관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이런 교육이 자녀들의 성관계 개념을 깨울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갖는 부모들을 위한 설명서도 제작됐다. 이 설명서에는 자녀와 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방법, 자녀가 성폭력의 위험에 처할 확률을 낮추는 방법 등이 포함돼 있다. 테레사는 부모들이 늘 허락을 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샤워를 하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심지어 자녀의 방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부모들은 계속해서 자녀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자녀가 성인으로서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기관들의 연계, 당사자 교육에 그치지 않고 프로젝트는 이어졌다. 의료진이 성폭력 피해를 한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서를 제작했고, 그림으로 구성된 성적 학대 검사 도구를 개발했다. 의료진 교육에서는 특히, 발달장애인 대부분이 산부인과 검진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성폭력 관련 검사가 당사자에게 2차 피해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모든 절차는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과, 신체장애인이 취할 수 있는 검사 자세도 포함됐다. 성폭력 피해자 본인이 사건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성폭력에 관한 사건에 대해서는 후견인의 권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령도 수정됐다.

기관,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성폭력 사건에서 당사자와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인 경찰에 대한 교육과 홍보도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경찰 후보생이 다니는 학교에서부터 발달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필수교육을 적용했다. 이어 경찰 각 부서가 보고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 ‘일반수칙 모델’을 만들고, 경찰서장들이 읽는 잡지에 발달장애인 성폭력 관련 글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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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는 “경찰, 사법부가 어떤 자료들을 접하는 지 파악하려 했고 그런 것에 우리의 교육 내용을 넣을 때는 경찰, 사법부가 쓰는 용어들로 기존의 용어들을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911 전화 응답자들도 첫 번째로 피해자와 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하에 교육 대상이 됐다. 교육을 받은 이들은 각자 발달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만났을 때, 교육 내용에 따라 연계된 기관에 연락하게 된다. 피해자가 경찰, 911, 병원, 장애인 기관, 피해자 센터 등 수많은 접촉점 중 어디서 피해사실을 알려도 모두가 알게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테레사와 그 팀이 주력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쉼터와 관련돼 있다. 일리노이주 전역의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 쉼터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조사를 실시하는 중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 쉼터를 포함, 모든 쉼터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쉼터에서 보조동물까지 함께 보호 받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도움이 있다면, 아이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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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닉에서 처음 만났던 아이는 11살 이었습니다. 발달장애가 있었고, 할아버지에게 오랫동안 학대를 당해왔었습니다. 마르고, 언제나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아니오’ 말고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상태는 몇 달 동안 이어졌습니다. 게임, 미술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아이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적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로 인해 아이가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와 연락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가자 아이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해줬습니다. 그 결과, 할아버지는 처벌이 됐고, 아이는 눈에 띄게 변했습니다. 올해 15살인 그 아이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습니다. 만나면 학교 얘기를 신나게 하는 밝은 아이가 됐습니다.”

일리노이 대학 내 장애아동 클리닉에서 근무하고 있는 수잔의 이야기다. 장애아동 클리닉은 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심리치료, 미술치료, 놀이치료 등을 하는 기관이지만, 치료라는 개념으로 장애아동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이 곳을 찾은 장애아동은 환자가 아닌 고객으로 본다는 것이 기관의 철학이다. 치료가 아닌 지원을 해주는 곳이라고 말하는 클리닉은 맞춤형 테라피를 제공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학대 피해를 입은 장애아동만을 위해 고안된 전문적인 테라피 프로그램이 전무하기 때문에, 클리닉은 비장애아동을 위한 테라피를 가지고 와서 수정작업을 거친다. 단 하나의 테라피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테라피를 끌고와 학대 피해 장애아동의 개별적 특성에 맞는 테라피를 설계한다. 수잔은 “프로그램에 사람을 넣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일리노이 대학 내 장애아동 클리닉은 아동옹호 센터와 함께 성적 학대 피해를 입은 아동들에게 현존하는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학대피해 아동이 발생하면 아동 보호 서비스 기관이 학대 사실 관계를 조사한다. 1차적인 조사가 끝나고 증거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아동은 시스템 내로 편입된다.

시스템 내로 들어온 후에는 원칙적으로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은 단 한 차례만 한다. 아동옹호센터에서 유일한 진술을 하게 되는데, 이때 아동옹호센터가 경찰, 검사 등 진술을 어야 하는 사람들을 모두 소집한다. 피해 아동의 진술은 학대 피해 아동과 법의학 인터뷰를 전담하도록 교육 받은 전문인력에 의해서만 실시된다. 경찰, 검사 등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질문을 모아 피해 아동에게 전달하며, 특수유리 뒤에서 모두가 진술 과정을 지켜보며 비디오 녹화도 병행된다. 만약 진술이 다시 필요할 경우, 이 비디오 녹화로 대신한다. 이처럼 단 한 번의 진술 기본값인 이유에 대해 수잔은 “트라우마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면 아이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그 두려움이 이야기를 변질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아동옹호센터에서의 전문적인 인터뷰로 불필요한 2차 피해를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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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 시 테라피 받는 장애아동을 볼 수 있는 장소.

아이들은 창 너머를 볼 수 없다.

장애아동 클리닉의 수잔은 트라우마 아동 서비스 지원센터에서 감당할 수 없는 장애아동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전체 사건의 12%~15%가 장애아동과 관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아동 클리닉은 장애아동 지원 전문가의 부족을 통감하고, 지역 내 트라우마 서비스 제공자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장애아동만을 전담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기보다, 기존의 전문가에게 또 다른 전문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 교육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때문에 현재 일리노이 지역 내에는 성적 학대를 입은 장애아동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 급격하게 늘어난 상태다. 일리노이 대학 내 장애아동 클리닉은 지역 정신건강센터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케이스의 장애아동들을 담당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11살 장애아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클리닉에 발을 들여놓았다. 트라우마가 심각한 장애아동들이 클리닉을 찾지만, 악화된 케이스는 단 하나도 없다. 수잔은 장애아동들이 오히려 비장애아동에 비해 트라우마 극복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도움만 있으면 아이들은 정말 잘 따라준다. 한 아이에게 어떤 테라피가 맞는지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맞춤형 테라피를 설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방식만 찾는다면 결과는 무조건적으로 좋다.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결론적으로 기쁘지 않은 경험이 없었다. 특히 발달장애 아이들은 비장애인 아이들에 비해 트라우마 회복이 빠르다. 다만, 회복되어 시작하는 단계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초기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회복이 시작되고 자신이 안전하다는 믿음만 주면, 그 다음부터는 의심이나 걱정 없이 모든 프로그램을 빠르게 따라온다.” 장애아동 클리닉은 장애아동과 동시에 필요 시 부모 교육을 진행한다. 대부분의 경우 아동들은 부모를 원하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한 교육을 통해 아이가 살아갈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장애아동 클리닉의 경우 인력 문제를 전문성을 나누는 방식으로 다소 해결했지만, 사실 일리노이주의 학대 피해 장애아동 지원 시스템에서 인력 문제는 가볍지 않다. 수잔은 “장애, 비장애를 떠나 한 명의 담당자가 지원해야 할 아동이 너무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아이들이 조금씩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후원으로 작성 됐습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조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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