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의 디딤돌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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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과 권익증진이 나아가는 데 디딤돌이 되는 판결과 걸림돌이 되는 판결이 선정됐다.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10월 31일 ‘2016 장애인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를 통해 디딤돌 판결 8개, 걸림돌 판결 8개, 그 외 주목할 판결 2개를 선정했다.
<디딤돌 판결>
1. 지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 거부 사건
소위 ‘에버랜드 사건’으로 알려진 장애인차별 사건으로, 재판부는 지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놀이기구의 이용을 거부한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해, 피고에게 안전가이드북의 문구 수정과 손해배상을 명했다.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지적장애를 이유로 일률적으로 놀이기구의 탑승을 제한한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장애인 차별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 장애인 보험가입 거절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
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보험인수를 거절한 보험회사를 상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구제청구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으로, 약물을 복용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험인수를 거절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봐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차별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나아가 개별적 위험성 판단 없이 보험인수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시켜 준 판결이라 할 수 있다.
3. 북한이탈주민인 정신질환자를 하나원에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킨 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건
정신질환자가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원장은 정신보건법에 따른 보호의무자가 아니며, 이러한 강제입원 조치를 취할 만큼 급박한 위난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입원도 가능했던 만큼 국가는 원고인 북한이탈주민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고, 보호의무자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장애인의 인권침해를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판결이다.
4. 요양원 입소계약서의 부당한 면책조항의 효력을 부인한 사건
뇌병변장애 1급 장애인이 요양원에서 낙상해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은 입소자가 간병사의 도움 없이 무단으로 활동하다가 넘어질 경우 요양원의 배상책임을 면제하는 입소계약서의 내용은 면책약관에 해당하므로 충분히 명시·설명돼야 하는 것이므로, 그렇지 않은 경우 효력이 없다고 판시해 요양원측에게 망인의 가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명했다. 이 판결은 이용계약서에 규정한 면책조항을 근거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설 측의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로서 의미가 있다.
5. 장애인차량 LPG 할인지원이 중단된 후 관계기관의 협조 미흡으로 계속 지급받은 할인지원금에 대한 반환청구를 기각한 사건
승용차용 LPG에 대한 세율이 인상되자 세금 인상액을 지원하는 장애인차량 LPG 할인지원 사업이 실시됐으나 2007년 1월부터 4~6급 장애인에 대해서는 지원이 중단됐는데, 보건복지부, 신용카드 회사, 지자체 간에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할인지원금을 계속 지급받는 일이 발생하자,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할인지원이 이뤄진 경위와 지원 액수 등을 볼 때 경제적 부담 경감이라는 본래 목적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부당이득이 아니라고 봐 원고인 대한민국의 청구를 기각했다. 공평의 이념에 기초한 올바른 판단이 이뤄졌다는 점, 복지급여 정책의 축소를 둘러싼 유사 사건에서 선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판결이다.
6. 재판정 유예가 가능한데도 장애인 등록을 즉각 전산 삭제한 행정청에 대해 처분의 취소를 명한 사건
국민연금공단에 원고의 장애등급 재판정을 의뢰한 행정청은 ‘장애등급 결정보류’ 통지를 받자 이를 원고에게 통지하지 않고 결정보류 처분을 통지한 후 행복이음 시스템에서 원고의 장애인 등록을 취소했는데, 법원은 행정청의 전산 삭제 행위는 행정처분에 해당하며 절차상 하자로 인해 무효인 처분인 동시에 재판정 유예 처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뤄진 위법한 것이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장애인 등록 관련 업무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행정편의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장애인의 권리 보호에 도움을 주는 판결이다.
7. 아동학대, 횡령·배임 등 범죄를 저지른 자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가 될 수 없도록 한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
청구인은 업무상횡령죄로 처벌된 전과가 있는 사회복지사로 사회복지사업법 제35조의2제2항 제1호가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했는데,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전원 일치로 심판대상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사회복지사업의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의 중요성과,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성격 및 책임의 중요성 등을 무겁게 인식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8. 인화학교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의 교사직 사퇴를 요구한 다양한 행위의 위법성을 부인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사건
성추행 혐의가 있는 교사의 퇴출을 위해 기자회견, 1인 시위, 인쇄물 게시, 팻말과 현수막 게시 등 다양한 활동을 한 인화학교총동문회 및 관계자에 대해 해당 교사가 명예훼손과 함께 포괄적으로 인격권 침해에 기한 불법행위를 주장한 사건으로, 항소심법원은 공익적 목적에 의한 표현의 경우 해당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인격권과 명예를 침해한다 하더라도 이를 불법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해 향후 유사한 사례에서 선례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걸림돌 판결>
1. 지적장애 아동 성매수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사건
만 13세 2개월에 불과한 지적장애 아동을 상대로 한 성매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발적 성매매로 봐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사건으로, 관련된 형사판결이 있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경직된 사실인정을 함으로써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제정 취지를 몰각시킨 판결이다.
2 솔 장애인 학대사건 항소심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의 손이나 발을 결박한 행위는 감금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의 폭행·협박에 해당해 감금죄에 흡수되는 것일 뿐, 별도로 중감금죄의 가혹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항소한 피고인 전원의 형을 감형해줬다. 손・발의 결박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정도에 이르렀음에도 돌발행동을 막을 필요성이 있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인정한 판결로, 시설 내 학대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3 실로암 연못의 집 사건 항소심
출입문을 한 달간 잠가서 39명의 입소자들이 외부를 출입할 수 없게 한 감금죄에 대해 1심과 달리 무죄를 선언하고, 입소자 전원에 대한 유기죄 역시 무죄라고 판단한 판결로, 비장애인과 동일한 정도로 구체적인 경위를 모두 진술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의 특수성을 간과한 판결이며 부당한 판결이다.
4 상주 LH 아파트 차별구제청구 소송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승강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인 원고는 눈・비가 오는 날에도 지상주차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지하주차장에 승강기를 설치해달라는 차별구제청구를 했으나 법원은 지상에 장애인주차장이 있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판결로, 단순히 해당 편의제공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이유가 아니라 장애인의 시각에서 용이하고 동등하다고 인정되는 수준의 대체 수단이 있는지를 살피지 않은 형식적인 판결이다
5. 지적장애인 추락, 사망사고에 대해 학교 측의 관리 소홀 책임을 부인한 사건
기숙사생활을 하던 지적장애인이 출입문이 상시 개방돼 있는 옥상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으로, 옥상문을 상시 개방하지 않을 수 있는 대체 방안이 있고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상 옥상문을 상시 개방하면 다양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음을 학교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다.
6. 누범기간에 동거하는 뇌병변장애 6급 여성을 폭행, 협박, 강간한 피고인에게 현저히 낮은 형을 선고한 사건
많은 장애인성폭력 사건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권고형보다 낮은 형이 선고되고 있는데, 이 사건은 그 중에서도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누범기간 중이고 반성이 없으며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는데도, 권고형의 하한인 6년형보다 낮은 징역 3년 6월이 선고됐다. 피고인이 과거 살인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는 점과, 장애인 성폭력을 엄히 처벌하는 최근의 경향과도 배치돼 양형의 타당성에 의문이 남는 판결이다.
7.지적장애인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본 사건
이 사건에서는 단기 소멸시효 완성 후 지적장애인이 체불임금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이후에 성년후견인이 선임됐다. 법원은 성년후견인 지정결정일로부터 임금채권의 권리행사 기간을 기산할 것과,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 위반에 해당한다는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 위반이나 권리남용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지적장애인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근로를 제공받고도 시효기간이 지나면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결과를 용인한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판결에 해당한다.
8.지적장애 1급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건
피고인은 지적장애 1급 장애인의 아버지로 자신이 사망했을 때 남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새벽에 잠들어 있던 피해자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쳐 살해했는데, 법원은 배심원들의 다수 의견인 징역 5년보다도 후퇴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장애인을 부담으로 여긴 나머지 장애인의 소중함, 생명의 가치를 망각한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목할 판결
1. 시외이동권소송 1심
법원은 교통사업자들로 하여금 휠체어 승강설비를 장착시키도록 해달라는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했지만, 교통행정기관들로 하여금 이동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하게 해달라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저상버스에 관해 원고들의 청구가 모두 기각됐고, 손해배상청구 역시 마찬가지로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본 판결로 인해 우리 사회 내 장애인의 이동과 생존 문제가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로 선정됐다.
2 염전 노예사건의 민사소송
이 판결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는데, 피해 장애인들과 유효한 근로계약이 체결됐다는 염주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염주들이 얻은 이득은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인정한 점, 염전운영기간 이외에도 다양한 노무를 제공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점, 의식주 제공에 관한 공제 주장을 배척한 점, 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에서 지금까지 인정된 금액보다 높은 액수의 위자료를 인정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부당이득의 기준이 농촌일용노임이 아니라 최저임금이라고 판단한 부분, 10년이 경과된 임금 부분은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인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현재 이 사건 역시 항소심이 진행 중인 바, 주목할 만한 판결로 선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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