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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박근혜의 죄와 인권활동가의 죄

인권이 던진 질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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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뒤죽박죽. 집에서건 사무실이건 정리를 해도 정리를 한 것 같지 않아 마음마저 복잡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잡고 집 안을 왈칵 뒤집어놓아야 한다. 버려야 할 것들과 남겨야 할 것들, 재배치해야 할 것들, 이렇게 분류를 하며 재구조를 하고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보이곤 한다. 내 삶의 문제들, 내 생활습관의 문제들까지 보인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런 게 아닐까. 연일 터져 나오는 박근혜 게이트 소식에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다 거리로 나섰다. 1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나이, 성별, 직업, 장애 유무를 막론하고 모이고 있다. 그 열기는 뜨겁고 따뜻했다. JTBC가 19일 광화문광장에서 모인 인파 속의 온도를 쟀더니, 행진 중인 공간에서 잰 온도가 그냥 거리의 온도보다 실제 6도나 높았다. 그 열기는 단지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는 것으로 멈출 것 같지 않다. 아니,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사람들은 최순실의 국정개입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겪어왔기에 거리로 나선 게 아닐까. 다만 아직 언어로 정리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버려야 할 것들,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들,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생각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권력을 남용해 사익을 추구한 죄

이러한 열기 탓에 시치미를 떼던 박근혜도 두 번의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며 엉터리 사과를 했고, 야3당도 박근혜 퇴진과 탄핵을 본격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니 검사들도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을 수사했고, 아주 엉터리로 조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을바람이 제법 차가워져 겨울을 예고하던 주말, 검찰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범죄 사실을 공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한 사실이 많이 확인된다고 했다. 헌법 제84조에 규정된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 때문에 기소할 수는 없지만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범죄 목록은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죄 등이다. 미르재단, 케이스포츠 설립・모금 관련 대통령이 10대 기업들을 단독면담까지 하며 합계 774억 원을 강제출연하도록 했으니, 강요죄나 3자 뇌물수수혐의도 가능하다. 그러나 2차 대국민담화에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던 대통령은 수사를 거부하겠다고 했다. 유영하 변호인은 검찰의 수사 내용은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며 수사 결과가 ‘불공정하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불소추 특권을 악용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중립적’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언제든지 말바꾸기가 가능하다. 불과 한 달 만에 대통령이 직분과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헌법과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 사실이 드러났다. 형법을 비롯한 실정법을 어겼는지 판단하는 것도 결국은 국가권력의 문제다. 그리고 그건 검찰과 법원의 판단으로 드러난다. 새누리당조차 흔들리니 권력의 시녀 역할을 자처하던 검찰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범죄를 범죄라 할 수 있도록 권력의 행보를 바꾸는 것은 힘의 문제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만든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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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대통령의 뻔뻔한 태도를 보고 있노라니, 10월28일 열렸던 장애인권활동가들의 재판이 떠올랐다.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약칭 전장연)의 이상용, 양유진 활동가에게 검찰은 양유진에게 징역 4년, 전장연 이상용 활동가에게는 징역 2년의 형을 구형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양유진 징역 3년(집행유예), 이상용은 징역 1년(집행유예)을 선고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노동절 집회, 근육장애인 고 오지석씨 추모집회, 프란치스코 교황 꽃동네 방문 반대 기자회견, 국민총파업 집회, 장애등급심사센터 항의방문 등의 참여로, 죄라 칭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헌법에 집회시위의 권리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그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걸 명백히 보여준다. 특히 집회시위의 권리는 권력이 없는 민중들이 사용하는 빼앗긴 인권에 대해 호소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에, 이것을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의대상이 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빼앗긴 권리를 호소할 수단마저 차단하는 일로 가만히 있으라는, 권력의 질서에 복종하라는 뜻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억~’하고 소리라도 지르는 게 집회다.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있는지,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 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와서 실천하지 않으면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걸 또 처벌한다. 어쩌면 그들의 죄는 차별의 질서를 드러낸 죄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인권활동가들이 저지른 죄는 범죄가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권력에 저항했기에 단죄된 정치적 죄는 아닐까. 실존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시민의 정치적 책임, 죄의 문제>라는 책에서 ‘범죄(형사범죄), 정치적 죄(정치인의 행위와 국민의 지위로 인해 발생. 승리자의 권력과 의지에 달림), 도덕적 죄(양심과 동료 인간과의 소통에 달림), 형이상학적 죄(범죄에 대한 공동책임)’로 네 가지로 죄를 개념화해 분류하고 그 의미를 다뤘다. 야스퍼스는 정치적인 이라는 개념으로 독일 나치정권을 탄생시킨 독일 국민들의 책임을 성찰하고자 했다. 정치적 죄는 도덕적 죄나 형이상학적 죄와 달리 각각 독일제국의 국가범죄에 동참한 정도만큼 그 죄의 대가를 받는다.

야스퍼스의 개념을 빌려와 생각해 보니,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그 권력에 저항했지만 여전히 그 권력은 공고하기에 저항한 장애인권활동가들을 심판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지금 장애인권활동가들이 형사범죄로 단죄당한 것은 정치적인 상황-비장애인 중심의 권력구조이기에 가능하다. 독일 국민들이 제국주의 전쟁에서 패하고 전쟁 과정에서 나치정권을 탄생시키고 그들의 정치를 방치하거나 공모한 국민들의 지위와 행위에 따른 정치적 죄라 본 것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만약 장애인 중심의 사회였다면 인권활동가들이 아니라 장애인의 차별과 착취를 방조한 사람들이 정치적 죄를 단죄받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나는(또는 우린)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되는 현실에 무엇을 했는지 묻는 일이 될 것이다.

이렇듯 범죄와 정치적인 죄는 사실관계만이 아니라 힘의 관계에서 결정되곤 한다. 국민들의 분노하는 힘과 실천이 없었다면, 예전처럼 검찰은 입증할 증거를 못 찾았다며 뭉갰으리라.

 

다른 사회를 꿈꾸다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 격변기에 사람들은 기존 질서를 성찰하고, 바꿔야 할 것들을 돌아보고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방향에 대해 서로 주고받는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도 여전히 비장애인, 남성, 이성애자 중심의 주류질서가 유지되고, 돈만을 탐하는 자본 중심의 사회가 공고하다는 걸 목도한다면 매우 허무할 것 같다. 왜냐면 우리는 여전히 고통 받고 있을 테니까. 물론 박근혜 퇴진은 중요하다.

퇴진이라는 결과물을 낼 때 민중의 힘을 눈으로 몸으로 경험하며 자신감을 얻을 테니까. 민주주의란 정치적 권리를 절차적으로 확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의 주체인 민(民)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사회, 평등한 민의 세상을 향한 실천이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지금 박근혜와 최순실이 어지럽힌 민주주의의 왜곡은 이전에 없었다기보다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고통의 원인, 신음의 원인인 불평등한 국가의운영을 직시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다. 우리 사회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막았던 것이 무엇인지 깊게 성찰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이 중요하다. “감정은 우리가 사유하는 만큼 심화된다”면, 민주주의는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는 만큼 확대되는 게 아닐까.

얼마 전 광화문 광장에 차려진 박근혜 퇴진 캠핑촌에 ‘박근혜 퇴진 이후 우리가 바라는 사회’에 대한 사람들이 적은 포스트잇을 봤다. 거기에는 ‘억울한 죽음이 없는 사회’, ‘여성- 장애인-성소수자도 존중받는 사회’, ‘노력한 만큼 존중받는 사회’,‘ 차별이 없는 사회’ 등등이 적혀 있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가난한 내 부모를 탓하지 않는 세상’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SNS에 남겼다는 ‘돈 많은 부모를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구절 때문이리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를 가진 자들 중심으로 편재되고 운영되는 초계급 신분사회인지를 모두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소망을 ‘장애인 부모를 탓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또는 장애인 자녀를 뒀다고 탓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바꿔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쉽게 가난을 얻으니까. 장애인은 거기에 차별과 낙인이라는 것을 더 얻을 뿐……. 물론 신분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낙인이기도 하니 어쩌면 동의어처럼 보인다.

이런 세상에서 장애인권활동가들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지, 얼마 전 광장신문에 실린 “당신처럼 사회를 질주하고 싶다”는, 그래서 혁명이 필요하다는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의 꿈으로부터 다른 세상을 엿본다. 그는 말한다. 장애인 시설이 사라지고 영어를 배우듯 수화를 배우고, 도로나 대중교통을 휠체어 타고 다니는 게 불편하지 않고, 24시간 활동보조인이 있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폐지되고 … 장애로 불편할 순 있으나 그게 삶과 자유와 불안의 크기를 제약하진 않는 사회… 그런 사회를 우리 모두 꿈꾸자

 

작성자글.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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