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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장애인과 자발적 장애인

장애인 ABC - 시작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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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의 시각장애를 바라보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표출한다. 연민과 동정을 담아 천 원짜리 몇 장을 건네기도 하고 몇 배의 노력과 극복 따위를 떠올리면서 경탄을 표하기도 한다.

각자의 시선과 판단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공통점은 모두 내 신체적 결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들은 헛다리 짚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엊그제 시각장애인이 된 것이 아니다. 이 상태로 20년이 넘게 살고 있다. 그 동안 읽고 쓰기도 배웠고 서툴렀던 보행실력도 급하면 뛰어다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흐릿해져버린 눈을 누군가 지적해 주지 않으면 잊고 살 정도로 내 삶은 지금의 상황에 너무도 훌륭하게 적응돼 있다.

다만 장애라는 이름이 아직 내게 딱지처럼 붙여져 있다는 건 이따금 느껴지는 불편함마저 깨끗이 없어지지는 않았다는 반증인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환경적 장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질서하게 내어놓은 상점의 물건들이나 규칙도 없이 박혀 있는 볼라드가 앞길을 막아서는 것도, 골목에서도 쌩쌩 달리는 차가 위험한 것도, 결코 내 시력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웹 접근성 문제도, 의약품들에 점자표기가 안 돼 있는 것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회의 문제이지 내 시력을 원망할 일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싸구려 동정들이나 기분 나쁜 무시나 조롱들은 더더욱 내가 상처받을 부분이 아닌 것을 안 지 오래다.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할 때마저도 낯선 사람들의 편견은 어김없이 내게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원인이 내 약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느리지만 바뀌고 있다는 것도 여러 번 경험했으므로 불편하긴 해도 상처받지는 않는다. 마치 뜨거운 열탕에 한참 동안이나 있었던 것처럼, 나의 지금은 내가 있는 곳의 온도를 느끼지도 못할 만큼 편안해져 있다.

그런데 장애가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불편함이라면 생각해봐야 하는 새로운 문제가 있다. 나를 향한 삐뚤어진 시선들과 왜곡된 편견들을 오롯이 함께 받아내야 하는 ‘가족’이다.

장애를 가진 오빠가 있다는 건 내 동생의 친구들에게도 좋은 먹잇감이었던 듯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받아내고 참아내고 견뎌야 했던 시간들은 동생에게도 내 눈꺼풀의 무게만큼이나 큰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던져졌던 동정과 원망의 시선들은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겹쳐져, 내가 느낀 서러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멍으로 남아 있을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이들을 간접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의 감정을 함께 느껴야 하는 가족들의 상처는 당사자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것이다. 당사자는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가족들에겐 시간이 흘러도 적응하기가 힘들다. 마치 열탕에 오랫동안 있던 나를 느끼러 다가올 때마다 뜨거움을 느껴야 하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함께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누구는 당사자라는 이름 때문에 도움도 받고 위로도 받는 동안, 간접장애인들은 치유는커녕 뭔지 모를 의무감으로 양보와 희생을 강요받으면서 살아간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도, 먼 곳에 요양을 떠났을 때도 어머니는 늘 내 곁에 계셨다. 특수학교에 입학하고 점자책을 구하러 다닐 때도, 멀리 운전을 해야 할 때도 부모님은 늘 내 곁에 계셨다. 부모가 있으면서도 고아처럼 지내며, 상황을 불평하는 건 철없는 아이라고 꾸중 들으면서 살아야 했던 것이 간접장애를 가진 내 동생의 몫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스스로의 인생에 투자를 하는 것은 눈 안 보이는 자식을 둔 처지로서는 사치이고 죄악이라고까지 느끼시면서 사셨던 것 같다. 분명히 장애는 나를 찾아왔는데 진정 누가 힘들었는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님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의 어머니가 떠오를 때가 많다.

죄인이라도 된 듯 읍소하며 상담을 구해오는 어머니들을 보면 울컥할 때가 많다. 세 살이 겨우 넘은 꼬마 녀석을 데리고 와서 대학입학부터 노후준비까지 물어보시는 어머니도 계시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상식 밖의 이기적인 요구를 하는 분들도 계신다. 웃음도 나오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우리 어머니도 그랬을 거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저려올 때가 많다.

학교 행사 때 봉사활동으로 찾아오는 형제 녀석들의 몸놀림과 마음가짐이 장애를 가진 형제들에게 모두 맞춰져 있는 걸 보면서 동생 생각이 나기도 한다. 나는 장애는 별것 아닌 다름이라고 말하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오래 전의 나를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이도 아프고 슬프고 서러웠던 것 같다.

모두 나를 보는 것만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살아야 할 존재의 의미조차도 잃어버렸었다. 그런 내가 지금에 올 수 있었던 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희생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치료도 받고 위로도 받고 용기 낼 수 있는 힘도 얻었다. 이젠 살만해진 내가 받았던 그것들을 돌려줄 시간이 됐다. 진작 알았어야 했겠지만 이제라도 간접장애인들을

위한 재활 프로젝트를 발동해야겠다. 앞으로 하늘이 돕는다면 나도 짝을 만나고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그 사람 또한 나와 함께 아직 존재하는 사회적 장애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를 자발적 장애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특수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복지사 분들도 이런저런 모양으로 장애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그런 의미에서 모두 자발적장애인이다. 내가 가정을 이룬다면 또 다른 간접장애인을 낳기도 하고, 이런 저런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자발적 장애인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신체적 장애인 외에도 수많은 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아픔은 함께 느끼면서 치유는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시선을 줘야 할 때이며, 나의가족들에게나 나의 친구들, 내 곁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제 내가 손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힘들다면 힘든 만큼 함께 가는 주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만하다면 살만해지는 동안 누가 내 곁에 있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작성자글. 안승준 /한빛맹학교 교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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