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프랑스의 성년후견제를 들여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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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정신질환 또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따른 행위가 침해되지 않고 어떻게 장애인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을까’, ‘착취와 다른 사람에 의해 자기결정권이 훼손되는 문제에 대해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한 안전조치는 무엇일까’와 같은 여러 가지 주제로 독일 베를린에서 제4회 세계성년후견학회가 열렸다. 이에 참석하기 위해 필자를 포함한 연수단은 한국에서 독일로 향했다.
공동지원의사결정을 통한 당사자 의사 존중
이번 세계성년후견학회에서는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의 법적능력을 보호하기 위한 후견제도가 장애인의 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어, 가족이나 타인 등으로부터 부당하게 권리가 침해되거나 그 권한이 악용되는 위험을 어떻게 예방하고 보장할 수 있는가가 쟁점 논의사안이었다.
캐나다 발표자인 조앤 테일러(Joanne Taylor)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2조는 누구든지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부분적으로 정신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의사결정지원을 받아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대리인이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일상의 삶은 변호사나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독립적으로 결정하며 살아가기에 전문가의 영역은 극히 일부이다. 또한 많은 일상의 일들은 이웃이나 동료들과 상의해 처리할 수 있으며, 간혹 잘못된 부분은 본인이 책임지면 된다.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법률가나 가족 또는 제3자가 개인의 결정에 개입하는 방식보다는, 지역사회의 지원네트워크를 통한 공동의사결정지원방식으로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결정을 지원하고 법률적인 대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한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문현답’, 성년후견법원 판사와의 미팅
독일 성년후견법원의 판사와의 미팅은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기능적이며 형식적인 틀에 갇혀 있는지 깨닫게 했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의 존중과 의사결정지원에 대한 내용이 독일 성년후견법원에서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발달장애인의 후견신청을 받으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며 관련 매뉴얼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우리의 질문에 독일의 판사는 우리에게 왜 의사소통을 위한 매뉴얼이 필요한지 되묻는 표정으로, 아무런 매뉴얼도 없으며 발달장애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답했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과의 미팅 자리에서 당사자의 가족이나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 판사와의 미팅은 우리가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을 사람을 이해하기보다는 기능적으로 측정하고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세계성년후견대회의 여러 논의사항을 들으면서 생각했던 지점은 어떠한 정책이나 제도도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들을 하면서 이웃들이 협력하는 지역사회중심 공동의사결정지원방식이 정립됐으면 한다. 이를 위해 사람 중심의 기능이 정립돼야 하며 이웃들과의 관계회복, 연대의 정신이 실현되는 네트워크로 사회적 약자가 우리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축소되고 있는 베를린 지역성년후견청
베를린의 12개구의 지역성년후견청 (마르첸헬러스)에는 인구 24만 명 중 후견제도를 이용하는 약 5,000명의 구민을 담당하는 공무원 7명이 상근하고 있다. 후견청의 주요업무는 후견법원의 요청에 의한 업무를 수행하며, 지역에서 후견이 신청된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원조사와 후견인을 연계하거나 또는 후견인의 업무 수행 등이다.
우리에게 기관의 업무를 소개한 담당자는 지난해에 피후견인 70명까지 후견업무를 수행했는데, 독일정부에서는 후견청의 역할을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어 후임자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후견청이나 전문가 후견에 대한 비중을 지난 5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것은 전문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후견할 때는 기능적이고 업무중심적일 수밖에 없기에, 지속적으로 일대일 후견을 원칙으로 하는 시민후견인을 확대해 사람 중심의 후견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의도라는 설명이었다.
독일의 전문후견인과 시민후견인
독일에서 직업적인 전문후견인은 사회복지, 의료, 법률, 행정학 등 다양한 영역의 경험자들로 이뤄져 있으며, 법원의 지정에 의해 전문후견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시민후견인은 별도의 양성과정은 없지만, 관련 분야의 종사자 또는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모집을 한 후 직무 관련한 자율적인 연수 등을 거쳐 시민후견인으로 활동한다.
1년에 400유로를 지원 받으며, 1년에 1회씩 후견업무와 피후견인의 재정적인 사항에 대한 보고를 법원에 제출한다. 피후견인이 발달장애 또는 정신질환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울 경우에는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소통하고, 피후견인이 의사소통 원활 상태였을 때의 의사 등을 존중해 피후견인 중심의 의사결정이 되도록 한다. 후견청과 민간단체인 후견사단은 1년에 10회씩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서로의 업무와 정보를 교환하고 상호 협력해 업무를 수행한다.
성년후견제도는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프랑스의 UNAF(가족협회)는 1985년에 설립돼 전국적으로 130개의 조직이 있으며, 가족관련 정책 및 지원 그리고 성년후견 업무 등을 하고 있다. 발달장애와 정신적 손상 등에 의한 장애로 후견이 신청될 경우 45~55%는 가족이 후견을 한다. UNAF는 가족이 후견인으로 지정될 때, 피후견인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하며 후견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을 한다.
프랑스의 후견제도는 본인의 의사능력이 있으면 법원이 후견을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 현재 후견제도를 이용하는 80만 명의 피후견인이 있지만, 다수는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이용하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당사자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므로, 발달장애인은 우선적으로 관련 협회 및 사회적 자원을 이용하면서 의사결정 지원을 받도록 한다.
피후견인 권리 보장하는 개선이 필요
우리나라에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된 지 3년이 지났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피후견인의 행위능력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 특정후견제도를 도입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번 세계성년후견학회와 독일과 프랑스의 관련 기관을 둘러보면서,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개정민법상 성년후견은 과도하게 자기결정권을 박탈하고 기간의 제한이 없으며, 과거의 금치산・한정치산제도가 성년후견, 한정후견으로 둔갑해 피후견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기에 시급히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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