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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피해 장애인을 위한 집,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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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쉼터’ 입소, 바늘구멍

오래도록 학대를 경험한 사람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신체증상 외에도 분노와 우울, 공포, 낮은 자존감과 무기력 등 다양한 심리적 증상이 뒤따른다. 학대가 일어나는 장소에서, 학대의 가해자 혹은 동조자와 계속 함께 있는 것은 피해자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때문에 피해자에겐 학대와 관련된 모든 것들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충분한 치유를 받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기능을 하는 공간이 바로 피해자보호시설, 쉼터이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인권침해 등의 폭력에 노출됐을 때 피해자는 쉼터에서 심리치료, 의료서비스를 받거나, 법률지원, 자립훈련 등의 복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쉼터의 주소지나 연락처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입소하려면 피해자가 겪은 학대 유형에 따라 1366, 성·가정폭력 전문 상담소, 지역 경찰을 통해야 한다. 학대 피해자 지원 체계에 대한 대다수의 자료에서는 [피해자가 쉼터를 필요로 할 때, OO기관을 통해서 입소할 수 있고, 입소 후 △△,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라는 정도의 설명이 돼 있다. 문제는, 이런 ‘정석적인’ 경로를 거친 피해자가 다 쉼터에 입소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장애인인권센터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학대 피해자를 만났고, 신변보호가 시급한 분들도 많았다. 그런데 장애인 피해자가 갈 수 있는 곳은 너무 적었다. 이는 쉼터의 대부분이 ‘비장애인’+‘여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기준에서 벗어나는 피해자의 유형, 가령 남성이거나, 중증의 정신적·신체적 장애인이거나, 자녀를 동반한 경우엔 받아주는 쉼터가 없는 상황에 처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장애인 피해자를 위한 쉼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6.1 여성가족부 통계 기준으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전국에 70개소,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30개소가 있다. 이 중 장애인 시설로 운영되는 곳은 가정폭력 부문이 3개소, 성폭력 부문은 8개소이다. 그 외, 보건복지부에서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로 운영하는 시설이 4개소 생겼다. 그런데 장애인 피해자 전용 쉼터라고 해도 입소하기까지 난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행의 ‘공적인’ 학대 피해자 지원 체계 상, 쉼터 입소가 가능한 자는 ‘스스로 신변처리가 가능하고’ ‘타해 우려가 없는’ ‘성인’ ‘여성’인 ‘지적장애인 내지 경증의 신체장애인’이다

긴급 분리한 학대 피해자의 쉼터 입소를 위해서, 여성가족부를 위시해 경찰, 지자체, 지역 1366(여성긴급상담전화), 장애인 성·가정폭력상담소, 개별적으로 알아낸 전국 장애인 쉼터, 단기보호시설까지 많은 기관에 접촉해봤다. 결론만 말하자면 성별·장애 정도 등을 다 고려해봤을 때 쉼터 입소 대상이 되는 ‘장애인 피해자’의 요건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까다로웠다. 요건에 부합하는 피해자여도, 전국적으로 장애인 쉼터 수 자체가 부족하고, 입소기간이 통상 6개월, 2년 단위이다 보니, 정원이 이미 다 찼거나 종사자 인력 문제로 입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집’을 떠나야만 하는 피해자들

단기보호시설에 ‘긴급 돌봄’으로라도 입소할 수 있으면, 적어도 가해자로부터 떨어져 지낼 수는 있다. 그러나 피해자 중에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결국 학대의 장소로 되돌아가거나, 애초에 탈출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깝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학대를 당한 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을지 헤아릴 길이 없다. 학대 피해자는 사건 초기 단계에 특히나 안전한 장소에서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한다. 잃어버린 권리의 구제를 위해 가해자와 법적으로 싸워야 하고, 학대 상황 탈피 이후의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폭력에 짓눌려 무기력해진 자신을 추스르고, 살아나갈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많은 장애인 피해자들은, 장애 때문에 갈 곳이 없다. 폭력의 현장이었던 곳에서, 가해자와 계속 함께 있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집은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아늑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집이 ‘집’으로써 기능하지는 않는다. 폭력이 있는 가정과 시설을 ‘집’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학대로 인해 집을 잃은 이들을 위해서는 그런 집 이상의 진짜 ‘집’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에서 최근 지역사회 장애인 인권보호 대책으로,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를 기존 4개소에서 8개소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도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를 시범운영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부디 새로 만들어질 장애인 쉼터들은 당사자들의 유형, 장애 정도, 욕구 등을 세심하게 고려해서, 집을 잃은 이들에게 포근한 새 집이 돼주길 바라본다.

 

사진출처=플리커

 

작성자박혜진/서울특별시 장애인인권센터 주임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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