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차별과 싸우는 유용한 무기가 될까?
장애인권리보장법?
본문
지난 6월 30일 김예지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이하 선택의정서) 비준촉구결의안’이 재적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선택의정서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협약)의 부속서이며, 우리나라는 협약에는 가입했지만 선택의정서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2014년 선택의정서의 비준을 촉구하는 유엔의 권고에 “국내구제절차로도 미흡하다고 판단된다면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협약에는 가입했지만 선택의정서는 가입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선택의정서는 무슨 효력이 있을까? 물론 최근 장애인단체들의 노력으로 선택의정서의 의미나 필요성이 자주 언급되기는 하였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선택의정서에 가입해야 하는 이유 중에서 개인이 유엔에 직접 진정을 넣을 수 있다는 이유가 가장 많이 제시된다. 담벼락 같은 정부와 변화 없는 사회에 아무리 외쳐 보았자 요지부동 응답이 없는 상황에서 국제기구인 유엔에 직접 개인이 진정을 넣을 수 있다니 매력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선택의정서의 조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선택의정서의 효력 : 개인이 유엔에 직접 통보¹⁾(진정)를
알려진 바와 같이 선택의정서의 핵심은 일명 ‘개인통보제도’이다. 선택의정서는 당사국(정부)이 협약을 위반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 혹은 이들의 대리인으로부터 통보를 접수하고 검토할 수 있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의 권한을 승인한다 (제1조).
2. 통보를 심리하지 않는 경우
그러나 위원회는 모든 경우에 통보를 심리하는 것은 아니다(제2조). 익명 통보나 권리남용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협약 조항과 충돌하는 경우(나), 동일한 문제가 위원회에 의하여 심리된 바 있거나(다), 국내적 구제가 완료되지 않은 경우. 다만 국내 구제가 불합리하게 지연되거나 구제받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경우는 심리할 수 있다(라). 통보가 근거 없음이 명백하거나 충분히 구체화 되지 못한 경우(마), 통보의 대상이 되는 사실이 선택의 정서가 발효되기 이전에 발생한 경우. 그러나 그 사실이 발효일 이후에도 계속되는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바). 한마디로 통보가 익명이거나 근거 없거나,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거나 협약 이전에 발생했던 일인 경우에는 개인통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국내구제 절차를 모두 밟아야 하니,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법원의 재판 등을 모두 거친 뒤에야 개인통보가 가능한 것이다.
3. 통보 접수 이후의 절차
그렇다면 통보가 접수된 뒤에는 어떻게 진행될까? 위원회는 통보의 내용에 따라 비공개 회의를 개최하여 심리를 하며, 심리 결과 제안이나 권고사항이 있는 경우 당사국과 청원인에게 전달한다(제5조). 위원회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도 협약 위반의 희생자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경우에 임시조치를 취하라는 요청을 당사국에 긴급 고려사항으로 전달할 수 있다(제4조).
4. 통보에 따른 조사권
위원회는 상당히 효과적인 조사권을 가지고 있는데, 당사국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중대하거나 조직적으로 침해했다는 정보를 위원회가 접수하는 경우에 위원회는 당사국에 대하여 정보를 조사하는데 협조할 것과 이를 위하여 해당 정보에 대한 견해를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그리고 위원회는 1명 또는 그 이상의 위원을 지명하여 당사국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여 보고하도록 할 수 있으며, 조사는 당사국에 대한 방문을 포함할 수 있다.
5. 조사결과에 따른 조치
조사결과를 심리한 후, 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논평 및 권고사항과 함께 당사국에게 전달한다. 당사국은 이를 전달받은 후 6개월 이내에 이에 대한 자국의 견해를 위원회로 제출한다. 그리고 위원회는 조사결과 수행된 모든 조치를 정부보고서에 포함시키도록 요청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조사결과, 논평 및 권고사항을 전달받은 후 6개월이 지난 후에 동 조사에 대응하여 취해진 조치를 위원회에 통지하도록 당사국에 요청할 수 있다(제7조).
한계
위와 같이 개인통보제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개인이 직접 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수 있고, 진정에 따라 유엔의 조사관이 직접 파견 나오는 형태의 조사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알려진 대로 매력적인 효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한계도 보인다. 익명이나 권리남용, 부적절한 통보가 기각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국내 구제절차를 모두 거쳐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개인통보제도를 개인이 민원 처리 절차처럼 이용할 수는 없다는 점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차별행위를 당한 경우에 인권위 진정, 경찰 고소, 1심부터 3심까지 법원의 재판 등 모든 국내 절차를 거쳐야 하니 몇 년이 걸릴 지 모르는 길고 긴 싸움의 끝에서나 유엔에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것이다.
개인통보의 높아 보이는 장벽도 쉽사리 개인통보를 활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 지점이다. 국내에서도 개인이 구제절차를 거치기가 어려워 소송 등도 활발히 제기되지 않고 있는데, 언어의 장벽과 여러 절차들 역시 개인이든 장애인단체든 쉽사리 개인통보에 접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선택의정서에 우리나라는 이미 1990년에 가입했고, 실제로 개인통보제도의 활용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장애인 인권에 관한 사항들도 이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개인통보제도를 통해 유엔에 진정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활용된 예는 없다.
또 조사권이 있다고는 하지만 강제조사권은 될 수 없으니 당사국의 협조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고, 조사 이후에도 논평이나 권고를 내릴 수 있을 뿐 어떤 법적인 효력이 있는 조치를 내릴 수는 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선택의정서를 비준한다 해서 그 자체로 국내 장애인인권에 급진전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인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택의정서의 비준은 장애인의 인권에도 큰 의미가 있다. 가장 먼저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얻어낸 또 하나의 승리의 경험은 장애계에 큰 활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이 직접 민원 창구처럼 활용할 수는 없지만, 풀리지 않는 강제입원 등 정신장애인 인권문제, 탈시설 문제, 염전노예사건 등 국내 구제절차로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래서 국가 정책이나 체계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 유엔에서 견해를 표명해 준다면 충분한 투쟁의 근거와 정부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개인의 권리를 구제한다는 측면보다(실효성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국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패러다임을 전환 시킬 수 있다는 점이 선택의정서의 더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택의정서를 우리의 무기로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선택의정서를 무기로 삼기 위한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선택의정서뿐 아니라 협약의 정신과 내용에 대한 이해와 내면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 인권 현안에 대하여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문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우리 스스로가 그림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선택의정서가 있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슈 제기와 진정, 진정에 이은 권고 도출, 권고에 따른 국내 정책의 변화까지 장애인의 힘으로 장애인 스스로가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있는 제도도 활용하지 못한다면, 혹은 또 누군가에게 의존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진정서 접수 절차를 정부기관에 해당하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필자는 국내에서 풀리지 않고 있는 장애인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내구제절차를 거쳐 유엔에 직접 진정을 제기하는 활동을 장애계 연대체 내지는 장애계단체가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장애인권현안을 파악하여 중요한 이슈를 선정하고, 사례를 수집하고,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제반 활동들을 알려내고 또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여 사회변화를 이끄는 일을 협약에 집중하여 활동하고 있는 연대체나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장애계가 함께 이루어 간다면, 선택의정서는 분명히 장애인 인권을 위한 중요하고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원문은 communication으로 법제처는 ‘통보’라고 번역했지만, ‘진정’이 더 자연스러운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작성자김강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 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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