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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기후위기는 장애인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나

기후위기와 장애인

본문

 
지구를 덮친 공포, 기후위기
UN 산하 재난위험경감사무국이 발표한 2020년 세계 재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지구촌에 발생한 자연재해는 총 7,348건으로 123만 명의 사상자와 40억 명의 피해, 3,400여조 원의 재산피해를 발생시켰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 곳곳에서는 홍수와 폭염,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서울 면적의 3배를 잿더미로 만든 대형 산불이 발생하여 폭염으로 인해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진화가 되었다. 이제 미국에서 산불은 연례행사가 되었으며, 서부에서만 해마다 최소 70여 곳에서 산불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이 50년만의 기록적인 폭설과 눈보라에 뒤덮히는 동안 중국은 100m 높이의 모래폭풍에 휩싸였다. 콜롬비아가 극심한 가뭄을 겪을 동안 서유럽에서는 1천 년만의 대홍수를 겪으며 갑자기 불어난 홍수로 인해 상당수의 가옥이 침수되었고, 실종된 사람만 1천 3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최근의 기후변화는 더 빈번하고 극심하게 그리고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기후변화가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해가 거듭될수록 자연의 한계치를 넘어 인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기후위기’라고 부른다. 그동안 인간의 활동이 직·간접적인 영향이 되어 자연의 기후에 대해 최소 수십 년 이상의 새로운 기후 패턴을 만들어냈던 것을 ‘기후변화’라고 했다면, ‘기후위기’는 인류가 체감할 수 있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뜻한다.
 
말 그대로 기후가 ‘변화’하는 수준을 넘어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급변점에 도달할 ‘위기’의 순간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인류는 기후위기 속에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기후변화라고 하면 녹고 있는 빙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의 모습이나 가뭄으로 인해 갈라진 경작지 등의 자연 이미지를 떠올렸다.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사회· 경제적 활동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피해를 받게 된 동식물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멸종위기에 직면한 동물이나 갈비뼈가 앙상해진 북극곰을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고 화석연료 에너지 사용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자고 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호소는 사람들의 행동까지 바꾸어 놓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지금은 그 누구도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현재의 자연재해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또한, 현재의 기후위기는 우리가 생활하는 물리적 환경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까지도 위협한다. 기후변화가 더 이상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가 된 것이다. 매년 경신되는 폭염과 한파로 인해 출퇴근 길은 더 힘들어졌고, 야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여름 모두가 경험했던 50일이 넘는 기록적인 장마로 인해 농부는 한 해 농사를 망쳤고, 일부 도심이 물에 잠기면서 침수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저 멀리 북극이나 강 건너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 속 모습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재난,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하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이 가해자, 인간의 사회·경제적 활동으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게 된 동식물과 같은 자연환경이 피해자가 된다. 여기서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진짜 가해자와 또 다른 피해자가 존재한다. 세계 경제 시장을 주도하는 선진국과 글로벌 제조기업이 기후위기의 주범이고, 개발로 인한 혜택은 누려보지도 못한 채 의무만 떠안게 된 개발도상국과 주거취약계층이 피해자가 된다.
또한, 기후위기는 가해자에겐 득이 되고 피해자에겐 독이 되는 재난이다. 기후위기의 주된 원인 제공자인 선진국과 여러 기업들은 기후위기를 이용해 또 다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반면, 그렇지 않은 쪽은 기후위기를 막지 못하면 직업을 잃고, 집을 잃고, 삶을 잃게 된다. 해수면이 상승할 때, 부유한 나라가 새로운 에너지 개발 사업을 확장하고 주요 기반 시설을 재정비하는 동안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실향민으로서의 삶을 준비해야 했던 것처럼. 그리고 국토를 잃은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또 어디인가를 생각해 봤을 때 기후위기는 참 잔인한 재난이다.
 
이러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찌 보면, 원인을 제공하는 쪽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에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주도로 195개 회원국이 2016년에 비준한 파리기후변화협정에 탈퇴를 선언했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이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축시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이 미국에게 가장 부당한 조건이며, 미국 근로자들이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고, 임금이 삭감되며, 산업생산의 감소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미국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는 것이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연간 68억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파리기후변화협정으로부터 미국이 탈퇴하면서, 미국의 경제에는 큰 타격이 없었으나 온실가스 감축과 같은 국제 문제 해결에 큰 차질이 생겼다. 고어 전 부통령은 ‘무모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동’이라면서 기후변화를 적절한 시기에 대처할 수 있는 인류의 역량을 저해하는 행위라 비판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살인을 방조하는 것과 같다. 법적 용어에는 ‘미필적 고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어떤 행위로 인해 그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를 하는 심리를 말한다. 그동안 각 정부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의 삶까지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몇십년 전부터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논리 내지는 당장의 편의에 따라 자연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잘못된 것을 알고도 애써 모른 척해왔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속 장애인의 모습은 어떨까?
평온한 삶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영향은 장애인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재난 상황은 장애인같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힘들다. 기후위기는 빈곤과 차별에 더 강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환경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그에 비해 정부는 기후위기로부터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가?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재난 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일단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피해 정도가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실제로 2018년 보험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화재 사고 발생 시 장애인 사망자의 비율은 57.4%로 전체 비장애인 사망자의 비율인 12.1%보다 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 상황에 대한 장애인의 인지, 판단, 대처가 비장애인에 비해 취약함에도, 각종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매뉴얼 대부분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지상파 방송 3사의 재난 뉴스 속보 어디에도 수어통역, 화면 해설을 제공하는 곳이 없었다. 재난이 발생한 그 사실조차도 장애인은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제 막 보건복지부, 한국장애인개발원,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등 여러 부처 및 정부기관에서 장애 유형을 고려한 재난 대응 매뉴얼이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개발되고 있으며, 장애당사자보다는 주변 조력자의 행동 지침에 대해 더 많은 비중을 싣고 있다. 만약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장애인 주변에 조력자가 없다면? 있어도 그 사람이 휠체어를 들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면?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을 위한 안전대책은 없다. 이러한 재난 대응의 구멍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 이상 장애인의 생존에 대한 모든 것을 그저 운에만 맡기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에 대한 교육과 홍보도 미흡하다. 재난 안전 교육 및 훈련은 대부분 장애인시설을 중심으로 일회성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난이 과연 시설 내에서만 일어나는가? 장기적인 교육을 필요로 하는 다른 유형의 재가 장애인의 경우에는 어떻게 재난 교육을 받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이것이 실제 재난 상황에 대한 실효가 있는 대응인가? 이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이러한 측면에 대한 대비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속에 장애인을 그냥 방치해 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꼭 재난이 아니더라도 기후위기는 장애인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각 국가는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자동차와 같은 무공해 교통수단이다. 전기자동차는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환경 분야에서 각광을 받은 사업이다. 또한, 유럽연합(EU)에서 2035년을 기점으로 휘발유와 디젤 자동차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는 탄소배출 감축 방안을 발표함으로써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서도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분야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대부분의 전기자동차 충전소가 장애인 이용자의 접근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설치되고 있다. 충전기의 위치가 너무 높거나 주차 장소가 협소해 휠체어 장애인 운전자들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하거나 아예 접근도 할 수 없을 정도다. 환경부의 ‘전기자동차 충전인프라 설치·운영 지침’에는 주차면적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한국전력공사에는 ‘교통약자배려형 충전소’에 대한 설치 및 규격 지침이 있으나 실제로 설치가 많이 되고 있지는 않다.
카페에서는 플라스틱 빨대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실시한 플라스틱 빨대 줄이기 운동이 성과를 본 것이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을 것 같은 이러한 환경 운동도 일부 장애인에게는 불편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에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무엇인가가 특정 대상에게는 반드시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장애로 인해 커피를 들 힘조차 없는 장애인에게 빨대는 손의 연장선이다. 금속 빨대의 경우 너무 무겁고 열전도율이 높아 화상의 위험이 있고, 자연분해나 종이 빨대의 경우 뜨거운 음료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신체적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빨대를 따로 챙겨 다니라고 하는 것도 무리한 요구이다. 비장애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장애인에게는 도전이고 어려움이라는 인식이 환경 운동에는 빠져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함께걸음> 후속 취재에서는 국가가 내놓은 기후위기 재난 대응 전략 속 장애인은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다뤄보고자 한다. 또한, 정책의 수혜자이자 결정권자로서 장애인이 역할 되어질 수 있도록 장애인의 권리, 생각과 관점이 반영된 기후위기 대응 정책 방안을 함께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장애인권적 차원에서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바라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후위기 대응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애인에게 ‘재난 약자’, ‘재난 취약계층’과 같은 또 다른 꼬리표가 덧붙여지지 않도록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동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예기치 않은 문제들을 굳이 직면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기후위기와 장애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작성자이은지 기자  lonely_lo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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