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발달장애인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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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교육 현장 |
“발달장애인을 만나보기 전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긴장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난 6월 20일과 21일 이룸센터 지하 이룸홀에서 열렸던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교육’에 참여한 경찰관이 했던 말입니다.
2015년 11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되면서, 각급 경찰서마다 발달장애인 전담 사법경찰관이 지정됐고, 법률에 따라 전담 경찰관들은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의사소통 방법 및 발달장애인 보호를 위한 수사방법 등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지난 2015년 12월, 경찰교육원에서 전국의 전담 경찰관 500명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데 이어, 이번 6월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전국의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80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에 대한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고, 이는 발달장애인의 인권문제와도 직결돼 있습니다. 만일 발달장애인이 경찰수사를 받는 경우에 담당 수사관이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하고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게 됩니다. 장애유형에 적합한 수사의 필요성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7년 있었던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입니다. 당시 경기도 수원시에서 신원미상의 15살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경찰은 수원역 대합실에서 지내던 20대 노숙인 2명을 체포했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던 이들에게 적합한 방식의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고, 수사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자백을 해 버린 이들에게는 각각 징역 5년과 벌금형이 선고 됐습니다. 5년의 복역을 마치고 나서야 재심이 이뤄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감안해 심리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는데, 결국 재심 결과 무죄가 선고돼 이들은 억울한 처벌을 받았던 것임이 인정됐습니다.
이런 경우 뿐 아니라 장애인이 학대 등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된 경우에도 전담 경찰관의 필요성은 매우 큽니다. 지난 2014년 ‘염전노예’사건을 비롯해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노동력 착취 사건, 시설 내 학대 사건 등 심각한 장애인 학대가 적발돼도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달장애인에 대한 학대 사건의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는 데는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방식의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도 있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범죄사실’이 ‘특정’돼야 하고(이는 범죄가 일어난 ‘일시’와 ‘장소’가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지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범죄 사실 특정’이라는 용어 조차도 자주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낯선가요?) 폭행사건이라면 ‘무엇으로’, ‘어떻게’, ‘얼마나 자주’, ‘얼마나 세게’, ‘누구와 함께’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들이 진술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시설, 염전, 가정 등 대부분 은밀하게 발생하는 장애인 학대의 경우 목격자나 CCTV 등 증거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말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발달장애인이 수사과정에서 수사관의 질문을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기란 경우에 따라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더구나 경찰서라는 낯선 장소에서 낯선 수사관이 알지도 못하는 말로 추궁한다면 장애가 없는 사람도 긴장감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데, 발달장애인이라면 더욱이 제대로 수사를 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발달장애인 대상 수사과정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교육 현장 |
발달장애 등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대한 수사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신뢰관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함께 참석해서 심리적인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 것이 원칙입니다. 신뢰관계인은 부모, 형제, 배우자 등의 가족을 비롯해 평소 사회복지담당자 등 장애인과 평소 잘 알고 지내거나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됩니다.
또 신뢰관계인과는 별도로 수사절차상 좀 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 ‘보조인’이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보조인 제도는 형사소송법과 발달장애인 지원법에 규정돼 있으며, 발달장애인 지원법에는 장애인의 보호자나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직원 그밖에 신뢰관계인이 발달장애인의 보조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뢰관계인, 경우에 따라 형사절차에 대한 지식을 갖춘 보조인이 참여한다면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나 부당한 대우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심리적인 안정을 도와 수사가 훨씬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인마다 특성과 성향이 다른 발달장애인의 개인특성과 의사소통방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이들에게 적합한 수사 기법으로 수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장애인 성폭력을 수사하는 특별한 수사 기법으로는 미국에서 개발된 NICHD 프로토콜이라는 수사 기법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아동을 대상으로 맞춰진 것이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에게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완이 필요합니다. 또 그림, 인형, 사진 등의 보조도구를 사용하는 경우 말로 수사를 하는 것보다 훨씬 원활하게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발달장애인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심리적 안정, 개인적인 특성에 걸맞은 수사 방법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전담경찰관이 발달장애인의 친구가 되려면
전담경찰관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에 발맞춰 수사기법에 대한 연구개발도 병행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도적인 발전과 수사기법의 개발이면 인권의 옹호자(임을 기대하는)인 경찰이 장애인의 인권을 충분히 옹호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장애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 나와 다른 인간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제도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장애인식과 인권에 관한 교육이 병행돼야 함도 그 이유에서입니다. 이번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교육에서는 장애인 인권, 수사, 장애인피해자 지원, 관련 법률 등에 대한 최고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가 이뤄졌는데, 또 하나 특별한 순서가 준비돼 있었습니다. 바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경찰이 직접 서로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도였고 모험이었지요. 자칫 장애인을 교육을 위한 도구쯤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되면 어쩌나하는 고민이 많았지만, 교육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경찰관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에게도 유익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계획대로 특별한 만남의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교육 당일의 활발한 대화와 즐거운 분위기는 그러한 걱정을 충분히 불식시켰습니다.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80명과 특별히 초대한 발달장애인 40명은 2인 1조로 파트너를 선정했고, 정해진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서 물어보고 알아가는 미션을 수행했습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와 색지, 클레이 등이 배치됐었고 각 조에서는 멋진 작품으로 서로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마무리 됐을 때 이들은 좋은 친구가 됐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같이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직접 만나보니, 정말로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구나, 조금만 쉬운 말로 표현하고 조금만 시간을 갖고 기다려 준다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나기 전에는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경찰관 일을 하기 힘들지 않냐며 나를 걱정해 줬고,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묻던데요.(웃음) 굉장히 따뜻하고 선량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정말 나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충분히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면 저는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하나’라는 물음표였습니다. 부모가 전적으로 이들을 책임져야 하는데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말 그대로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80명 전원에게 한 명, 한 명 소감을 물었을 때 하셨던 답변 중 기억에 남는 몇 분의 말씀입니다.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과연 발달장애인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를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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