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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빈곤과 인식 결여로 침해받는 여성장애인의 건강권

장애여성 장기기획 - ① 건강권

본문

우리나라는 법률로 건강권을 「국민이 가진 기본권의 하나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 또는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요인으로부터 보호 요청을 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 내린다. 그러나 한국의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여성이면서 동시에 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장애인은 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다. 평소 본인의 건강상태가 나쁘거나 매우 나쁘다고 응답한 여성장애인이 63.3%라는 수치는 건강권의 불평등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빈곤으로 건강할 수 없는 여성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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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사회권 중 ‘건강권’이라는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말 그대로 건강하게 살 권리로 UN은 건강권에 대해 ‘성취 가능한 최상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만인의 권리’로 정의하고, 장애인 건강권에 대해서는 ‘장애인권리협약 25조’를 통해 ‘장애로 인해 차별 없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할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 자체에서 기인하는 건강불평등이 사회적 차별로 인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여성장애인의 건강권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그리고 남성장애인에 비해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강이 나쁘거나 매우 나쁘다고 응답한 여성장애인이 63.3%로 나타났다. 동일한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한 남성장애인은 46.1%로 나타나 약 20%정도의 심각한 격차를 보인다.

이 간극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유영희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는 비장애인에 비해, 그리고 남성장애인에 비해 심각한 여성장애인의 빈곤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 때 몸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검진을 해 몸에 문제가 있다면 제 때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을 지나 회복기에는 잘 쉬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데 돈이 필수적이다. 지금 당장 검진을 받고, 수술 받고, 회복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빈곤한 여성장애인은 차일피일 미룬다. 그럼 기능은 점차 나빠진다. 유년기부터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차별이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노동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고, 건강권의 차별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2014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 비정규직을 포함해 직장을 다니는 장애인의 3개월 평균 임금을 보면 남성은 180만 2천원이고 여성은 74만 3천원이다. 재직 여부와 상관없이 장애인 한 달 평균 수익은 남성은 128만 6천원, 여성은 52만 3천원이었다. 두 항목 모두 남성과 여성장애인이 두 배가 넘는 격차를 보인다.

2016년 최저생계비가 64만 9천 9백 32원이라는 점을 볼 때 대다수의 여성장애인은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 돈으로 살아가는 여성장애인에게 병원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외래 이용횟수가 0.39-0.86배 낮고, 입원 횟수는 1.04-2.23배까지 높은데, 이는 치료할 수 있는 질병도 제때 병원을 방문하지 못해 키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성장애인의 경우 2차 장애 발생 및 장애로 인한 합병증뿐만 아니라 여성 질환 및 임신 등으로 각별히 신경 써야 하지만, 실제로 많은 여성장애인이 정기 건강검진조차 제대로 받지 못 한다.

일부 여성장애인은 일을 할 수 있는 장애 정도를 보이는데 왜 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실제 여성장애인 중에는 근로 능력이 있는데 기초 수급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일을 하고자하는 욕구는 강하나 일자리를 갖게 돼 얼마만큼 소득이 생기면 기초 수급자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기초수급자 탈락은 곧 여성장애인에게 재정적으로 부담이 큰 의료혜택에서 배제됨을 의미한다.

유영희 상임대표는 “수급자가 되면 의료보험서비스 혜택이 사라져 버린다. 일자리를 얻어 수익으로 생활비와 건강보험료 내는 것도 빠듯한 경우가 상당수라 의료서비스 비용 지출은 부담이 크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해도 돈이 안 들어가는 기초 검사만 하게 된다. 여성장애인도 마찬가지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일자리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욕구는 강하나 수급자로서 얻는 의료혜택을 위해 그 욕구를 포기하고 만다.”

유영희 대표는 이에 대해 정부나 복지부가 남성장애인과 여성장애인의 소득 격차에 대한 구분 없이 수박겉핥기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남녀 장애인 구분 없는 단순한 평균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기보다 남성과 여성의 소득 격차를 짚어봐야 한다. 남녀 구분 없는 평균치로서의 접근은 평균 이상인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평균 이하인 사람은 늪 속에 빠트릴 뿐이다.”

 

여성 질환과 관련된 임신・출산용 매뉴얼 절실

 횡포 이상의 혹은 횡포에 준하는 차별과 무시를 장애인들은 도처에서 맞닥뜨린다. 그 중에 장애인들의 방문 빈도가 높은 병원을 빼놓을 수 없다. 건강 이상으로 심적 부담감을 안고 병원을 찾은 장애인들은 병원 내에서도 많은 차별을 목도한다. 병원 장비들은 비장애인 중심이고, 그 장비에 어찌어찌 끼워 맞추며 시간은 지체된다.

이는 의료진의 냉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미 장애인의 위축감은 상당하다. 특히 여성 질환과 관련해 여성장애인이 산부인과를 찾을 경우 이 과정은 여성장애인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안긴다. 출산을 앞둔 뇌병변장애 여성들 사이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왕절개’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뇌병변장애 여성이 출산을 하러 가는 경우 의료진 측의 장애유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의료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덜한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것이다.

지체장애 1급 여성장애인 A씨는 “의료진들의 장애유형별 이해도가 부족해 목포에 사는 여성장애인이 출산을 원할 경우 대다수 병원이 산모를 꺼리고 광주의 종합병원으로 가게끔 유도한다. 내 경우에는 휠체어를 타지 않아 그나마 나은 편이었으나 보조기를 꽂고 힘들게 검진대에 올라갔다. 검진 도구도 고역이라 그 이후로는 초음파로만 검진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출산 당시에는 제왕절개를 굳이 할 이유가 없었으나 의사가 제왕절개를 해야 산모와 아이도 위험하지 않다고 해 권유에 따랐다. 그러나 제왕절개 때문에 항생제를 맞아서 초유가 나오지 않았다.”

또다른 여성장애인 B씨는 “우리 지역에 거점 산부인과가 생겨 진료를 원하시는 분들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거점 산부인과이다 보니 시스템은 진일보했다. 그러나 되레 과잉친절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간호사 분들이 탈의과정을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던지 내 의사도 제대로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옷을 벗겼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상대방의 장애를 잘 알지 못한다. 하물며 비장애인은 더 힘들다. 그러나 장애인을 보는 시혜적인 관점, 그래서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은 시급히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 C씨는 “약 처방을 받아도 약봉지에 점자 표시가 안 돼 있어 약 성분에 대한 정보의 접근성에서 배제되고, 내 스스로 약을 먹는데도 애를 먹는다”고 했다. 특히 C씨는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 복용량을 준수해야 하는데 도우미 없이 전혀 먹일 수 없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토로했다.

소아마비를 가졌으나 보조기는 사용하지 않는 D씨는 “꾸준히 한 병원을 다니는데 번번이 내 장애에 대해 일러줘야 했다. 진료를 갈 때마다 이 절차가 단 한 번도 생략된 적이 없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내 장애를 누군가에게 늘 일러줘야 하는 상황은 쌓이고 쌓여 상처가 된다. 이에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는데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번 피식 웃고 말았다. 늘 가는 병원인데 차트에 기입할 수는 없나”고 되물었다. 당사자 A씨는 “우리지역은 개개인이 병원을 찾기가 힘들다는 판단 하에 차량도 지원받고 자원봉사자를 대동해서 여러 명이 함께 검진을 받고 있다. 거점 산부인과이니 높낮이가 조절되는검진장비들이 장착돼 좀 더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중증 휠체어장애인이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든지 유방암 검사를 하는 경우 고역이다. 산부인과 외에 다른 과도 장비가 우리 몸에 맞게 보급되면 병원 찾기가 수월할 것이다. 또한, 건강권은 이동권 등 다양한 권리가 집약돼야만 보장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유영희 상임대표는 “사람이 진료를 받으러 가면 그 몸에 맞는 진료대가 있어야 하는데 건강 유지를 위한 기본 정보인 신장과 체중조차 알지 못하고 사는 장애인 여성들이 수두룩하다. 아니,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지 못하도록 종용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여성 질환과 관련된 임신·출산용 의료진 매뉴얼은 절실하다.”

 

건강법의 실효성과 당사자들의 목소리 필요

2015년 12월 장애당사자들의 오랜 바람이던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건강권법)이 재정돼 오는 2017년 12월 30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장애계는 ▲장애인 건강 주치의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건강 교육 ▲장애인 건강권 교육 ▲재활운동 및 체육 ▲의료비 지원,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중심으로 활동계획을 수립 ▲장애 유형과 신체적 증상에 따라 맞춤형 서비스 지원 등의 내용이 법 안에 담기고 장애인당사자의 건강증진에 실효적 법안으로 정착되기 위해 장애인 건강권법 TF를 꾸려 시행령·시행규칙안를 작성하기로 했다. 시행령·시행규칙이 만들어져 가는 이 시기는 건강권에서 여러 가지로 침해받는 장애여성이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TF에 주도적인 입장에 선 한국장애인총연맹의 이문희 사무차장은 건강권법의 실효성을 위해 보다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질병은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건강관리 시스템 내 장애인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다. 건강권법도 법안으로는 만들어졌으나 다른 법과 마찬가지로 시행령·시행규칙이 관건이다. 법명에 건강이라는 단어가 붙었다고 법안이 의료계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 건강권 관련 TF를 꾸리는 것처럼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주장해야 한다.”

유영희 상임대표는 법안에 강제성과 예산이 담보되고 성인지적 관점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건강권법이 만들어져 있으나 법이 법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제성을 띄어야 한다. 그 후에 제대로 된 예산 편성을 요하는데 남성장애인과 여성장애인이 소득 면에서 큰 격차가 있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서 지나치게 낮은 한 쪽을 평균에 근접하게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행령· 시행규칙도 정비돼야 한다. 강제성과예산이 담보되고 성인지적 관점을 재고해야 그나마 여성장애인의 건강권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앞서 여성장애인의 건강권 확대를 위해 ▲여성장애인 생애주기·유형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진료·방문검진·응급지원을 위한 종합의료지원센터 각 지역별 설치 ▲의료비 지원과 의료기구 개발·보급 ▲건강검진 매뉴얼 개발·보급 ▲산전·산후 건강관리와 여성건강검진 전담하는 산부인과와 전문 의료진 확보 ▲여성장애인 출산비용 확대 지원과 산후조리 도우미 지원 실시 ▲의료진과 병원관계자를 대상으로 장애와 성인지관점이 포함된 의식개선교육 실시 ▲시각·청각여성장애인의 의료기관 접근과 이용보장을 위한 시스템 구축 ▲각 지역에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생활체육시설 설치 ▲여성장애인을 위한 생활체육 전문강사 양성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에 여성장애인당사자 의견이 반영된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 ▲종합지원 책이 담긴 여성장애인기본법을 즉시 제정 등 총 11가지의 권리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문희 사무차장은 무엇보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강조했다. 여성장애인 단체와 여성장애인 당사자들이 건강권과 관련해 차별받는 다양한 요소를 성인지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거듭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장애인이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면 더욱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간 단체와 당사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문제제기를 했는지는 미지수다. 만약 부족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성인지적 관점에서 정책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대의 힘도 절실하다. 건강권과 관련해 제도를 도입하고, 예산을 확대하는 것과 관련해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와 맞서야 함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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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체중계

서울 강동구에서는 최근 지역 내 장애여성들의 건강권을 위한 ‘장애여성 건강지원 네트워크 사업’을 강화했다. 지난 5월 전국 최초로 보건소에 문을 연 건강관리지원센터는 장애인 눈높이에 맞춘 접수대, 장애인 체중계, 휠체어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 등을 통해 접근성을 높였고, 장애여성들이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장애여성들이 임신 시기부터 자녀가 만 2세가 될 때까지 방문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산모뿐 아니라 영유아 건강관리를 제공한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장애여성의 건강권은 낯설지만 불평등 속에서 차별받지 않고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 구청장의 말처럼 장애여성의 건강권은 어찌 보면 낯설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장애인 전체를 아우르는 권익 보호를 위한 기조 속에서 여성장애인만을 위한 건강권은 뒷전이었고 당사자의 목소리 역시 미약했다. 건강권의 평등성에 대한 무지함, 장애여성에 대한 진료와 정책에 무시되는 성인지적 관점, 무능한 법안과 소극적인 목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릴 때다. 지금 이 시각에도 63.3%나 되는 여성장애인이 아픔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성자김은정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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