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왜 머리를 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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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차가운 시청 바닥에 자리를 깔았다. 무려 42일 간의 노숙 농성.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14일간 매일 2명씩 삭발을 감행했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서울시에 요구한 것은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정책 구축이다. 이미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되고 지난해에도 시청 점거 농성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정책이 수립되지 않은 탓이다. 현재는 긴 농성이 일단락되고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서울시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14일간 반복된 눈물의 삭발식
오전 11시를 넘긴 시각, 정오의 햇볕이 쏟아지는 서울시청 정문 앞에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여들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서울시청을 바라보며 바닥에 줄을 지어 앉았다.
곧 마이크를 들고 상황을 진행시키는 부모 외 4명의 부모가 앞으로 나섰다. 그 중 두 명의 부모가 간이 의자에 앉아 바닥에 앉은 부모들을 마주봤다. 의자에 앉은 이들은 차례대로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한 켠에서는 삭발 당사자들이 쓴 편지와 이들을 지지하는 친구, 가족들이 쓴 편지가 낭독됐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친구로서, 또 발달장애인의 형제이자 비장애인 자녀로서 느껴온 감정과 지난 시간들이 절절하게 울려퍼졌다. 처음 얼마간 덤덤하게 눈을 감고 있던 삭발 당사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을 보였다. 한 명의 삭발이 모두 끝나고 나머지 한 명의 삭발이 시작된 후부터는 바리깡을 든 어머니와 머리카락을 상자에 담는 어머니, 바닥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이 눈물을 흘렸다. 동그란 두상이 드러난 채 울음을 참는 삭발 당사자를 지켜보는 동료 부모들의 울음소리는 쉽게 끊이지 않았다.
삭발이 끝난 뒤, 시청 앞 부모들은 잘린 머리카락이 담긴 박스를 서울시에 전달하기 위해 자리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미 삭발식이 끝날 무렵부터 서울시청 정문은 경찰들로 봉쇄돼 있었다. 박스를 전달하려는 부모들과 이들을 막아선 경찰들의 대치가 시작됐다. 경찰과 부모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도중, 한 켠에서 박스가 날아올랐다. 머리카락이 담긴 하얀 박스가 경찰들의 머리 위를 지나 서울시청 안으로 떨어졌다. 또 한 켠에서는 삭발을 한 어머니가 다리가 풀린 채 경찰의 팔에 매달려 안으로 들여보내달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대치가 끝나고 노숙 농성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삭발식 현장을 정리하는 중, 며칠전 삭발을 한 부모가 당일 삭발자에게 다가와 조용히 포옹을 했다. 둘은 꼭 안은 채 잠시간 눈물을 흘렸다. 곧 또 다른 민머리의 부모가 다가와 당일 삭발자에게 농담을 던졌다.
“걱정하더니, 두상이 너무 예쁘네!”
그러자 안고 있던 두 사람은 울음을 그치고 웃어보였다. 삭발을 한 이들은 웃으며 부모들의 무리에 섞였고 이윽고 시청 정문을 떠나 농성장으로 향했다.
이러한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삭발식은 5월 24일부터 14일간 계속됐다. 농성이 끝나기까지 삭발을 감행한 부모들은 모두 28명. 6월의 노숙 농성장에는 삭발한 머리를 드러낸 부모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삭발자와 비삭발자 모두 농성장 바닥에 앉아 서울시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마스터플랜까지 구상할 수 있도록 최선”
삭발식이 처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이하 부모연대)는 서울시에 6개 정책안을 놓고 협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돌아온 답변은 명확하지 않았고 회의적이었다. 책정된 예산도 부모연대가 제시한 예산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부모연대는 이에 항의했지만 오히려 서울시 관계자들에 의해 또 다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차가운 시청 바닥에 자리를 깔았다.
무려 42일 간의 노숙 농성,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청사 밖으로 끌려나왔다.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노숙농성이 시작됐다. 하지만 노숙농성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부모연대는 결국 서울시의 귀를 열기 위해 삭발식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발달장애인 부모이며 삭발에 참여한 A씨는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서울시가 우리에게 집중하지 않으니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줄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며 “삭발을 해서라도 서울시 반응을 끌어내야 했기에 하게 된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농성이 마무리된 것은 박원순 시장의 농성장 방문에 이어 서울시에서 부모연대의 제안에 따라 TF팀을 구성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은 농성 종료 기자회견에서 “TF팀 회의에서 부모님들의 요구안뿐 아니라 마스터플랜까지 구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TF팀은 서울시와 부모 단체들이 꾸리게 되며 실질적인 활동은 7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발달장애인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은 지난해 11월에 이미 시행됐다. 부모연대가 농성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법률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의 수립이었다.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법이 생겼다고 해도 실제로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의 생활에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권익 보호를 하고 어떤 계획을 통해 복지 지원을 할 것인지가 결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종적으로 부모연대가 제안한 정책은 총 7개다. 먼저, ‘발달장애인 소득 보장을 위한 자산 형성 지원 사업 실시’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장애 특성상 타 장애유형에 비해 추가 발생 비용이 높다. 이에 따라 발달장애인들은 충분한 소득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발달장애인 대다수는 미취업 상태이거나 보호작업장 등 낮은 임금을 받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가족들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상황에서는 당장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발달장애인 자립 비용이 마련되기 힘들다. 따라서 부모연대는 서울시에 ‘소득 보장 사업’을 제안했다. 이 사업의 가능성 중 하나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계좌 등을 만들고 발달장애인 당사자 또는 부모와 서울시, 자치구가 각각 전체 금액을 나눠 적립하고 발달장애인이 자립하는 시기나 일정 나이에 도달하면 지급하는 방식이 제시됐다.
부모연대는 한국의 복지 제도와 가장 닮아있는 일본의 예를 들었다. 일본의 ‘심신장애자부양보험 제도’는 중증장애자녀를 둔 보호자가 자녀를 대상으로 민간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부모가 장애를 입거나 65세 이상의 나이가 되거나 사망할 시 자녀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보험 제도다. 이와 같은 발달장애인 소득 보장 사업이 실시된다면 발달장애인은 자립 시 최소한의 경제 능력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 요구안은 ‘장애인 가족지원 체계 구축 및 발달장애인 가족의 참여 보장’이다.
서울시 모든 자치구에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발달장애인이 정책 수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항목이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는 장애인 및 가족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와 가족 중심 복지 서비스 구현을 위한 센터로, 현재에는 일부 자치구에서만 설치돼 있으며 장애인복지관 내 프로그램 사업으로 운영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부모연대는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확대 설치하고 복지관 사업이 아닌 독립적인 센터로서 운영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원하는 발달장애인 모두에게 독립 주거의 기회를 제공하라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주거 모델 개발에 대한 정책도 요구됐다.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필요한 주거 생활 지원의 단계적 계획이 수립돼야 하며, 이 과정에서 현재의 선훈련 후배치 방식이 아닌 선배치 후훈련 방식이 채택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금까지는 발달장애인이 적절한 훈련을 받고 훈련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경우에 한해서만 독립 주거공간으로 배치됐다. 이는 결국 경증 장애인 중심의 정책,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립 주거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치한 뒤, 그 안에서 주거생활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
부모연대는 영국의 지역사회 주거 유형을 한국 실정에 맞게 재구성한 연구 결과를 골자로 지역사회 우선 배치가 이뤄지는 정책을 제안했다. 먼저 지역사회 거주를 원하는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독립 주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후, 3개월 이상 적응을 하지 못한 경우에 한해, 근거리 지역에 지원인력을 상시 배치한다. 이는 감시나 평가가 아닌 해당 발달장애인에게 위험 상황 발생 시 대응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근거리 지원인력 배치 후에도 3개월 이상 적응하지 못한 발달장애인은 다음 단계인 공동 주택으로 들어간다. 이 또한 하나의 공간에 발달장애인과 지원인력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 아닌 독립된 거주 공간을 가진 발달장애인과 지원인력이 한 건물에서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개월 이상 적응하지 못할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시설에서 생활한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발달장애인 주거 모델 시범 사업과 발달장애인 자립 지원에 필요한 상담, 정보제공, 주거알선 등을 담당하는 기관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인턴 제도를 통해 취업의 문을 열고
평생교육센터를 확대 설치하라
현장 중심의 발달장애인 직업교육 지원 체계 도입 또한 필요하다. 부모연대는 취업을 앞둔 발달장애인이 기관 등에서 직업훈련과 고용지원 서비스를 제공 받는 프로젝트 서치 사업을 뒷받침할 서울시발달장애인직업전환서비스 센터 또는 전담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센터 또는 팀이 꾸려지면 이들이 직접 나서서 직업 훈련 프로그램 운영 업체를 발굴하고 직무 지도 인력 양성 및 파견과 직업 훈련의 질 관리 등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프로젝트 서치의 현장 정착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프로젝트 서치는 고등학생 및 전공과 발달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으로 비장애인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인턴’ 제도와 같다. 이를 성공적으로 도입시키기 위해서는 서울시 및 공공기관, 학교 등의 적극적인 도입과 그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중증장애인 인턴제 운영 기관의 확대도 제안됐다.
이어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의 사회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낮 시간 활동 지원 등을 위한 자조단체 발굴과 육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자조단체 운영의 제반 정책 추진 기관이 설치돼야 한다는 제안도 뒤따랐다. 또한 2016년까지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를 5개소 설치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을 확대해 모든 자치구에 센터를 설치해야 한다며, 이는 매년 3개씩 점차적으로 늘려갈 것을 제안했다.
노숙, 삭발 농성을 마무리하며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느낀 부족함은 서울시와의 논의 과정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의 이해 정도였다.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은 장애 특성상 자립생활 지원이 타 장애 영역과는 차별화돼야 한다”며 “미국, 일본, 영구 등에서 발달장애인 전담지원팀을 구성하고 있듯이 서울시에도 발달장애인 전담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모연대는 제안한 7가지 정책에 대한 TF팀 내 활발한 논의와 그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한밤 중, 노숙농성장을 찾아와 부모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임기 내에 다시금 발달장애인 부모들을 서울시청 바닥에 앉게 만들지 않길 기대해본다.
발달장애인 부모의 편지
14일간의 삭발식. 두 명의 발달장애인 부모가 바리깡에 머리칼을 맡기고 있을 때, 한 켠에서는 그들이 삭발식을 앞두고 써내려간 편지가 낭송됐다. 내 아이를 위해 삭발을 하겠다고 결심한,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의 마음을 전한다.
7일차 삭발자 황숙현
사랑하는 작은 아들에게.
아들~! 오늘이 상병 진급하는 날이네. 축하한다. 엄마는 까까머리, 신병 머리 깎는 날인데. 신병 훈련소 가던 날 기억나니? 너는 가는 내내 엄청난 긴장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 근데 그 순간에도 엄마는 형을 생각하고 있었어. 군대라는 곳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도 네가 긴장과 두려움에 어쩔 수 없었듯이 형은 매일 그런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이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훈련소에서 가정환경 조사라는 것이 도착해서 엄마는 정말로 오래 고민했다. 가족의 병력란에 형에 대해 쓰지 말아야 할까? 그동안 너를 키우면서 겪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단다.
새 학년이 될 때, 형이 발달장애인이라고 적으면 어떤 담임선생님은 물었지. 동생인 너는 괜찮은지, 장애가 아닌지. 마치 전염병, 유전병인 것처럼 생각하는 선입견을 마주할 때 엄마는 너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단다. 그런 상황에서 형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야 너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걸까? 형의 장애는 그렇게 형태 없이 너의 환경에 영향을 줬지만 그 때도 엄마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 뭐 어때, 형인데. 장애 있다고 형이 아닌가? 장애 때문에 가족으로, 인간으로, 존엄성이 무시돼야 하나? 그딴 편견들, 이겨내면 돼. 무시하면 돼. 안 만나면 돼. 상대 안 하면 돼.
늘 그렇게 차 순위가 돼버린 네가 안쓰러워서 훈련소에 보내는 설문지에 형에 대해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어. 그래놓고 엄마는 또 형에게 미안해서 가슴이 미어지더라. 엄마는 그렇게 고민, 고민했는데 그 후로 훈련소에서 온 너의 편지를 받고 엄마는 또 한참을 가슴이 먹먹해져서 읽은 편지를 반복해서 다시 읽었어.
군대 내에서는 팀별로 움직이는데, 한 명이 계속 틀리고 못 따라와서 네가 속한 팀이 불이익을 받아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너는 그 상황을 타개해보려고 소대장에게 면담 요청을 했고,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갑자기 깨달은 생각에 소대장 앞에서 울었다는 내용이었지.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가, 장애인 형과 살아 온 제가 조금 배움이 느리다고 이상하다고 따돌리고 있었구나. 순간 제 자신이 부끄럽고 용서가 안 돼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는 눈물이 나왔지만 많이 행복했다. “다행이다. 우리 아들 잘 컸구나.”
아들! 이 곳 시청에서 엄마가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이유는 형이 살아내야 할 세상과, 장애 가족으로 시작부터 무거운 짐을 진 너의 세상을 위함이야. 형과 장애 가족이 이 세상에 억울함 없이 존엄성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이제까지처럼 앞으로도 계속 한 발씩 죽을 때까지 노력할 거야.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나의 아들들아, 많이 사랑한다.
2016, 6. 1. 잔인한 5월을 넘긴 6월의 수요일에.
8일차 삭발자 김종옥
사랑하는 아들아.
너와 나는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맺어졌을까. 너와 나는 어떤 인연이기에 네 이름을 불러보는 캄캄한 새벽마다 가슴이 아리는 걸까.
사랑하는 내 아들아.
처음 네가 진단을 받고서 처음엔, 아픈 것도 아니고 억울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데 그저 눈물이 났다. 너처럼 잘생긴 아이가, 너처럼 총명한 눈빛을 가진 아이가, 이 세상과 안 맞는다니 너의 삶이 너무나 아깝고 또 아까워서 눈물이 났다. 그러다 문득 결심했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우는 건 이게 끝이다. 이틀만 울고,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너는 언제나 기쁨이다. 너의 모든 순간이 나의 기쁨이니, 내가 눈물 흘릴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내 아이야, 너도 울지 말아라. 슬퍼 눈물 흘리지 말고 살아라.
훌쩍 커버렸지만 여전히 내 볼에 네 볼을 부비고, 가끔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주니, 너의 사랑스런 머리카락 쓰다듬을 수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어미냐. 네가 네 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으니 나는 얼마나 흐뭇하냐. 아침에 너를 깨울 때 나의 일상은 얼마나 평화롭게 시작하냐. 그러니 나는 너로 말미암아 얼마나 행복한 어미냐.
언젠가 나는 예전에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의 단단한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늙어가고 싶다. 그 때가 되면, 너와 나의 인연이 맺어지고 나서부터 그때까지 네가 내 아들이었기에, 내가 너의 어미였기에 우리의 일생이 참 행복했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안심하고 잠이 들고 싶다.
이 행복한 어미가 오늘 머리를 깎는다. 시청 앞 따가운 햇볕 아래서 머리를 깎는다. 여기 이러고 앉으니, 네가 열 살이 됐던 어떤 날이 생각나는구나.
눈부시게 성장한 너를 앉혀두고 나는 너에게 네가 가진 장애를 설명했다. 너는 못들은 것처럼 덤덤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창밖을 보며 오래 앉아있던 너의 얼굴을 보았을 때, 너는 소리없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너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울 일 아니라고, 슬픈 일 아니라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울지 말라고 울면서 말해줬던 게 생각난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의 삭발도 그렇다. 슬픈 일 아니고, 울 일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너 때문에 속상해서도 아니고, 너를 위해 누구에게 구걸하려고도 아니고, 너 때문에 누구와 처참하게 싸우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위로요, 기억이고,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세상에 해를 끼칠 줄 모르는 선량한 너희들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뜨거웠던 5월을 같이 보낸 벗이며 동지에게 바치는 굳은 마음의 표시이다. 그러니 부디 미안해하지 말아라.
아직은 이 염치없는 세상에 너희를 들이밀 수 없어서, 엄마들은 삭발을 하고 소리치고 바닥에서 잠든다. 우리의 마음이 닿는 곳이 있기를, 우리의 소리가 닿는 곳이 있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어미 없는 세상에서 네가 망연히 서있지 않기를, 온 세상에서 어미를 찾아 헤매지 않기를, 그러다 지치고 아프지 않기를, 어미들은 오직 그것만을 바라서 지금 여기에서 소리치는 것이다. 너를 위해서,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하는 세상에서 너를 만나서 미안하다. 너의 세상이 이렇게 형편없어서,
너에게 너의 세상이 이렇게 염치없고 천해서, 너를 위한 어미의 일이 이렇게 비루해서 나는 정말로 미안하다, 사랑하는 아들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아, 미안하다.
9일차 삭발자 최상숙
1987년 2월 어느 날. 유나는 세상에 이 어미를 만나러 24시간 고통을 이기고 나와 모녀의 연을 맺었지. 귀여운 유나를 품안에 안은 기쁨도 잠시, 너는 장애인이라는 운명을 가지고 내게 왔더구나.
모진 엄마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아프고 힘들다며 우는 너를 혹독하게 재활을 시켰지. 충분한 사랑이 필요할 때 더 강한 모습을 너에게 보여줘야만 했단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갈 길이 열릴 거란 생각뿐이었으니까.
대소변도 못 가리는 너를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장애라는 것을 잊은 채, 일반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겠다는 욕심에 재활치료보다는 공부에 욕심을 더 내 일반 아이들처럼 가르쳐 보려 했지. 아무 정보도 없는 이 무지한 어미는 그냥 다른 일반 엄마들처럼 내 딸을 키우면 장애의 틀에서 벗어날 줄 알았어.
어느 날. 너와 나에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어. 사춘기에 온몸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표현하려는 너를 무관심으로 일관해버려, 청소년기의 갈등은 엄마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어. 서로의 갈등에서 오는 다툼의 날들! 장애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엄마의 초조한 모습에 넌 스스로도 통제가 안 돼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지.
언제부터인가 어미는 삶을 포기한 채 세상과 단절된 일상 속에서 너를 방치하는 못난 어미가 돼 있더구나. 그런 엄마에게 알 수 없는 약을 가져다주며 “엄마 울지 마, 엄마 아프지 마” 하며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줬던 내 딸 유나. 그 후로,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고, 24시간 너를 지키기 시작했지.엄마가 장애를 인정하면서 유나도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았지. 유나야 기억하지? 처음 손을 잡고 성당 가던 날, 유나는 신이 났었어. 그때 유나의 해맑은 모습을 엄마는 평생 못 잊을 거야. 그리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생각날 거야.
이제는 이 못난 어미와 유나만 세상에 남겨졌구나. 너무 높이만 보던 마음의 눈을 내려놓고 너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사랑을 주려고 어미는 애쓰고 있단다.
세상에 남겨질 유나를 위해 엄마는 오늘 큰 용기를 내 삭발 의자에 앉았어. 사랑하는 유나를 위해. 그리고 여기 모인 부모들과 그 자녀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단다. 엄마의 용기에 칭찬해 줄 거지?
오늘로 이 어미가 마지막 삭발자가 됐으면 해. 엄마의 민머리를 보거든 놀라지 말고, 꼭 안아주겠니? 유나와 같은 장애인의 권리와 인권이 보장된 삶을 위해서라면 어미는 열 번이고 백번이고 머리카락을 세상에 내어주려 해.
예쁜 딸 유나야, 엄마가 기필코 지켜줄게! 목숨 걸고 엄마가 꼭 지켜줄게! 유나와 같은 아픔을 나눈 아들딸들아, 아줌마가 목숨 걸고 꼭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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