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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시 청각장애인 문화향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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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타임용 영화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남을 때,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선택하는 영화라는 뜻이다. 데이트 정석 코스인 ‘영화, 밥, 차’에도 영화보기가 포함된다. 미성년자에서부터 노인까지 영화관에서의 영화관람은 그만큼 손쉽고 대중적인 문화생활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아주 흔한 문화생활인 영화관람 조차도 장애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등이 확보돼 있지 않은 탓이다. 배리어프리 영화가 종종 상영되지만 이조차도 차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비장애인의 봉사활동 장소가 된 영화관
전맹 시각장애인 A씨는 지난해 배리어프리 영화를 보기 위해 국내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영화관을 찾았다. A씨는 저시력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에 도착해 예매 정보를 확인하고 영화를 보고자 했다. 이때, 영화관 측에서 비장애인 직원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A씨 무리와 일대일로 짝을 지었다. 장애인 1명당 비장애인 직원 1명이 붙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A씨와 짝을 지은 비장애인
직원은 팝콘과 음료를 들고 와 먹으라며 내밀었고, 상영관 내부에 동행해 A씨의 옆자리에 앉았다. A씨의 친구들도 그렇게 짝을 지어 뿔뿔이 흩어진 자리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됐고 비장애인 직원은 A씨의 옆자리에서 배리어프리 영화를 함께 관람했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비장애인 직원은 자리를 지켰고 관람을 모두 마치고서야 돌아갔다. A씨와 친구들은 영화가 모두 끝난 뒤에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위와 같은 비장애인 직원의 동행은 ‘친구들과 영화를 본다’는 A씨의 여가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비장애인들의 경우 대부분 친구나 연인 등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바로 옆자리에 앉아 함께 영화를 본다는 기분을 느낀다. 영화를 본 후에 누군가에게 영화 이야기를 할 때에도 ‘누구와 함께 영화를 봤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방식은 결국 A씨가 혼자 영화를 관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을 만든다. 또한 낯선 이와 짝을 이뤄 영화를 본다는 부담감도 부여한다. A씨는 “당시 관람했던 영화가 19세 이상 관람등급의 영화였기 때문에 베드씬 등이 많았는데 그런 영화를 내가 왜 낯선 사람과 짝을 이뤄 봐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민망하기도 했다”며 당시의 불편한 마음을 설명했다.
 

장애인은 선택권이 1도 없다
C사에서 직원과 A씨를 함께 상영관으로 들여보낸 것은 ‘임직원 봉사활동 프로그램’이었다. 한시적인 프로그램으로 현재는 공식적인 임직원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위와 같은 사례는 C사가 ‘장애인 영화관람데이’를 바라보는 시혜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C사는 ‘장애인 영화관람데이’를 통해 한 달에 한편의 영화를 지정된 날짜와 시간에 배리어프리로 상영한다. 영화관람의 날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하루를 꼬박 제공하는 것이 아닌 셈이다. 영화는 매월 최신 한국영화 1편으로 국한돼 있다. C사가 제공하는 그달의 영화 외에 배리어프리로 관람할 수 있는 영화는 없다.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관람에 있어서 장애인이 차별적인 환경에 놓이는 것은 비단 C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C사 외 곳곳에서 상황에 따라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지만 모두 선택권이 배제돼 있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보는 장애인들은 주어진 영화를, 주어진 장소와 좌석에서 주어진 시간에 봐야한다. 비장애인과 동등한 선택권을 가지고 영화를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A씨는 “C사의 영화관람데이는 서울 내 실시되는 지점이 정해져있고 시간도 정해져 있다. 평일 낮에 한 번, 평일 저녁에 한 번, 주말 오전에 한 번 상영된다. 그 세 번의 상영에 개인적인 조건이 맞지 않으면 참석할 수 없다. 내 경우에는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평일 낮 시간은 포기해야 하고 저녁 시간은 7시로 맞춰져 있어 정시퇴근을 해도 시간 안에 영화관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다. 주말 오전 상영을 보려면,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에까지 일찍 일어나서 시간에 맞춰 가야하는데 이마저도 단 하나의 상영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좌석이 부족한 경우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좌석 선택 또한 제시되지 않는다. 비장애인의 경우, 온라인 예매나 현장 예매 시 좌석 선택이 고정적인 절차로 진행된다. 좌석을 선택할 생각이 없어도 온라인 예매의 과정 중 하나로 반드시 원하는 좌석을 선택하게끔 하고 현장 예매 시에도 잔여 좌석 위치를 보여주며 선택하게 한다.
하지만 A씨는 전화를 통한 예매 과정에서 어디에 앉겠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예매를 하고 현장에 가서 표를 수령하는 방식이다. 표를 수령할 때 임의로 좌석 지정이 되는데, 이때 전체 좌석에서 장애인 예매가 가능한 좌석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마저도 수량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뒷좌석 몇 줄을 지정해뒀기 때문에 앞자리에 앉고 싶어도 앉을 수 없다. C사에서는 뒷자리 몇 줄을 장애인 예매석으로 지정하고 나머지 앞자리 대부분을 비워둔 상태였다. 비장애인이 볼 수도 있다는 전제였다. 하지만 지난 6월, 기자와 장애인 당사자들이 함께 찾은 장애인 영화관람데이 상영관에서 비장애인 관람 좌석을 구매해 영화를 관람한 비장애인은 단 2명이었다.
A씨는 현재 C사를 대상으로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A씨는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정당한 편의제공을 요구했지만 C사는 이미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고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C사는 자신들이 장애인 관객을 위해 ‘장애인 영화관람데이’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화관에 보청기를 구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답변을 받은 청각장애인 당사자가 서울의 한 C영화관을 찾아가 보청기를 요청하자 해당 영화관 직원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비장애인과 함께 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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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사는 ‘장애인 영화관람데이’를 ‘비장애인들과 함께 극장에서 최신 한국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하는 ‘행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영화관람데이’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매 홈페이지에 접속해 영화시간표를 조회해도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관은 찾아볼 수 없다. ‘장애인 영화관람데이’에 영화관을 찾아가 현장에서 예매기계를 이용해도 배리어프리 영화 시간은 시간표에서 누락돼 있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장애인 영화관람데이’가 있다는 명시조차 돼 있지 않다. 영화사 고객센터와 통화하며 ‘장애인 영화관람데이’에 대해 문의하고자 해도 불가능하다. 공식 고객센터 상담원은 매달 배리어프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와 통화한 고객센터 상담원은 “그런 이벤트는 없다”고 못 박다가 되려 기자가 상세하게 설명하자 당황하며 주변 상담원에서 물어보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다른 부서에 알아보고 전화주겠다”던 상담원은 다시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비장애인은 기본적으로 배리어프리 영화가 상영된다는 정보를 찾아볼 수도 없고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다고 해도 시간표상 언제, 어디서 하는지 알 수 없다. 알아보기 위해 직접 고객센터로 전화를 해도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비장애인이 배리어프리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우연히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지점의 영화관에서 ‘장애인 영화관람데이’라는 플랜카드를 발견하면 티켓박스로 가 발권을 도와주는 직원에게 시간을 물어보고 비장애인이지만 배리어프리 영화를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그러면 직원은 배리어프리 영화가 무엇인지 설명한 뒤, 빈 좌석이 표시된 화면을 보여준다. 비장애인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뒷줄 몇 줄을 제외한 3분의 2 정도 되는 좌석이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할인 아닌 동등한 관람 원해
시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선택권 보장이 필요하다. 비장애인과 같이 다양한 날짜와 시간대에,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들만이 이용하는 네트워크에서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 예매가 가능해야 한다. 영화관 내 점자 안내와 수화 안내도 준비돼야 한다. 그리고 폐쇄형 편의지원이 시급하다.
현재 장애인 영화관람데이가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은 개방형이다. 상영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음성으로 화면해설이 나오고 동시에 스크린 자막이 나타난다. 이는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데에 적절하지 않으며, 어느정도 청력이 살아있는 청각장애인들에게도 불편한 방식이다.
폐쇄형으로 각 개인마다 자막이나 화면해설을 제공해야 한 공간 안에서 누구도 불편을 감수하지 않을 수 있다. 다양한 영화의 자막, 화면해설, 거기에 폐쇄형 시청각 지원 기계 구입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영화사업자가 장애인을 고객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할인은 필요 없다”며 “비장애인과 동일한 가격으로 똑같이 예매하고 신용카드 할인을 받는 걸로 충분하니, 우리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길 원한다”라고 밝혔다.

작성자글과 사진 조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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