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하게 갇힐 권리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평등하게 갇힐 권리

싸워줘서 고맙다

본문

  14920_14113_010.jpg  
 

“정부에 항의하는 집회참여자가 자살을 합니까?”

“길어야 유치장에 48시간 있을 뿐인 시국사범이 자살을 하는 거 봤어요?”

2008년 8월 15일, 서울 곳곳의 경찰서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여성시위자들을 유치장에 입감하기 전 ‘자살 방지’라며 그녀들의 브래지어를 벗겼다. 이 사실을 알고 인권단체와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마포경찰서에 찾아가 경찰관들에게 따지면서 한 말이다. 집회시위자인 여성들은 자살할 가능성이 없는데 이러한 조치는 부당한 국가폭력이며 정부정책을 비판하니까 본보기로 괴롭히는 거 아니냐고 항의했다. 경찰들은 일부러 촛불집회 참여자들만 한 게 아니라 그동안 마포경찰서는 ‘자살 방지’를 위해 여성들이 들어오면 다 속옷을 벗겼다고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경찰 말대로라면 집회시위자가 아닌 여성들은 그러한 부당한 일을 계속 당했다는 말인데 그건 용납해도 되는 것일까. 만약 경찰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른 범죄로 들어온 여성들도 속옷이 벗겨진 채 조사를 당해야하는 수치심을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왜 경찰들은 여성의 속옷‘만’을 벗겼나?

경찰들이 근거로 내세운 것은 <경찰 업무편람>과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이었다. <경찰 업무편람>에는 “구두끈, 양말, 런닝, 브래지어 등을 이용 목을 매어 자살”할 수 있고 “브래지어도 끈이나 철제와이어, 매듭쇠 등이 자살 또는 자해 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위험성을 설명하고 제출받아 보관함”으로 돼 있었다. 자살 예방을 위해 위험한 물건인 브래지어를 여성유치인이 착용해서는 안 되기에 벗겼다고 했다. 그때는 8월 여름 한철이라 겉옷이 매우 얇아 속이 비치는 경우도 많았다. 조사를 한 경찰들이 남자였으니 그녀들은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 업무 편람>에 따르면 남성유치인의 런닝도 벗겨야 한다. 왜 벗기지 않았을까? 경찰의 말대로라면 남성유치인들도 자살 예방을 위해 속옷을 다 벗겨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우리사회 성별 규범에서는 남성들에게 런닝을 벗도록 강요하는 것은 위협이 되지 않지만, 여성에게 브래지어를 벗도록 강요하는 것은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에게 속옷-브래지어가 차지하는 사회적 관념이 있기에 브래지어 탈의는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반면 ‘남성의 강함’을 강조하는 남성들에게 효과적인 폭력은 완력-물리적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부장적 국가에서 국가폭력은 성별화돼 나타났다.

더구나 조사를 위해 연행된 사람들이 경찰서 유치장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에 대한 조치가 교도소보다 심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교도소에서도 여성수용자들은 1인당 3개의 범위 내에서 브래지어를 가질 수 있다. 경찰의 조치는 과잉폭력이었다.

그 후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했지만 인권위는 어이없는 권고를 했다. 인권위는 ‘브래지어 탈의 자체’는 가능한 일이지만 ‘보완조치’가 미흡하다고 결정했다. 어찌 보면 균형 잡힌 결정인 듯 보이지만 보완조치만 하면 속옷을 탈의시켜도 된다는 뜻이다. 여성들에게 국가가 강제로 브래지어를 탈의시키는 것이 왜 문제인지 근본적인 입장이 없는 경찰 측 입장과 다를 바 없다. 국가폭력이 여성들의 속옷 탈의까지 영향을 행사하는 것의 문제를 짚지 않았다. ‘자살 예방’의 명분이라지만 아직까지 여성유치인 중에 브래지어로 자살한 기록은 한국에 없다. 단지 양말과 속옷 등의 끈에 의한 자살이 몇 건 있었을 뿐이다.

결국 피해당사자들은 국가배상 소송을 했고 법원은 “경찰 업무편람은 브래지어가 자살・자해에 이용될 수 있어 유치인에게 이를 설명하고 제출받는 것으로 규정하나 위 편람은 법규명령이라고 볼 수 없는 점”, “유치인들의 자살 예방을 위하여 피해가 덜 가는 수단을 강구하지 아니한 채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2013년 대법원 판결 이후 인권단체들은 경찰청에 질의했고 경찰청은 같은 해 3월 경찰업무편람 ‘4-5 유치장사고 및 피의자 도주사고 방지’ 자살․자해사고 유형에서 브래지어를 삭제했다.

 

교도관들은 왜 그녀의 속옷을 벗겼나?

그때로부터 8년이 지난 2016년 우리는 비슷한 국가폭력을 접했다.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은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4월 29일 노역을 살러갔다가 서울구치소에서 강제 알몸검신을 당했다. 구치소에 입소하면서 신체검사를 할 때 교도관들은 그녀에게 속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마약사범도 아니고, 문신·수술자국도 없다’고 거부하자 3명의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강제로 속옷을 벗겼다.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수치스러웠다. 유 분회장이 한 일이라곤 노동자에게 사기를 치고 임금을 주지 않은 최동열 회장의 집을 찾아가 현관 벨을 눌렀을 뿐이다. 회장은 못 만나고 경찰에 연행됐다. 최 회장은 불법파견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복귀시키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어기고 몰래 공장을 팔아먹고 야반도주했다. 법원은 현관 벨을 누른 건 ‘주거 침입’이라며 분회장에게 벌금 150만원을 내렸다. 반면 노동자들이 최 회장을 상대로 낸 배임‧사기죄는 무혐의로 판결했다. 해도 해도 너무 부당한 판결이어서 그녀는 노역을 선택했다.

14일만 노역하면 되는 그녀의 속옷을 교도관들이 강제로 벗긴 이유는 뭘까? 아마도 유 분회장의 죄목이 ‘주거침입’인데다 벌금도 150만원이기 때문이리라. 교도관들이 보기에 그녀는 집회시위법 위반이나 노조법 위반 같은 시국사범도 아니고 벌금 150만원도 마련할 여력이 없는 가난한 ‘잡범’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강제로 옷을 벗기면서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소송해도 진다”고 했을 것이다. 잡범의 인맥이나 빽, 사법적 도움을 어떻게 받냐 싶었을 게다. 이미 몇 달 전에 민주노총 여성 간부도 서울구치소에 갔지만 이러한 경우는 없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을 하다 벌금형을 맞은 여러 여성활동가들이 노역을 갔지만 이렇게 강제 속옷탈의 검신을 당한 적은 없다. 그리고 다들 짐작하겠지만 재벌 회장님들이 교도소에 가면서 강제 알몸검신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교도관들은 뻔뻔하게 “여기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알몸검신을 한다”고 했다. 계급과 성별, 범죄의 사회적 위계를 벗어난 평등하게 갇힐 권리는 서울구치소엔 없었다.

교도소는 법무부훈령인 계호업무지침에 따라 신체검사를 한다. 다만 위험물품이나 마약을 반입해서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체검사를 정밀하게 할 수 있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그렇다고 모든 수용자들에게 알몸 검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신체검사는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또한 수용자의 명예나 수치심을 포함한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하라고 했다. 그러나 계호업무지침에 신체검사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이 없다보니 교도소장이 인권의식이 없거나 보수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무부장관에게 “기본권 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검사 범위, 검사 실시 인원, 장소 등에 대한 기준을 체계적으로 마련”하라고 권고한 이유다.

교도관들의 말대로라면 이른바 ‘잡범’-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은 알몸검신이라는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뜻이다. 교도소에 있다고 개인의 인권이 모두 박탈되거나 모욕적 처우를 받아도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제대로 서울구치소를 조사하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했다. 실제 유 분회장이 구치소에서 만난 여성수용자들은 생리 중에도 알몸신체검사를 받았다며 자신들이 그동안 겪은 여러 인권침해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분회장에게 “싸워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생활하기 편한 교도소?

마포경찰서에서 여성시위자만이 아닌 모든 여성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했듯이, 서울구치소에서도 비정규노동자의 인권만이 아닌 ‘힘없고 빽없는’ 모든 수용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시국사범’ 또는 ‘양심수’만이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권을 존중받아야한다.

그러고 보면 장애인권활동가들의 투쟁으로 구금시설의 장애인편의시설은 이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경찰이나 구치소 측은 장애인권활동가들이 노역을 사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구금시설에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어야 하지만 거기에 비용을 많이 쓰려 하지 않는다. 군산교도소 등 일부 교도소에서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들이 생활할 수 있는 방이나 화장실 등을 마련했지만 대부분의 교도소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활동보조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아 밥은커녕 배변도 어렵다. 그야말로 중증장애인들은 교도소에선 매일 고문을 당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면 유치장이나 교도소가 장애인이 생활하기 편하도록 바뀐다는 것은 장애인 인권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더 많은 장애인이 잡혀갈 수 있게 되면 장애인인권이 후퇴하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구금시설의 개선은 ‘장애인도 위법할 수 있는 인간’의 반열에 오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서도 장애인은 정책을 세울 때 고려사항에서 빠지곤 한다. 장애인은 시민권이 없는 유령이다. 따라서 국가시설인 교도소나 유치장을 만들 때 비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을 고려하게 하는 일은 중요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가 “여성들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줘야 한다”고 주장한 말과 비슷하리라. 그녀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된 인권 선언이 ‘재산 있는 백인 남성의 권리 선언’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1791년 <여성과 여성시민의 인권선언>을 발표했다. 그녀는 여성만이 아니라 어린이, 노예 등 모든 소수자들의 인권을 요구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연설을 한 그녀는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올랭프 드 구즈처럼 국가가 처벌을 높일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가두는 일이 많아지길 바라는 건 아니다. 감옥에서의 장애인편의시설을 마련하라는 우리의 요구가 장애인을 많이 잡아가라는 뜻은 아니다. 국가권력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구금시설은 최소화돼야 한다. 국가의 형벌권이 강할수록 인권은 후퇴되기에 감옥인권만이 아니라 감옥에 가는 일 자체를 줄여야 한다. 다만 나의 바람은 장애인도 부당한 법에 맞서 법을 넘나들며 싸우는 존재라는 사실, 여성혁명가 올랭프 드 구즈처럼 부당한 반인권의 사회질서를 거부하는 장애인혁명가가 있음을 국가가 깨닫는 일이리라.

 

 

 

작성자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