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 장애여성에게 똥침한 사회복지사 유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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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3차례에 걸쳐 발가락으로 피해자의 엉덩이와 항문 부위를 찌른 행위는 생활지도사인 피고인의 보호를 받는 중증 장애인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신체에 직접 유형력을 행사하여 육체적 고통을 주고, 모욕감 등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고 보이므로, 모두 형법 제273조 제1항의 학대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인 A를 벌금 100만원에 처한다.”
2016. 5. 4. 소리 없는 침묵이 흐르는 법정에서 재판장은 위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 위 사건은 경기도 내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종사자가 손과 발이 자유롭지 못해서 신변처리에 도움을 받고 있는 뇌병변 장애여성에게 수차례 똥침을 한 사건이다.
피해여성은 인권지킴이단 회의에서 이 사실을 알렸으나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자 이후 2014. 10. 22. 성추행으로 고소했다. 그러나 종사자가 여성이라서 의도적인 성추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검사는 공소장을 ‘학대죄’로 변경해서 사건을 진행시켰고 형법상 학대죄로 인정하기에는 ‘똥침’이라는 행위가 유기에 준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던 해당 거주시설 종사자들은 피해여성을 통해 피고 A가 똥침을 한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단순한 장난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는 재판을 지켜보면서 ‘똥침’을 장난으로 생각했다는 종사자들의 발언에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피해자가 비장애인이었다면 똥침을 하는 피고의 손을 잡았거나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손과 발이 자유롭지 않은 피해자는 무방비 상태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을 지원해주는 종사자에게 화를 내거나 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종사자에게 하지 말라며 화를 내면 될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겪는 부당함에 대해 얼마나 거부하며 살고 있는가?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면 해고를 당할까봐 전전긍긍하며 말 못하고, 지도교수의 부당한 요구에도 학점에 영향을 받을까봐 거부하지 못하고, 남편의 폭력을 거부하고 나가면 살 곳이 없을까봐 매 맞고 사는 여성들, 누가 그들을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거부하려면 적어도 동등한 권력과 동등한 결정권 그리고 동등한 자원이 갖춰진 상태여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세상이 과연 그러한가? 특히 종사자에게 화장실 가는 일부터 밥 먹는 것까지 일상생활 전부를 지원받고 사는 장애인이 크게 화를 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또한, 그러한 마음과 사회구조를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인권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센터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의 위치와 어려움 등을 담은 의견서를 검사에게 제출하며 항소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검사는 항소를 했고 이후 항소심이 열렸으며 드디어 1심을 뒤집고 학대죄가 인정됐다.
1년이 넘는 기나긴 터널을 지난 끝에 학대가 인정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 거주시설의 특성을 반영해 학대죄를 선고했다는 점에 있어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피해여성은 자립홈에서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인권센터는 피해자가 경찰조사를 받을 때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했고, 이후 자립을 원하는 피해자를 위해 자립홈을 알아보는 등 사후지원에 주력했다. 뇌병변장애 2급인 피해자가 처음 자립을 원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난감함을 표했다.
혼자서 밥 먹기도 힘든 장애인이 자립해서 홀로 살아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강한 의지와 자립생활센터의 도움으로 결국 자립홈에 입소할 수 있었고 현재는 활동보조인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피해자는 나와의 면담에서 “시설에서 나오니까 행복해요. 우선 내 방이 있어서 좋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TV도 마음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시설에 있을 때는 다 같이 자야 되고 다 같이 먹어야하고 군대와 똑같았거든요.”라고 말했다.
물론 활동보조인을 지원받는 시간이 모자라서 처음엔 고생도 많이 했고 편의시설이 갖춰진 시설에서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부딪히는 물리적 장벽과 사람들의 시선이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지 않았던 길을 가려면 넘어야 할 산도 있고 예상치 못한 일도 겪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닐까? 물론 그 산이라는 게 사람들이 장애인들에게 불리하게 만들어 낸 제도이며 정책이고 편견이여서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한 발 한 발 전진하며 주변을 변화시키다보면 어느 새 산 정상에 올라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복지실천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을 만나면 “인권을 너무 강조하니까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이제는 인권이 무엇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리고 나에게 인권센터 직원이니까 해답을 달라고 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나에게 있는 권리가 장애인에게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인권의 시작이다.’ 라고 말한다.
물론 인권관점에 기초한 사회복지실천이 사회복지사 혼자서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기관과 제도, 복지사와 장애인이 함께 노력해야하는 상호순환적인 과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향후 종사자들이 겪는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를 탐색하고, 그 실천적 대안을 논의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피고 A씨는 상고를 한 상태이다. 상고를 한 이유가 자의에 의한 것인지 또는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자신의 행위가 장애인에게는 얼마나 수치스러운 행동이었는지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항거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장애인에게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똥침’은 폭력이자 학대이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되뇌어보라.
지금은 상고까지 하면서 무죄임을 주장하기 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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