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더 나빠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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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이하 활동지원)의 목적
보건복지부 소관 장애인정책 중 하나인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벌써 다섯 해를 맞았다. 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탈시설 욕구와 맞물리면서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활동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애등급에 따른 신청자격의 제한, 의학적 기준 위주의 인정조사표 적용, 다양한 욕구반영 미흡 및 사후관리 체계 부실 등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돼 왔다. 이번호에서는 활동지원의 문제점 가운데서도 최사각지대에 있는 피해 사례들을 살펴보겠다.
<사례1>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자격 ‘제외대상’ 기준 때문에
광주광역시에 홀로 거주하는 A씨는 50대 초반 여성으로 뇌병변장애 1급이다. 2003년 갑작스러운 ‘근무력증’진단과 진행형 다발성경화증을 확진받아 2005년 뇌병변장애 2급으로 등록됐으며 2009년
뇌병변장애 1급으로 상향조정됐다. 두 다리와 오른팔을 움직일 수 없어 와상상태로 생활하며 혼자서는 앉거나 이동하기, 신변처리, 식사 등이 불가능하고 야간에는 기저귀를 착용해야 한다. A씨는 2010년 지인의 도움으로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이하 노인요양서비스)에 대해 알게 돼 신청했고 3등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 월, 금요일은 3시간 30분, 화, 수, 목요일은 3시간만 요양보호사를 지원받고 있다. 노인요양서비스 신청 당시, A씨는 활동지원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주민센터 담당자, 건강보험공단의 방문심사 등 어떤 공공기관에서도 활동지원 관련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A씨는 노인요양서비스의 경우 월 70시간 정도만 요양보호사가 지원되지만, 활동지원은 월 최대 391시간 활동보조인 지원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6년 1월 활동지원서비스로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장애인활동지원법 상 노인요양 등급을 판정받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활동지원 신청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례2> 활동지원서비스 추가급여 기준 때문에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B씨는 40대 후반 여성으로 지체장애 1급이다. B씨는 남편과 이혼 후 올해 고3이 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한 초기와 달리 10년이 지난 현재는 근육병이 많이 진행돼 스스로 앉고 누울 수조차 없는 상황이며 잠을 자는 시간에도 체위변경이 필요해 24시간 누군가의 손길이 간절하다.
그나마 아들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챙겨줄 수 있었던 것은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두 사람의 활동보조인이 A씨 모자를 도왔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 인정점수 415점을 받아 1등급이 된 A씨는 기본급여 118시간에 추가급여 273시간, 광주광역시에서 지원한 추가 37시간으로 현재, 총 428시간을 지원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활동보조서비스 ‘수급자격 갱신’을 위해 집에 방문한 국민연금공단 직원이 “자녀가 만 18세가 넘으며 추가급여가 200시간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아들이 만 18세가 되는 2016년 4월 28일자로 취약가구 추가급여 지원이 끊겨 최종 200여 시간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앞으로 활동보조인이 퇴근하는 오후 5시 이후부터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밤 11시까지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하고, 또 늦게까지 공부하고 귀가한 아들이 엄마의 저녁 식사준비와 대소변 처리를 해야 한다.
달라진 장애인활동지원사업 지침 변경내용
<사례1>에서 A씨가 노인요양서비스를 신청한 2010년에는, 활동지원서비스의 전신이 장애인활동보조사업이 운영 중인 시기였으나 동주민센터, 건강보험공단 등 어떤 공공기관에서도 관련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해당 기관에서 이를 고지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나 장애인이 일반적으로 정보 취득 면에서 어려움이 많기에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진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대해 광주장애인인권센터의 도연 활동가는 “노인요양서비스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고, 활동지원은 국민연금공단에서 담당하는 사업으로 사업기관이 다르다. 피해자가 동사무소에서 노인요양서비스를 신청했을 당시, 혹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등급을 매기려고 방문했을 때 어느 누군가가 판단을 하고 ‘당신은 장애인이고 65세 미만이니까 활동보조사업이 더 적합하다’고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데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고 답했다. 더욱 안타까운 대목은 달라진 장애인활동지원사업 지침 변경내용 때문이다.
제시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만 65세 미만인 장애인이 장애인활동지원급여 신청 전 노인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여 노인장기요양등급이 결정된 사람은 노인장기요양수급권을 포기하더라도 활동지원급여를 받을 수 없음을 상세히 안내할 것”이라는 항목이 추가됐다. 지침이 추가됐다는 것은 그만큼 민원이 많았다는 반증이니, A씨와 유사한 피해를 겪은 장애인이 많았음을 예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장애인차별추진연대의 김성연 국장은 “A씨처럼 아예 활동지원제도를 몰랐던 분도 있으나, 활동지원제도를 알고도 요양제도를 먼저 이용하고 훗날 변경하겠다고 계획한 사람, 또 요양병원 입원 등의 이유로 요양제도서비스를 신청했다가 퇴원과 동시에 활동지원으로 변경을 원했던 사람 등 피해자가 상당수다”고 답했다.
선택권? 아니, 생존권!
만 65세 미만의 장애인에 대해 단지,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먼저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활동지원서비스’에 신청할 수 없도록 하는 지침이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에 대해 도연 활동가는 선택권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제한하는 생존권의 문제라고 답했다.
“A씨가 현재 요양서비스를 많아봐야 하루 서너 시간 사용하는 정도인데 활동지원서비스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지원한다. 만약 그 차이가 두 배라면 이 분의 삶은 얼마나 많이 달라질 수 있을까 예측해 볼 수 있다. ‘세 시간으로도 괜찮은데 여섯 시간이면 더 만족스러워’이러면 선택의 차원이지만 와상장애인인 이 분에게는 ‘밥 한 끼를 먹고 화장실을 가느냐, 아님 밥 두 끼를 먹고 화장실을 가고 씻느냐 차원이다. 곧 생존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성연 국장은 선택권을 운운하는 것 자체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양쪽의 서비스 중 어느 한 쪽을 이용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양서비스는 요양에 초점 맞춘 것이고, 활동지원은 장애인 당사자의 지역사회 자립에 초점을 맞춘 것이니 두 서비스는 엄연히 다른 성격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사실은 두 제도를 중복 이용해도 문제가 없어야 옳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중복 이용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최소 장애인 당사자가 처한 현실에 맞춰 두 개의 서비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끔 해야한다”고 답했다.
내 자식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만 18세의 대다수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그 시기의 학생들은 과도한 입시경쟁 탓에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다. 그러나 1급 지체장애인 엄마들 둔 <사례2> B씨의 아들은 자신이 만18세가 됨으로써 삭감된 활동지원의 추가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거나 적정선을 찾기 위해 현실과 타협해야 할지도 모른다. 설사 법령의 기준이 만 19세가 된다고 한들 20세의 새내기 대학생 혹은 사회의 초년생들이 장애가 있는 가족을 부양할 여건이, 혹은 의무가 있는지에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현재는 그 기준이 만 18세이다.
만 18세라는 법령 기준의 부당함에 대해 도연 활동가는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만 18세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가족과 자녀에게 활동지원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사안은 결국 국가가 장애인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성연 국장도 같은 지적을 했다. “가족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다. 이로써 가족입장에서 장애인은 부담이 될 것이고 장애인 당사자도 가족과의 관계가 어려워진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B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소망하건데, 내 자식이 대학교도 가고 번듯한 직장을 구할 때까지 만이라도...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부모의 장애로 인해 함께 근심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내용을 담아 진정서를 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로부터 “가구 구성원이 만 18세 이상이 되면서 취약 가구에 해당되지 않게 돼 추가급여가 감소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국가의 한정된 재원으로 보다 더 어려운 분들에게 혜택을 주기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을 널리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 활동지원인의 도움을 받는 김율만 씨 |
“저 같은 사람 모아서 소송하고 싶어요”
작년 연말 공중파 방송을 통해 알려진 한 가족이 있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인 김율만 씨와 당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그의 여동생이다. 율만 씨의 몸에서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혀 하나이다. 그래서 그는 혀로 보조기구를 작동해 한 자 한 자 글씨를 쓰고 공부를 한다. 물조차 스스로 마실 수 없는 김율만 씨에게 그간 손발이 돼 준 사람은 활동보조인이었다. 그러나 여동생이 만 18세가 되며 활동보조 지원이 절반 이상 삭감될 위기에 놓여있었다. <사례2>의 B씨와 같은 피해를 입은 것이다. 율만 씨는 작년 연말 A4용지 2매가 넘어가는 긴 호소문을 적어 냈고, 언론사, 장애인단체 등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으로 모두 보냈다.
김율만 씨의 근황을 알아보고자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았다. 율만 씨는 거실에 놓인 침대에 누워 취재진을 맞아 줬다. 활동지원인의 말을 빌리자면 율만 씨는 3일 째 고장이 났던 스크린이 수리돼 컨디션이 좋다고 했다. 200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컴퓨터 기기는 그의 유일한 세상과의 통로이다. 마우스 구실을 하는 보조기구를 혀로 움직였고, 왼손에 놓인(쥘 힘이 없어서 붙인 상태의) 보조기구를 터치했다. 그것을 작동해 방송도 시청하고, 학교 수업도 받으며, SNS 활동도 한다. 그를 돕는 활동지원인은 두 명이고 취재진이 찾은 시각에 있던 활동지원인은 그의 곁을 5년째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노트에는 업무 시간인 오후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의 김율만 씨에 대한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 김율만 씨에 대한 매일의 기록이 적힌 활동지원인의 노트 |
활동지원인은 “물은 한 시간마다, 스트레칭은 꾸준히 해줘야 해요. 두 시간마다 자세를 고쳐줘야 욕창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계속 누워 있어 소화력이 떨어지고 5~6일마다 관장을 하는데 그 부분을 율만 씨가 제일 괴로워합니다”라고 답했다.
2007년부터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기 시작한 율만 씨는 동생이 만 18세가 됨으로써 기존에 받던 총 496시간에서 223시간으로 삭감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다행히 한 공중파 방송이 이를 보도하며 구청이 나서 율만 씨에게 조금이나마 추가지원을 약속했다. 현재는 복지부에서 201시간, 지자체에서 100시간을 지원해 총 301시간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의 상태로 보자면 301시간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당장만 해도 활동지원인을 쓸 수 없는 30, 31일을 맞닥뜨릴 처지였다.
다행히 율만 씨가 마음 넉넉한 활동지원인분들을 만났지만 언제고 그분들께 무료 봉사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율만 씨는
“저. 같. 은. 사. 람. 모. 아. 서. 소. 송. 하. 고. 싶. 어. 요”라고 말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사례2> B씨와 같은 피해자들 중 일부가 낭떠러지 앞까지 내몰려 잡고 마는 동아줄은 가족이 떨어져 사는 방법이다. 법망을 벗어나 세대를 분리하고 독거세대가 되면 기존의 활동지원 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의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 만들어진 활동지원제도가 가족을 해체시키는 꼴이 된 것이다. 결국 그마저 썩은 동아줄인 셈이다. 도연 활동가는 “합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활동지원이 깎인 상태로 근근이 생활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범법자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부당한 활동지원삭감은 정부가 장애인에게 ‘죽거나 아니면 나쁘거나’ 하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연 활동가는 두 사례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자체의 의지를 촉구했다. “추가시간의 지원 기준을 세우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복지부에서는 유사중복사업의 이유로 딴죽을 걸게 되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중증장애인 100명에 대해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지원할 때도 복지부가 사회보장사업 유사중복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서울시는 강행하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도 그런 결단력이 필요하다.”
도연 활동가는 <사례1>의 방안에 대해 더 난색을 표했다. “<사례1>에서 그 지침이 과도하게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내용으로 소송을 고민해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노인요양서비스를 포기하고 활동지원을 신청해야 하는데 소송하고 결과를 받아보기 전까지 요양보호사도 활동지원인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그 사각지대의 안전망을 지자체의 추가예산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성연 국장은 활동지원제도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 등급제 폐지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활동지원제도는 기본적으로 기초수급, 부양의무제, 등급제와 한 선상에 있다. 획일적인 시스템인 등급제가 폐지돼야 그 등급을 기준으로 판별되는 활동지원제도 자체도 개인에게 맞춘 제도로 바뀔 수 있다”고 답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정당한 편의제공이 인적자원까지 포함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당사자가 본인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을 제공받도록 명시한다. 결국 활동지원제도는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활동지원제도는 서비스가 있고 사람이 거기에 맞춰야 하는 모양새다. 활동지원제도의 목적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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