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도 예방도 없는 장애인 경제적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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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3>의 후견인이 제출한 수급비 사용 내역 증빙 서류. 통장에는 차량 주유 등 피해자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지출내역이 있고 영수증에는 피해자와 관계없는 어린이 용품과 식품 지출 내역이 있다. |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심각성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유기, 방임 등 장애인 학대는 다양한 형태를 띈다. 이 중 여론의 관심을 받는 경우는 대부분 눈에 보이는 신체적 피해가 드러나는 학대다. 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제적 학대’는 그 심각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중들의 뇌리에 대표적인 장애인 학대 사건으로 자리잡은 염전피해장애인사건도 노예처럼 부려졌고 욕설을 듣고 맞고 생활환경이 열악했다는 등의 신체, 정서적 학대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경제적 착취에 대해서 공감하고 충분히 보상을 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경제적 학대는 타 유형의 학대들에 비해 한발 밀려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피해 당사자인 장애인의 재산 규모가 비장애인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낼 만큼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받는 수급비만 놓고 보자면 장애인 당사자가 받는 금액은 한달에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를 매달 착취해 썼다는 피해 사실은 장애인을 때리고 굶겼다는 피해 사실에 비해 약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급비가 장애인 당사자의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금액, 즉 전 재산임을 감안하면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문제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가 2015년 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전국 장애인인권상담전화를 통해 진행한 2,171건의 학대 관련 상담 중 가장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도 바로 경제적 학대였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인권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경제적 학대는 전체 학대 상담 중 38.4%(1,042건)에 이르렀다. 인권센터 이정민 변호사는 장애인학대범죄처벌특례법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착취는 매우 심각할 뿐 아니라 가장 빈발하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장애인학대범죄처벌특례법에 경제적 착취가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례1. 가족 아닌 가족의 착취, 당사자 방치한 채 수급비 횡령
지방의 작은 도시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A씨는 오래전 양부모를 만나 양부모 아래에서 친자식과 함께 자랐다. 50년 이상 가족으로 함께 살아오던 중, A씨의 양부모가 모두 사망하자 A씨는 양부모의친딸 내외와 함께 살게 됐다.
A씨에 대한 경제적 착취가 드러난 것은 한 지자체 공무원이 급여관리 대장을 눈여겨 보면서였다. 수급자로 등록된 A씨는 생계급여와 장애연금을 받고 있었는데, 급여관리 대장의 지출 기록은 A씨의 연령대와 성별, 생활 반경을 벗어난 것이었다. 특히 A씨가 장거리 이동을 한 적이 없었음에도 A씨의 수급비가 타 지역에서 지출된 부분에서 의혹은 증폭됐다.
해당 지역에서 사용된 내역에는 생활비 명목의 지출과 각종 쇼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A씨의 생활환경은 수급비의 영향권 밖이었다. A씨의 집은 딸 내외의 호화로운 집 옆에 별도로 붙어있는 작은 방 한 칸이었다. 방 안에는 침대와 나오지 않는 티비, 옷장 등이 덩그렇게 놓여 있었고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 난방과 온수를 사용할 수 없었다. 내부에 화장실 조차 없어 방 밖의 간이화장실에서 용변을 해결해야 하는 구조였다. 까맣게 변색된 음식물이 방치돼 있음은 물론이고 요리도구 등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지자체 공무원의 제보로 A씨를 찾은 인권센터 상담자가 식사에 대해 질문했을 때 A씨가 기억하는 반찬은 ‘김치’뿐이었다. A씨가 받는 용돈은 이따금 양부모 딸이 주는 천원, 오천원이 전부였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수급비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 A씨는 상담자가 수급비에 대해 설명해주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뿐만 아니라 양부모 딸의 남편은 A씨의 명의를 도용해 의료혜택까지 챙겼다. 보일러도 되지 않는 허술한 방에 A씨를 방치한 채 A씨의 돈을 쓰고 A씨의 의료혜택으로 자신들의 몸을 돌본 것이다. 의료혜택의 경우, 지자체에서 문제로 인식하고 처벌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수급비 횡령은 처벌이 불가능했다. 지역 내 복지관에서 A씨의 수급비 관리를 맡기로 했지만, 딸 내외는 여전히 A씨를 위해 썼다며 각종 영수증을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례2. 지적장애 특성을 악용한 이웃
지적장애인 B씨는 노모와 함께 살면서 아르바이트와 수급비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러던 중 이웃의 한 비장애인 C씨가 B씨를 찾아왔다. C씨는 B씨에게 수급비와 아르바이트비를 자신에게 주면, 그 돈들을 불리고 동시에 B씨가 결혼을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설득했다.
C씨의 말에 B씨는 이후부터 통장으로 입금되는 모든 돈을 출금해 C씨에게 전달했다. 수급비가 들어오면 노모와 함께 은행을 찾아 꼬박꼬박 출금해 가져다 준 것이다. 노모 또한 노환으로 인해 인지능력이 떨어진 상태라 B씨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C씨는 그 돈을 자신의 돈처럼 개인적으로 사용하면서, 종종 선심 쓰듯 집 관리비와 약간의 용돈을 B씨에게 지급했다. 그렇게 C씨가 B씨의 돈을 꼬박꼬박 받아온 기간은 3년이 넘었다. 총 피해 금액이 수천만 원 수준이었지만, 형사 처벌을 위한 수사 과정에서 이것을 입증하는 것은 어려웠다.
한편 C씨의 부인은 B씨와 노모의 오래된 재산마저 빼앗았다. ‘빌려달라’는 C씨 부인의 말에 B씨는 오래전 친척이 남겨준 재산마저 모두 C씨 부인에게 넘겼다. 하지만 빌려달라던 돈은 다시 B씨에게돌아오지 않았다.
▲ <사례3>의 피해자가 살던 컨테이너 내부. 화장실 등 필수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
사례3. 컨테이너에 방치하며 ‘네 통장을 내 통장처럼’
포항시의 한 기와공장에서 살고 있는 A씨에게 주어진 공간은 도로가에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였다. 컨테이너 박스 옆에는 제작된 기와가 높게 쌓여 있었다. B씨의 경제적 착취는 오랫동안, 활발하게 이뤄졌다.
B씨는 2004년 A씨를 한정치산자로 만듦과 동시에 자신을 A씨의 후견인으로 신청했다. 이후 후견인 지위를 이용해 금전거래를 포함한 A씨의 생활을 모두 본인이 결정했다. A씨의 수급비가 입금되는 통장의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체크카드는 B씨가 소지하고 있었고, 통장 이용 내역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계좌이체 내역과 현금 출금 내역이 줄을 이었다. 명의도용 또한 빈번했다. B씨의 핸드폰과 자동차는 모두 A씨 명의로, 핸드폰 요금과 자동차 연료 충전 비용, 범칙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련 비용을 A씨의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했다.
예방센터가 A씨를 찾은 바로 전 날에도 B씨는 A씨에게 ‘빌린다’는 명목으로 140만원을 이체해갔다. 하지만 A씨는 140만원을 빌려간 사실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B씨는 ‘노후를 위한 것’이라며 2,500만원에 무허가 건물을 구매해 A씨가 매매대금을 송금하도록 했고, A씨가 경주에서 거주하던 열악한 컨테이너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실제로 A씨는 경주의 컨테이너 생활에 대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설명해, 컨테이너 내부 난방이 일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한 비가 와도 기와 일을 했다고 말했지만, 경주시의 기와공장에서 A씨가 받은 돈은 한 푼도 없었다.
A씨가 일한 댓가는 모두 B씨에게로 돌아갔다. A씨는 “아빠가 나한테 돈은 한 푼도 주지 않고 사장한테 월급은 자기한테 보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B씨는 후견인임을 앞세워 A씨를 오랜 기간동안이용해 자신의 주머니를 채운 것이다.
“내가 돌봐주고 관리해 주는데 돈 좀 쓴 게 무슨 착취냐”
경제적 착취가 드러난 가해자들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주는 것만으로 장애인의 돈을 자신에게 쓸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수급비로 들어온 돈을 공동생활비로 썼다고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실제로 피해 장애인의 옷차림이나 식사 수준,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조금만 살피면 그 공동생활비 중 피해 장애인에게 도달한 금액은 매우 미미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은 지낼 공간과 먹을 밥만 있으면 된다는 인식에서부터 경제적 착취는 시작된다. 수급비 내에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더 좋은 환경은 당사자에게 돌아오지 않고 비장애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하지만 명백한 경제적 착취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처벌은 쉽지 않다. 형사적 처벌을 위해서는 정확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마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수급비 착취가 함께 사용했다는 판단 하에 무마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폭행 등 신체적 학대와 같은 경우에는 형사 절차를 밟으면 인정이 되는 편이지만, 수급비 횡령 등 경제적 착취는 공동으로 지출했다고 판단되기 쉬워 인정 받기가 어렵다. 함께 사는 경우에는 가스비 등을 함께 썼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출된 돈 중 정확히 어떤 지출건이 가해자가 쓴 것이고 어떤 지출이 당사자를 위해 쓴 것인지 구분해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지적장애인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비장애인 중심의 기준이 수사 과정에 적용되기 때문이다.비장애인의 말에 따라 직접 현금을 주거나 함께 은행으로 향하기도 하는 지적장애인의 장애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증거를 찾자면 모두 명확한 착취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앞서 제시한 <사례2>에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관리비와 약간의 용돈을 줬다는 이유로 함께 썼다고 판단돼 처벌을 할 수 없었다.
가족이면 경제적 착취 정도는 괜찮아?
특히 가족간의 착취 사건은 ‘친족상도례’ 규정으로 인해 더욱 처벌이 어렵다. 친족상도례란 친족 사이의 재산에 관련된 범죄에 대한 특례로, 친족 사이의 범죄는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규정이 방패 역할을 함으로써, 현실적으로 가족에 의한 경제적 착취는 처벌이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다. 친족상도례는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법언에 따라, 친족간의 재산범죄에 대해 형사 처벌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가정 내의 문제는 가정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졌지만, 장애인 착취 문제에서는 애초에 규정이 만들어진 의도가 적절히 작용한다고 보기 어렵다.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까지 모두 형을 면제 받기 때문에, 경제적 착취로 인한 피해가 드러나도 가해자 처벌이 불가능한 것이다.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범위는 절도, 공갈, 사기, 횡령, 배임, 장물 등이다. 서울특별시장애인인권센터(이하 서울인권센터)이승현 팀장은 “가족간의 경제적 착취는 친족상도례 때문에 기소도 되지 않는다. 수급비 착취, 재산 횡령 등 계모라고 해도 처벌이 불가능하다”며 “지적장애인에 대한 사건에서는 친족상도례 규정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대부분 친족이 선임되는 후견인제도에서는 더더욱 친족상도례의 배제가 필요하다. 후견인 제도 안에서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다. 친족인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고자 한다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손쉽게 이행이 가능하며 동시에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친족상도례 규정 자체를 없앤다는 것은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가족간의 문제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음에도 법으로 처리하는 것은 가족간의 분쟁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순기능을 살리는 개정이 요구된다. 서울인권센터 이승현 팀장은 “가정 내에서의 작은 재산 다툼까지 모두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고 하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심신미약자나 장애인 등 일부 상황에 대한예외는 둬야 한다고 본다. 또한 비장애인이라고 해도 피해 당사자가 위협이나 위압에 의해 자신의 재산을 빼앗길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친족상도례 배제를 위한 객관적인 기준 마련을 위해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벌이 안 된다면 사전예방을 위한 협업해야
범죄에 대한 처벌이 전무하거나 처벌 가능성이 낮다면 그 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낮아진다. 또한 이미 일어난 범죄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면, 응당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의 판단 기준이 비장애인 중심이고 친족상도례가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착취 사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 학대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특례법 도입이 논의되고 있지만, 도입이 확정된다고 해도 숨겨진피해자와 가해자를 발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서울인권센터 이승현 팀장은 국가가 나서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기초생활수급자이며 지적장애인인 경우, 지자체가 그러한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 전수조사에 나서야 피해자를 발굴할 수 있다. 민간 단체에서는 지금까지 사건이 일어난 뒤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일을 처리해왔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개인정보 문제로 인해 조사에 나설 자료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큰 사건이 터지면 지자체에서는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 문제는 민간 단체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전수조사 협업을 요청하면 전문적으로 해낼 기관들이 많은데, 지자체가 자신이 가진 조건 내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니 무리가 되는 것이다.”
2017년 들어서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도 사전예방을 위한 전수조사 자료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의심이 가거나 제보가 들어오는 건에 한해서만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처벌이 어려운 경제적 착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민과 관의 협업이 빛을 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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