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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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에서 벗어나 다시 학대로
경북 상주의 한 농촌에 중노동에 시달리며, 노예 아닌 노예로 살아온 한 사람이 있다.
중노동의 대가는 한 달에 13만원, 주인의 폭언과 폭행 속에서 모 방송사의 뉴스를 통해 이 사람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방송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과의 갈등으로 집을 나와야만 했고, 여관 등을 전전해야 했다.
집을 나온 뒤에는 산과 다리 밑에서 잠을 잤고, 낮에는 갈 곳이 없어서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착취를 못 견뎌 집을 나왔지만 이 사람은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올해 쉰다섯 살인 이 사람은 경북 상주가 고향이고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과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다. 이전에 이 사람을 데리고 있던 사람이 지난 2001년, 지금의 집주인에게 보낸 뒤로 이곳에서 고통 속에 살게 됐다. 집 주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적도 있었지만 이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집을 나가 인근 사찰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숙식을 해결했으나, 그 사찰의 스님이 이 사람의 통장을 가져가 돈을 인출해간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후, 그 사찰에서도 나오게 됐다. 상주와 인근 도시를 다니며 사회복지시설 입소를 문의해봤지만, 장애인 등록이 돼있지 않은 탓에 번번이 입소 거절을 당했고, 결국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이 사람은 예전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을 주민 사이에서도 이 사람은 주인집 머슴 정도로 알고 있었고, 겉으로는 집 주인으로부터 숙식을 제공받고 있었던 터라 이 사람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의 폭언과 폭행을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은 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 마을은 시골의 자연부락으로 집 주인의 친인척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었고, 같은 마을에 살면서 얼굴 붉힐 일을 피했다고 한다.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가
2008년부터 생계비 지원 대상자가 되면서 관할 주민 센터에서는 이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듯 했지만, 현행제도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전화나 방문 확인만 하면 되는 탓에 이 사람의 자세한 상황까지는 몰랐었다는 반응이다.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1년 동안 이 사람을 통합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하고 사례 개입을 시도했으나, 평소 일하러 나가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집 주인의 ‘잘 살고 있다’는 거짓말에 사례 종결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이 사람은 오랜 세월을 관리 사각지대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빼앗긴 채로 살아온 것이다.
언론 보도 후 이 사람에 대해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병원에 입원시킨 뒤, 종합검진 등을 실시했고 향후 이 사람이 살아갈 방안을 모색 중에, 인근 도시의 한 병원에서 숙식을 제공해주고, 병원에 취업도 시켜준다는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이달 9일, 경북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는 관할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해 담당자 의견을 들어 봤다. 담당자는 “대화능력 및 지적 능력으로 보아 자립생활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나, 안전에 대한 대상자의 욕구가 크므로 요양병원에 인계하여 자립 및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지원센터는 사례자의 욕구에 따른 관할기관의 조치에 대해 공감이 되나, 이것이 최선의 방안인지는 추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확인해 볼 사안이며, 대상자 면담을 통해 지적 장애가 있는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우선 시급한 것은 장애등급 신청을 통한 통합 지원체계를 구축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지원센터로 돌아오는 길
이런 의문이 문득 들었다. 「누가 이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고 그 결과 또한 자기 스스로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사회적인 요인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큰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들의 삶에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연대성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지도 모르겠다.
학대와 폭행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오랜 기간 유린당한 이 사람을 병원으로 보낸다고 한다, 시설로 보내야 한다, 자립생활을 시켜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병원으로 보낸다는 것은 이 사람을 환자로 간주하는 것이고, 시설로 보낸다는 것은 이 사람을 시설보호 아래 생활해야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립생활을 지향한다는 것은 독립된 개인의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삶을 누가 결정하는가? 어떤 이유로, 누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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