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인권과 성년후견제도, 무엇이 문제일까?
본문
내 의견도 없이 내 인생이 결정된다?
지난 2019년 1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9명의 헌법재판관 중 합헌의견 8명(보충의견 2명), 반대의견 1명으로 합헌으로 결정했다. 2004년 경 시작된 장애계의 노력으로 2013년 성년후견제도는 시작됐다. 지역사회에서 위험에 노출된 발달장애인, 부모 사후에 보호자가 없는 경우 등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성년후견제도 도입이 탄력을 받았지만, 도입 당시 예견되었던 것처럼, 후견제도의 자기결정권과 법적 권리침해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센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상황만은 아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개선 권고가 있은 이후 현실적인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힘을 잃은 듯했지만,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간의 논의들을 무색케 만들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언제든 다시 뒤집힐 수 있다. 여러 차례의 합헌결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헌법불합치결정이 선고됐던 구 정신보건법 헌법소원 사건을 보더라도, 변화하고 발전하는 인권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결국 제도적인 변화가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후견제도를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아직 무엇이 문제인지, 또 어떻게 개선 또는 폐기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한 것 같다.
이번 헌법소원심판청구의 배경이 됐던 사건은, 장애가 있는 A씨와 이를 둘러싼 아버지 B씨와 어머니 C씨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B씨는 법원에 A씨의 성년후견인을 선임해 달라는 심판을 청구했고, 법원은 A씨의 후견인으로 B씨와 C씨를 공동으로 선임했지만, 거래를 한다거나 부동산 매매를 하는 등의 법률적인 행위를 취소하거나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은 B씨에게만 주었다. 이에 C씨는 A씨에게 성년후견인을 선임할 필요도 없고, A씨가 후견인의 선임을 원하지도 않음에도 B씨의 청구에 의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이다.
사건에서 제기했던 성년후견제의 문제점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판결문의 원문 그대로가 아닌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했다.) 첫째, 후견인 선임의 ‘필요성’을 후견인 선임의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다. 둘째, 피후견인(장애인) 외에 타인이 후견인 선임을 청구할 수 있다. 셋째, 피후견인을 의사가 감정(鑑定)하도록 하고 있지만, 감정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기준이 없다. 넷째, 피후견인이 의사표현을 할 수 없을 때 피후견인의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면서도, 의견을 듣기 위한 절차적인 지원이 전혀 없다.
이를 반대로 뒤집어 보면, 재산관리·물건 구입·시설에 들어갈지 여부, 병원에 입원 및 퇴원하거나 치료를 어떻게 할지, 혹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심지어 결혼이나 이혼을 결정함에 있어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 후견인 선임과정에서 나에게 후견인이 필요한지도 따져보지 않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가 원하지 않는 타인의 신청을 통해, 전문성도 없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법원이 마음대로 후견인을 선임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하지 않은가?
UN도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
여기에 대해서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결정한 논리를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인(장애인)에게만 청구권을 주면, 본인이 판단능력에 제약이 있거나 타인에 의해 의사가 왜곡됐을 경우 실질적으로 권익보호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둘째, 법에서 이미 본인 의사를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본인 의사를 직접 듣도록 규정하고 있다. 셋째, 후견인 선임의 '필요성'을 명시적인 요건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사조사관을 파견해 조사를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미 요건으로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넷째, 감정절차와 방법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은 많은 사안을 다 일일이 규정할 수는 없으니, 판사가 사안에 따라서 적합한 의사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인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불가피한 경우 예외적일 뿐이다.
여기에 보충의견 2명의 재판관은 합헌이라는 결론은 같지만, 후견제도가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면서, 실패의 과정도 중요하므로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성년후견심판을 단지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할 때 해서는 안 되고,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되어 성년후견이 꼭 필요한 경우로 엄격하게 한정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성년후견으로 청구했다고 해도, 자기결정권 침해가 적은 한정후견이나 특정후견으로 변경하라고 법원이 권고하는 것을 고려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유일한 반대의견은 청구권자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본인이나 배우자 외에도 4촌까지도 후견인 선임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너무 넓고,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원칙적으로 본인에게만 신청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청구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때만 친족 등 타인의 청구가 가능하도록 보충적인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 특히 가족이나 친척과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 위험성이 따를 수 있고, 본인이 청구할 수 없을 때는 친척 등 타인이 아니라 검사 등 공적 기관에서 청구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주로 가족 간 이해관계로 인해 후견심판청구가 이뤄지고, 법에는 '존중'하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존중받지 못하고, 법관도, 의사도, 가사조사관도 장애와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으리라고 기대되지 않는 현실에서 다수의견의 논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개별적인 논리를 일일이 반박하기보다, 큰 틀에서 성년후견제도를 달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체 왜 유엔은 잘 이해도 안 되는 이 제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삼고, 또 개선하라고 권고를 하는 것일까?
민간의 적극적인 대안제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이 바라보는 장애인의 인권은,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처럼 '최대한 존중'하라거나 '덜 침해적인 방법을 선택'하라는 차원이 아니다. 협약 제12조와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에 따르면, 장애인은 법 앞에서 동등하고, 어떤 이유도 법적인 권리와 능력을 거부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장애상태를 진단해 한 사람이 의사결정에 결함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이고 정확하지도 않으며, 법 앞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지위를 저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유엔은 장애인이 무능력하고 법적으로 무가치하니, 그의 법적 권리를 박탈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해야 한다는 '대리의사결정'의 패러다임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 그 대안으로 장애로 인해 의사결정과 판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그는 동등한 인간이고 그 나름대로의 결정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니, 적절한 지원을 통해 그의 판단과 결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원 의사결정'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고삐 풀린 말처럼, 후견이 마치 정신적 장애인을 위한 대안인 것처럼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사회 자립을 논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의사결정과 판단에 관한 논의를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자립생활운동과도 흐름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견은 일상생활을 위한 지원 서비스가 아니요, 법적 권한을 대행하기 위한 법적 장치일 따름이기에 자립생활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립지원을 한다면서 법적 권리를 박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장애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먼저 후견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해주어야 한다. 후견이 늘어가고 있고 실제 당사자 권리 침해가 매우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지만, 감시와 모니터링이 공개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등 국제인권기준과 유엔의 권고, 변화하는 세계적인 흐름들과 사례들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후견제도를 문제 삼고, 중요한 인권문제로서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과제로 논의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둘째, 현존하는 후견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헌법소원심판의 청구인 측이 주장한 대로, 청구권자의 문제·후견 필요성에 대한 판단·의사의 감정에 관한 문제·후견 심판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셋째, 의사결정지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도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안 없는 비판보다, 이미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는 의사결정지원제도에 대해 먼저 연구하고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유엔에서는 의사결정지원의 패러다임에 대해서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공무원들을 교육하라고 권고했지만, 후견제도는 행정 편의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국가가 먼저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의사결정지원제도로 전환을 시도하는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먼저 알아서 해주리라는 기대를 갖기에 앞서, 민간에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 권리는 요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 힘이다. 권리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침묵하고만 있을 때, 국가는 우리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나설 것이다. 진정한 위험은 그렇게 발생하는 것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