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토양 위에서 장애인 건강권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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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의 공공병상수는 24개국 가운데 가장 적었다. 24개국의 평균 1천명당 공공병상수는 3.25 병상이지만 한국의 병상수는 1.19병상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민간병상을 포함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민간병상 포함 인구 1천명당 병상수는 9.56 병상으로 일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를 드러냈다. 전체 병상수에서 고작 12%만이 공공병상인 셈이다. 병상수가 감소하는 추세인 OECD의 다음 회원국과 달리 확대되는 의료 시장에 의해 병상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공공병상은 제자리 수준이다.
이처럼 취약한 공공의료 현실은 대중들의 주된 관심 밖에 놓여있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공공의료를 위해 앞장선 국회의원이 있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김용익 의원이다. 한편 김용익 의원은 ‘장애인 건강권 보장에 관한 법률안’(이하 장애인건강권법)을 대표발의해 법 제정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장애인건강권법이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법으로서 그 시작점에 놓여있는 지금, 김용익 의원을 만났다.
진주의료원, 농성 끝 아쉬운 폐업
19대 국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만난 김용익 의원은 비례대표로서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선뜻 진주의료원을 언급했다. 그만큼 공공의료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진주의료원은 경상남도에 위치한 공공의료기관으로 2013년 2월, 경상남도에 의해 폐업이 결정됐다. 결정적인 이유는 적자, 부채였다. 김용익 의원은 이에 맞서 단식농성을 감행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지만 결국 폐업은 진행됐다. 김용익 의원은 이후 진주의료원 재개원에 힘을 실으며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19대 국회에서 한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진주의료원 단식투쟁을 떠올리게 됩니다. 단식투쟁 이후 결국 진주의료원은 문을 닫고 말았지만 이를 계기로 꾸준히 공공의료를 두고 싸워나가면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공공의료법과 지방의료원법 수정으로 착한 적자를 인정받게 된 것은 적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용익 의원은 공공의료가 인정 받고 제대로 된 지원을 통해 단단한 토양이 돼야 장애인과 관련된 의료 제도 법안 성립이 쉬워진다고 꼬집었다. 공공병원과 보건소 네트워크가 깔려있느냐 아니냐가 이론의 실현화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단식 농성중인 김용익 의원 |
높아지는 장애인 건강권 욕구에 응답한 ‘장애인건강권법’
김용익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건강권법’은 2017년 12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장애인건강권법은 장애인을 치료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한 국민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법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의료보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에서 장애인의 의료보장에 대한 욕구는 매년 증가해왔다.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보장에 대한 욕구가 소득보장에 이어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고 꾸준히 욕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19%, 2005년 30.1%, 2011년 31.5%, 2014년 32.8%)
김용익 의원은 이같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장애인건강권법을 발의했다.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소득 보장과 활동 지원, 건강 증진이 필요합니다. 소득 보장의 경우 장애인 연금법에서 정하고 있고 활동 지원은 장애인 활동 지원법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 보장은 개별법에서 일부 규정돼 있을 뿐 기능 발휘는 충분하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장애인의 복지는 장애인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질병을 예방하며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장애인은 대부분 저임금으로 일하거나 실직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장애로 인한 질병을 수반하고 있거나 기타 질병이 발병했을 때 곧바로 의료기관으로 향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장애로 인한 질병이 잦은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장애로 인해 운동을 하기 힘들면 그만큼 면역체계가 약해지고 그에 따른 질병이 잦아지는 것입니다. 장애 특성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뇌성마비의 특성상 칫솔질을 꼼꼼하게 하기 어려워 치과치료의 필요성이 큰데 동시에 특성상 치과치료가 어렵기도 합니다.
의료기관에 방문해도 장애가 존재합니다. 접근 문제, 소통 문제 등이 장애인의 병원행을 어렵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이 병원에 가려면 수화통역자가 필요합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수화통역자를 매번 대동하니 문제가 없다고 느끼지만 청각장애인 당사자는 병원에 가기 위해 수화통역사를 고용하거나 직장을 가야하는 가족의 시간을 할애하게끔 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려움을 느껴 차일피일 병원행을 미루다 어쩔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병원을 찾으면 이미 병이 악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게 됩니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장애인 주치의 제도로 중증장애인 의료 욕구 잡는다
김용익 의원은 그런 악순환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19대 국회에 들어섬과 동시에 법제화를 진행했다. 장애인건강권법은 악순환을 막기 위해 다양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 수립, 장애인 건강검진사업, 장애인 건강관리사업, 장애인의 의료기관 접근 및 이용 보장, 장애인 건강보건연구사업, 장애인과 그 가족, 의료종사자의 건강교육, 재활운동 및 체육, 장애인 건강 주치의, 의료비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제도들은 적지 않은 예산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에 시행 초기부터 모두 달성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성급하게 욕심을 내지 않고 실효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 건강권법은 장애인의 의료기관 접근성 확보와 장애인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상적 건강관리가 핵심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보건복지부에 장애인 건강 문제를 다루는 조직이 생겨야 하고 지역별로 지역장애인건강보건의료센터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접근성 확보를 위한 편의시설 확보와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위한 주치의 제도, 각 장애별로 특화된 건강검진도 시행돼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건강권법에서 특히 주치의 제도는 반대에 부딪혔다. 이미 과거에 의료계의 반대 등으로 시행하지 못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하지만 김용익 의원은 이 제도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반대 측을 찾아 설득을 거듭했다.
“주치의 제도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니만큼 용어 선정 등에 크게 신경을 썼습니다. 반대 의견이 나타나는 가장 큰 요인은 주치의 제도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주치의 제도가 의사들을 구속할 것으로 오해하는 시각들이 있어 설득을 해나갔습니다. 사실 반대가 있다고 해도 주치의 제도는 꼭 필요합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주치의가 없으면 기본적인 의료 욕구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2015년 6월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장애인건강권법 시행과 가까운 2017년 6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김용익 의원은 이 시범사업을 통해 장애인 주치의 제도의 정착과 시행에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애인건강권법 완성은 유형별, 중증도별 당사자의 목소리
장애인 제도들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필수적이다. 장애 운동이 지금까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에너지원으로 했듯, 건강권법 또한 같은 역할 수행이 필요하다. 법 시행의 준비 과정과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평가하고 요구하며 법이 애초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들일 것이다. 김용익 의원 또한 장애계가 건강권법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의견을 피력하길 바랐다.
“건강권법 시행일자까지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섬세하게 시스템을 짜야 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 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이유 중 하나가 무리를 하면서 급하게 진행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권법은 아주 실용적인 법이 돼야 합니다. 장애 유형에 따라서 건강권에 있어서 느끼는 문제점들과 불편함이 다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치과 스케일링을 한다고 했을 때 유형별, 중증도별로 느끼는 불편함과 필요한 것들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의 불편함은 알지만 또 다른 장애유형의 불편함은 모르기 때문에 장애계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설 및 서비스 등이 맞춤형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공공의료기관 중심으로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 제공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복지법, 보건의료기본법에는 각각 장애인 건강권에 대한 언급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3개의 법 모두 선언적 규정이 불과하다. 때문에 정부의 완고한 결정과 적극적인 추진 없이는 장애인 건강권 보호가 힘든 실정이다. 각 장애 유형별로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나 신체적 증상에 따라 지원해야 할 서비스 등을 바라기엔 역부족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공공의료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진 김용익 의원이 건강권법을 발의한 것은 공공의료와 장애인 건강권이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김용익 의원은 건강권법의 실용적인 시행에 따라 장애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중앙과 시도단위 센터를 중심으로 최소한 공공의료기관들은 모두 장애인건강권법에 맞춰 장애인들에 맞는 치료 시스템을 갖추게끔 해야 합니다. 민간병원들에게 장애인 건강에 대해 운운하고 따르라는 것은 아직 어려우니 정부 차원에서 법을 통해 공공의료기관들이 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공공의료와 장애인 건강권은 별도로 볼 수 없습니다. 전국적으로 장애인건강권법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쉽고 편하게 의료기관을 방문하고,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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