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는 장애인 비례대표가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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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총선 각 당 비례대표 명단에서 장애계 인사들이 모두 당선권 밖으로 밀려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시대를 역행한 비례대표 선출
4·13총선 비례대표 선출에서 새누리당은 한정효 제주특별자치도 신체장애인복지회장에게 41번을 부여했다. 당선안정권이 20번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선 가능성은 없다. 장애인당사자로 DMZ에서 수색작전 중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은 이종명 전 육군대령이 2번으로 지목됐지만, 장애계 대표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영웅 전국장애인위원회 대변인을 25번에 올렸지만 당선안정권이 15번 전후다.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후보자 18명 중 김임연 대한장애인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15번으로, 정중규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를 16번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당선안정권은 5~6번 전후라 사실상 국회 입성은 불가능하다. 진보정당인 정의당 역시 이영석 장애인 위원장을 당선과는 거리가 먼 8번에 배정했다.
장애인 비례대표는 15대 국회에 이성재 변호사가 장애인 몫으로 비례대표로 진출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장애인의 국회 진출은 제 17대 국회에서 본격화됐다. 17대에서 정화원(민주당), 장향숙(한나라당) 2명의 장애인 비례대표가 국회에 출사표를 낸 데 이어 제 18대에는 이정선(한나라당), 임두성(한나라당), 박은수(통합민주당), 정하균(친박연대), 곽정숙(민주노동당) 등 무려 5명의 비례대표가 입성했다. 19대에서 김정록(새누리당), 최동익(민주당) 등 2명의 비례대표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장애인들의 참정권 행사 요구가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대변할 장애인 국회의원의 수도 늘어나야 마땅하지만 되레 20대 총선에 비례대표가 전무하게 됐다.
함께걸음에 인터뷰를 응해 준 인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한목소리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장애인위원회 위원장인 김정록 의원은 “무척이나 안타깝다. 소외된 장애계 뿐만 아니라 특히 정치권의 편협한 시각이 안타깝다. 이 시대 정치권이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의지가 모두 부족하다는 방증이다”며 정치권의 작금의 형국을 강하게 질타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은 “법률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사람을 국회에 진출시켜서 소외계층의 문제를 국회에서 다루고 해결하려는 취지로 비례대표를 뒀는데, 자기 밥그릇만 챙기겠다는 기득권의 권력욕 때문에 한국 정치사의 치욕스러운 날이 됐다. 이것은 다시 시혜와 동정의 관점으로 회귀된 것을 의미한다. 굉장한 위기 상황이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장애인 비례대표 후보들을 밀어낸 각 당, 그 속내는?
각 당이 장애인을 공천 안정권에서 밀어 낸 이유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장애인위원회 위원장 최동익 의원은 “원래는 A, B그룹 중에서 B그룹에 장애인 비례대표를 배정하여 장애인이 당선권에 들어오도록 배려를 했으나 각 그룹별 칸막이가 없어지면서 장애인을 당선권 안에 배정하는 문제에 대해 중앙위 소위 결정과정에서 장애인이 빠지게 됐다”며 “그 이유는 당선 안정권을 보통 15석으로 보는데 당헌 및 당규에 의해 배정해야 하는 사람이 20명이 넘는다. 당헌에 의무적으로 배정하게 돼있는 의석 총 8석을 제외하고는 당헌대로 중앙위원 투표로 비례대표를 결정하게 됐는데 중앙위 내 투표권을 5석밖에 확보하고 있지 않은 장애인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더민주당에서 장애인비례대표가 당선 안정권에 배치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더민주당에서 비례대표 25번을 받은 김영웅 후보자는 “선거대책본부마다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번은 복지가 우선, 이번은 경제가 우선…비례대표 선정도 그런 축의 하나다. 경제도 어려울 뿐더러 야당에서 87년 헌법에 경제민주화라는 의제를 던져놓으셨던 외부 인사를 대표로 영입했다. 여야모두 경제 문제가 화두가 돼 복지 등이 후순위로 밀리며 과학자, 수학자, 경제전문가 분들이 전진 배치됐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이한구 위원장은 비례대표 명단 발표 당시 브리핑에서 “비례대표 후보 심사를 지역구 후보자 심사 때보다 10배, 20배의 정성과 노력으로 했다”며 “이 시대의 살아있는 영웅을 기대하는 국민적 여망과 바람에 다가가려 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염원과는 달리 정작 수면 위로 올라 온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후보 선정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새누리당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이주민 출신과 탈북자 출신, 청년비례, 전문가 직능단체 대표 등을 공천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그런 시도조차 엿볼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겠다. 당선 순위권 비례대표, 공천의 일부분이다. 정당은 공천을 통해 국민에게 다가가고 국민은 공천을 보고 정당의 활동방향과 정책전개방향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번 공천은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한 공천이라기보다는, 세력화 및 기득권 유지를 위한 공천이다. 국민이 기대하는 배려는 없고 기득권유지에만 몰두한 결과다. 여야 모두가 해당된다”고 말했다.
‘밥그릇 쫓는 자’ 오직 당 만인가?
각 당의 비례대표명단 발표 이후 장애계는 그 부당함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동시에 장애계에서는 20대 총선 각 당 비례대표 선정의 책임을 각 당에만 물을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성명서를 냈던 당사자, 즉 당과 250만 장애인의 통로 구실을 하는 단체가 중심이 된 장애계에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민주당 최동익 의원은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중앙위와 당 지도부를 설득하는 면에 있어서 장애인위원장으로써의 역량부족과 한계도 있었지만 한편, 장애계의 분열이 아쉽다”며 “총선연대가 3개나 만들어졌고 장애인 단체장들이 너도나도 비례대표를 원해서 결론적으로는 장애계가 힘을 모으지 못했고,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한 사람을 선정할 경우, 나머지 단체들이 반대표로 돌아설 수 있는 계산도 가능했기 때문에 장애인 단체들이 뭉치지 못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차장도 “장애계의 분열이 비례대표가 후순위로 밀려나는데 일조했다는 의견에 일정부분 동의한다”며 “장애인단체총연맹이 선거연대를 2000년부터 시작했다. 선거연대가 19대 총선을 앞두고 장애계 오픈 프라이머리로 전문성 있고, 추진력 있게 일을 할 수 있는 분을 뽑자고 했는데 결국은 일부 단체들이 선거연대가 특정인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해 독자 노선으로 갔다. 이번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3개의 총선연대가 활동했다. 이것이 장애계의 분열로 비춰지고 있는데 선거를 앞두고 나 역시 그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20대 국회 ‘장애인비례대표 전무’ 앞으로 미칠 영향은
결과적으로 20대 국회에 장애인비례대표가 없어지면서 나타날 영향에 대해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장애인 비례대표가 등원하지 못한다면, 장애인의 사회적 소외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 이제껏 장애인 비례대표가 선정된 이유를 살펴보고 그 이유가 소멸됐는지 판단해야 한다.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로서 소외돼 왔다. 경제, 교육, 인권, 문화 등 사회전반에서 정책적 고려가 부족한 결과 소외문제는 커져만 갔다. 이 같은 정책적 배제의 가장 큰 이유는 장애에 대한 이해부족이었다. 때문에 장애를 잘 이해하는 사람에게 정책입안자로써 역할을 기대하며 소외문제를 해결하라는 임무를 준 것이다. 장애인이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기에는 아직 사회적 장벽이 높기에 비례대표로 역할을 해 왔다”며 “여기서 짚어보자. 경제, 교육, 인권 등 사회전반에 있어 장애인 소외문제가 해결됐는가? 문제는 진행 중 인데, 이해하고 해결할 적임자가 없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더민주당 최동익 의원은 “국회에 장애인 비례대표가 없으면 장애인 관련 이슈들이 제도화되고 예산이 뒷받침되는 과정에서 힘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19대 국회에서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성과는 20대 국회에서는 기대하기 조금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더민주당 김영웅 비례대표는 “지하철에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는 화재 시 이용을 못하게 돼 있고 휠체어 장애인들은 탈출이 불가능하다. 단순히 숨 쉬고 살아가는 것, 명절에 고속버스를 타고 귀향하는 것. 지하철, 화장실 이용하는 것 등 모든 부분에서 장애인들의 욕구나 복지가 위축 될 것이다. 단순히 생계를 떠나 목숨을 넘나드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휠체어를 타는 나도 그 범주 안에 있는 셈이다. 20대 국회에 장애인 대중의 의견을 대변할 장애인이 없어지면 범주가 더 넓어진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타개책에 대해 더민주당 최동익 의원은 “단체장들이 힘을 모아 장애계가 단결하는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 비례대표 출마를 희망하는 단체장들은 공직자들처럼 90일 또는 120일 이전에 사퇴함으로써 단체장의 입장에 따라 단체가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배제하여 누가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던 간에 단체들은 하나로 뭉쳐서 장애인 비례대표에 대한 안정권 배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이영석 비례대표는 “장애인의 정치 참여의 의미를 점검 할 필요가 있고, 장애계 활동과 정책들을 각 당으로 자연스럽게 영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인위원회 역할과 위상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구조적인 면의 개선을 요구했다.
더민주당 김영웅 비례대표는 “유권자들이 많이 찾아주는 정당은 그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장애인들이 정당에 자꾸 문을 두드리고 정당 활동을 해서 장애인 나름의 자발적인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며 “작년에 스웨덴에 정치 연수를 갔다. OECD국가 중에 선진국 5위 안에 드는 국가이고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민주당이 거의 70년 동안 집권한 나라이다. 장애인의 만족도와 정당참여율이 높다. 선진국은 전체 의석을 대부분 비례대표제로 채우는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대한민국 국회가 300석의 의석 중 비례가 50석도 안되고 지역에서 대표자를 뽑아내는 식이면 100년 후에도 장애인은 한두 석 가지고 경쟁을 해야한다. 현재, 전체 인구 중에 5%는 장애인이다. 국회의원이 300명이라면 그의 5%, 15명의 몫은 장애인 국회의원이어야 그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 개혁해서 전면비례대표로 가던지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한다”고 거시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21대 총선에 이번과 같은 과오가 번복되지 않도록 각 당과 장애계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한 자각과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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