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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탈시설 핵심은 발달장애인 탈시설이다

수면 위로 떠오른 발달장애인 탈시설 문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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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신체의 자유, 거주와 사생활의 자유 등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이러한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로 한한다. 범죄자를 구금하는 것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시설 거주 장애인들은 앞선 경우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신체, 거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 당하고 있다. 동시에 학대, 착취 등 드러나지 않았던 인권 침해 사건들이 속속 드러나곤 한다. 장애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장애 운동은 오래전부터 ‘탈시설’을 외쳐왔지만 아직까지도 탈시설은 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시설 내 학대의 약자, 발달장애인

갇힌 공간인 시설 내에서의 학대 및 인권 침해 가능성은 현실화 되기에 최적화된 환경에 놓여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의사표현 능력이 원활하지 못하고 인지수준이 낮아 피해를 입어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학대와 횡령이 드러나면서 ‘제2의 도가니’로 불린 인강원 사건과 뒤이은 송전원 사건을 비춰보면 시설 내 발달장애인이 얼마나 약자로서 위험에 노출 돼 있는 지 알 수 있다. 인강원과 송전원은 같은 인강재단 산하 시설로 발달장애인 거주 시설이다. 2015년 8월 서울시는 송전원 내 폭행, 학대, 성추행 등 지속적인 인권침해를 확인하고 이를 경찰에 고발했다. 송전원 종사자 A씨는 훈계 명목으로 거주인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했으며 B씨는 여성 거주인을 다리 위에 앉혀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장애계는 시설폐쇄와 거주인 전원 탈시설지원계획 수립을 요구했지만 반발에 부딪히면서 현재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이다. 이처럼 피해 상황이 발견된다고 해도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은 쉽지 않은 문제다.

 

시설 활용하려는 서울시 탈시설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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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룹홈에서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이런 상황에서 피해 사실이 발견되지 않은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은 거론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왔다. 하지만 최근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되는 등 발달장애인 지원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이 수면위로 올랐다. ‘서울시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12월, 발달장애인 탈시설 모델개발 학술용역 공청회를 열었다. 이 날 공청회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탈시설 모델에 대한 연구가 발표됐다. 하지만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발표된 내용이 시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토론자로 참석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연구 발표된 탈시설 방안에 반박하고 나섰다. ‘기존 시설의 거주환경을 자립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은 시설의 프로그램 과정으로, 탈시설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 대표는 ‘권력관계 단절’, ‘소득보장이 가능한 공간’, ‘거주시설과의 완전 분리’ 등 탈시설의 기준을 짚으며 발달장애인 지역사회거주 모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지적을 받으며 연구 발표를 끝낸 서울시는 이후 발달장애인 탈시설 모델개발 TF팀을 꾸려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충돌이 일어났다. TF팀을 다시 구성하라고 요구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회의장을 찾은 것이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4개 단체 활동가들은 반대 입장을 밝히는 손피켓을 들었다. 이들이 TF팀 재구성을 외친 이유는 팀 구성원 대부분이 시설 측과 관련된 입장을 보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운영하는 체험홈, 그룹홈을 포함한 탈시설을 계획하면서 TF팀에 시설 측 입장의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반박에 서울시는 TF팀에 해당 단체들에 속한 2명이 참여하는 절충안을 낸 상태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여준민 활동가는 서울시가 TF팀을 꾸려 아직도 논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5개년 계획은 2017년까지다. 계획을 시작하고 절반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데 이제와서 TF팀을 꾸리고 연구하고 논의한다는 건 너무 늦은 수순이다. 시설모델개발이 아닌 탈시설을 하려면 일단 추진해야 할 시기인데도 서울시는 시설 측 눈치를 보며 지지부진 하고 있다. 탈시설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밀어붙여야 할 서울시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에 반해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인 서울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췄다.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 홍순길 과장은 “법적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탈시설이 쉬운 일은 아니”라며 “준비 없이 발달장애인 탈시설을 진행하면 위험하다는 입장의 부모들과 당장 시행해야 한다는 장애계 활동가들 사이에서 한쪽 이야기만 들을 순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홍순길 과장은 또한 탈시설 과정에 시설이 운영하는 체험홈 등이 속한 것은 시의 예산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립생활주택은 시비로 마련되어야 하는 반면, 체험홈 등은 국비와 지방비로 해결된다. 때문에 시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으로 거주시설을 변형시켜 지역사회로 나오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거주시설에서 실질적으로 자립생활을 체험할 수는 없다는 점은 우리도 알고 있다. 때문에 기존에 시설로 들어가던 수급비를 당사자들이 받을 수 있게 변형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시의 예산 부담을 줄이면서 시설 쪽 참여도 이끌어내는 융통성 있는 진행 방향을 고민 중이다.”

 

불신이 가로 막는 탈시설

송전원 내 인권 침해 사실이 밝혀진 후, 거주장애인들의 탈시설에 반대한 사람들은 부모들이다. 송전원은 거주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와야만 시설 폐쇄가 진행될 수 있다. 이 과정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한다면 이는 발달장애인 탈시설 선례가 된다. 그럼에도 부모들이 이를 반대하게 만드는 것은 불안함이다. 발달장애인 탈시설에 가장 우선시 돼야 하는 것은 확신이다. 발달장애인도 탈시설 후 자립생활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낮고 믿음직한 제도도 없는 현 상황에서 ‘확신’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그것이 내 자식의 문제라면 더더욱 안정성을 따지게 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설에서 나오면 그 이후에 어려워지는 것은 맞다. 만약 10년전에 발달장애인 탈시설을 추진하고 발달장애인 생활시설을 없애버렸다면 우려하던 일들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록 시스템이 지역사회에 완전히 갖춰져 있다고 볼 순 없지만 발달장애인법이 만들어지고 신체적 장애인 중심의 복지나 지원에서 점점 발달장애인 지원 쪽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이 시점에서 탈시설을 논외로 두어선 안 된다. 준비 후 탈시설 순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탈시설 후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것, 탈시설과 제도 마련을 한 셋트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대한 시각을 뒤집기 위해서는 전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중증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배울 권리가 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서 시작한다면 답은 달라지는 것이다.

 

분리 없는 미국의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우리보다 앞서 장애인 권리 운동을 시작한 미국도 발달장애인 탈시설에 대해 한국과 같은 진통을 겪었다. 미국내 수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살아갔으며 1970년에는 전국적으로 시설 설립이 최고조에 달했다. 700명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시설에 2,800명이 수용됐고 철저하게 방치되며 치료와 위생 개념 없이 살아갔다. 그러던 중 1978년 3월, 미국 연방 법원이 펜허스트 시설을 ‘본질적으로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을 계기로 1979년부터 탈시설 연구가 시작됐다. 이후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지역사회 생활배치시설들이 생겨났다. 3명의 장애인이 24시간 직원이 상주하는 지역사회 내 집에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족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도전행동, 자해행동을 자제하는 등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성과분석센터 제임스 콘로이 박사는 2015장애인정책국제포럼에서 위와 같은 미국의 발달장애인 탈시설, 자립생활 과정을 소개하며 시설 개선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6명 이상의 그룹홈은 집단 보호시설이 되고 위계질서가 있다면 거주장애인은 그저 감옥 속 죄수로 살아갈 뿐이다. 시설 개선을 위한 노력은 결실을 이룰 수 없다. 발달장애인이 원하는 것은 작은 집과 소소한 일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발달장애인들은 24시간 의료적 간호나 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 모두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주시설 뿐 아니라 특수학교도 사라지면서 비장애인과의 분리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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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특성에 맞는 서비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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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시설 후 그림에 재능을 발견하고

작가로 성장해 나가는 중인 발달장애인의 작품

발달장애인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위해서는 발달장애 특성에 맞는 인적 자원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시설 종사자나 현재의 활동보조인으로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적절하게 지원하기 어렵다. 시설 종사자의 경우 시설 내 위계질서에 익숙해져 있고 현재의 활동보조인들은 신체 장애인들에게 적합하다. 새날동대문자립생활센터 이병우 사무국장은 신체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은 전혀 다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체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의 역할은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할 수 없는 부분들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당사자가 할 수 있지만 의사표현을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에 개입하게 해야한다. 할 수 없는 것을 무조건 대신 해주는 현재의 서비스를 그대로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적용하면 발달장애인의 집은 시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진다. 모든 필요한 활동을 활동보조인이 다 해주고 발달장애인은 앉아서 종일 티비만 보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질문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적인 서비스가 마련되면 탈시설 이후 발달장애인이 무엇이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산재한 과제들, 시간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의 성공적인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위해서 마련되야 할 것들은 언급한 것들 외에도 수없이 많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시설로의 재유입도 막을 수 있다. 평생교육, 지원고용 등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생기게도 해야 한다. 부양의무제와 등급제로 인해 돈이나 인적서비스가 부족한 상황도 발생해선 안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당장 하루 아침에 해결하거나 마련할 수는 없다. 미리 짜여진 스케줄과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지켜보는 눈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고등학생들이 스무살이 되면서 갑작스러운 선택의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 속에 놓이게 됐을 때, 혼자서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않아도 결국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의 성공적인 탈시설과 자립생활에는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히 발달장애인만이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제도들도 시행착오와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을 거치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글·사진 조은지 기자

작성자조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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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전현일님의 댓글

전현일 작성일

왜 발달장애인이 탈시설 해야 하는가?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함이다.  인권침해 예방도 아니고 자립생활을 위함도 아니다.  인권침해라면 철저한 시설감독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자립생활은 발달장애인에게는 탈시설의 목표가 될수 없다.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에 거주와 동시에 해결되야 하는 것이 근본 서비스 인프라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 두 개의 지역사회 시범프로젝트로 부터 시작함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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