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을 ‘쌈짓돈’처럼 이용한 후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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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견인은 지정된 한 개인을 보호하는 사람이다. 일정한 제약으로 인해 혼자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돕는 역할을 하기 위해 후견인 고유의 권한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이와 같은 후견인제도의 본래 목적을 무참히 저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후견인의 권한을 이용해 피후견인의 삶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것이다. 후견인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피후견인의 재산과 노동력, 자기결정권을 10여 년 동안이나 멋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후견인 선임 10여 년 만에 드러난 내막
지적장애 2급인 A씨(56·남)가 처음 후견인이자 가해자인 B씨를 만났을 때 A씨는 30대였다. 당시 A씨는 부산에서 노숙을 하다 발견돼 B씨가 회장인 사회복지시설로 인도됐다. B씨는 이후 2004년 A씨에 대한 한정치산선고를 청구했고 한정치산선고를 받음과 동시에 후견인으로 선임됐다.
후견인 지위를 갖게 된 후 10여 년이 지난 2015년 12월, A씨가 거주하던 경주시에서 B씨로 인한 A씨의 인권침해를 진단했다. 경주시는 거주지를 찾아가 A씨를 만난 뒤 경제적 착취와 노동 착취에 대한 상담을 진행했고 이를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예방센터)에 접수했다.
하지만 예방센터가 경주시로 내려가기 전, B씨는 경주시의 개입에 항의하고 A씨를 타 지역으로 전입시켰다. 경주시에서 A씨를 만난 담당자가 A씨에게 분리 욕구를 묻고 답변에 따라 분리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B씨는 경주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법적후견인인데 왜 당신들 마음대로 데려가려 하느냐”며 “A는 다른 곳으로 데려갔고 어딘지는 알 것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전화를 끊었다.
경주시의 개입을 막기 위한 도피처는 포항이었다. 예방센터는 포항시에 협조를 구하고 A씨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지자체의 협조로 드러난 피해 상황은 뻔뻔함 그 자체였다.
A씨가 생활하던 곳은 도로가에 놓인 컨테이너였다. |
컨테이너에 방치하며 ‘네 통장을 내 통장처럼’
“어제 140만원을 빌려달라고 해서 보내줬어요?”
예방센터가 A씨를 만나기 바로 전날, 해외 체류 중이었던 B씨는 ‘빌린다’는 명목으로 A씨의 돈 140만원을 송금 받았다. 하지만 예방센터의 질문에 A씨는 모르겠다는 답변을 할 뿐이었다. 자신의 통장에서 돈이 나갔음에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착취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이었다. A씨의 수급비가 들어오는 A씨 명의의 통장에는 매달 B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체 내역과 사용 내역이 기록돼 있었다. B씨의 핸드폰 요금, 케이블방송 요금 등의 계좌이체들을 비롯해 A씨가 운전을 배우지 못했음에도 LPG 충전 비용까지 지출됐다. 명의자가 이체 및 사용 내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 통장의 체크카드는 B씨가 가지고 있었다.
또한 B씨는 A씨를 경주, 포항 등의 기와공장에서 일하도록 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A씨의 거주 환경도 열악했다. A씨는 경주에서 지낸 컨테이너를 돌이켜보며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전한 포항시 기와공장 거주환경도 마찬가지였다. 기와공장 앞 도로가에 쌓여 있는 기와들 옆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컨테이너가 A씨의 집이었다.
한편, B씨는 A씨가 컨테이너를 전전하게끔 하면서 ‘노후를 위한 것’이라며 2,500만 원짜리 건물을 구매하고 A씨가 매매대금을 송금하게 했다. 하지만 이 건물은 토지대장에도 나타나지 않는 무허가 조립식 건물에 불과하다. 이는 철거 대상 건물로, A씨가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법률상 권리 주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후견인과 주변인들 모두 가해자
예방센터가 지역 경찰과 함께 A씨를 분리하는 과정을 진행하던 중, 포항시 기와공장 사장의 노모가 나타났다. 예방센터와의 상담 과정에서 A씨는 “다른 곳으로 가겠냐”는 예방센터의 질문에 “아빠한테 허락 받아야 하고 할머니도 돌봐야 한다”며 눈치를 봤다. 이 답변에서 언급된 ‘할머니’가 공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노모는 상황을 살피더니 곧장 A씨에게 어딜 가느냐고 따져물었고 A씨와 노모가 직접적으로 대화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센터 직원에게 언성을 높였다. 노모는 “애가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잘 지내고 있는데 왜 그러냐”고 항의했다. B씨뿐 아니라 공장 사장과 주변인도 A씨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공장과 그 인근에서의 상담 과정 내내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보며 대답하기에 그쳤던 A씨는 분리를 위해 예방센터와 함께 올라탄 차 안에서 점차 말수를 늘려갔다. A씨는 자신을 이용한 B씨에 대한 거부감과 지난 시간 동안의 힘듦을 토로했다. 타 시설에 들어선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깨끗하고 따뜻한 방과 침대를 보자 환하게 웃어보였다. 노모의 말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후견인 감독’ 아닌 ‘보고서 검토’로 충분한가
A씨는 한정치산자다. 금치산자 및 한정치산자 제도는 개정된 민법에 따라 2013년 7월 폐지됐다. 현재는 ‘성년후견인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 폐지 전에 금치산, 한정치산자로 지정된 경우에는 2018년 7월 1일이 돼야 선고 효력이 상실된다. 금치산자 및 한정치산자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성년후견 제도. 그렇다면 개정된 제도 안에서는 제2, 제3의 A씨가 나타날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성년후견 제도의 경우, 금치산, 한정치산 제도와 달리 후견인 감독이 명시돼 있다. 후견인 감독은 기본적으로 후견인이 제출하는 보고서를 자료로 활용한다. 공공후견의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후견인 활동보고서를 작성해 교육기관에 제출할 의무가 있다. 교육기관은 제출 보고서를 지자체 감독담당자에게 전달하고 담당자는 보고서를 검토한 뒤 법원에 다시 보고한다. 이후 법원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지자체 감독담당자도 1년에 한 번 후견감독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교육기관이 후견인 후보자 중 피후견인과 맞는 이를 매칭해주고 특정후견에 한정한다는 공공후견의 특성상 공공후견인이 B씨와 같이 피후견인을 이용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대리권이 있지만 피후견인의 항의가 가능하며 피후견인과 후견인이 동일한 권리를 가지는 특정후견인의 제한적인 권한도 사건 발생 가능성을 낮춰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외 성년후견인, 특히 친족이 후견인인 경우에는 형사처벌도 쉽지 않아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공공후견인 외 후견인들이 받는 감독의 빈도는 높지 않다. 후견인은 후견 2개월 안에 재산목록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은 제출 서류를 검토해 감독을 시작한다. 1년 안에 1차 감독을 시행하고 이후 안정적이라고 판단되면 2년에 한 번 정도 감독을 받게 된다. 후견인들은 사례에 따라 1년에 한 번이나 분기별 한 번씩 후견 사무보고서를 제출하는데 법원은 이 보고서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감독을 진행한다. 별도의 감독인을 두는 것은 피후견인의 재산 규모가 일정 금액 이상 큰 경우 등 특별한 사안이 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가정법원은 이러한 감독 과정을 통해 후견인을 관리하며 그것이 금치산자 및 한정치산자 제도에 비해 강화된 부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피후견인이 판단능력,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보고서 제출로 충분한 감독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B씨의 경우에도 경주시에 지출기록부와 근거서류를 제출했지만 인권센터는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B씨가 본인을 위해 쓴 지출내역이 대부분이었고 납부금액이 0원인 청구서가 증빙 서류로 붙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성년후견학회 회장 제철웅 교수는 후견인에 의한 피후견인의 피해 가능성이 금치산제도뿐 아니라 성년후견제도에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활용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얼마 전 알게 된 다른 사례에서는 삼촌이 발달장애인 가족의 수급비 중 상당부분을 개인적으로 썼다. 비슷한 사례가 분명히 더 있을 텐데 이런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문서만으로 감독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상시적 감독과 조사권 확보 기관 필요
한국보다 복지제도나 후견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선진국이라고 해도 권한남용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만 권한남용자를 발견하고 빠르게 조치를 취하기 위한 권리보장체계도 동시에 존재한다. 한 예로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에서는 법정후견이나 후견대체제도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후견인의 권한남용, 학대, 방임 등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행정기관이 적절하게 감독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행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 권익보호활동을 수행한다.
한국에서도 A씨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 지원센터나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에서 상시적 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제도 안에서는 형법상 범죄가 아닐 경우 후견인 처벌이 어렵다. 만약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본인의 판단에 의해 피후견인의 결정을 무시하는 등의 행위가 발견된다고 해도 이를 신고하는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다.
제철웅 교수는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감독을 하기 위해서는 조사권을 가진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사에 준하는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조사권을 가진 기관에서 검사 등 법 전문가가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의 신고를 받아 조사 여부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조사권을 위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권리보장체계에서는 ‘공공후견인 관청’이라는 기관이 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그 아래로 CLBC라는 권익보호지정기관이 존재해 상시적 감독 역할을 한다. 2017년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출범을 앞둔 지금, 캐나다의 공공후견인 관청과 같은 기관이 마련돼야 빠르고 강력한 감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발달장애인은 사회적 최약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A씨는 분리되는 과정에서도 꼬박꼬박 B씨를 ‘아빠’라고 불렀다. 착취를 체감하면서도 B씨가 기와를 지키라고 하면 한 겨울에 밖에서 기와를 지켰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해 피해자가 되기 쉬운 발달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후견인제도가 악용된다는 것은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내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후의 수단마저 변질된다는 것을 뜻한다. 양날의 검이자 필요악인 후견제도가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컨트롤하는 것은 아직까지 후견제도가 안고 있는 큰 과제로 남아 있다.
(함께걸음 조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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