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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중인 점자언어법, 시각장애인 자립생활 걸림돌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실태 점검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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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료수', '맥주'라고만 표기된 캔 점자들을 읽고 있는 시각장애인

글·사진 박성준 기자

2015년 12월 31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정식으로 통과되면서 한국수화언어를 한국어와 구별된 우리나라의 공용어로 정식으로 인정하게 됐다. 이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대한민국 정부 최종 심의 최종견해(제 21조)에도 나와 있는 내용으로, 장애계 전체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조항에 언급되고 있는 점자의 경우, 사실상 권리가 인정되긴 어려운 상황이다.


편의점도 혼자 갈 수 없다… 약국은 거의 이용 안 해
최종견해 제 21조에 따르면, 위원회는 ‘당사국이 한국 수화를 대한민국의 공식 언어로서 인정하는 것과 점자를 공식 필기 문자로 선포하는 법률을 채택할 것을 권장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점자가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돼 있을까. 시각장애인 A씨와 함께 점자 실태에 대해 조사해 봤다.
먼저 서울 영등포구의 모 편의점에 들렀다. A씨는 “사실상 편의점 같은 곳은 혼자 갈 수 없다. 어떤 물건을 사더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물건에 점자가 표시돼 있는 것은 음료수, 맥주 캔 정도가 전부여서 거의 대부분의 물품을 사는 데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러한 문제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혼자 오셨냐” “아예 안 보이시는 거냐” 실제 물품을 구매한 편의점 직원들의 말이다. A씨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요즘도 심심찮게 듣는다고 했다. 직원들은 음료수 캔에 점자 표시가 돼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같이 다녀야 할 것 같다”라고만 말해 사실상 시각장애인이 혼자 물품을 구매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약국의 경우에는 정도가 더했다. 점자가 표시된 약품이 있냐고 물어보자 “그런 게 있었는지 몰랐다”고 반문하면서 약품 찬장을 한참 뒤져본 끝에 점자가 표기된 약품이 없다고 대답했다. 다른 약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편의점에 구비돼 있는 상비약(구매율이 높은 제품에 한정)중에 감기약, 소화제 등 점자가 표기된 제품이 두어 개 있을 뿐이었다.
A씨는 “약국에서 거의 약을 안 사는 편이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의 경우 시각장애인 편의 제공을 요청하면, 약품에 대한 설명을 해 줘 직접 약품에 점자 스티커 등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병원 재량에 맡겨진 터라, 확실하진 않다. 분명한 것은 병원의 경우에도 먼저 나서서 점자 등의 편의를 제공하진 않는다”고 언급했다.


제 기능 하지 못하는 생활점자 표기
현재 점자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유도블럭이다.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해야 할 유도 블록이 끊겨 있거나 규정에 어긋나게 설치돼 시각장애인들에게 많은 위험을 유발하는 상황. 실제로 매년 지하철 승강장에서 장애인이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점자표지판 등 시각장애인의 안전 편의와 직결되는 수많은 편의시설들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고 있다.
반면 앞서 언급한 식품, 의약품 등의 생활 점자는 문제가 조금 다르다. 편의시설의 경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에 정당한 편의 제공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미약하게나마 설치 근거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생활 필수품의 경우 점자 안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어, 사실상 엉터리로 제공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음료의 경우 음료 내용물과 상관없이 ‘음료’로만, 맥주의 경우 개인 선호도와 상관없이 ‘맥주’라고만 표기돼 있어 시각장애인 혼자 이용할 수 있다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의약품의 경우에는 점자 표기가 돼 있는 것도 더러 있지만, 손으로 읽을 수 없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점자가 있는가 하면, 방향 표기가 뒤섞여 무슨 단어인지 알 수 없는 점자도 있었다.
관계자들은 이러한 사례들이 점자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형성한다고 봤다. A씨의 경우 “엘리베이터, 건물 안내 표시 등 비교적 잘 돼 있는 것들만 이용한다”고 언급했다. 생활점자의 경우 앞서 살펴봤다시피 사실상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꼭 필요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서적의 경우에는 꼭 필요한 경우, 가령 점자로 표기할 수 없는 도표가 포함돼 있는 서적을 볼 때만 점자책을 이용하고 음성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A씨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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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품의 경우, 점자가 있는 제품이 거의 없고 그나마도 읽을 수 없는 점자였다

실제 생활에서 편리함을 줘야 긍정적 인식 확산될 것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선 점자 이용 실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다는 점이다.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 점자를 읽고 해독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의 비율이 5%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통계로, 점자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시각장애인들도 표본에 포함돼 있어 실제 통계라고 보기 어려웠다. 
국립국어원의 2014년 연구 용역 보고서인 ‘시각장애인 언어 사용 환경 개선 중장기 계획 수립’의 데이터에 따르면, 1급~4급 시각장애인 1천명에게 점자 사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점자를 사용한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41.6%였다. 실제로 10명 중 4명이 점자를 사용한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통계라는 것.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각장애인의 점자에 관한 인식과 점자 사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점자가 일반 활자와 동등한 언어로서 보장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시각장애인의 점자에 관한 인식과 점자 사용 실태’(김영일, 2015)를 보면 점자가 일반 활자와 동등한 언어로서 보장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23.6%, 거의 그렇지 않다 25.2%, 대체로 그렇다 19.8%, 매우 그렇다 10.8%, 모르겠다 20.6%로 시각장애인 10명 중 3명만이 점자가 동등한 언어로 보장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시각장애인 10명 중 9명이 점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점자 사용이 필요한 시각장애인 10명 중 6명만 점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쉽게 말해 점자의 중요성, 교육 필요성은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 점자 활용도는 그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점자 사용자에게 점자 읽기의 주목적을 물어본 결과, 학업이나 직업 수행 49.5%, 독서 18.3%, 짧은 글이나 편의시설 점자 확인 16.3%, 생활정보 습득 15.9%로 응답해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 10명 중 7명은 학업이나 직업 수행 또는 독서를 주목적으로 점자를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인쇄, 파일, 편의시설 부착 점자 자료 유형의 질에 대한 만족도를 알아본 결과, 인쇄 형태의 점자 자료 63.9%, 파일 형태의 점자 자료 58.7%, 편의시설에 부착된 점자 44.5%로 응답함에 따라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의 4~5명 정도가 세 가지 점자 자료의 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김 교수는 점자는 비록 그 사용자가 사회 전 구성원의 일부에 불과하더라도 분명히 인정돼야 할 문자라고 언급했다. 때문에 2013년 최동익 의원이 발의한 ‘점자기본법’의 제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점자가 실제 생활에서 편리함을 줄 수 있어야 점자 언어의 권리가 생길 것이고,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제정될 때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
법 제정이 선행돼야 의약품 정보, 법원, 법정서류, 문화시설 공연 정보, 대중교통 운행 정보, 직장 업무자료 및 문서, 금융 및 부동산 정보, 자녀 양육 및 교육 정보, 관공서 발행 간행물과 민원서류,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 등 모든 영역에서 점자 및 전자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때문에 관계자들은 현재의 점자 관련 법 제도를 살펴보면, 점자 사용자의 권리의 관점에서보다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혜적 조치, 즉 편의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도입된 경향이 강하다고 봤다.
한편 최근 제정된 수화언어법의 주요 내용은 법률의 목적을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한국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농인과 한국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문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누구한테나 있다고 봤을 때, 점자언어법 개정 요구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드러내야 할 시점에 있다.

작성자박성준 기자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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