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거주 장애인의 거소투표,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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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병원 내 거소투표(울산 이손요양병원 홈페이지 캡쳐) |
2016년부터 3년 동안 매년 굵직한 선거가 예정돼 있다. 당장 4월의 국회의원 총선거,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 2018년 6월에 전국동시지방선거 등 그야말로 선거 러시가 이어진다. 선거는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이며,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대표를 선택하는 주권(주인으로서의 권리)을 행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따라서 선거권은 국민이 국가에 대해 가지는 공권이므로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리 행사가 인정되지도 않는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그 의미가 다르지 않고, 달라서도 안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그동안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하는 권리의식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시 전체 장애인의 74.0%가 투표에 참여했으며, 제1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시 전체 장애인의 71.6%가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투표를 하지 않은 장애인 중 ‘시간이 없어서’, ‘본인이 원치 않아서’의 응답을 제외한 ‘교통 불편’, ‘편의시설 부족’, ‘몸이 불편해서’, ‘도우미가 없어서’, ‘정보 부족’, ‘주위의 시선 때문에’ 등은 다양한 차별로 인해 투표를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런 응답은 2008년 54.3%, 2011년 57.9%로 나타나 차별로 인해 투표를 하지 못하는 환경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단연 선거권 보장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는 장애인이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는 거주시설과 정신장애인 요양시설, 그리고 이용자들이 장기입원 중인 정신의료기관들이다. 이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은 선거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아예 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그 실태조차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투표방법에 있어서도 시설 장애인들 역시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일반투표의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이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하지만 장애의 정도, 물리적 접근성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반투표가 어려운 장애인들에게는 거소투표의 기회도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각종 선거를 앞두고 시설 이용 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일들을 점검해 보되, 그동안 일반투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거소투표의 개선방안에 주목하고자 한다.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있어 선거권의 의미와 선거권 행사의 실태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경험한 선거권과 관련된 의미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선거권 행사, 특히 보편적인 선거방식인 일반투표 경험은 시설 거주 장애인 스스로 시민으로서의 자각을 형성하게 하고, 함께 투표하는 일반시민들에게도 장애인들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즉, 장애인들이 여러 시민들과 함께 투표소에서 다양한 기표방식의 지원을 받아 투표를 하는 행위는 장애인 당사자가 정치적 주체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는 다른 시민들에게도 정치적, 시민적 주체로서의 장애인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둘째,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선거권 보장방안 논의는 그들이 삶의 경험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경험하기 어렵다. 공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의 질서들이 개인의 사회적, 정치적 욕구를 압도해 개별적 존재가 아닌 ‘시설’(거주장애인)이라는 집단으로 인지하게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시설에서 했던 선거의 부정적인 기억 중 하나는 특정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유도하는 분위기다. 시설이 특정 후보인을 뽑으면 ‘시설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시설과 시설 거주 장애인을 동일시하는 사고를 은연 중에 주입돼 있다. 많은 시설 거주 장애인들은 이러한 유도에 큰 저항감 없이 그 후보자를 선택한다. 때문에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선거권 보장의 제도적 지원을 위해서는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시설에 거주하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한 사려깊은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셋째, 시설 거주 장애인이 스스로 정치적 주체로 인식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방법은 관련 교육과 충분하고 적절한 정보의 제공, 그리고 정당한 편의의 제공이다. 지역사회에 있는 장애인의 경우 선거의 의미를 여러 경로를 통해 알 수 있게 되고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파악하는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스스로 유권자로 인식하게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부 시설과 선관위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선거를 하나의 상징적 사회참여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지원이 선거 과정의 전체적인 하나의 흐름을 갖고 못하고 분절적이고 단편적인 대안에 그치는 이유가 선관위가 시설 거주 장애인을 진정한 유권자로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비판적 시각들도 진지하게 수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시설 거주 장애인은 얼마나 선거권을 가지고 있으며 선거권 행사의 실태는 어떠할까? 2012년 12월말 기준으로 553개의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26,442명의 장애인 중 18세 이상의 성인은 85.7%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59개의 정신요양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11,144명의 연령층도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18세 이상의 성인이었다. 그리고 1,280개에 달하는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는 69,511명의 경우에도 대체로 2,30대 성인기에 발병되므로 연령상 대부분 선거권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선거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아예 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애인거주시설과 정신요양시설, 정신의료기관의 이용자 272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조사(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하면 2014년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 투표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투표를 한 응답자는 71.3%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의 경우 95.7%가, 정신요양시설 이용자의 경우에는 35.3%가, 정신의료기관 이용자의 경우에는 10.4%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방식에 대해서는 일반투표 또는 사전투표를 했다는 응답이 65.1%로 가장 많았으며, 거소투표를 한 장애인이 33.7%로 조사됐다. 거소투표 비율은 지체·뇌병변 등 신체적 장애인과 시각·청각·언어 등 감각적 장애인이 정신적 장애인보다 높았고, 1급 장애인이 2급 이하 장애인보다 높았다. 한편, 다음 선거에서는 사전투표 또는 일반투표를 하고 싶다는 응답이 46.9%, 거소투표를 하고 싶다는 응답이 53.1%로 나타나, 장애유형별로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거소투표에 대한 욕구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 19대 총선 시설 거소투표 인터뷰(사진제공 진선미의원실) |
거소투표의 개선방안
거소투표의 경우 신체가 불편해 먼 거리 이동이 어렵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기피증이 있는 장애인에게는 매우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선관위가 부정투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부담감으로 시설이나 기관은 거소투표를 기피하고 있다. 실제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하는 거소투표는 본인 확인 절차가 사전투표나 일반투표에 비해 허술해 대리투표 등 부정선거 가능성이 높다. 또 기표소도 설치하지 않고 참관인도 배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가 이루어지는 사례, 투표행위가 사무실이나 식당 등 다른 장애인이나 직원이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사례도 종종 발견된다. 그리고 거소투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기표하거나 다른 사람이 직접 기표한 경우, 기표한 투표용지를 회송용 봉투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넣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 넣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이렇듯 거소투표는 부정선거의 가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선관위와 시설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거소투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안들이 고려돼야만 한다.
먼저 거소투표에 관한 명확한 절차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거소투표의 경우 본인 확인 절차가 사전투표나 일반투표에 비해 허술해 대리투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선관위 직원 등을 파견해 본인 확인을 거친 후 투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거소투표를 하는 장애인 수와 무관하게 시설 내에 설치된 기표소에서 투표하는 것을 의무화하거나 선관위 직원이 시설을 방문해 거소투표 절차를 지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설이용 장애인의 선거권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설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소투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고, 보다 공정한 투표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설에서 이루어지는 거소투표시 기표소 설치와 함께 시설 외부 참관인의 참석을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시설 거주 장애인들에게 선거관련 정보를 대폭 확대 제공해야 한다. 투표절차가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장된다 하더라도 시설 거주 장애인의 경우 투표와 관련된 적절한 수준의 정보를 얻기 힘든 상황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원하는 후보자를 선택함에 있어 처음부터 상당히 제약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관련 정보는 우편 공보물, TV나 라디오를 통한 토론회와 광고, 인터넷, 벽보 등을 통해 제공받고 있다. 시설에서는 의도적으로 저녁뉴스를 정기적으로 시청하도록 하거나 시설 밖으로의 외출이나 나들이를 통해 도로변의 현수막이나 선거벽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등 소규모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해야 한다.
셋째, 혼자서 투표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을 구분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만 신분 확인, 투표용지 수령, 기표과정에서 공정한 투표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람의 자격과 범위에 대한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기표소에 장애인과 동행하는 사람은 투표사무원, 투표자원봉사자, 선거관리위원 등 선거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한정해야 하며, 상호 확인이 가능하도록 2명이 기표소에 동행해 장애인이 투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넷째, 선관위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거주시설 내에서의 거소투표에 대한 설치와 관리 책임을 시설장에게 부과하는 방식으로는 투표의 공정성이 확보되기 어렵기 때문에, 선관위가 그에 관한 설치 및 관리의 책임을 지도록 운영해야 한다.
다섯째, 정신의료기관의 투표 안내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선거권 문제는 거의 다루어지지 못했다. 지역 선관위의 느슨한 관리는 정신의료기관 입원자가 주민등록지를 이전하지 않는다는 점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거동이 가능하더라도 정신의료기관 소재지와 투표지역이 상이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입원 중 사전투표소에 가서 직접 투표하지 않는다면 거소투표를 하는 방법만 남게 된다. 그러나 정신의료기관 내에서 선거와 거소투표에 관한 안내는 거의 이루어지지 있고 있으며, 정신의료기관의 선거와 거소투표에 관한 안내 불이행에 대한 벌칙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제도적으로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특별한 규정을 제정해 관리함과 동시에 입원시설에서의 거소투표와 입원전 거주지역에서의 투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섯째, 이동투표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반 투표소에서 투표를 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제149조를 근거로 하여 일률적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의 장에게 거소투표를 위한 기표소를 설치하도록 하고, 일반투표소에서의 투표를 제약하는 것도 부당하다. 중증의 와상장애인이 아닌 한 ‘거동할 수 없는 자’에 해당하지 않고, 이동편의가 제공된다면 얼마든지 일반 투표소에서의 투표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소투표를 위한 기표소 설치의무를 지는 시설의 범위는 매우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 동시에 시설 내에 기표소가 설치됐다 하더라도 해당 시설의 장애인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시설 또는 거소에서 투표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이 경우에도 ‘거동할 수 있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한 일반 투표소에서의 투표 권리가 보장돼야 할 것이다. ‘거동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부득이 하게 시설 내에서 투표를 하게 되더라도 시설장이나 시설직원으로부터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선관위 소속 선거관리관으로 이루어진 이동투표팀이 이동식 투표소를 운영한다면 선거의 공정성과 직접·비밀선거의 원칙을 보다 잘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박경수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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