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 두려움. 무엇이 시설 건립을 막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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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성일중학교’가 님비 현상의 배경이 됐다. 중학교 내 건립 예정인 발달장애인 직업훈련센터 ‘서울커리어월드’를 두고 주민들이 공격적인 반대운동을 펼친 것이다. 반대 주민들에게 사업을 설명하고 오해를 풀고자 마련한 수차례의 주민간담회에서도 원활한 대화는 불가능했다. 6차 주민간담회에 이르러서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기까지 했지만 반대 주민들의 고함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혐오시설 취급 당하는 발달장애인 직업센터
서울커리어월드(이하 커리어월드)는 서울시교육청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함께 설립하는 발달장애인 직업교육 공간이다. 장애특성상 발달장애인의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을 반영해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고용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협업 시스템을 꾸렸다. 원래의 계획에 따르면 커리어월드는 올해 가을에 설립됐어야 한다. 하지만 공사는 가을을 훌쩍 넘긴 11월 중순까지도 연기 상태였다. 공사를 막아선 것은 다름아닌 제기동 주민들이었다.
지난 7월 20일, 1차 사업설명회가 실시됐고 이어 2차, 3차 사업설명회가 진행됐다. 통·반장을 통해 설명회 소식을 전했지만 3차 설명회에서 소식 전달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주민 측 문제제기가 있어 4차부터는 가가호호 방문해 일정을 알렸다. 4차부터는 주민간담회라는 이름을 붙였고 발달장애인 부모 측도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수면 위에 본격적인 갈등이 드러난 것이 바로 4차 간담회다. 간담회라고 했지만 사실상 주민성토대회나 다름 없었다. 반대하는 주민은 18명이 참석했지만 발달장애인 부모 대표는 단 2명에게만 참석이 허락됐다. 2명의 부모 대표에게는 그나마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김남연 대표는 4차 간담회에 참석해 1시간동안 발언권을 박탈 당한 채 반대 주민들의 편견이 실린 발언들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발달장애인 시설보다 쓰레기 매립장이나 납골당이 낫다, 발달장애인들이 비오는 날 돌발행동을 한다거나 평소에 알몸으로 다닌다는 등 논리적이지 않은 발언들이 쏟아졌다. 반대 주민들의 모든 발언이 끝나고 우리에게 주어진 5분간의 시간동안 우리 아이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하려 했지만 격렬한 야유 속에서 대화는 불가능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에도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다. 저녁 7시에 시작된 간담회는 1시간 넘게 진행됐고 간담회 장소를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상황이었다. 어두운 가운데 집결해 있던 주민들은 부모 대표의 차량을 손으로 치고 귓전에 소리를 지르는 등 위협을 가했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부모 대표 측은 이후 주민간담회를 저녁에 실시하길 거부했다.
부모 대표가 제안한 5차 간담회는 주민들의 거부로 인해 성립되지 않았고 6차 간담회가 추진됐다. 6차 간담회는 아비규환이었다. 시의원을 앞세운 주민 측의 고함 섞인 비난들이 쏟아졌다. 설명도, 대화도 어려울 정도였다. 부모들은 단상에 무릎을 꿇었다. 간담회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교육청 측이 간담회를 마치겠다고 발언한 뒤에도 주민들의 항의는 끝이 없었다. 그 와중에 무릎을 꿇고 있던 부모 중 한 명이 쓰러졌고 그 모습을 지켜본 주민 측에서는 “쇼 하지마라”는 조롱과 고성이 이어졌다. 6차 간담회는 결국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발달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가는 님비
건립 반대 주민들이 가장 주요하게 내밀고 있는 반대 이유는 커리어월드에 다니는 발달장애인들이 성인이라는 것이다.
성인 발달장애인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이 위험하다는 발상은 성인 발달장애인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성 발달장애인이 여중생과 마주했을 때 성범죄가 야기되고 그 외에도 통제가 되지 않았을 때 돌발행동으로 인해 중학생들이 위험하다는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커리어월드는 성일중학교의 3개 건물 중 하나의 건물을 독립적으로 사용한다. 주민들의 문제제기로 인해 운동장 사용을 포기했고 등하교도 겹치지 않게 조정할 예정이다. 마주칠 시간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서울에는 29개 특수학교가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비장애인에 비해 월등하게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면 특수학교 주변의 범죄 소식이 줄을 이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천막 농성 등 건립을 추진하는 부모들은 돌발행동에 주민들이 위협을 느끼는 것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일부 부모들은 입을 모아 “우리 아이는 센터 건립돼도 여기 이용도 못 해요”라고 말했다. 애초에 취업훈련센터라는 것이 취업 후 일을 할 수 있을만큼 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누구나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를 통과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커리어월드와 유사한 취지로 운영되고 있는 일산에 위치한 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도 마찬가지의 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산 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 관계자는 발달장애인 돌발행동에 대해 묻자 “취업 가능한 장애인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평가 지표를 통해 인지능력을 평가한다.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져서 위험한 행동을 할만한 분들은 애초에 평가를 통과하지 못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남연 대표는 발달장애인의 돌발 행동은 예측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돌발행동을 하지 않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특수교육 대상자들은 개인별 지원 리포트가 있어서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행동 패턴이 기록된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돌발행동을 하는지까지 기록된다는 것이다. 즉, 돌발행동은 예측 가능하고 돌발행동이 예측될 경우 보조인력이 붙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
반대 주민들이 성일중 인근에 걸어둔 알림판에는 일일 최대 90명의 발달장애인을 통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일일 최대 90명이라는 발달장애인들은 매일 바뀌는 것이 아니다. 2년 과정을 밟는 전공과 학생 40명과 방과후 교육을 받는 50명이다. 40명의 전공과 학생들은 2년간 똑같은 길을 거쳐 등하교하게 된다. 이 학생들은 일정기간 등하교 훈련을 끝내면 스스로 등하교가 가능하므로 통제할 필요가 없다. 방과후 교육을 받는 학생 50명은 한 학기간 교육을 받으며 인솔 교사의 보호 아래에서 움직이게 되므로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반대 주민들은 자세한 사항을 파악하지 않고 발달장애인은 무조건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편견으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한 반대 주민들은 커리어월드가 글로컬타워나 교수학습지원센터로 가는 것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동대문구 용두동에 건립되는 글로컬타워는 장애인들이 여가를 보내고 문화 생활을 하도록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때문에 교육기관 성격인 커리어월드는 글로컬타워에 맞지 않다. 또한 글로컬타워는 이미 입주 단체들과 협약을 마친 상태이며 커리어월드가 들어갈 경우 보증금 외 매년 2억 이상의 임대료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다른 대안으로 주장된 교수학습지원센터는 인터넷 강의를 진행하는 건물로, 동영상 유출 등을 위한 베이스 시설 및 장비가 설치 돼 있어 그것들을 모두 철거하는 것은 무리다.
무엇보다 예산을 내년으로 이월시키기 위해서는 11월 안에 철거, 벽체시공,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의 교육청 공사가 끝나고 12월 안에 고용공단 공사가 시작돼야 한다. 만일 기간을 맞추지 못하면 예산은 사라지게 돼 커리어월드 건립 자체가 무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공간으로 가라는 것은 일방적인 강요에 지나지 않는다.
조희연 교육감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서울시교육청은 일련의 과정동안 계속해서 주민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조희연 교육감은 SNS 등에서 공식적으로 호소문 등을 게시하며 반대 주민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다음은 조희연 교육감의 호소문 일부다.
『저는 서울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으로서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장애학생들이 생존에 필요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장애학생들과 지역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십시오.
특수학교나 장애학생 직업능력개발센터는 혐오시설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사는 ‘협동능력’, ‘함께 사는 능력’을 배우는 좋은 교육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커리어월드는 전국 최초의 발달장애학생 직업훈련기관입니다. 발달장애학생들이 이곳에서의 직업훈련을 통해 꿈을 발견하고 꿈을 키우고 꿈을 만들어가는 기회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성일중학교의 사례를 본받아 발달장애학생 직업훈련기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단초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성일중학교와 커리어월드가 장애학생의 진로·직업 교육의 명소로, 약자를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인성교육의 요람으로, 나아가 주민 복합 편의시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호소문과 설득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SNS에는 조 교육감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6차 주민간담회 이후 공사는 다시 연기됐고 조 교육감은 7차 주민간담회가 아닌 ‘끝장토론’을 해보자고 제의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끝장토론에서 반대 주민들에게 성일중학교 내 커리어월드가 건립되면 학교에 별도로 지원할 사항을 제시했다. 커리어월드 건립시 서울시교육청이 약속한 지원들은 ▲학교 문화 예술교육 중장기 발전 계획에 따라 성일중학교 우선 지원 ▲농구장 방음벽 및 캐노피 설치(7,100만원) ▲식당과 본관 사이 캐노피 설치(1,900만원) ▲학생용 신발장 비치(1,500만원) ▲화장실 현대화 사업(7억원) ▲운동장 인조 잔디구장 시설(5억원) ▲전문상담교사 배치 ▲희망교실 운영 시 성일중학교 우선 지원 ▲주민 평생학습관 설치 ▲성일중학교 주변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확보 등이다.
이에 주민 대표는 11월 22일까지 공사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하고 그 사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교육감은 일단 주민 대표의 의견을 수렴해 한 차례 더 공사를 중단했다.
이후 11월 23일 오전 조 교육감은 성일중학교 학생들, 교직원들과 2차례 간담회를 갖고 24일부터 공사를 재개한 상태했지만 일부 주민들의 반대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조용한 지지와 격려 보내는 찬성 주민들
끝장토론이 실시된 현장에는 비장애인 학생들도 모여들었다. 언뜻보면 모두 반대 의사를 가진 것으로 보였지만 얘기를 나눠본 학생들의 입장은 달랐다. 성일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B군은 친구인 C군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반대하러 왔냐”는 질문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B군은 “성일중학교 졸업생들이 보는 SNS에 성일중학교가 폐교되니 모이라는 글이 있어서 왔다”며 “폐교되고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B군은 현장에 와서야 폐교는 사실무근임을 알게 됐다. B군은 “헌법에도 국민은 동등하게 교육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왜 장애인이 교육받을 시설을 반대하는 지 모르겠다”며 “반대하시는 분들이 발달장애인 부모 입장이었다면 이렇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군은 “적극 찬성이 아니어도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굳이 반대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끝장토론 이후 성일중 부근 벽에 한 고등학생의 대자보가 붙었다. 종암초등학교 졸업생이라는 고등학생은 통합교육에서 장애 학생과 함께 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멈추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내용을 호소했다. 대자보를 발견한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많은 위안을 받았다”며 천막농성과 기자회견 과정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을 찾아와 센터 찬성 의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제기동 주민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밝혔다.
천막농성 당시 일부 제기동 주민들은 천막을 찾아 우유 등을 전달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추고 “왜 반대하는 지 모르겠다”며 지지의 말을 건네는 중년의 주민부터, 기자회견 자리에 나타나 성일중 졸업생임을 밝히며 찬성 입장을 드러낸 주민까지 다양한 모습의 찬성 주민들도 물 밑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에게 힘을 보탰다.
곳곳에서 밀려나는 발달장애인 시설들
“물러가라”고 외치는 반대 주민 앞에 선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더 이상 님비에 쫓겨다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장애인 시설을 거부하는 님비 현상이 비일비재 하다는 뜻이다.
2017년 개교를 목표로 설립 추진 중이었지만 아파트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1년이나 연기된 용인시의 특수학교는 아직도 명쾌한 답이 없다. 지금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특수학교들도 설립 과정에서 진통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정애학교, 밀알학교, 서울정문학교 등 특수학교 설립은 극심한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해당 지역에 특수교육을 위한 시설이 거주 장애인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설명해도 반대는 이어진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반대 이유는 다양하지만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편견과 두려움이다. 님비란 혐오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인데 발달장애인 시설에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발달장애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과 같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도마 위에 올랐던 부산 발달장애인 사건은 발달장애인 혐오와 편견의 잘못된 근거가 됐다. 해당 발달장애인이 발달장애인의 일반적 모델이라고 할 수 없고 당시 상황에 책임이 있었음에도 일부 비장애인들의 뇌리에는 발달장애인 모두가 언제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로 박혀있는 것이다.
이미정 한신대 외래교수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불안은 발달장애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장애인과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는 것 보다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그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식 개선 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 제공을 통한 인식 개선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일단은 발달장애인을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나가는 것이 첫 걸음일 것”이라며 “성일중을 예로 들면 학교 근처 문방구나 슈퍼마켓 등 상점을 대상으로 발달장애인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대하면 될지 알려 설립 이후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께걸음 조은지 기자 simhy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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