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현황을 묻다
본문
대담·글 박성준 기자 / 사진 채지민 기자
지난달 24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한국장애포럼, 국제장애연대(IDA)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증진’ 국제 워크숍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했다. 워크숍에 참가한 해외 14개 국가의 활동가들은 각국의 권고사항 이행 사례를 공유하고, 협약 이행 촉진을 위한 다양한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협약의 성공과 실패는 협약 이행 및 모니터링의 질에 달려 있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우리나라 또한 CRPD 모니터링을 위한 지표를 개발하는 한편, 이를 이행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전략들을 국제적으로 공유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1년 앞서 최종견해를 채택한 호주의 트레버 캐롤 호주장애인단체연맹 대표와 테레사 샌드 호주장애인연맹 공동대표를 만나, 호주의 CRPD 이행 상황에 대해 들어 봤다. 대담의 통역은 이리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국제협력국장이 맡았다.
※ 인물 및 단체명의 한글 표기는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인터뷰 내용은 워크숍 내용을 포함, 약간의 각색을 거쳤음을 밝힙니다.
함께걸음(이하 함께) 바쁘신 와중에도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린다. 우선, 최종권고 채택 이후 2년이 흘렀는데, 현재 상황이 어떤가
테레사 샌드(이하 테) 정부와의 연결고리가 다소 약해졌다. 재작년 민간보고서를 작성할 때만 해도 정부와 긴밀하게 연대가 이뤄졌다. 민간단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도개혁을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 소통이 원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그런 과정들이 수포로 돌아갔다. 다시 처음부터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함께 근본적인 문제가 뭔가
테 호주에는 국제협약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법조항이 없다. 아무리 CRPD비준을 했어도 효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에 있는 포함된 몇몇 조항들은 법적인 효력이 있지만, 다른 이슈들은 정부의 국가장애전략(장애인권리협약등을 이행하기 위해 2010~2020 목표로 수립된 전략)을 통해 주장하는 수밖에 없어서,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트레버 캐롤(이하 트) 또한 정부가 협력적이지 않아 의견 수렴 과정에서 단체들을 배제시키는 경우가 많고, 의견을 개진해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비판에 민감한 호주 정부의 특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호주 정부는 이주민, 피난민 관련 정책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함께 최종견해 채택 이후 긍정적인 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정부가 취한 주요한 조치가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다.
트 강제구금에 대한 문제가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 점은 긍정적이다. 정부 심의 때, 형이 구형되지 않았는데 교도소에 구금돼 있던 원주민 사례에 대한 내용이다. 이후 몇 번의 유엔심의, 정기 리뷰 등에서 다뤄지면서 국회의원들도 관심을 가졌고, 정부 차원에서도 개선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행 조사 단계지만, 이후 꾸준히 논의될 거라고 본다. 한편으로는 조금씩 UN과 긍정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추세인 것 같다. 유보조항을 비롯, 논의된 사항들에 대한 개선 의지를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 정부 정책 중에서는 NDIS(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국립장애보험제도)의 전면 시행이 가장 긍정적이다. 중앙 정부·주 정부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주당 15시간의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도 장애로 인정하는 장애인지원연금(DSP), 61개 에이전시에서 7000명 이상이 옹호활동을 하고 있는 국가장애권리옹호프로그램 등 다양한 서비스가 있다.
함께 NDIS는 어떤 발전과제를 앞두고 있는가
트 NDIS의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장애인 권리 옹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략 4백만 명에 가까운 호주 장애인 중 4십만 명만이 NDIS에 의한 개별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부족한 수치다. 권리옹호는 장애인들이 의미 있는 삶을 살게끔, 사회를 더 접근 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하지만 현재의 권리옹호에 대한 정책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그것이 필요한 순간에 접근 가능해야만 작동하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함께 호주 정부 최종견해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과 비교해 봐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 있다. 가령 의사결정지원제도에 관한 부분, 사법 시스템에 관한 부분은 정부 심의 때 강하게 지적받은 내용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는 성년후견제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한편, 장애인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시도되고 있다. 현황이 어떤가
테 의사결정지원제도는 몇 개 주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시행이라기보단, 각 주별로 시행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성년후견제를 의사결정지원제도로 전환하라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써서 연방 정부에 제출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함께 사법 시스템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겠다
트 주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호주에서는 법적으로 지적장애인들의 사법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증언도 효력이 없다. 때문에 경찰, 자원봉사자 등 제 3의 인물이 경찰조사과정에 참여해야 하는데,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보긴 힘들다.
테 동감한다. 우리 단체는 사법기관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는데, 이런 교육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개별 시민사회단체가 알아서 주별로 하게끔 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또, 주별로 정책이 들쑥날쑥하다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지기도 한다. 한 예로, 진술이 불가능한 장애인이 수화통역자를 불렀는데, 수화통역자가 제 3자라는 이유로 진술이 인정돼지 않은 일이 있다. 학교 통학버스에서 아들이 당한 폭행을 다 얘기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어머니도 있다.
함께 협약 자체에 대한 이해는 어떤가? 정부와 단체 사이에 다르게 이해하는 부분은 있나?
테 단체들이 CRPD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전한 의견차는 있다. 가령 장애인들도 일반고용시장에서 고용될 수 있는 정책방향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정부는 여전히 보호작업장 위주의 정책을 고수한다. 몇 가지 이슈에 관해서는 굉장히 완고한 방향을 보인다.
함께 중앙정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슈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트 시설 내 장애인에 대한 폭력, 성폭력, 방치 등도 큰 문제다. 특히 그룹홈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많다. 이는 탈시설 문제와도 연관이 있는데, 거대시설을 폐쇄하고 대부분이 그룹홈으로 보내져도 그 그룹홈에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구조다. 4~5명 있는 그룹홈의 거주인이 거주지도 제공하고, 케어도 담당하는 구조라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지적장애인들이 신고하기 힘든 상황이다. 설령 경찰에게 연락해도 소통 수단이 없는 장애인의 경우 집주인의 말 한 마디로 문제가 무마되는 경우가 있다.
테 시설 문제에 대해서도 연방정부는 지방정부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고, 중앙·지방간의 협의가 부족하다. 또한 장애 이슈는 여전히 소외돼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여성·아동에 관한 폭력방지 국가대책을 만드는데, 거기에 장애여성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장애계에서는 일반이슈에 대해 논할 때 장애이슈를 같이 이야기하는데 계속 ‘장애는 따로’라는 식으로 제외되는 것이다.
트 장애에 관한 이슈를 다른 이슈와 함께 논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005년부터 아동권리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등과 함께 정부정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11년 강제불임에 대한 목소리를 다른 단체, 기구 등과 목소리를 모아서 전달한 적도 있었다. 다른 인권기구의 판단은 그대로 장애 이슈에 대한 판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협약 이행을 위한 선결과제는 무엇이 있을까.
트 31조, 데이터 수집이 가장 큰 과제다. 호주는 31조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많은 데이터가 있다. 호주 통계청(ABS) 등의 다양한 정보들은 장애인을 위한 넓은 범위의 프로그램들과 서비스를 입법화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정책을 위한 통계가 아닌,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데이터가 현저히 부족하다. 장애인이 처한 삶에 대한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장애에 관해 인권적으로 질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테 맞는 말이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예를 들어보면 여성에 초점을 두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아니고, 폭력에 관한 데이터 등 특정적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서 차별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장애아동, 원주민 등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데이터 수집이 권리협약 이행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