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투표 만드는 불편한 투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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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은지 기자
접근 불가능한 투표소들
비장애인에게는 줄만 없다면 10분이면 끝날 간단한 투표 과정이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산 넘어 산이다. 일단 투표장이 있는 건물, 가장 흔한 장소인 주민센터로 가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열악한 이동 경로를 떠올려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경로라면 장애인콜택시를 부르거나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서 마련한 교통편의지원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선관위에서 준비한 교통편의지원차량은 장애인과 노인의 투표를 위한 지원이니만큼 충분한 여건이 마련돼 있어야 하지만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 전동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리프트 설치 차량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승합차, 승용차 등이 오면 장애인들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 탑승해야 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게 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애초에 선관위 지원차량을 포기하고 장애인콜택시를 부를 수도 있지만 선거 시즌에 장애인콜택시 수요가 높아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장애인콜택시 차량 수가 장애인 수에 비해 현저하게 적을 경우에는 시간 내 투표장을 왕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며 지원차량의 리프트 설치 필요성을 토로했다.
이동을 완료하고 건물 앞에 도착해도 접근성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투표장이 2층에 설치돼 있는 문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특히 본 투표에 비해 사전투표소에서 문제가 도드라졌다.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6.4 지방선거 설치 현황에 따르면 본 투표소의 90.3%가 1층에 투표소를 가지고 있었다. 1층이 아닌 경우에도 승강기가 설치된 곳이 7.5%로, 휠체어장애인이 접근 불가능한 투표소는 1.4%~2,0%였다. 하지만 사전투표소의 경우 본 투표소와 달리 절반 이상의 투표소가 접근 불가능했다. 1층인 사전투표소는 전체의 9.4%에 지나지 않았고 1층이 아닌 투표소지만 승강기가 설치돼 접근 가능한 투표소는 22%로, 약 68%의 투표소가 접근 불가능했다.
당시 사전투표소가 1층이 아닌 이유에 대해 선관위는 사전투표소에서 사용하는 통합선거인명부 서버 가 국가정보통신망을 통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박김영희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김영희 대표는 당시 사전투표를 위해 투표소 앞에 도착했지만 투표장소는 2층이었고 승강기도 없었다.
“사전투표를 하러 가니 승강기가 없는 2층 투표소였다. 투표하러 가야하는데 어떡하냐고 물으니 직원이 전동휠체어를 들어 올려주거나 나를 업어줄 테니 투표하라고 제안했다. 거절하고 다른 투표소를 찾아갔더니 이번에는 1층에 기표대가 있었다. 하지만 딱 기표대만 있었다. 직원이 자신에게 주민등록증을 주면 2층으로 가 열람 후 용지를 받아올 테니 그 용지에 기표하라고 설명했다. 기표한 용지를 다시 주면 자신이 그것을 들고 2층 투표함에 대신 넣어주겠다는 말이었다. 2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노인들도 그런 방식으로 투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하고 사전투표 자체를 포기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신분증과 내 표를 맡긴다는 걸 신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설상가상 본 투표소까지 2층이었다. 박김영희 대표는 긴급구제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고 지역선관위와의 실랑이 끝에 같은 장소 1층으로 투표소를 옮겨올 수 있었다. 당시 박김영희 대표 외에도 지역 장애인들이 해당 투표소를 이용했고 노인들도 모두 1층 투표소를 이용했다.
1층 투표소이거나 승강기, 리프트 설치 투표소라고 해도 모두가 접근 가능한 것 또한 아니었다. 승강기가 2층에 서지 않는 경우나 리프트가 운행되지 않으면 투표소로 향할 수 없었고 1층 투표소 입구에 턱이 있거나 진입경사로가 이용 불가능해 접근성이 떨어졌다. 한편 임시로 허술한 판을 경사로 대신 둔 곳은 그것을 이용하는 휠체어 장애인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기도 했다.
실패한 2014년형 종이 기표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중앙선관위는 ‘거동불편자용 기표대’를 선보였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기표대는 ‘넓은 공간’, ‘편의증대’, ‘안전성’이라는 3가지 특징이 강조돼 있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특징은 장애인 유권자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다.
일단 좁았다. 홈페이지 설명에는 ‘전동휠체어, 스쿠터 출입이 가능한 보다 넓은 공간’이라고 설명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 이용 장애인들의 평가였다. 개인별로 몸에 맞게 개조된 휠체어나 기존 휠체어보다 큰 휠체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동스쿠터 진입을 위한 정면 하단 구멍 때문에 우측으로 옮겨진 기표판도 걸림돌이었다. 오른손에 장애가 있어 왼손으로 기표해야 할 경우 내부에서 휠체어를 돌려야 하는데 그럴만한 공간이 충분치 않아 기표가 불가능했다. 또한 종이로 만들어진 기표대 특성상 몸이 흔들리는 뇌병변 장애인이 몸을 기울이면 기표대가 함께 기울어져 투표용지 등이 쏟아지기도 했다.
박김영희 대표는 “선거 당시 기표대를 벽에 세워 하단 구멍을 막아버린 경우도 있었고 보조인과 함께 기표대에 들어가니 천막이 들려 기표가 노출되는 등 실제 현장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장애유형에 따른 인적서비스 강화해야
인적서비스 문제는 장애 유형을 막론하고 모든 장애인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됐다. 언어장애가 있는 뇌병변장애인과 적절한 소통을 하려 노력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투표 과정을 처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각, 청각장애인이 투표장을 찾았을 때 대응 방법 숙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투표장에 가면 이미 중앙선관위에서 배포한 보조용구를 지급받게 돼 있다. 하지만 보조용구에 대해 미리 알아두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보조용구를 투표용지에 끼우는 것이 서툴러 시간이 지체됐고 시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변경된 투표장 안내도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았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 실장은 “보통은 마을회관에서 하다가 다른 때는 주민센터에서 하고, 또 학교 체육관에서 하는 등 장소가 변경 됐을 때 고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변경 고지 안내 포스터를 시각장애인이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 경우에는 주변인에게 물어봐 바뀐 장소를 알았었다”며 사전에 충분한 고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에게도 투표 과정은 부담스럽다. 의사소통 지원서비스가 없다보니 투표 과정에서 안내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사전에 투표 과정을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청각장애인용 동영상이 배포되거나 투표장에 절차를 잘 볼 수 있는 안내판이 설치되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현장 직원의 안내에만 의지해야 한다. 최소한의 수화를 하는 직원을 배치하거나 구화 사용자를 위해 입모양을 보여주는 등 사전 교육이 이뤄져야 사라지는 문제다.
2016년에 대비하는 선관위의 움직임
선관위는 지난 지방선거의 불편 사항을 인지하고 내년 총선을 위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사전투표소까지 80%~90%의 투표소를 1층에 두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를 위해 걸림돌이었던 행정망 이용을 하지 않고 전용망을 구축해 전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기표대도 이번에는 종이가 아닌 플리스틱으로 만든다. 선관위는 장애인 단체와 개선 방향을 논의해 신형 기표대를 계속해서 보완 중이다. 제작된 기표대는 전국에 하나씩 배치되고 투표소에서 올바르게 설치, 사용할 수 있도록 지침도 함께 배포할 예정이다.
또한 특수기표 보조용구도 개발 중이다. 팔에 장애가 있을 때 입 등으로 기표할 수 있는 투표용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법에 따라 장애 유형에 맞는 선거안내책자도 제작 중이며 완성시 전국 시설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는 투표 환경이 정답
투표소 접근성의 문제와 기표대의 문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어 임시적으로 장애인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박김영희 대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투표할 수 있는 하나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답이라고 꼬집었다. 2층을 투표소로 두고 1층에 장애인이 기표할 수 있는 장치를 약식으로 두거나 기존 기표대와 장애인용 기표대를 따로 만드는 것보다 모두가 함께 같은 장소와 같은 기표대에서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투표권은 국민을 가려가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주어지는 기본 권리이니만큼 모두 같은 모습으로 편안하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앞 사람이 하는 것을 긴장한 채 지켜보고 따라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직원이 보조용구를 준비하는 동안 멀뚱히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는 민망함이나 대답을 기다려주지 않아 투표 과정 내내 의사표현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아쉬움은 없어야 한다. 비장애인이 여유롭게 투표소로 향하고 아무 불편없이 투표소에 들어가고 비밀보장 속에서 기표를 하는 과정에서 느끼지 않아도 되는 거북한 기분을 장애인에게만 감수하라고 강요하는 지금까지의 투표환경은 명백한 차별이다.
선관위가 준비하고 있는 사항들이 투표 환경을 백퍼센트 개선할 순 없겠지만 목표로하는 개선점들이 모두 적절하게 현장에서 반영되는 지 다가오는 2016년 총선을 지켜보고 미흡한 사항은 다시 개선 요구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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