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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선택이라는 이름의 절망

인권이 던진 질문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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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또는 방치되거나

사실은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사실’이 어떤 ‘맥락’과 어떤 ‘관계’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모르면 사실은 ‘진실’에 가닿지 못하고 사실에 머문다. 올 2월 전남 여수에서 발달장애인자녀를 둔 부모가 자택인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그냥 행위 사실만 보면 ‘투신자살’이다. 그러나 주변사람들의 얘기들을 종합해보니 그에게는 발달장애 아이가 있었고 돌봄으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4월에는 서울시 중랑구에 거주하는 70대 아버지가 40대 장애인 아들을 숨지게 했다. 이 사실만으로는 ‘친족 살인’일 뿐이다. 좀 더 들여다봐야 사실은 충분한 설명이 된다. 70대 아버지는 자신이 곧 사망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만약 자신이 죽게 되면 아내와 둘째 아들에게 장애인 아들은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장애인 아들을 죽였다. 자신도 따라서 자살할 계획이었지만 자살에 실패한 아버지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유사한 다른 사건도 있다. 경기도 시흥에서 70대 노모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25년간 누워 지내는 40대 장애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사건, 대구에 거주하는 20대 여성이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지적장애 언니가 퇴소하자 부양의무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한 사건도 있다. 
전후사정을 들으니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그들을 죽인 사회제도, 사회구조가 보인다. 장애인돌봄정책이나 장애인복지정책이 열악한 한국 현실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장애인이라면 다른 사회활동이나 생계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발달장애이든 지체장애이든 필요한 서비스를 국가가 다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므로 그냥 돈만 벌 수 없다. 장애인가족을 방치할 수도 없다. 밥도 먹어야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함께 밖에 나가기도 해야 한다. 장애인 가족을 돌보려면 시간과 노동력, 돈이 든다. 그렇다고 장애인가족을 돌보는 일을 온전히 집에서 한다고 생계가 보장되는 복지정책도 아니다. 하루 종일 생계와 돌봄으로 전전긍긍해야 했을 가족의 삶이 선연하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라도 보였다면 그들의 선택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사건들은 사실관계만 따지면 자살과 친족살인이지만 진실은 ‘사회적 연쇄 살인’이다. 가족에게만 장애인가족을 돌볼 것을 강요하고 그마저도 부양의무제로 경제적 지원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하는 사회정책과 제도가 그들을 ‘죽고 죽이게’ 만들었다. 가족 간의 불화로만 해석되지 않는 구조적 살해 교사를 한 셈이다. 아직도 살해 교사를 하는 사회정책은 강건하다. 1977년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약칭 사회권 규약)에 대한 마스트리히드 가이드라인에서 국가에게 ‘부작위의 침해’라는 항목을 넣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형법상 살인 행위와 교사행위에 대한 처벌이 같은 것을 생각해본다면 장애인복지정책의 부재, 장애인가족에게 돌봄 책임전가가 교사한 살인에 대해서 마땅히 조사(원인 확인)하고 처벌(대책 강구)해야 하지만 교사자들은 행위자들이 아닌 척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오직 개인만이 동정을 받거나 법의 심판대에 선다.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죽음’, ‘살인행위’를 개인적 선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죽거나 또는 죽을 고통에 방치되거나’ 그들에게 선택지가 이것뿐이었는데도 그것은 선택인가?

 

온전한 개인의 선택은 가능한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한다. 장애인가족 동반자살 같은 심각한 것도 있겠지만 그 정도의 무게는 아니더라도 살면서 적지 않은 선택지를 맞닥뜨리고 고뇌하다가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어떤 선택은 결정 후에도 속이 개운치 않다. 심지어 아프기까지 하다.
얼마 전 본 영화 <위로공단>에서 한진중공업 해고자이자 2011년 고공농성과 희망버스의 주인공인 김진숙 씨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며 말한다.
“크레인에 있을 때 내려가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목욕,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보는 것이었어요. 이제까지의 내 삶은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었으니까. 저도 제가 원하는 삶을 선택해서 살고 싶었어요.”
그는 미싱 공장에 다니던 일, 버스 안내차장을 하던 일을 떠올리며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가끔 방송에 보도되는 버스 안내양이 대학에 갔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저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버스 차장(안내양)이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공부해서 대학을 갈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도저히 낼 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어쩌다보니, 이끌려서 이렇게 됐다’는 그의 말처럼 미싱 공장을 가고 대학을 가지 않은 것은 그의 선택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이끌어간 것이다. 
4남매인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내가 살던 곳은 가난한 동네라서 여자가 대학을 가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장남인 오빠는 집안의 기둥이라는 이유로 대학을 가고 장녀인 언니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오빠보다 공부를 월등히 잘하고 공부에 취미가 있었던 언니는 우수한 성적으로 유명한 상업계 고등학교를 갔다. 대학을 갈지 여부는 고등학교 진학 때 거의 결정됐다. 장녀는 살림밑천이라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었으니까. 때문에 언니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힘들어했다.
그런 언니의 진로선택을 아는 우리는 ‘그렇게 힘들어할 거면 엄마한테 우겨서라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도 가지 그랬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온전한 언니의 선택이 아님을 알기에. 가난한 집안 형편과 가부장적 의식이 언니에게 강요한 선택임을 알기에. 언니는 취업을 하고서도 대학을 가기 위해 잠을 쪼개가며 공부했다. 지금은 대학졸업증을 따서인지 언니는 말한다. 왜 그렇게 대학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언니의 상처가 가신 것 같지는 않다.
선택을 둘러싼 환경, 사회적 구조와 주체의 위치가 개인의 선택 폭을 제한한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길을 강요한다. 그런데도 사회는 당신의 현재 삶은 당신의 선택한 결과이니 당신이 온전히 책임지라고 한다. 개인에게 선택할 권리도 주지 않았으면서, 선택에 대한 ‘책임’과 선택의 ‘결과’도 선택한 주체의 몫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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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7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실시된 부양의무제 폐지 노제

모든 선택은 해당 사회에서 행해진다

선택이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하는 행위라는 가설은 선택권을 가진 일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자유의지로도 뚫을 수 없는 사회구조적 억압에 대해 살피지 않고 ‘선택행위’를 온전한 개인의 결정으로만 취급할 때, 그것은 오히려 개인을 자책하게 만든다. 또다시 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초월적인 선택은 없다. 삶의 조건을 벗어난 선택을 가정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이다. 조선시대 평민 여성이 글을 배우지 않은 걸 선택이라 규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온전한 개인의 선택이 되려면 한 개인이 선택의 자유, 또는 선택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구조에 개인이 위치했을 때 가능하다. 사람들은 현재 계급, 성별, 성적 지향, 장애유무, 빈곤 등의 다양한 권력의 위계가 있는 사회구조 속에 살아간다. 그 권력구조에서 개인들이 처한 위치에 따라 선택의 폭은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다. 심지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과 선택을 강조한다. 그래서 개인의 선택에 따른 책임도 강조한다.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인권을 바라볼 때 선택은 자기결정권의 행사이고 그것은 언제나 보장돼야하는 것으로 옹호된다. 재산증식의 자유, 사교육의 자유 등등. 그것을 공공성의 이름으로 제한하려할 때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방어한다. 그러나 이미 사회가 선택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음을 말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선택의 권리가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권리의 불평등한 현실은 은폐한다. 유네스코에서 인간 권리에 관한 철학적 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권리’라고 할 때 그것의 의미는 삶의 조건이다. 어떤 역사적 단계의 사회에서나 그것 없이는, 인간으로서 자기를 실현할 수단을 박탈당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 공동체의 능동적 구성원으로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을 말한다. ‘자유’라고 할 때 그것은 단지 제약이 없는 상태 그 이상을 의미한다. 자유란 인간이 그 안에서 사회의 능동적 구성원으로 최대한 참여할 수 있고, 그 사회의 물질적 발전이 허용하는 최고의 수준에서 공동체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및 경제적 조건의 적극적인 조직화를 의미한다. 이런 자유는 오직 민주적인 조건하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민주주의 안에서만 자유가 일부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평등의 맥락 속에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자유란 한 사람의 권리와 또 다른 사람의 권리 간에 연령 또는 성별, 인종 또는 언어 또는 신념에 의한 구별을 하지 않는 것이다.
- 1947년 유네스코의 인간권리에 관한 철학적 원리 중


선택이라는 이름의 포기, 절망……

다른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고통스런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선택이라는 이름의 포기, 선택이라는 이름의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빈곤과 장애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9월 7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노제가 있었다. 죽음을 강요당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김재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이 울부짖듯 말했다.
“저기 저 영정이 20년 후의 제 영정입니다. 저는 부모자식 간은 천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데 이를 끊게 하는 게 정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거나 같이 죽거나, 자신은 죽지 못해 법정에 서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현실입니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보호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부모가 선택하는 것은 너 죽고 나 죽자입니다. 이 영정에 내 딸과 내가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딸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은 싸우고 있습니다. 싸우다 싸우다 안 되면 저도 저 영정사진 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더 나은 선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장애인복지정책을 제대로 수립하라는 요구는 ‘사회적 연쇄살인’을 멈추기 위한 노력이다.
그럼에도 내 뒷목을 당기며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위 사건들 중 일부가 장애인 당사자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애인 당사자인 그는 더 살고 싶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장애인가족도 우리 사회의 약자이지만 장애인당사자는 비장애인인 가족보다 더 약자가 아닌가. 그래서 그/녀는 죽음을 선택할 기회조차 그보다 덜 약자인 가족에게 빼앗긴 것은 아닐까.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선택이라 칭할 수 없는 선택’도 문제지만 정작 죽임을 당한 장애인당사자는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약자들 안에서의 권력관계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떠넘기는 사회에서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약자들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서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 그래야 온전한 자유와 온전한 평등, 온전한 선택을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작성자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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