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와 같은 위치의 피성년후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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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참정권 기획 ➋ 피후견인 선거권 보장
모든 국민은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은 만 19세 이상이 되면 자연적으로 선거권을 얻는다. 선거권이란 선거에 참여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로 헌법이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참정권의 하나다. 국민 주권의 상징적 표현으로, 가장 중요한 기본적 권리인 이 선거권은 현재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부여되고 있지 않다. 성견후견인 제도 안에 포함된 피성견후견인은 당장 내년 총선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불평등은 금치산자 제도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2018년 7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지난 9월 17일 열린 RI재활대회에서는 성년후견제도와 공직선거법을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
피성년후견인은 무능력자?
2013년 7월 민법 개정에 따라 폐지된 금치산자 제도의 ‘금치산자’는 법원의 선고를 받은 법률상의 무능력자를 뜻했다. 심신상실 상태에 있는 자로, 일단 선고를 받으면 상태가 나아지더라도 선고 취소를 받을 때까지 금치산자 신분이 유지됐다. 금치산자는 단독행위 금지와 함께 선거권, 피선거권 등 각종 권리에서 제외됐다.
금치산자 제도가 폐지되고 도입된 제도가 바로 성년후견인 제도다. 성년후견인 제도는 금치산자 제도가 대상자를 행위능력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는 것과 달리 대상자가 행위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졌다. 대상자가 가지고 있는 행위능력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하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금치산자에서 피성년후견인으로 명칭이 바뀌었을 뿐, 피성년후견인에게는 여전히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개정 민법에 따라 2018년 7월 1일이 지나야 금치산자 선고 효력이 말소되기 때문이다. 즉, 해당 날짜까지 이뤄지는 모든 선거에서 피성년후견인의 선거권은 박탈 상태다. 이러한 문제는 UN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선거권 제한을 완전 삭제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한편 선관위는 2014년 10월, 피성년후견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자 현행 규정을 삭제하는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제출했다. 하지만 개정의견을 제출했을 뿐 아직 적극적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지는 않다.
현재 법적으로 피성년후견인을 포함해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제18조(선거권이 없는 자) ① 선거일 현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선거권이 없다.
1. 금치산선고를 받은 자
2.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
3. 선거범, 「정치자금법」 제45조(정치자금부정수수죄) 및 제49조(선거비용관련 위반행위에 관한 벌칙)에 규정된 죄를 범한 자 또는 대통령·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그 재임중의 직무와 관련하여 「형법」(「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에 의하여 가중처벌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제129조(수뢰, 사전수뢰) 내지 제132조(알선수뢰)·「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알선수재)에 규정된 죄를 범한 자로서, 100만원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 또는 형의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10년을 경과하지 아니하거나 징역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또는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면제된 후 10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형이 실효된 자도 포함한다)
법령에 따르면 금치산선고를 받은 자, 즉 피성년후견인 외에 선거권 제한을 받는 이들은 모두 범죄자다. 법을 어긴 범죄자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형벌을 준다는 의미로서의 선거권 제한이며 이마저도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이들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문제시 돼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상태다. 2016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사람. 다만, 그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유예기간 중에 있는 사람은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다. 범죄자 중에서도 그 죄가 가벼울 경우에는 선거권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령 제1항은 변함이 없다. 피성년후견인은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무고한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인 선거권 제한이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 중요성과 개정의 시급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합리적 판단은 투표의 절대 조건이 아니다
피성년후견인의 선거권 제한은 당사자의 선거능력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피성년후견인의 경우 후보자에 대한 정치적인 판단이 불가하다는 판단은 피성년후견인의 투표를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게 한다. 하지만 선거능력을 말 그대로 투표를 할 수 있는가로 보면 결론은 달라진다. 한양대학교 제철웅 교수는 선거능력 판단 기준을 낮게 잡으면 피성년후견인도 충분히 선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표의 의미와 결과만 안다면 누구나 선거능력이 있다고 봐야한다. 투표의 의미 파악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가 무엇을 위한 선거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이 선거가 대통령 선거인지 구청장 선거인지만 알면 된다. 결과에 대한 이해 또한 후보자 중 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대통령 또는 구청장 등이 된다는 것만 알면 된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 두가지를 선거능력이라고 말한다.”
합리적인 판단을 잣대로 두고 선거능력을 말한다면 차별이 발생한다. 선거권을 가진 비장애인 모두가 합리적인 판단 근거로 투표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후보자의 공약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하는 경우도 있거니와 술에 취한 채 투표를 할 수도 있다. 또한 우연적 판단도 개입된다.
예를 들어, A라는 남자가 B라는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더라도 투표날 아침에 아내와 크게 다투고 감정에 휩쓸려 아내가 지지하는 B 후보자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해도 투표를 막을 수는 없다. 비장애인들에게 선거 제도는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절대조건을 들이밀지 않는다. 만약 피후견인의 선거권 박탈이 합리적인 판단력 여부에 근거를 둔다면 이것은 차별에 해당하게 된다.
또한 단지 후견인제도에 들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선거능력 여부와 무관하다고도 볼 수 있다. 같은 장애인이라고 해도 성년후견인제도에 편입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선거권이 오가기 때문이다.
일본의 피성년후견인 선거권 회복 사례
한국와 물리적 거리가 가까우면서 상황이 비슷했던 일본의 경우, 2013년 소송을 통해 피성년후견인의 선거권 제한 조항을 삭제했다. 소송 당사자는 다운증후군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전부터 선거를 해오다가 피성년후견인이 되면서 선거권을 박탈 당해 이는 위헌이라며 소송을 진행했다. 당시 당사자 여성과 늘 투표소로 향하던 아버지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소송을 결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 지방재판소는 소송 시작 1년 여만에 공직선거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고 원고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판결을 내렸다.
도쿄 지방재판소는 부득이한 경우 외에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전제를 두었다. ‘부득이한 경우’란, ‘그런 제한을 하지 않으면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를 뜻한다. 재판소는 성년후견제도와 선거제도의 목적과 취지가 전혀 다르며 후견개시 심판이 곧 선거권 행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어 선거권을 행사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을 선거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피성년후견인에게서 선거권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로 허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 결과 일본의 피성년후견인 선거권 부여와 관련된 법률은 다음과 같이 개정됐고 약 13만 6천4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선거권을 회복해 투표할 수 있게 됐다.
발달장애인에 맞는 선거 조성돼야
일본과 같이 피성년후견인에게 선거권이 주어지고 나면 선거권 행사를 위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먼저 국가가 피성년후견인에게 투표방법, 후보자 정보 등을 장애특성에 맞춰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후견인에게 일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선거권 제한이 삭제된 후, 필요한 지원들은 피성년후견인 대상이 아닌 발달장애인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미정 한신대 외래교수는 피성년후견인을 포함한 발달장애인 선거지원은 전적으로 정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선거라는 예민한 주제를 발달장애인 주변인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교육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다. 온전히 선관위의 몫으로, 발달장애인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읽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자료를 제작해 배포해야 한다. 특히 후보자에 대한 설명은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한 자료가 필요하다. 주변인에게 일반 선거공보를 주고 발달장애인에게 후보자를 설명하는 책임을 맡겼을 때, 그 위험성은 뻔한 일이다.”
발달장애인들의 표가 무효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기표지에 후보자들의 사진 등을 활용해 발달장애인이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마련되지 않는다면 선거권을 온전히 부여했다고 볼 수 없다.
만 19세 이상의 국민은 ‘누구나’ 선거권을 갖는다
죄를 저지르지 않은 만 19세 이상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거권을 갖는다. 단, 피성년후견인은 제외된다. 이 두 개의 문장만 들여다보아도 소수를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피성년후견인은 성인으로도, 국민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철웅 교수는 “피성년후견인 선거권 제한처럼 능력에 따라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너는 아이큐가 낮으니 미성년자 정도의 권리만 주고 나는 똑똑하니 모든 권리를 누리겠다는 것은 결국 독재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만 19세 이상이라면 모든 권리를 부여하고 혼자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만, 혼자 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 어려운 부분만 도와주면 된다.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의 한 표와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의 한 표가 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중요한 원리”라며 평등한 투표권 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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