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학회]선택과 통제권
본문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실천되고 있는가?
사회적 모델이나 자립생활 모델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도 20년이 되어 가고 있다.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던 장애인에게 사회적 모델, 자립생활 모델, 장애학은 한줄기 희망이었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더 열렬히 지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행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는 사회적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없으며, 또한 사회복지실천현장에서는 아직도 낯설어 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모델에 동의한다고 해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장애관련정책을 살펴보면, 1980년대 장애인복지법의 제정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아직도 장애를 의료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생계지원, 시설지원 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보충적 복지정책의 나열일 뿐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전달체계는 지방정부, 시설 및 기관 운영자 등 공급자에게 재정을 전달하는 공급자 중심의 전달체계이다. 결국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서 일방통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은 장애인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삶의 주체성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이념적으로만 강하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에 사회적 모델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모색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 중 상당수는 빈곤하고,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복지현장에서 어떻게 사회적 모델을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문지방(threshold)을 넘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사회적 모델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에 기존의 이론이나 정책에 살을 붙이듯 확장하기 보다는, 새로운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문지방을 넘듯 기존 개념이나 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과 정책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물론 기존에 교육된 내재화된 신념이나 태도를 수정하고 기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문지방을 넘고 새로운 개념으로 진입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모델을 찬양하면서도 기존 정책의 확장을 주장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어 과거의 답습에 그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장애인은 영원히 이류시민, 지원이 필요한 사람, 의존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사회적 모델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소위 복지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에서 사회적 모델에 바탕을 둔 장애인 제도의 기본 방향을 보면, 이용자의 선택과 통제권, 이용자 참여, 협력, 이용자 주도, 자기결정, 자치 등의 개념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선택과 통제권이 가장 강조되고 있다. 즉, 서비스 제공과정에 이용자 참여와 서비스 선택권을 보장하고자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전의 장애인복지 정책이 진짜 장애인을 선별해 무엇인가를 주는 정책이었다면, 자립생활모델 및 사회적 모델에 따른 장애인복지 정책은 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자기결정에 따라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한 세계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개인의 천부적인 존엄성, 선택의 자유를 포함한 자율, 자립에 대한 존중’을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서비스주도 접근법에서 이용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원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가 지정해주는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장애인은 취약하기 때문에 훈련된 전문가가 장애인을 사정하고 적합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결정하고, 국가를 대신해 국민의 세금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이 당연시됐다. 그러다 보니 이 접근법에서는 서비스에 사람을 맞추게 되었다. 이를 위해 갖가지 사정방법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장애인등급제, 각종 사정도구, 사례관리 등이 개발되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모델에 따른 이용자주도 지원에 따르면 이용자는 자신의 욕구를 식별할 수 있고, 언제 어떻게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선택할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용자주도 지원에서 장애인은 지원과정의 중심에 있으며, 지역사회의 부분이 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조직할 수 있다. 모든 장애인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필요할지라도 적절한 지원을 받아서 그들의 삶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적절한 지원을 받는 것도 시민권이라고 여겨진다. 즉 국가가 일방적으로 개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어 자신에게 필요한 지원을 선택하고 자신의 지원서비스를 통제함으로써 시민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처럼 급여에 대한 내용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장애인의 선택과 통제권을 강화하도록 급여 전달방식을 개선함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권리를 증진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문제에 결정권을 가진 존재로 존중될 수 있도록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급여내용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전달방식을 확립하는 것이 장애인의 삶에서는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사회적 모델에 따른 사회복지실천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개별적 모델에 따른 사회복지실천과 사회적 모델에 따른 사회복지실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존의 전통적인 모델에 따르면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재사정 결과 사회적 보호 서비스에서 탈락된다면, 또는 장애인의 부모가 더 이상 장애인을 돌볼 수 없게 된다면 장애인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 지는 명백해진다. 장애인은 끊임없이 사회의 지원에 의존하는 이류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사회적 모델을 사회복지서비스에 적용하면, 서비스에 대한 적격성은 자립의 위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위험에는 직업과 교육 기회가 심각하게 제한되는 경우, 가족의 역할이나 다른 사회적 역할과 책임성이 지속되지 않거나 지속될 수 없는 경우, 홈리스가 된 경우, 관계가 유지될 수 없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이럴 경우 장애인은 그들의 권리 및 자격에 접근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여겨지고, 사회복지서비스의 설계가 필요해진다. 장애인과 장애인단체들은 서비스의 전개과정 및 전달체계에 전적으로 관여하고 통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들은 장애인의 선택과 통제권의 원칙에 기반해, 장애인들이 자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충분히 사용하여 지원하게 된다. 즉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지원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과정에서 장애인이 통제권을 행사함에 따라, 장애인은 권한이 강화되고 이후의 삶에서도 보다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선택과 통제권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가?
장애인의 선택과 통제권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사람에 서비스를 맞추는 사람중심의 서비스, 이용자의 선택을 강화할 수 있는 현금급여, 이용자의 통제권을 강화할 수 있는 자기주도 지원 등의 개념을 포함하는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가 논의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보다 소위 복지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에서는 1990년대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 왔다. 특히 스웨덴, 영국, 미국, 네덜란드 등에서는 장애인들의 적극적인 요구에 의해 도입되기도 했다.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기본적으로 서비스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서비스를 맞추고자 한다. 특히 영국의 개인예산제도가 그러한데, 이와 같은 철학을 개별적 유연화(personalisation)라고 한다. 개별적 유연화는 지원의 중심에 개인을 놓는 것이다. 만들어진 서비스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욕구를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시 외곽에 사는 장애인이 도심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려면 많은 시간 셔틀버스를 타야하고, 또한 자신의 욕구에 딱 맞지 않더라도 복지관이 지정해 주는 프로그램에 참석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지원을 받는 장애인은 진정 행복할까? 만약 이 장애인이 시골에서 나무를 기르고 동물을 기르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정부가 이 장애인이 나무 종자와 동물을 살 수 있도록 하고,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이용자의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현금급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현물급여의 경우 이용자는 어떤 선택권도 없다. 바우처의 경우 조금 더 이용자의 선택권을 높일 수 있지만, 바우처 리더기가 있는 제공기관, 즉 정부가 정한 제공기관에서만 서비스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용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 현금의 경우 사용처를 제한할 수도 있지만 영리기관을 포함한 모든 제공기관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용자의 선택 가능성은 가장 높다. 결국 개인이 자신의 욕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가 전문가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무엇을 지원받을 것인지에 대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선택은 반드시 정보에 기반한 결정(informed decisions)이어야 하기 때문에, 정보제공, 옹호 등의 지원서비스를 제공받아야만 한다. 이와 같은 지원서비스는 주로 이용자 주도 조직(ULO)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그리고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자기주도지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자기주도지원은 이용자가 자신의 지원에 대해 최대한 통제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지원에는 첫째, 이용자가 자신의 예산을 통제하고, 자신의 계획을 개발하고, 자신의 지원을 감독할 수 있는 자기주도사정 과정, 둘째, 정부가 이용자의 안전과 통제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 과정, 셋째, 이용자가 적절한 수준의 추가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지역사회 기반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이 때 자기주도지원이라고 해서 혼자 모든 것을 다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은 전 과정에서 이용자 동료, 사회복지 활동가, 또는 가족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강화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필요하다면 제도화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문화적 혁신이라 불릴 정도로 대대적인 복지체계의 개편을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장애인의 선택과 통제권, 자기결정권을 증가시키고, 결과적으로 시민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제도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필요할 경우 도입을 주장하고, 제도 모형 개발에도 적극 참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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