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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의 뒷면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 ‘유명무실’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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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장애인의 절반 가량이 상대적 빈곤층이라는 통계 보고서가 발표됐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장애인들의 현실을 반증하는 보고서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누구나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나’를 책임지고 부양하는 누군가가 없다면 직업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때문에 장애로 인해 취업이 쉽지 않은 장애인들에게 있어 직업 보장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지금까지 정부가 특정한 직업을 장애인에게 보장해준 경우는 단 하나다. 안마사 자격증 발급 제한이 그것. 법적으로 안마사 자격증 발급자격을 시각장애인으로 국한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일자리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불법 무자격 마사지 업소들이 보란 듯이 대로변에 광고판을 걸어두는 실정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설 자리는 너무나 좁다.

 

 

안마원은 광고할 수 없습니다

지방에서 안마원을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A씨는 얼마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부터 프로그램 협찬 거부를 당했다. ‘안마원은 방송 광고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가 해당 프로그램을 협찬하고자 한 것은 홍보 목적이었다. 청취자들과 소통하는 특성을 가지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흔히 청취자들과 이벤트를 벌여 당첨된 소수에게 상품을 준다. 이때 전달되는 상품이 바로 협찬 제품들이다. 물건도 있지만 티켓이나 이용권도 있다. A씨도 안마원의 이용권을 협찬할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는 각종 서류를 준비해서 방송국으로 보냈지만 결과는 협찬 불가. A씨는 시각장애인에게만 합법적 운영이 허용되는 안마원 광고가 불가능한 것을 장애인 차별로 느꼈다. 피부관리샵 이용권 등은 가능하고 안마원은 불가능한 이유는 불법 안마시술소의 퇴폐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A씨의 안마원은 입구에서부터 밝고 편안한 분위기다. 잔잔하게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쾌적하다. A씨의 모습도 병원 근무자와 흡사한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말끔하다. 동남아 지역 등의 여행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마사지 업소와 큰 차이가 없다. 퇴폐 안마시술소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안마원들은 대부분 A씨와 같이 건전한 안마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퇴폐 안마시술소 이미지로부터 악영향을 받고 있다.

A씨가 라디오 협찬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하려 한 것도 바로 그런 이미지로부터 탈피하기 위함이었다. A씨는 2013년 아주 작은 규모로 안마원을 시작했다. 전문성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운영을 시작했지만 ‘안마’라는 단어에 따라붙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손님들은 안마를 받기 위해 안마원 문을 열면서까지 꺼림칙함을 드러냈다. 안마원이 건전하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안마원 이용 경험을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해 A씨는 라디오 협찬을 선택했던 것이다.

 

방심위 “안마원이 건전하다는 걸 어떻게 믿냐”

A씨의 이야기를 들은 지역의 장애인인권센터(이하 인권센터)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규정 개정을 요청했다. 안마원의 경우 안마시술소와 달리 퇴폐행위를 방지하는 설치 기준이 존재한다. 여자종업원을 둘 수 없고 밀실도 만들 수 없다. 인권센터는 ‘설치기준을 감안했을 때 안마원이 퇴폐화 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방송 광고 규제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방통위에 전달했다.

인권센터의 개정 요청에 방통위는 “안마원의 기능이 안마시술소와 다를 바 없고 소규모 운영을 통해 일부 안마시술소에서 행해지는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의료법 개정 당시의 보고 결과를 근거로 “시각장애인의 직업보장이라는 제도상의 취지를 크게 일탈하여 불법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안마시술소에 대한 방송광고를 금지함으로써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제고”한다며 이를 적용하는 데 있어 안마원을 별개로 볼 수 없다고 답변했다.

방통위에 심의 기준을 제시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안마원의 방송광고 금지 기준에 대해 “퇴폐시술소와 안마원이 다르다는 근거가 없다”며 “안마시술소도 본래 퇴폐영업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님에도 퇴폐영업으로 변질됐는데 안마원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시청자들은 퇴폐업소와 안마원이 다르다는 인식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러한 방심위의 광고 금지 처분에 반박했다. 복지부는 “의료법상 안마원 광고에 대한 법적 제제 근거가 없다는 문서를 이미 보낸 바 있다”며 “안마시술소는 규정이 있다고 해도 안마원은 방송 광고를 금지할 근거가 없으므로 적절치 않다”고 반대 입장을 보였다. 방통위 측과 복지부 모두 ‘근거 없음’을 이유로 각자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 입장 차이를 좁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통위 측은 방송을 접하는 대중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안마원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개선과 안마시술소 퇴폐행위 근절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안마시술소로 유입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

안마시술소가 불법 퇴폐행위를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다. 처음 안마시술소가 생겼을 때는 순수하게 안마를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곧 여자 안마사들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술을 마시고 안마시술소를 찾은 남자 손님들이 여자 안마사들에게 손을 대는 상황이 빈번했던 것이다. 때문에 여자 안마사를 보호하기 위해 업소 내에 하나 둘씩 당번을 두기 시작한 것이 아가씨를 쓰는데까지 확대됐다. 이후에는 주객이 전도돼 퇴폐안마시술소가 전국으로 퍼졌고 이것을 언론 등으로 받아들인 대중들의 머릿속에는 ‘안마=퇴폐’라는 인식이 지금까지 자리잡고 있다. 이 인식은 건전 안마원의 생존에 큰 걸림돌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퇴폐 안마시술소는 사라지는 추세다. 열에 일곱은 이미 사라졌지만 여전히 운영되는 일부 업소를 부정할 수 없는 상황.

맹학교를 졸업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입을 모아 “졸업하면 당연히 안마시술소로 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안마시술소에서 고용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끝도 없이 배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퇴폐행위를 한다고 해서 안마시술소에 취업하지 않는 안마사가 얼마나 될까. 게다가 안마시술소의 일은 안마원의 일보다 한층 수월하다.

안마시술소 근무를 하다가 안마원을 운영하고 있는 안마사 B씨는 “안마시술소의 일은 안마원 일에 비하면 체력적으로 훨씬 쉽고 받아가는 돈은 비슷하거나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퇴폐행위를 목적으로 안마시술소를 찾는 남성 고객들은 대부분 술에 취해 있고 안마를 하는 시간은 대기 시간정도로 생각한다”며 “술에 취해 안마를 어떻게 하는지 신경쓰지 않는 안마시술소 고객에 비해 안마원을 찾는 분들은 몸이 좋지 않은 분들이기 때문에 안마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일의 강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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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자격 불법마사지 업소는 대로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화려한 이미지 입고 성행하는 불법 업소들

일의 강도가 높은만큼 충분한 소득과 안정성을 보장한다면, 또한 안마시술소를 첫 직장으로 접하지 않고 안마원으로 곧장 올 수 있을만큼 안마원 일자리가 충분하다면 안마사들의 대부분은 안마원에서 근무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각장애인 안마원이 성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안마원의 수도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대부분을 고용할 수 있을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무자격 불법 마사지업소들이 고객을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안마사’라는 국가전문자격증의 자격요건은 ‘일정한 교육을 마친 시각장애인’이다. 안마, 지압 등 각종 수기 요법과 자극요법에 의해 인체에 물리적 시술행위를 하는 것을 안마라고 칭한다.

수기요법에는 지압 외에도 스포츠마사지, 발 지압 등 손으로 행하는 모든 물리적 시술이 포함된다. 일정한 교육이란 맹학교나 안마수련기관에서 실시되는 2년 이상의 안마수련과정이다. 안마수련과정에서는 해부생리, 병리, 이료임상, 안마, 한방 등 의학적인 내용까지 다뤄 인체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즉, 시각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안마 행위를 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특히 불법 마사지업소에서는 교육 시스템이 전무하다. 적게는 2시간, 많게는 3주간의 간단한 교육을 받으면 바로 현장으로 투입된다. 인체에 대한 이해나 전문성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시각장애인 안마라고 하면 퇴폐업소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무작위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안마원의 이미지를 퇴폐적, 불건전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70%였고 타이마사지 등이 불법임을 몰랐다는 답변은 90%였다.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이 주어진다는 것을 몰랐다는 답변도 80%였다.

마사지샵 창업을 컨설팅 해준다는 한 컨설팅 업체에서도 불법 여부를 몰랐다. “시각장애인을 안마사로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비장애인을 쓰는 건 불법 아닌가요?” 라고 묻자 컨설팅 담당자는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이 크게 웃으며 “시각장애인 안마는 퇴폐업소죠”라고 못 박았다. “불법이라고 들었는데, 단속 같은 것도 없는 건가요?”라고 재차 묻자 역시 웃으며 “그런 거 없어요. 지금 샵 운영하시는 사장님 월 매출이 얼만데요. 아주 운영 잘 하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질문에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불법임을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질문하는 입장이 민망할 정도였다.

한 지하철역에서 10분간 직진을 하면서 대로변에서 보이는 불법 마사지업소 간판을 찾아봤다. 3개였다. 명동이나 강남 같은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나 대학가가 아니었음에도 쉽게 눈에 띄었다. 길가에 세워진 광고판에는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 최다 마사지’라는 문구가 있었다. 불법 마사지업소는 불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마사지를 받은 손님들로 하여금 인터넷에서 홍보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거나 먹을 때 블로그 후기를 참고하는 것이 습관화된 지금, 이러한 구조는 대중들에게 불법 마사지업소를 점점 더 친숙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매체의 힘도 가세한다. 예능, 드라마 등 프로그램 내에서 연예인들의 마사지 장면은 흔하다. 하지만 그들을 마사지 해주는 이가 시각장애인인 경우는 흔하지 않다. 고급스러운 시설에 느긋하고 기분 좋게 마사지를 받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불법 마사지업소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남는다. 안마원 방송광고는 금지하면서 불법 마사지샵이 노출되는 것은 허용되고 있는 셈이다.

 

법에 명시된 제도일 뿐, 현실적인 관리는 없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는 제도만 있을 뿐 관리가 되지 않아 문제가 산재해 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에 대한 홍보가 전무하고 불법 마사지업소에 고객을 빼앗긴다. 설치기준 때문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인테리어를 하거나 업소를 확장, 스파를 겸할 수도 없다. 안마시술소의 퇴폐적 이미지로 인해 목 좋은 자리에 안마원을 개원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안마원’이라는 단어를 업소 이름에 써야 한다는 원칙까지 있다.

퇴폐 안마시술소를 모두 없앤다고 해도 안마원의 기능에 대한 적절한 홍보가 없다면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속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안마시술소를 모두 없애는 것은 시각장애인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과 같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있어 예민한 문제다.

안마원에서 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C씨는 “요즘은 시술소 외에도 헬스키퍼 등 일할 곳들이 생겼지만 거기서도 전맹이나 나이가 있는 분들은 취업하기 쉽지 않다”며 “그런 분들은 구조적으로 안마시술소 밖에 갈 곳이 없는데 시술소가 사라지면 그분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C씨는 “정부에서 헬스키퍼나 노인정 출장 안마 등으로 시각장애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길어야 2년짜리 계약직이고 노인정 등에 나가는 안마사들은 생활이 안될 정도의 돈만 받는다”며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취업할 곳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일자리 부족이 안마시술소로의 유입을 만들고 안마시술소가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고 부정적 인식과 홍보 부족이 불법 마사지업소들을 성행하게 하고 불법 마사지업소들이 안마원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안마원이 문을 닫으면 그곳에서 일하던 안마사가 다시 안마시술소로 흘러들어가면서 반복되는 구조다. 그 반복 구조를 끊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준다는 애초의 제도 취지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첫 단계일 것이다.

작성자조은지 기자  simhy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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