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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안 발의 후 짚어야 할 것들

연명의료결정법안 발의 안락사 허용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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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7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이하 연명의료결정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애계는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 침해가 예견된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특히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태아의 낙태가 모자보건법으로 허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환자의 존엄을 보장하려는 것’이라는 법률 제정 취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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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명의료결정법안은 김할머니 사건이 모태가 돼 발의됐다

연명의료결정법안의 발의와 연명의료계획서

연명의료결정법안은 지난 김할머니 사건이 모태가 되어 발의됐다. 김할머니는 지난 2008년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 회복 불능 상태가 됐고,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더불어 환자에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지만 관련 법을 만들어야 할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않아 환자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도 냈다.

이 소송을 계기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찬반 논란이 크게 일었고, 결국 소송 제기 1년여 만인 2009년 5월 대법원은 김할머니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헌법소원은 기각되었으나 이후 존엄사법 관련 법안들이 수 차례 발의되었다. 끝내 국회에서 통과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13년 상반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을 벌인 후 같은 해 7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내놓았다. 연명의료결정법안은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의료계, 법조계, 환자단체, 종교계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발의됐다.

김재원 의원은 “더 이상의 의료적 처치가 무의미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를 진행 및 중단함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의도로 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환자의 의사 능력 유무에 따라 연명의료 결정여부가 달라진다. 우선 환자에게 의사능력이 있다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여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환자가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은 상태라면 담당의사의 확인을 거쳐 ‘연명의료계획서’로 인정되며 ‘연명의료계획서’를 다시 작성할 수도 있다.

환자의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 다행히 건강할 때 작성해 놓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다면 의사 2인의 확인을 거쳐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다면 가족 2인 이상의 진술과 의사 2인의 확인이 필요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환자가 의사능력도 없고, 그 의사를 추정할 근거도 없는 경우다. 미성년자의 경우 법정 대리인의 결정과 의사 2인의 확인이 필요하다. 성인이라면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와 의사 2인의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법정대리인이나 환자 가족이 없는 경우, 병원윤리위원회의가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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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법안 마련을 위해 4,5년간 논의를 계속해왔다

당사자가 배제된 채 진행된 논의들

국가 차원의 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4, 5년 동안 이 법안 마련을 위해 논의해오면서 많은 이견들이 좁혀져 왔다. 법안이 발의되기까지 논의의 주체 중 종교계만이 생명은 신이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천주교의 근본 원칙에 근거해 제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을 뿐이다.

법안이 발의된 이후인 지난 8월 9일에도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연명의료결정법안이 자칫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법제화 과정에서 올바로 수정할 것을 요청했다. 특히 법안 17조 1항에서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보류되거나 중단될 수 없다”고 밝혀 ‘단순 공급’이 아닌 ‘인공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은 중단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케 한다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처치는 중단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즉 국가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고 발의한 연명의료결정법안으로 말미암아 말기환자를 의료사각지대로 몰아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종교계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에 비해 장애계는 연명의료결정법안이 각 계의 의견수렴과 공론화를 거쳐 발의되기까지 아무런 참여도 요구받지 못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성명서를 통해 “장애인들은 임종상황이 아니더라도 탄생에서부터 선별적 출산의 대상이 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기결정권은 존중받지 못한 채 너무나 쉽게 ‘의사능력이 없다’는 판단이 자행되는 사회·문화적 기반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연명의료결정조차도 가족과 의사, 그리고 병원윤리위가 판단한다면 과연 장애인의 생명권이 보장받을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한국장애학회(이하 장애학회) 또한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추정을 할 때 의사를 표현함에 많은 어려움을 지닌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에 대한 어떠한 명시적 조항도 두고 있지 않다”며 “장애인이 이 법의 중요한 관련 당사자임에도 장애계와 어떤 논의도 없었다. 졸속 제정을 중단하고 즉각 공론의 장을 마련하라”는 성명서를 제출했다.

 

법안 대상자는 매우 제한적, 생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 아냐

장애계의 성명서를 접한 김재원 의원실의 오범석 비서관은 “이 법안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며 “여러 언론을 통해 이 법안이 존엄사 쪽으로 해석되거나 생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당초의 목표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오 비서관은 “이 법안의 대상은 말기 환자 중에서도 죽음이 2, 3주 정도로 임박한 환자”로, “회생가능성이 없어야 하며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안 되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는 분에 국한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가족들이 임종 단계가 아님에도 경제적 문제 때문에 연명의료의 중단을 너무도 쉽게 결정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 쪽에서는 빈번히 일어나는 소송을 꺼려해 연명의료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라고 설명한 후 “그런 상황에서 환자의 의사는 온데간데없고 고통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드는 고비용의 문제는 물론, 의사와 환자 가족들 간 소송만 늘어 갈등이 고조되는 형국이다”라고 전했다.

오 비서관은 “의료인들이 이 법안의 필요성에는 100% 공감하나 엄격한 룰이 적용되다 보니 이 법안을 반기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특히 “병원윤리위원회는 기존에 없던 제도일뿐더러 만장일치가 원칙이고 의사능력이 없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여부를 가족 전원(직계 존비속 뿐만 아니라 4촌 이내까지)이 합의해야 하는 만큼 제도가 허투루 오용되는 것을 견제”했다고 밝혔다. 한편 병원윤리위원회는 병원 내부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추천한 사람으로 구성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장애 쪽 위원이 위촉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즉 지금까지는 연명의료에 대한 가부가 의사와 환자 가족의 의사만으로 일사천리로 결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연명의료계획서 또한 대형병원들만 가지고 있는 양식일뿐더러 그나마 제각각이고 법적 효력이 전혀 없어서 환자의 의사가 개진될 수 있는 절차가 거의 없다고 보여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오 비서관은 “장애계 쪽의 의견 수렴을 못한 부분은 인정한다. 그러나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취약계층의 인권을 유린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제정법이기 때문에 심사하면서 많이 수정될 여지가 있다. 공청회가 있을 것으로 아는데 그때 장애계 쪽과도 의견 수렴의 자리를 만들 예정이니 장애계도 문제의 소지가 많은 법률적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연명의료 중단의 이면을 보아야

발의에 앞서 장애계가 먼저 참여를 유도해내지 못한 점 또한 분명한 오류이기도 하다. 한국장애학회 조한진 회장은 “그동안 장애계는 법과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쏟아 발전을 이루었다. 그에 비해 연명의료는 인식의 문제이자 문화의 문제인데 장애계가 이슈를 주도하지 못하고 뒤늦은 감이 있다”며 이제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이어 조 회장은 “법안의 발의로 연명의료의 가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한 죽음의 문제와는 관계없다”고 못 박으며 “구차하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라고 얘기하지만 그건 실제 이유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경제적인 이유를 들었다. 고비용의 생명유지장치를 유지하면서 온 가족이 자기를 돌봐야 한다면 살고 싶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의료보장이 잘 되어 비급여 항목이 줄고 가족의 부담이 덜어진다면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바람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통증의 문제를 들었다. 아무리 돈이 많다해도 통증이 심하면 죽고 싶은 욕구가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스피스 같은 곳에서 완화치료를 통해 통증이 관리되는 상황에서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심적인 측면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즉 장애인에 대한 돌봄에 드는 거의 모든 비용과 노력을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이 연명의료를 결정하는 것은 있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실상 김재원 의원실이 아닌 정부안으로 보는데 법안에 대해 종교계의 조건적 반대 빼고는 거의 찬성이라고 보인다. 좀 더 문제제기가 되지 않으면 입법화 될 것이다. 우리 학회는 이 사안에 대해 계속 점검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이슈화하고 연대해 나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확대 실시가 선행되야

장애계와 김재원 의원실, 종교계는 ‘호스피스·완화치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환영했다. 오범석 비서관은 “발의된 연명의료결정법 또한 임종 단계에 이르렀을 때 호스피스를 선택하거나 연명의료를 결정하는 것에 자기결정권을 두고 있다”며 “무의미한 연명치료 비용이면 호스피스 완화의료 비용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종교계 또한 사회 각계와 연대해 연명의료 중단에 앞서 죽음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의식의 확산 뿐 아니라 호스피스 완화의료 등 사회적 인프라 확대가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장애계는 연명의료를 논하는 것 자체가 지금 시점에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한마디로 적어도 돈 때문에 죽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완화치료에 대한 의료보장이 된 상태에서 연명치료 여부가 논의되어야 자기결정권도 존중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현재 암관리법에 의해 암환자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모든 말기 환자에게 확대 적용한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존엄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얘기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성자박윤경 기자  gypsy7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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