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다시 염전으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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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겨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을 외딴 섬으로 유인하고 노동력 착취를 일삼았던 ‘염전노예사건’이다.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소금을 일구고, 소금 일이 없는 겨울에는 보수공사 등을 하며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곤 온갖 학대와 욕설, 착취 뿐이었다. 사람을 사고, 팔고, 종처럼 부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 됐던 이 사건은 ‘현대판 노예’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다
피해자들은 염전으로 유입되기 전, 대부분 역전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직업소개소 사람들과 염전주들은 갈 곳이 없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돈을 많이 버는 곳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며 염전으로 데려오곤 했다. 그리고는 여관이나 인근 숙박업소에서 몇 일 간을 머무르도록 하고 방값과 술값 등을 책정해 선불금을 물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불금은 그들이 염전에서 떠날 수 없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른 아침 일어나 눈을 감는 순간까지 늘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들의 현실에서는 단 한 순간의 ‘자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매번 누군가의 시선 안에 갇혀 자신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억압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른바 신안염전노예 사건이 터진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염전 피해자들 중 몇 명은 서울에 있는 한 체험홈에서 작업장을 다니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반면 일부 피해자들은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 일을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가해 염전주에게 3년 6개월의 실형 선고를 내렸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염전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몇몇 피해자들의 소식은 모두에게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그 선택 안에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염전 피해자들을 다시 찾아가보기로 했다.
▲ 인터뷰 중인 염전사건 피해자 |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에요?”
염전으로 다시 돌아간 피해자들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한가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왜 그들은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나?’가 가장 큰 화두였지만, 필자는 그보다도 ‘그들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딱히 이유라고 할 것은 없었지만, 그들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들이 비록 매우 작고 소소하다고 할지라도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답이 정해져있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기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이 질문 하나에 꼬박 1분이라는 시간을 침묵으로 보냈다. 진지한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은 필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1분의 침묵 끝에 들려오는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대답에 필자 또한 아무렇지 않은 듯 질문을 이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할 일 없는 노숙인 쉼터, 다시 염전으로…
사실 그는 사건이 터진 이후 지역에 있는 한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는 장애 등록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체험홈이나 장애인거주시설 등으로 연계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임시 방책으로 피해자들이 거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노숙인 쉼터로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쉼터에서 지낸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염전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 이유인 즉슨, ‘참을 수 없는 무료함과 답답함’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집 밖을 나와 강도 높은 노동과 누군가의 감시 속에서 생활해야 했던 그에게 ‘쉼’이란 마치 ‘가시방석’과 같았다. 매일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한 방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고, 딱히 정해진 프로그램이나 소일거리 등이 제공되지 않아 답답함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런 그는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비록 몸은 힘들고 고되지만 심적으로 가장 편한 곳이 염전이기에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염전에서 일어났던 온갖 노동력 착취와 학대, 욕설 등의 인권침해 사건들과 피해자들의 삶을 비추어 보았을 때, ‘심적으로 가장 편한 곳’이 어떻게 염전일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마치고 섬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선택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염전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뿐이라는 현실에 답답하기도 했다.
▲ 피해자들이 일했던 염전 |
또 다른 염전노예는 없어야만 한다
우리는 피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 개입 이후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잃어버렸던 가족을 되찾아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 일을 하거나 노숙생활을 하며 길거리를 전전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모든 일은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 한통’으로부터 시작됐다. 만약 그 편지가 없었더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는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다.
염전노예 사건은 온 세상에 퍼져나가 우리 사회 장애인 인권침해 문제의 심각성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아직도 그 문제는 온전하게 해결되지 못한 채 우리 곁에 남아있다.
1년이라는 시간과 무관하게 여전히 장애인들은 어딘가에 갇혀 원치 않는 삶을 강요받고 있으며, 사회는 그들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 편지만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았을 뿐, 어딘가에서는 크고 작은 제 2의 염전노예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전 사회의 머리를 맞댄 노력이 필요하다.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런 선택의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계속 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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